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GATE RAW novel - Chapter 201
화
백사장에 산다는 괴수를 피해서 자클롭을 잡아들이기를 며칠, 이젠 확실히 백사장에 자클롭 떼의 수가 많이 줄어든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이크아니가 한 번 정화 의식을 치렀다. 사실 자클롭의 수는 정화를 몇 번 할 정도로 많은데 이크아니가 준비가 되지 않아서 몬스터 사체를 쌓아두는 상황이 되었다.
그걸 보고 이크아니는 정말 상상도 못했던 일이라며 눈물까지 글썽거렸다.
언제나 의식에 필요한 재료가 부족했는데 지금은 프락칸의 휴식시간을 맞춰서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라니 언제 그런 경우가 있었는지 모르겠단다. 아니 이크아니가 프락칸이 된 후로 한 번도 없었던 일이다.
그래서 이크아니는 특단의 조치를 취했는데 그것은 수상마을에서 이크아니의 후계자로 키우고 있던 젊은 여자에게 의식을 맡긴 것이다.
사실 데드존에서 죽은 것들은 다시 꺼내 놓아도 그 기운이 빠져나가거나 하는 일이 없는데 그래도 언제 자클롭의 사체들이 분해가 되어서 사라질지 모르는 상황이니 빨리 의식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에 따른 것이다.
그걸 두고서 장모님은 뭔 괴물을 그렇게 앞뒤로 가리지 않고 씨를 말리냐며 또 한 소리를 하셨다.
땅에 사는 것들이면 얼마를 잡아도 상관이 없는데 이 수생 몬스터들은 아껴 잡아야 하는 놈들인 것이다.
그래도 데드존에서 죽은 것들이라 사체가 기화되지 않아 다행이다.
헌터들도 사냥을 할 때에 몬스터를 잡고는 꼭 칼질을 해 둔다. 그래야 몬스터 안에 헌터의 에테르가 스며들어가서 기화를 막아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처리를 해도 결국 며칠이 지나면 몬스터의 사체는 기화되어 사라진다. 물론 그 전에 여러 처리를 거치면 그럴 일이 없지만, 그런 처리 작업은 도시의 몬스터 도축장에 가야 가능한 일이다.
어쨌거나 헌터든 선주민이든 몬스터가 죽으면 언젠가는 기화되어 사라지는 것을 알고 있다. 뭐 사실 기화라기 보다는 본래의 에테르 형태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봐야 겠지. 상급의 코어, 그러니까 부족 코어에서 나온 기운이 다시 그 부족 코어로 돌아가는 것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데드존에서 죽은 것들을 그런 현상이 일어나지 않으니 참 이상한 일이다. 한 번 연결이 끊어진 후에는 다시 연결이 되지 않는 모양이다.
장모님은 그 현상을 두고서, 이곳에 있는 기운이 다른 세상으로 갔다 오면서 그 소속을 잃어서 그렇다고 하셨는데 그 말이 정답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 정화 의식이란 것은 장모님이 하시는 것도 나는 아직 본 적이 없다. 몇 번 했다고 하는데 그 때마다 내가 할 일이 있고 바빠서 참석을 못했던 거다.
하지만 이번 이크아니의 정화 의식은 나도 참석을 해서 구경을 할 수 있었다.
물의 구슬이 있는 건물은 작지만 튼튼하게 지어졌고, 다른 건물들과 달리 앞에 마당 형식으로 목재를 깔아서 공간을 만들어 뒀다.
그래서 그 공간의 일부를 지금은 듀풀렉 게이트의 활성 공간으로 쓰고 있기도 하다.
아무튼 그 공터에 몬스터의 사체를 일정 이상 쌓아 두고, 물의 구슬을 양손으로 잡은 이크아니 프락칸이 구슬을 앞으로 내밀고 눈을 감은 상태로 정신을 집중한다.
나는 그 뒤에 뭔가 엄청난 광경이 펼쳐지지 않을까 기대를 했지만 별로 대단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쌓아 두었던 자클롭의 사체들이 하나하나 분해되듯 사라지기 시작하면서 거기서 푸른빛이 도는 연기나 아지랑이 같은 것이 피어올라서 이크아니가 들고 있는 구슬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이 전부였다.
아주 단순한 광경인데 그것이 제법 시간이 오래 걸렸고, 이크아니가 온 몸이 젖도록 힘들어 했다는 것이 좀 특이할 뿐이다.
그러니까 볼 것은 별로 없는데 프락칸은 무지 힘들어 하는 작업이 정화 의식이었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다음에 이크아니의 후계자가 다시 의식을 했는데 이때에 나는 프락칸의 능력에 따라서 정화 의식에서 사용할 수 있는 몬스터의 수가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았다.
이크아니의 반이 조금 넘을 정도의 자클롭을 사용하는 것을 보고 그 이유를 물었더니 수와젠 대전사가 예비 프락칸이 아직 능력이 모자라서 그렇게 하는 거라고 알려줬던 거다.
