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GATE RAW novel - Chapter 167
화
그러니 자신감이야 오죽할까. 드디어 포포니의 경지를 따라잡았다. 우하하하핫. 마눌보다 약한 남편이란 사실 얼마나 자격지심이 생기는 것인지 모를 거다. 지금껏 말도 못하고 속을 태운 것을 생각하면 참, 가슴이 먹먹할 지경이다.
그런데 문제는 포포니다. 내가 포포니와 비슷한 수준이 되었다는 걸 알고는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그 기쁨 만큼이나 스스로를 다그치며 수련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알고보니 포포니는 나를 자기가 지켜야 한다는 묘한 책임감이나 의무감 같은 것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걸 일종의 권리라고도 생각하는 모양이다.
자기가 약해서 그 권리를 누구에게 빼앗길 수도 있다는 것을 못 견뎌 하는 거다.
아무래도 장모가 장인보다 강하다고 하더니, 그 영향으로 아내가 남편을 지키고 보호해야 한다는 의식을 가지게 된 것 같다. 아니면 대지 일족이 모두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남자보다 여자가 더 강해서 언제나 아내가 남편을 지키는 그런 곳이 대지 부족일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물어 보진 못했다. 이상하게 포포니는 일족에 대한 이야기는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곧잘 하는데 일족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하지 않으니 그런 이야기는 묻지 않게 되는 것이다.
어쨌거나 이참에 장인 장모를 만나러 가자고 포포니에게 선언을 했다.
“엉? 정말이야? 남편? 우리 집에 가자고?”
“그래. 가자. 마눌. 이번에는 정말 가자. 가서 장인 장모도 만나고 처제하고 처남도 보고 그러자.”
“우웅. 정말 가는 거야? 흐흑.”
이런 결국 이 여자가 우는 꼴을 보고 말았다. 이토록 그리워하고 있었던가? 그걸 나 때문에 참고 견디며 말 한 마디 하지 않고 있었던가 싶은 마음에 측은하고 고맙고 또 어여뻐서 나는 포포니를 힘주어 안아 준다. 내 사랑 포포니다.
나와 포포니, 텀덤과 마샤가 짐을 챙겨들고 내 처가에 갈 차비를 마쳤다.
“좀 많이 가야 해요. 이전에 살고 있던 곳에서 거처를 옮겨서 조금 더 북쪽으로 갔어요.”
마샤가 처가의 위치를 알고 있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그렇지 않았으면 한동안 처가를 찾아서 몬스터의 땅을 헤집고 다녀야 했을 거다.
“좋아. 그럼 출발을 하지. 요즘은 보는 눈들이 자꾸 늘어나는 것 같아서 신경이 쓰이니까 조심들 하고.”
나는 그렇게 일행들에게 주의를 주고 출발을 선언했다.
한동안 거리를 두고 있던 놈들이 요즈음 다시 접근을 시작하고 있다.
사실 쿠나메가 사고를 치고 얼마 뒤에 곧바로 우리 가족을 감시하는 이들이 생겼다. 소속도 알 수 없고 또 잡아서 물어봐도 그냥 지나던 길이라거나 혹은 그냥 구경 중이라는 말로 우리를 감시했던 행위를 부정하는 놈들이어서 별 소득도 없는 놈들이라 그냥 원거리 감시를 하도록 내버려 두었었다.
그런데 요즈음 그 놈들이 애가 탔는지 조금 더 적극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집의 담을 넘으려는 시도까지 할 정도가 된 것이다.
물론 그러다가 우리 이알-게이트 회원들에게 잡혀서 죽도록 맞고 헌터 연합에 가택 침입죄로 넘겨졌지만 일단 그런 시도가 시작되었다는데 주목해야 했다. 뭔가 변화를 꾀하고 있으니 우리들을 향한 직접 도발도 생각을 해야 하는 거다.
그렇다고 우리가 웅크리고 숨어 있을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쿠나메가 직접 온다고 해도 겁날 것은 없다. 나나 포포니 텀덤, 마샤 중에서 어느 누구도 쿠나메의 공격 한 번에 제압을 당할 정도로 약한 사람은 없다.
그리고 그 단 한 번의 기회를 쿠나메가 놓치게 된다면 그는 지옥을 맛보게 될 것이다.
우린 누가 되었건 우리를 노리는 이들에게 데드존을 선물할 준비를 해 두고 있다.
더구나 거점 도시를 벗어나 멀리 떨어진 후에는 은폐 마법진을 작동시키고 도리어 역습을 가할 계획도 세워 뒀다.
덤비는 놈들이 어떤 놈들일지 몰라도 그 놈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실수를 했는지 곧 알게 될 것이다.
“기억 났다.”
나는 갑자기 떠오른 기억에 소리를 질렀다.
방금 전에 우리는 우리 뒤를 쫓아오던 여섯 명으로 이루어진 팀 하나를 세상에서 지워버렸다.
그들은 데드 존에서 죽지도 못하고 우주 공간으로 사라졌다. 이전에 소행성들이 떠다니는 그 좌표로 그들 여섯을 날려버린 것이다.
