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GATE RAW novel - Chapter 252
화
정신을 차리고 어금니 괴수의 상태를 눈으로 보니 내가 느낀 것이 정확했다. 여기 저기 커다란 상처를 입은 어금니 괴수는 더 이상 대항할 힘이 없어 보였다.
서둘러서 은폐 도구들을 꺼내서 주변에 마법진을 만들기 시작했다.
은폐 도구 자체로도 주변을 왜곡하는 기능이 있는데 그것을 이용해서 다시 은폐 마법진을 만드는 것이라서 의외로 효과가 좋다. 저번에 가오리 괴수를 숨길 때에 처음 사용을 해 본 방법이지만 효과가 좋아서 그 동안 조금 더 개량을 해 뒀던 것이다.
“되었습니다. 이젠 마무리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나는 장인어른께 은폐가 끝났다고 알렸고, 즉시 대전사들이 마무리 공격으로 어금니 괴수의 숨통을 끊어 놓았다.
“크음. 코어가 나온 모양이로군.”
어금니 괴수가 죽자마자 장인이 입맛을 다시면서 괴수의 배 부분을 쳐다보신다.
아마도 괴수의 사체 아래에 코어가 깔려 있는 모양이다.
나도 가만히 집중을 해 보니 강력한 기운이 뭉쳐 있는 코어가 느껴진다. 이전에는 코어만 따로 있을 때에는 그것을 잘 느끼지 못했는데 디버프를 개선하면서 감각이 더 예민해진 것인지 코어도 집중을 하면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사실 디버프, 아니 정신 능력으로 따지면 나도 대전사쯤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솔직히 괴수에게 디버프를 걸 수 있는 능력이면 대전사보다 나으면 나았지 못할 것은 없잖은가 말이다. 다만 이 디버프 정신 능력이란 것이 겉으로 보이는 임펙트가 없어서 사람들이 잘 인식을 못하는 것 뿐인 거다.
“남편, 수고했어. 응응.”
포포니가 옆구리로 파고든다. 이제 우리 부부가 할 일은 대충 끝이 난 거다.
“수고 했어요.”
“대단한 능력이에요. 정말 대단해요. 괴수를 그렇게 무력하게 만들 수 있다니 말이에요.”
마샤와 하코테 깝딴이 다가와서 치하의 말을 한다.
“아닙니다. 두 분이 도와주셔서 그런 거지. 혼자서는 그런 효과를 보기 어렵습니다. 확실히 힘을 모으니까 일이 쉽기는 하군요.”
나 역시 두 사람을 칭찬했다. 사실 저 둘이 없었으면 디버프가 그렇게 쉽게 먹혀들기도 어려웠을 거라고 생각한다. 서로 도운 것이니 이렇게 서로서로 얼굴에 금칠을 해 주는 것도 나쁘진 않다. 뭐 성취감도 느껴지고 좋지 않은가.
“형님, 엔테이스 님께서 오신답니다.”
우리가 서로 칭찬하고 있는 중에 텀덤이 새로운 소식을 알려왔다. 장모께서 왕림을 하신다는 거다.
그 쪽에는 리샤밖에 없으니 리샤의 듀풀렉을 이용해서 이쪽으로 건너오실 모양이다.
“아, 그럼 나는 이만 가 봐야겠네요. 그쪽에 리샤만 있어서 불안하니까요.”
이동 가능한 개인용 듀풀렉은 지금까지 다섯 개만 만들어서 모두 허브 기지를 중간 경유지로 사용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그런데 지금 이곳에 네 명이 모두 모여 있으니 리샤가 허브 기지를 이용할 수가 없다. 리샤가 허브 기지로 들어가게 되면 그 다음에 다시 제3 데블 플레인으로 나오는 방법은 우리들이 게이트 입구를 열어주던가 아니면 아주 비밀스럽게 제3 데블 플레인에 만들어 놓은 듀풀렉 세이브의 작동 시간을 기다려서 그곳으로 나오는 방법 뿐이다.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에 듀풀렉 세이브를 몇 곳에 만들어 뒀다. 보름 정도에 한 번씩 입구가 열리도록 만들어져 있고, 그 시간도 별로 길지 않다.
하지만 혹시라도 세포니 행성에 우리 다섯이 한꺼번에 몰리는 경우를 생각하면 꼭 필요한 것이 듀풀렉 세이브라서 안전한 곳에 숨겨서 몇 곳을 만들어 놓은 상태다.
아무튼 마샤는 리샤가 있는 곳으로 가고, 대신에 장모님이 몇 명의 사람들과 함께 모습을 드러내셨다.
