ALGATE RAW novel - Chapter 161
화
얻는 것도 없을 짓을 해서 내 경각심만 올려 주고, 쿠나메는 탁테드에게 찍혔다. 아니 제2 데블 플레인의 모든 헌터들에게 찍혔고, 듀풀렉 게이트의 탈취 소식은 이미 제3 데블 플레인에도 전해져서 쿠나메의 이름이 여기저기서 들썩거리고 있는 중이다.
그렇게 스스로의 이름에 먹칠을 하면서 그는 무엇을 얻고 싶었던 것일까.
물론 일각에서는 제2 데블 플레인의 원주민들을 구조한 나를 비판하는 이들이 없진 않지만 그 목소리는 인간을 인간답게 대한다는 사상이 대두되면서 묻혀 버리는 양상이다.
그래서 제1 데블 플레인과 제2 데블 플레인에서 원주민을 적대했던 과거를 반성하고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힘을 얻고 있다.
아무튼 아직 탈취된 듀풀렉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고 있었다. 실험을 했는지 어떤지 알 수도 없다. 어쨌거나 그 듀풀렉은 어차피 창고 이미지를 뇌파로 불러와서 입구를 여는 과정이 모두 생략되고 특정 좌표에 입구를 여는 것만 가능하게 만들어진 것이라 그것을 그대로 복사한다고 해도 별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기껏 우주 공간으로 입구가 열리는 소형 플레인 게이트 정도가 그들이 얻은 소득이 될 것이다.
물론 소형의 플레인 게이트라는 것이 그들을 흥분시킬 수는 있겠지만 나는 그들이 그것을 제대로 복사할 수 있을 거라고 믿지 않는다.
마법은 과학과 다른 분야다. 모성이 과학의 정점을 찍고 있다고 하더라도 마법을 쉽게 해체할 정도는 아니라고 믿는다.
“어쨌거나 우리도 이젠 돌아가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여기 더 있을 이유도 없고 말입니다.”
나는 돌탑과 잠쉬레 등에게 제3 데블 게이트로 돌아갈 뜻을 비췄다.
“커엄. 알겠네. 내가 연합에 일러서 선물을 준비하라 이르지. 텔론으로 할까? 아니면 코어로 할까?”
잠쉬레가 그렇게 물어보는데 나는 별 말 없이 웃기만 했다.
알아서 챙겨주면 가지고 갈 거고 아니면 그냥 가도 상관 없다. 어차피 이곳에서 얻을 것은 다 얻었다.
사람들을 구한다는 목표를 달성했으니 그걸로 족하지 않은가.
뭐 준다며 거절할 생각은 없다. 그거야 정성 아니겠어?
“이건 친구에게 주는 선물이다.”
돌탑도 내가 간다는 소리에 잠시 어딜 나갔다가 오더니 커다란 상자를 들고 와서 내밀었다.
텀덤을 넣어도 들어갈 정도고 큰 상자였는데 열어보니 코어들이 가득이다. 화이트 코어도 적잖은 수가 들어 있다.
거기다가 몬스터 물품으로 보이는 칼과 방패, 갑옷 같은 것들도 있다.
“우리가 모은 보물이다. 가지고 가라.”
돌탑은 상자를 주욱 밀어 주며 한치의 아쉬움도 없이 말한다.
“이건 과하다. 나와 포포니, 텀덤이 여기 온 것은 단지 몬스터에게 희생되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였을 뿐이다. 우리에게 헌터나 이곳의 원주민이나 같은 인간이었다. 그게 전부다. 이런 것을 받기엔 염치가 없다.”
나는 그렇게 돌탑의 상자를 거부했다.
뭐 그냥 꿀꺽 하고 싶기는 하지만 보는 눈이 좀 많다.
“하하하. 자자. 이건 좀 그러니까 갑시다. 하하.”
텀덤이 상자를 들고 나간다. 돌탑은 그런 텀덤을 말리려고 따라 나간다.
그리고 얼마 후에 함께 들어오는데 작은 상자를 들고 온다. 그 안에는 화이트 코어 몇 개가 들어 있다.
“커엄. 이걸 가지고 가라. 커엄.”
뭔가 어색하다. 하지만 나는 돌탑이 주는 상자를 이번에는 마다하지 않았다. 사실 제3 데블 플레인에서 이곳 제2 데블 플레인으로 넘어오는 듀풀렉 포인트를 만들어 놓은 것이 있긴 하지만 그건 만들기를 제3 데블 플레인의 코어로 만들어 놓은 것이라 조금 불안하다. 그러니 이곳의 화이트 코어로 새로 만들어서 설치를 할 필요가 있다. 거기에 화이트 코어는 유용하게 쓰일 것이다.