이 소행성 지역의 좌표를 가지고 있는 듀풀렉은 단 하나만 제작해서 내가 가지고 있는데 다른 듀풀렉들과 다른 큰 차이가 있다. 그것은 바로 입구를 듀풀렉에서 30미터 이상의 거리에서도 열 수 있다는 것이다. 최대 백 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도 입구를 열 수 있게 만들었다. 물론 그러자면 코어의 에너지 소비가 엄청나게 커지지만 일단 우주 공간으로 통하는 입구를 여는 일이라서 듀풀렉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입구를 열 필요가 있어서 그렇게 만든 것이다.
그것을 이용해서 마스터 등급으로 보이는 여섯 명을 우주로 날려 버렸다.
그리고 방금 그 얼굴들 중에서 하나를 기억해 냈다.
“형님 무슨 일입니까?”
“아까 그 놈들 중에서 내가 아는 얼굴이 있었다. 그 놈, 분명히 코무스 소속이었어.”
“코무스요?”
텀덤이 무슨 말인가 하는 표정으로 나를 본다.
“아, 맞다. 남편, 그 때, 그 허벌이라는 사람하고 같이 있던 사람이지? 응?”
역시 포포니는 기억력이 좋다.
“맞아. 허벌 놈을 경호하던 놈이야. 그 놈을 기절시켜서 집 밖으로 끌어 나갔던 놈이지.”
“그럼 코무스란 회사나 그 허벌이란 사람이 이번 일과 연관이 있나는 건가요?”
마샤도 코무스 지역과 그에 얽힌 사건을 조금은 알고 있었는지 이렇게 물어본다.
“어쩌면 쿠나메 그 놈의 배후에 코무스가 있었을지도 모르지. 아니면 코무스가 실제로는 모성에서 데블 플레인을 손에 넣기 위해서 앞세운 전위 조직일 수도 있고.”
사실 이 생각이 옳은 것인진 모르겠다. 하지만 모성에서 데블 플레인에 대한 지배력을 높이려는 시도를 계속 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비밀도 아닌 일이다.
그 때문에 헌터 연합과 모성 사이에는 알력 싸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사실 모성에서는 데블 플레인에서 보내는 자원들이 무척 필요하다. 수 많은 식민 행성을 거느리고 있지만 데블 플레인에서 생산되는 것은 다른 곳에서 구하기 어렵거나 불가능하다. 당연히 데블 플레인의 생산품, 정확하게는 코어와 몬스터 사체, 그리고 몬스터 물품은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그걸 놓고 헌터 연합과 모성이 줄다리기를 한다. 물론 모성에서 플레인 게이트라는 숨통을 쥐고 있으니 연합의 패배는 언제나 반복되지만 어느 때부턴가 그럼 데블 플레인 각각이 알아서 생존하는 방법도 있다는 의견들이 나오면서 모성의 기세가 한풀 꺾이고 있는 중이다.
플레인 게이트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것이 있어야 행성간 이동이 가능하고 또 교류가 가능하다. 하지만 그게 없다고 살 수 없는 것은 또 아니다.
다른 식민 행성과 달리 데블 플레인은 모성의 어떤 무력으로도 점령이 불가능한 곳이다. 그런 곳에서 자급자족 하며 살겠다고 플레인 게이트 폐쇄를 요구하고 나서면 모성은 방법이 없다. 플레인 게이트를 치고 들어가 공격을 할 정도의 힘이 모성에는 없는 거다. 그런 힘은 오직 데블 플레인들이 가지고 있다. 그곳에 있는 헌터들과 원주민들만이 데블 플레인에서 전투가 가능한 것이다.
그러니 코무스 같은 거대 기업을 앞세워서 데블 플레인의 일정 지역에 자치 구역을 만들고 그를 바탕으로 세력을 키우려는 시도를 하는 것이 이상할 일은 아니다.
그런데 그걸 위해서 나를 건드린 것은 실수다. 아무렴. 만약 쿠나메 그 놈이 코무스와 연관이 있고 또 그 코무스가 모성의 권력자들과 이어져 있다면 나는 정말 거대한 적을 상대하게 될 것 같다.
뭐 어차피 쿠나메가 일을 저질렀을 때, 그들이 모성과 연관이 있으리란 사실은 알았던 거니 여기서 크게 놀라워 할 일도 아니다.
“우웅. 남편 어서 가자. 또 따라오면 귀찮아진다.”
포포니는 얼마 전에 여섯 명을 우주로 날려 버린 것에 대해선 별 감흥이 없는 모양이다. 하긴 죽은 것이 보이는 것도 아니고 그냥 게이트 입구로 빨려 들어간 것만 봤으니 별 감흥이 없을 만도 하다. 거기다가 지금 포포니는 온통 처가와 가족들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하니 다른 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도 당연한 일이고.
그래 어서 가자. 장인 장모를 보러 가야지. 뭐 등에 식은땀이 조금 나는 것은 그냥 약간 긴장해서 그런 것 뿐이다. 아무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