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GATE RAW novel - Chapter 245
화
“저기 형님.”
게이트를 오가며 가오리 괴수의 사체를 운반하던 텀덤이 갑자기 나를 부른다.
“응? 왜?”
“가우가우미 프락칸과 바람의 일족 프락칸 둘이 정화 의식을 하고 있습니다.”
“응? 그래? 어? 뭐!? 뭐라고?”
“정화 의식을 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아니 왜? 뭣 때문에 그렇게 서둘러서….”
나는 텀덤의 말에 발끈하다가 뭔가 떠오르는 것이 있어서 말을 멈췄다.
“설마?”
“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기운이 변해간다고 서둘러서 정화 의식을 해야 한다고….”
“장인어른 들으셨습니까?”
나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괴수들을 지켜보고 있던 장인어른을 불렀다.
“커엄. 들었네.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우와 마음도 넓으시지 장인어른은. 어떻게 괴수의 사체가 허공으로 떠버렸다는데 저렇게 무심하실 수가 있지? 아니 그게 아니지. 생각해 보니까 어차피 그 사체로 할 수 있는 일이란 바람의 일족의 정화 의식을 보는 것 밖에 없잖아. 제대로 쓰이긴 한 거로군.
“안 가 보셔도 됩니까?”
텀덤이 슬쩍 물어 온다.
“정화의식이 뭐 별거라고 굳이 가서 자리를 지키냐? 하늘 몬스터 잡아서 정화 의식 하는 거 몇 번 보지 않았어?”
나는 그 쪽 보다는 저 밖에서 대치하고 있는 세 마리의 괴수들이 더 관심이 간다.
“하긴 봐도 별 것 없죠. 그래도 괴수 사체로 정화 의식을 하는 거니까 좀 다를 줄 알았는데 프락칸 셋이 진땀을 흘리며 하는 것 치고는 별로 볼 것도 없긴 했습니다.”
정화 의식이 뭐 그렇지. 그저 몬스터가 지니고 있는 기운을 본래의 기운으로 바꾸어 세상으로 흩어 놓는 일이니 눈으로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기운이 세상으로 퍼져 나가는 것인데 볼게 뭐가 있겠어. 그나마 기운이 짙을 때에는 조금 색깔이 보이기라도 하지만 허공으로 흩어지면 아무 것도 남는 것이 없으니 그저 프락칸들이 허공에 손짓하는 거나 구경을 할 뿐이지.
그나저나 몬스터 사체를 조각조각 잘로 놓으면 그 기운이 묘하게 변해 버리는 건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단 말이지. 그나마 데드존에서 죽은 것은 조금 나은 편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엔 조각난 사체들은 어김없이 대지와 물과 바람의 기운이 하나의 기운으로 바뀌어 버린단 말이지.
그 기운은 몬스터의 기운도 아니고 그렇다고 행성이 원래 지니고 있던 기운과도 거리가 먼 것이다. 어쩌면 그 기운이 근원적인 어떤 기운에 더 가까운 것일지도 모르지만 정체를 알 수도 없고, 당장에 이 행성에서 살아가는 생명들에게 어떤 유익함도 없으니 아까운 기운의 낭비가 될 뿐이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지만 아마도 몬스터의 몸속에 기운을 몬스터들에게 알맞은 것으로 유지하게 하는 어떤 체계가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그 정확한 구조나 구성은 알 수 없지만 말이다.
그런데 몬스터의 사체를 잘라내면 그 기운을 유지하고 있던 어떤 틀이 깨어지는 것을 거라고 짐작하는 거다. 물론 제대로 알지 못하니 그저 짐작이고 추측일 뿐이지만.
“움직인다!”
세 괴수의 대치를 지켜보던 대전사 중에 누군가가 낮은 음성으로 경각심을 일깨웠다.
역시 셋 중에서 제일 먼저 움직인 놈은 날개를 퍼덕거리고 있던 녀석이었다.
녀석은 부리를 크게 벌리더니 그 부리 앞쪽으로 뭔가 응축된 기운을 모아서 하나의 구체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걸 본 다른 두 녀석도 동시에 그와 유사한 것을 만들어 냈다.
해파리 녀석은 가장 굵고 튼튼한 다리 두 개를 뻗어서 그 사이에 구체를 만들었고, 뱀 녀석은 목 부분을 넓게 펼치더니 그 앞쪽에 구체를 만들어 냈다.
“어마어마한 기운이로군.”
장인어른이 낮은 감탄사를 토하신다.
“그렇게 대단한 겁니까?”
나는 사실 별 느낌이 없었기에 장인어른께 여쭙지 않을 수 없었다.
“정면충돌로 내가 감당할 수가 없다. 나 정도 되는 사람이 셋이 힘을 모아야 저거 하나를 감당할 수 있을 거야. 정면 충돌론 전혀 승산이 없어. 한 마리도 안 될 것 같아.”
“하지만 가오리 괴수는 잡지 않았습니까. 보아하니 저기 세 놈이나 가오리 괴수나 비슷한 녀석들로 보이는데요?”