아무튼 두 번의 의식을 하고 나서 이크아니는 열흘 정도 쉬어야 한다고 했고, 예비 프락칸은 한 달 가까이 쉬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고 보면 이크아니와 예비 프락칸의 능력 차이가 몹시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그게 다 이유가 있단다. 프락칸이 되려면 물의 정순한 기운이 필요한데 그걸 제공해 주려면 또 의식을 자주 해야 하는 거란다. 그렇게 물리고 물리다보니 물의 일족에서 프락칸을 키우는 것이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또 당분간 할 일이 없어진 나는 듀풀렉 게이트로 대지의 일족 마을로 갔다가, 거기서 다시 모라산 마을까지 부유선을 타고 가서 모라산 마을에서 볼 일을 봤다.
마을을 하나 만드는 것이 어디 보통 일인가.
내가 아무리 모든 일을 게리와 이알-게이트 회원들에게 맡겨 두고 있지만 그래도 간혹 얼굴이라도 보이고 해야 하는 거다.
누가 뭐래도 내가 이알-게이트의 총괄 리더, 그러니까 총 지휘자가 아닌가. 더구나 모라산 마을은 이알-게이트에서 야심차게 준비하고 있는 세력 확장의 첫 걸음이나 마찬가지인 곳이다.
당연히 신경을 써 줘야 한다.
“요즈음 이상한 놈들이 얼씬 거린다며?”
나는 마침 모라산의 이알 상점에 들른 게리를 만나서 이야기를 꺼냈다.
“네. 그 동안 조용하더니 그래도 욕심을 버리지 못한 모양입니다. 회원들이 알아본 바에 따르면 전에 일개미 길드에 속해 있었던 이들이랍니다.”
“그거 코무스 놈들이지?”
“원래는 아니었는데 그렇게 되었지요. 텔론으로 일개미 길드를 완전히 먹어버렸으니까요.”
“그런데 아직도 그래? 그 사이에 일개미 길드 유명무실해진 걸로 아는데?”
“그렇죠. 그래서 말씀 드리지 않았습니까. 일개미 길드가 아니라 거기에 속했던 놈들이라고요. 지금 일개미 길드는 문 닫았습니다. 우리가 일개미 길드죠.”
“응? 우리?”
“이알게이트. 그거 일개미 아닙니까. 하하하.”
뭐 말이야 맞는 말이지만.
“아무튼 그 놈들이 다시 얼쩡거리는 이유가 뭐야?”
나는 코무스 놈들이 다시 무슨 일을 벌이려는 것 같아서 마음이 쓰였다.
“역시 듀풀렉 게이트 때문입니다. 그거 어떻게 해 볼 수 없을까 하고 기웃거리는 건데, 이미 붙박이로 박아 놓은 거고, 그거 움직이면 다시 쓸 수 없게 된다는 것도 이미 널리 알린 상태라서 그걸 탈취할 생각은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게 얼마나 갈까? 그 놈들 어떻게든 그걸 뜯어 가려고 수를 쓸 걸? 아니면 상점 통째로 바닥까지 뜯어 가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
“어? 정말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그냥 통째로 뜯어 가면 되는 거 아닙니까?”
“그게 가능해? 이알 상점의 듀풀렉 게이트가 있는 게이트 룸은 둠 형태로 되어 있고, 상점 건물의 중앙에 있는데? 차라리 건물을 통으로 들고 간다고 하지 그래?”
“그럼 그렇게 하면 가지고 갈 수는 있습니까?”
게리가 혹시 하는 표정으로 묻는다. 그게 되겠니? 이 인간아?
“하아, 안 돼. 절대로 가지고 갈 수 없어. 내가 이 제3 데블 플레인 어디에다가 기준석이란 것을 박아 뒀어. 그거 별 건 아닌데 그냥 일정한 신호가 나오는 거야. 꽤나 깊은 곳에 넣어 뒀는데 그걸 기준으로 좌표를 정했어. 그런데 말이야. 그 좌표가 퓨풀렉에 적용이 되어 있단 말이지. 그래서 한 번 정해진 좌표에서 벗어나게 되면 그 듀풀렉은 쓸모가 없어지게 되는 거야. 그래. 다시 그 좌표로 돌아오면 쓸 수 있지. 그러니까 정확하게 말해서 어떤 방법을 쓰건 간에 듀풀렉을 이동시키면 그 즉시 사용 불가가 된다는 말이야. 알겠어?”
“하하하. 네. 알겠습니다. 그거 아주 좋군요. 그래서 한 번 설치한 것은 움직일 수 없다고 하신 거로군요? 멋집니다.”
멋지긴 개뿔, 내가 그걸 생각하느라 얼마나 머리를 쥐어 뜯었는지 알지도 못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