그리고 쓰러져 있는 어금니 괴수를 보고는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신다.
어? 포포리 처제도 왔네? 어쩐 일이지?
“자네가 고생이 많네. 괴수들을 사냥하기 시작하니 그것 참, 성과가 점점 커지는구먼.”
장모님께서 나를 보시며 그렇게 치하를 하신다. 슬쩍 뒷머리만 긁고 서 있었다.
“아마 저 괴수를 여기에서 정화하고나면 이 근처에는 당분간 대지의 몬스터들은 나타나지 않을 거라네. 하늘에 있는 몬스터들도 꺼리는 곳이 되겠지. 아마 새로 마을을 세워도 될 거야. 아무렴.”
“그럼 선주민들 중에서 정착할 사람들을 이곳으로 이주시키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모라산 종족이나 그 외에도 떠도는 이들이 많다고 들었는데 말입니다.”
“호호. 그것도 좋겠지. 그럼 사위가 듀풀렉은 지원을 해 주는 건가?”
장모님은 내 대답이 무척 마음에 드시는 모양이다. 어쩌면 내가 이곳에 헌터들의 마을을 만들 거라고 생각하셨던 모양이다.
하지만 이곳 분지는 당분간 검증된 이알-게이트 회원에게만 출입을 허락할 생각이다. 그리고 될 수 있으면 선주민들의 정착지로 만들 계획이다.
사실 나에게 선주민이나 헌터나 그다지 차별을 할 이유가 없다. 도리어 선주민들이 더 친근하고 가까운 이들이다. 거기다가 처가를 통해서 꽤나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이들이 아닌가. 전력으로 따져도 헌터들에 비할 바가 아닌 힘이다.
그러니 헌터들을 모으는 것 이상으로 선주민을 모으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처제는 왜 데리고 오셨습니까?”
“아, 저 아이? 저 아이도 떠나기 전에 프락칸으로서 배울 것들을 제대로 배워야지. 그냥 보내기만 해서야 그곳에 가서 천덕꾸러기 밖에 더 되겠나? 그래서 훈련을 시킬 생각으로 요즘은 끼고 다니는 중이네.”
아, 그래서 처제 얼굴이 반쪽이 되었군. 고생이 여간 아닌 모양이다. 그나마 가오리 괴수를 잡아서 희생된 전사들에 대한 복수를 마무리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처제에 대한 거북한 시선은 많이 줄어 들었다.
사실 처제가 알고 저지른 일도 아니고, 이제 곧 먼 곳으로 파견을 나가야 한다고 하니 측은한 마음도 들고 그래서 용서해 주자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장모님 혼자서 정화가 가능하시겠습니까? 아니 장모님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괜찮네. 코어가 나왔다더군. 그러니 코어는 제외하고 사체만 먼저 정화를 하면 되네. 그리고 코어는 다른 곳으로 가지고 가서 정화 의식에 사용하면 되겠지. 그럼 마을을 세울 장소 두 곳은 확보할 수 있을 거네.”
“엄마! 코어는 우리 이이 줘야지. 다 엄마가 가져가면 우린 남는 게 하나도 없잖아. 이번에 얼마나 고생을 하고 들어간 코어나 뭐 은폐 도구 같은 것도 얼마나 많은데 우린 뭐가 남아? 우리도 먹고 살아야지.”
곁에서 듣고 있던 포포니가 버럭하고 따지고 나선다. 음, 나는 그냥 모르는 척 물러서는 것이 가장 좋은 처세술이다. 여기서 포포니 말리다간 나중에 포포니에게 꼬집힐지도 모른다.
“이것이 지금 누구한테 대들어? 응? 그리고 괴수의 코어를 니네가 어디 쓸 거야? 응?”
“어디 쓸 건지는 보고 결정을 해야지. 그게 얼마나 강한 힘을 지니고 있는지, 그리고 그게 또 화이트 코어처럼 회복이 되는 건지 그런 걸 확인하고 쓸 데를 정해야 할 거 아냐. 그냥 홀딱 정화를 해 버리면 어떻게 하자는 거야? 응?”
“정화는 중요한 거야. 정화를 해야 땅이 기운을 얻지. 그래야 괴물들이 설치지 못하게 되는 거고.”
“그냥 코어로 있어도 어느 정도 효과는 있는 거잖아. 그러니까 쓸 곳에 쓰는 것도 나쁜 거는 아니지.”
아, 두 모녀의 설전이 길어지게 되는 걸까? 곤란한데?