“죽은 가오리도 한꺼번에 힘을 모았으면 저 정도가 되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가오리는 저런 힘을 모아서 쓸 곳이 없었어. 제 몸뚱이 위에 달라붙은 우리들에게 저런 기운을 날렸다가는 함께 죽자는 것 밖엔 안 되었을 테니 말이야.”
“그런 거였습니까?”
“거기다가 힘은 쓰면 쓸수록 줄어드는 거지. 작은 공격이라도 계속 해서 뿌렸으니 힘이 줄어들 밖에. 더구나 우리 공격을 몸으로 맞으면서 그것도 방어를 해야 했으니 힘의 분산이 더 심했을 거고. 결국 큰 거 한방은 쓰지도 못하고 죽은 거라고 봐야지. 저 놈들과 같은 힘을 지니고 있었다면 말이야.”
장인어른은 은폐장 밖에서 대치하는 세 마리의 괴수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신다. 뭔가 괴수들의 모습에서 배울 것이라도 있는 모양이다.
그건 몇 명의 대전사들도 마찬가지다. 모두들 엄청난 집중력으로 세 괴수의 대치를 보고 있다.
“남편.”
“응?”
구체를 만든 뒤로도 또 다시 대치상태로 들어간 녀석들을 보다가 포포니가 내게 고개를 돌리며 부른다.
“있잖아. 저거 하나 만들어서 어디 쓰려는 걸까? 상대는 둘인데 말이야.”
아, 그래. 그 말이 맞다. 공격 기회는 한 번이고, 상대가 둘이면 꽤나 곤란한 상황이지. 한 놈에게 쏘면 그 놈이 자신에게 반격을 하게 될 테고, 그럼 둘이서 서로 주고 받는 상황이 되는데 그 때에 남은 놈이 둘 중에 한 놈을 노리게 되면 그걸로 끝장이 나고 말 거다. 그러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이건 뭐 처음에 대치할 때와 달라진 것이 없는 셈이다.
서로 다른 한 놈이 어부지리를 취할 것이 두려워서 어쩌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또 다시 하염없는 대치 상태도 들어가는 것인가 하고 내심 지루하다는 생각을 하는데 갑자기 새로운 선수가 등장해서 상황이 바뀌게 되었다.
꾸우우우우웅! 쿵쿵쿵. 꾸우우우우 쿵쿵.
멀리서 어마어마한 크기의 언덕이 하나 다가오고 있다.
“우와. 산이 움직여!”
그래 포포니의 말이 맞다. 정말 산이 움직이고 있는 것 같다.
높이가 100미터는 넘는 언덕 하나가 동쪽에서 이쪽을 향해서 오고 있었다.
“저건 지상형 몬스터 같지?”
“웅. 날아 다니지 않고 걸어다니니까 땅에 사는 거야. 대지의 기운이 많을 거야. 엄청나게.”
포포니가 내 짐작에 동조했다.
그것은 네 개의 다리를 가지고 있는 괴수였다. 등에는 흙과 바위를 얹고 있었는데 마치 거북의 등껍질처럼 땅가죽을 덮어 쓰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 등껍질 앞으로 머리가 있는데 길다란 상아는 코끼리의 그것을 닮았지만 코는 길지 않았다.
“우웅. 표범, 얼굴이 바다표범 닮았어.”
아, 그래. 포포니 말이 맞는 것 같다. 뭐 나는 바다사자하고 닮은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그거지. 다만 이빨이 위에서 아래로 길게 난 모양이 아니라 상아처럼 돌출되게 길게 뻗어서 위쪽으로 휘어진 모양이다.
하긴 몬스터 생긴 것을 두고 뭐라고 하기도 좀 그렇다. 저것은 그저 수 백 미터 크기의 괴수일 뿐이다. 일반 동물들 중에서 저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 거다.
아무튼 저 놈이 나타나면서 상황은 바뀌게 될 것이다. 이제 어떻게 될까?
새로운 괴수가 점점 다가오고 있는 중에 하늘에 떠 있는 세 마리의 괴수들은 아직 미동도 없이 대치상태를 풀지 않고 있다. 도대체 뭘 믿고 저러는 거지?
“아, 봐봐, 남편 저기 저기에도 또 있어.”
포포니가 저 먼 곳에서 일어나는 먼지 구름을 보면서 소리를 지른다.
북쪽 방향이다. 그리고 곧이어 남쪽 방향에서도 소식이 있었다. 뭔가 다가오고 있는 거다.
“괴수란 괴수는 모두 모이는 건가? 이거 위험하겠군.”
장인어른이 바짝 긴장을 하신 모습이다.
하긴 당장에 보이는 괴수만 여섯이다.
그런데 묘하게 숫자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하늘에 셋, 땅에 셋이면 맞는 것 같지만 그건 우리가 하늘 가오리 괴수를 하나 처리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문제가 다르다. 땅에서도 한 마리가 더 있어야 수가 맞는 거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