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GATE RAW novel - Chapter 172
화
타모얀 종족의 대지 일족.
그들은 일종의 집성촌을 이루고 살아가는 집단으로 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한 곳에 머물러서 살지 않는다.
일정한 기간을 머물다가 다른 곳으로 거주지를 옮기는 것이다.
무슨 이유로 그렇게 거주지를 옮기는 건지는 포포니도 말을 해 주지 않았는데 적어도 먹고 살기 위해서 그런 것은 아닌 듯 싶다.
대지 일족은 사냥과 채집으로 사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농사를 짓고 또 가축을 키운다. 물론 사냥도 하고 채집도 하지만 그것이 주업은 아니란 소리다. 농경과 목축. 그것이 이들의 생업이다.
그러니 사실 일족이 한 곳에 정착을 해서 사는 것이 삶을 편히 사는 방법이 분명한데 10년 정도를 주기로 끝도 없이 이동을 하며 산다니 좀처럼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럼 이번에 옮긴 곳에서 앞으로 10년 정도 사는 건가?”
“음. 1년 지났으니까 9년? 어떨 때에는 조금 더 있기도 하고 또 어떤 때에는 덜 있기도 하니까 정확하진 않아. 남편.”
“왜 그렇게 하는 건지는 모르고?”
“응. 짐작은 하는데 그건 내가 끼어들 문제는 아니니까. 그런 일은 어른들이 알아서 하지. 난 분가를 했으니까 상관 할 수 없는 일이야. 그래.”
나랑 결혼해서 부족 외부로 나왔으니 이젠 부족의 일에 대해선 관여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다. 뭐 그렇다는데야 어쩔 수가 없지.
“포포리 처제는 아직 결혼을 안 했을까?”
“우웅. 모르겠어. 어쩌면 벌써 짝을 찾아서 결혼을 했을지도 모르지.”
“그럼 처제도 분가를 하게 되는 거야?”
“아니. 우리 일족과 결혼을 하면 분가를 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건 모르지.” “같은 대지 일족끼리도 결혼을 하고 그래? 모두 친척이라면서?”
“무슨 상관인데? 할아버지와 부모가 형제가 아니고 또 당사자가 형제가 아니면 상관없는데?”
“그러니까 육촌까지는 결혼을 못 하지만 그 이상이면 결혼하기도 한다는 소리네?”
“우웅. 몰라.”
그래. 촌수 따지는 건 포포니로 무리지. 그런 개념이 없으니까. 하지만 그게 또 어려운 것도 아닌데 말이지.
“따라 해 봐. 위로 1촌 옆으로 2촌.”
“웅? 위로 1촌 옆으로 2촌?”
“그래. 그래서 위로 부모님은 1촌, 그 위에 할아버지는 2촌. 부모님 옆에 있는 부모님 형제는 위로 하나 옆으로 하나 해서 3촌. 그 밑으로 있는 아이들은 또 하나 더해서 4촌.”
“아앙. 몰라. 몰라. 그런 거 몰라도 상관 없어. 우리 타모얀 대지 일족은 그런 거 안 따지니까. 그냥 어른들이고 형제들이야.”
그래. 뭐 그렇다는데 내가 뭐라고 하겠어. 맞다. 어른 아니면 형제. 그것도 아니면 노인이겠지.
후아아아. 미치겠네. 이거 이렇게 긴장이 되나?
이미 우릴 마중나온 기척이 여기저기서 잔뜩 느껴진다. 우와 도대체 몇 명이나 있는 거야? 대지 일족이고 포포니의 가족이라고 해서 단위를 작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다.
“대지 일족의 첫째 딸. 포포니.”
이제 곧 누군가 나와서 이야기를 하겠지 하고 기다리는데 숲에서 꽤나 헐벗은 차림의 여인이 나온다. 음. 저건 포포니가 나를 꼬시겠다고 입고 나왔던 그 옷과 그다지 차이가 나지 않는 옷인데? 거기다가 몸에 그림까지 잔뜩 그리고 나왔다. 저거 분명 그거 같다.
거기다가 생긴 것도 포포니와 많이 닮았다. 처음 포포니를 만났을 때를 떠올리게 만드는 모습니다.
“너어! 그 꼴이 뭐야!!”
그런데 포포니가 그 여자를 보자마자 소리를 빽 지른다.
“이게 뭐?”
“그걸 왜 입고 돌아다녀? 여긴 내 남편하고 남편 동생뿐인데. 그리고 둘 다 배우자가 있다고!!”
“히잉. 저 덩치도? 나 저 덩치 마음에 들었는데?”
“이런 멍청아!! 당장 들어가서 옷 갈아입고 나오지 못해? 어딜 넘볼 사람이 없어서. 마샤의 짝을 넘봐. 너 그러다가 엄마한테 죽도록 맞는다. 마샤가 에스폴이야. 그 전 이름이 타샤지.”
“히이익!”
포포니의 고함에 깜짝 놀란 여자가 숲속으로 후다닥 달려 들어간다.
“설마?”
“웅. 포포리야.”
하아, 처제와의 첫 만남이 이런 모습이라니 정말 뭐라 할 말이 없다. 어째 첫 만남부터 텀덤을 꼬시겠다고 그런 복장으로 나온단 말인가.
“흥흥!”