“커엄. 당신은 그만하고 정화 의식이나 하지. 그리고 이번에 나온 코어는 사위네 줘. 전에도 고생만 하고 얻은 것이 없었잖아. 거기다가 이번에도 그러면 사위 보기가 부끄럽지.”
우와 장인어른 존경합니다. 감사,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장인어른이 나서서 한 마디 하신 탓인지 장모님도 아무 말 없이 물러나신다. 음, 이렇게 되면 또 하나의 괴수 코어를 얻게 되는 건가? 빨리 실버 코어란 것을 연구하고 싶어서 몸이 근질거린다.
어금니 괴수의 정화 작업이 시작되기 전에 그 놈의 배에 깔려 있던 코어가 내 손에 들어왔다. 워낙 덩치가 큰 놈이라 그 밑으로 땅을 파고 들어가서 코어를 꺼내 와야 했지만 어쨌거나 코어는 내 것이 되었다.
그리고 괴수의 사체를 이용한 정화 의식에는 포포리 처제도 참가함께 했는데 장모님 말씀으론 포포리 처제가 있어서 의식이 덜 힘들었다고 하셨다.
아무리 코어가 빠진 사체라도 혼자서 정화의식을 하기에는 장모님도 버거우셨던 모양이다.
그리고 정화 의식이 끝난 후에 대지의 일족들은 한결같이 그 땅이 기분이 좋은 곳으로 변했다고 입을 모았다.
확실히 대지의 일족은 땅의 기운에 영향을 받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나는 느끼지 못하는 것을 그들은 명확하게 느끼는 모양이다.
그렇게 새로 확보된 땅에 누굴 들어와서 살게 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처가에서 알아서 하기로 했다.
그 후로 나는 한동안 외부 활동을 접고 칩거에 들어갔다.
대회합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그 전까지 서포니의 허브 기지에서 준비 작업을 하기도 해야 하고, 실버 코어 두 개를 가지고 실험도 해야 했다. 또한 이제는 거의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든 다른 데블 플레인의 기운들에 대한 마무리 정리도 할 필요가 있었다.
이번 대회합은 무척 중요한 행사다.
타모얀 일족의 지도자들이 모두 모이는 것이니만큼 당연히 그 규모도 상당할 것이지만 이번에 모이는 이들은 이전과는 다른 혁명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대륙 전체, 타모얀 종족이 퍼져 있는 곳이라면 일정 거리마다 듀풀렉이 설치될 것이고 그것은 선주민들의 삶에 일대 변혁을 일으킬 것이다.
나는 이번에 아주 사고를 크게 치기로 결심을 했다. 내가 선주민에게 듀풀렉 게이트를 보급하기 시작하면 당연히 헌터 연합이나 권력자들이 접근을 해 올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들은 나를 어쩔 수 없다.
듀풀렉 게이트는 내가 아니면 만들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내가 세포티 행성에서 마법사로서 고리를 형성한 상태가 아니면 시동이 되지 않는다. 최초의 마법진의 활성화를 마나 고리를 가진 마법사가 아니면 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다른 종류의 에너지로 내가 만든 마법진을 구동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니 사실 복사라거나 하는 걱정은 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걱정했던 것은 기존에 설치한 듀풀렉 게이트들 분리해서 따로 이동시켜서 설치하는 것에 대한 문제였다.
하지만 그것도 이젠 해결을 했다.
기준 좌표를 듀풀렉을 설치할 때에 입력하고 거기서 이동하게 되면 자동적으로 마법진이 작동하지 않도록 해 놓은 것이다. 이를테면 듀풀렉 게이트가 작동을 하려면 비밀번호처럼 그 듀풀렉 게이트가 위치한 좌표가 일치해야 한다는 말이다. 당연히 그렇게 만들기 위해서 듀풀렉 자체가 스스로의 위치 좌표를 읽을 수 있도록 하는 복잡한 마법진도 추가가 되었다.
은폐 도구를 타모얀 일족에게 선물하려는 계획을 넘어서 듀풀렉 게이트를 보급해서 선주민들의 단결을 이루어 낼 계획이고 이를 통해서 결국은 제3 데블 플레인의 통합을 이루려는 것이 내 계획이다.
물론 그러자면 한동안 시끄러운 갈등이 있겠지만 그거야 어쩔 수 없는 과도기의 진통이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그런 계획을 가지고 미리 처가에도 이야기를 해 뒀다. 물론 장인장모는 계획보다 훨씬 강력 조취라고 생각하시는 모양이지만 별반 반대는 하지 않으셨다. 어딜 보아도 선주민들에게 불리한 내용은 없으니 당연한 일이다.
듀풀렉 게이트는 거리의 제약을 단번에 해결하는 획기적인 물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