그리고 화이트 코어는 그 외에도 쓸 곳이 많다. 더구나 돌탑이 준 것들은 파란색과 남색 등급의 화이트 코어다. 이런 수준의 물건은 얻기가 쉽지 않다. 당연히 고맙게 받아 챙겼다.
“그럼 우린 이만 간다. 다시 볼 수 있기를 바란다.”
나는 돌탑에게 그렇게 인사를 했고, 돌탑과 그의 친위대가 우리 일행의 뒤를 따르며 환송을 했다. 그런데 걸음을 옮길 수록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우리가 가는 길의 좌우에 서서 우릴 배웅한다.
“모두 너에게 고마워하고 있다. 너는 우리들 모두의 형제이며 가족이며 친구다. 우리들은 너를 잊지 않을 것이고 언제나 환영할 것이다. 그리고 네가 원하면 네가 살린 생명들이 너를 위해 죽어 줄 것이다.”
돌탑이 내 뒤를 바짝 따르며 그렇게 이야기를 한다.
툴틱을 통해서 번역이 되어 들리는 말이지만 나는 돌탑의 말에 담긴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잠시 그를 돌아보다가 물었다.
“우리들 사이에선 귀히 여기고 가까이 아끼고 싶은 사람과 포웅을 하는 관습이 있다. 이곳의 사람들은 어떤가?”
내 물음에 돌탑은 잠시 생각을 하다가 말한다.
“우리는 서로 등을 대고 팔을 얽은 후에 서로를 등에 짊어지고 하늘을 보여주는 것을 최고의 예우로 생각한다.”
그거 스트레칭 할 때 쓰는 운동요법 아니냐? 뭐 그래도 나름 특별한 인사법이라니 한 번 하고 갈까?
나는 슬며시 돌탑에게 등을 내밀었다. 그리고 알았다. 이것이 어째서 특별한 인사가 되는 것인지 말이다. 이건 상대에게 내 등을 내어주는 행동이다. 그만큼 그를 믿는다는 말이 되는데 서로가 상대에게 그런 모습을 하는 것은 딱 봐도 믿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행동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서로 등을 대고 팔을 얽은 후에 서로를 등에 지기 위해서 힘을 주었다.
여기선 누가 양보를 해야 할까? 누가 먼저 하늘을 봐야 할까? 서로 주는 힘을 줄이지 않으면 결국 그것도 싸움이 된다. 하지만 내가 먼저 하늘을 보겠다고 욕심을 부리는 것도 추하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런데 그것도 그리 어렵지 않게 해결이 되었다. 내가 먼저 하늘을 봤다. 그것은 등과 팔로 전해지는 돌탑의 의지를 내가 느꼈기 때문이다. 그저 알았다. 돌탑이 나를 먼저 등에 태우고 싶어 한다는 것을. 그 의지가 나보다 훨씬 강하단 것을 알고 나는 그의 등에 몸을 실었다.
“와아아아아야!”
“와아아!”
“우아아아!”
“우화! 우하! 우하!”
사방에서 환호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무기와 방패를 서로 두드리며 리듬을 만들기도 한다. 저들은 진정 기뻐하고 있다.
나도 돌탑에게 그를 내 등에 지고 싶다는 의지를 전한다. 돌탑도 이번에는 내 의지를 받아 들여 내 등에 몸을 싣는다. 어휴, 이 놈 덩치가 텀덤만하니 들고 있기가 버겁다. 무거운 것이 아니라 체격의 차이가 생긴 탓이다.
그럼에도 나는 등에 올라온 돌탑이 기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등과 팔로 전해지는 그의 환희가 고스란히 내게 온다.
나 역시 그를 지고 있을 때나 그의 등에 있을 때나 기쁘고 즐겁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등에 세 번씩 오르고, 서로를 등에 세 번씩 올렸다.
그 뒤 우리는 말없이 헤어졌다.
언젠가 다시 만나겠지. 다시 보자 친구.
나는 제2 데블 플레인에서 친구를 하나 얻었다. 참 이상하게 조금 전까지 타인이었던 녀석이 이젠 친구가 되었다.
말 없이 그렇게 친구와 헤어지면서도 나는 가슴 가득 차오르는 충만함을 느꼈다.
“나를 스추알라라고 불러라. 다음에는.”
나를 등에 지고 낮게 웅얼거리던 돌탑의 마지막 말이 내 귓가를 어지럽힌다. 스추알라는 높이 쌓은 돌탑을 뜻하는 원주민 발음인 모양이다. 돌탑이라고 부르는 것 보다는 훨씬 좋다. 스추알라. 다음에는 너를 그렇게 불러주마. 솟구치는 번개 부족의 후예이며 원주민들의 영웅인 내 친구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