마샤도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콧방귀를 뀌고 있다. 텀덤은 지은 죄도 없이 안절부절 못한다.
그렇다고 텀덤이 나는 결혼한 사람이다하고 매번 소리를 지르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닌가 말이다.
그렇게 소란이 있었는데 우린 여전히 포위된 상태로 사람들의 모습은 보지도 못하고 있다. 어쩌자는 걸까?
“우웅. 기다려야 해. 가족 중에 누가 나와서 맞아 줘야 하는 건데 포포리가 그 모양을 하고 나왔다가 다시 들어갔으니까 이젠 아빠나 엄마가 나오시겠지.”
“맞아요. 분가해서 처음으로 마을을 찾아오면 가족이 맞이해야 하는 것이 이들의 관습이죠.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나서지 못하고 구경만 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지금 포위를 당한 것이 아니라 구경거리가 된 거란 말이지?
몸에서 힘이 빠지는 것 같은데 가만 생각을 해 보니까 이건 정말 문제다. 드디어 그 장인 아니면 장모를 대면하는 순간이라는 말이잖아. 우아아아아. 어쩌지? 어쩌면 좋아?
“남편. 진정해! 왜 그래? 갑자기.”
포포니가 내 심리 변화를 알았는지 금방 내 손을 잡아준다. 후아, 포포니 그래도 진정이 안 되는 것 같다. 어쩌면 좋으니? 사실 이건 뭐 맞아 죽는다라거나 하는 그런 두려움 같은 건 절대 아니다. 그냥 사랑하는 아내의 부모님을 처음 본다는 데에서 오는 심리적인 압박감 같은 거다. 지금 이 상황에서 맞아 죽는 두려움 같은 건 전혀 남아 있지 않다. 그거 참 신기한 일이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시간은 무척 느리게 가는 것 같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너무 빨리 흐르는 것 같기도 하다.
텀덤과 마샤는 한쪽에 나란히 앉아서 뭔가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나하고 포포니는 무슨 죄인처럼 둘이 손을 잡고 서서 누군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 중에 드디어 숲에서 누군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한 사람이 아니라 둘이다.
크시다. 빅(Big) 하신 것인데 그게 빅하단 느낌이 아니라 태(太)하시단 느낌이다. 텀덤아 너도 상대가 안 되게 크신 분이 저기 계신다. 그런데 아무래도 내 생각에 저 분이 내 장인어른인 것 같다.
“아빠!”
그래 맞다. 포포니가 저리 부르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지. 장인어른이다.
“그래. 내 첫째 딸, 포포니. 이리 오렴.”
크신 분께서 팔을 활짝 벌리고 포포니를 부르시는데 포포니가 내 손을 꼭 잡고는 우뚝 선다. 그리고 장인어른을 말없이 쳐다본다.
“커엄. 딸아. 왜 그러니?”
“아빠. 그 기운부터 좀 풀지 그래? 응? 설마 그거 우리 남편 때리려고 준비하고 있는 거야?”
뭐가? 나는 포포니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갑자기 장인 등 뒤에서 커다란 몽둥이가 나온다.
나, 저거 본 적이 있다. 그것도 얼마 전에 내 목과 머리에 달라 붙어서 목숨을 위협하는 상태로 똑똑히 봤다.
그런데 장인 어른은 그걸 검이 아니라 몽둥이로 만드셨구나. 저걸로 뭘 하려고 하셨을까?
허공에 둥둥 떠다니는 몽둥이도 참 크고 아름답구나. 역시 장인의 취향을 알게 한다. 난 저거 한 대 맞으면 그냥 골로 가겠네?
“커어엄. 아니다. 이건 그냥 평소처럼 수련 삼아서 들고 다니는 것 뿐이지. 이런 걸로 설마하니 네 남편을 때리기야 하겠니?”
“내 남편. 아빠 사위.”
“그, 그렇지. 아무렴.”
“아빠 사위.”
“그래 맞다니까.”
“아빠, 사.위.”
“커엄. 그래 사위. 내가 사위를 때리기야 하겠니? 그냥 그래 수련, 대련 뭐 이런 거지. 커엄 아무렴 그렇지.”
우와 우리 마눌 대단해. 전혀 밀리지 않아. 이기고 있어. 화이팅.
2미터 50은 되어 보이는 장인이 1미터 70도 되지 않는 포포니 앞에서 쩔쩔 매는 것을 보고 있으니 정말 우리 마눌이 대단하단 생각이 든다.
그래 그렇게 이겨서 제발 이 남편 맞아 죽지 않게 해 주라. 응? 마눌.
나는 장인 얼굴을 보면서 그렇게 포포니를 응원했다.
장인 어른의 얼굴은 정말 사내답게 생겼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선이 굵고 호방한 생김새다. 눈도 부리부리하고 눈썹도 짙고 굵다. 그러면서도 준수하게 생겼다 할 정도로 이목구비가 번듯하다. 하긴 그러니까 포포니가 그렇게 예쁘지.
짐승의 가죽인지 몬스터 가죽인지 모를 가죽으로 만든 옷은 꾸밈이 없이 수수해 보였지만 상의에 셔츠와 조끼까지 걸치고 있어서 평소에 막 입고 다니는 복장은 아닐 것 같다. 저런 복장은 농사와 목축에는 어울리지 않으니 말이다.
그래도 포포니가 온다고 신경을 좀 쓴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