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GATE RAW novel - Chapter 258
화
“이크아니 프락칸, 가우가우미 프락칸, 거우거우미 프락칸, 하코테 깝딴까지 모두 여기 계시는군요.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으십니까?”
나는 움알마의 물 위로 수상 가옥처럼 천막을 치고, 그 곁에 솟대를 세우고 작은 거처를 마련한 손님들을 찾아온 참이다.
이들은 장모님에 의해서 거의 갇히다시피 이곳에 머물게 되었다. 사실 말은 갇혔다느니 뭐라느니 하지만 실제로는 극적인 출현을 위해서 숨겨두고 있다는 쪽이 더 알맞은 것 같다.
“세이커 님께서는 굳이 부유선에 우릴 태워오신 이유를 모르겠어요. 그냥 때가 되면 그 듀풀렉 게이트로 이곳으로 오게 할 수도 있었을 텐데요.”
우와 까칠한 하코테 깝딴이 한 마디 한다. 저 여자가 두어번 괴수 사냥을 하고 나더니 예전의 자신감을 어느 정도 회복한 모양인지 나를 봐도 전처럼 꺼리는 느낌이 없어졌다. 아니 어쩌면 자신의 모습이 이곳에서 꽤나 미인축에 들어간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봐야 난 유부남, 저 여잔 유부녀, 우린 절대 가까이 할 수 없는 관계인 것이다.
그리고 뭐 방금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결국 모두 부유선을 타고 움직인 것은 내가 그 생각을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다만 장모님께서 대회합에 가는 길은 원래 타박타박 걸어서 족적을 대지에 깊이 남겨야 하는 건데, 그걸 편하게 부유선 타고 가는 것도 송구한 일이거늘 어찌 앉아서 기다리다가 게이트를 타고 훌쩍 날아갈 수가 있겠느냐고 하시는 바람에 모두들 그 좁은 부유선을 타고 이곳까지 온 것이다.
물론 장모님께선 부유선을 타고 가는 것만으로도 이미 전통이 많이 무너진 것이고 또 이후에는 듀풀렉 게이트가 보편적으로 사용될 정도로 보급이 될 때가 올 것이고, 그 때에는 누구도 땅을 밟아 족적을 남기며 대회합에 오려는 이들이 없을지도 모른다고 하셨다. 하지만 그러기 전에는 그래도 최소한의 겉치레라도 하겠다는 말씀을 다른 사람들이 거역하지 못한 면도 있다.
그런데 이 여자가 그걸 뻔히 알면서 왜 나를 보자마자 시비를 거는 걸까?
“원하는 것이 뭡니까?”
나는 그냥 말을 돌리지 않고 물었다. 뭘 원해서 시답지 않은 시비를 거냐고 물은 것이다.
“우와, 저거 좀 봐. 완전히 찬바람이 쌩쌩 불어. 우와, 나한테만 저러는 거야. 다른 사람들에겐 안 그러면서.”
하코테 깝딴이 뭐라고 구시렁거리지만 나는 여전히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러자 하코테 깝딴도 두 손을 살짝 귀 옆으로 들어 올린다.
“알았어요. 알았어. 항복이요. 항복. 우리 하늘호수 마을에 좀 데려다 줘요. 거기서 있다가 나중에 오면 좋겠어요. 여긴 사실 너무 심심하거든요. 우리 남편들도 보고 싶고.”
“그래요. 우리도 사실 좀 갑갑하고 그러네요.”
이크아니 프락칸이 하코테 깝딴을 측면지원으로 나선다. 뭐 이럼 나도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이다.
“그럼 그렇게 하십시오. 잠시만….”
나는 둘틱으로 리샤를 호출해서 하늘호수 마을로 게이트를 열어서 그들을 보내려고 했다.
하지만 이들에겐 불행하게도 그 순간에 장모님께서 들어오셨다.
“여기들 있었군. 자 여러 프락칸님들과 하코테 깝딴께선 함께 갑시다. 우리 프락칸들끼리 따로 모여서 의논할 것이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여러분을 정식으로 소개할 생각입니다. 참, 하코테 깝딴은 알아서 잘 하시겠지요?”
“아. 넵.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코테 깝딴, 그녀는 사실 모든 타모얀 종족들에게 신비의 여인으로 인식되어 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종족인 것인데, 그냥 나와 친분인 있는 소수 종족의 깝딴으로 프락칸과 같은 사람이라고 이야기가 되어 있었다.
물론 이번에 포포리 처제가 멀리 간다고 한 곳도 바로 하코테 깝딴이 있는 곳으로 타모얀 종족이 없는 멀고 먼 오지라는 정도로 설명이 되어 있다.
아직 행성간 이동이 가능한 이알-게이트에 대한 것은 처가 식구들만 아는 비밀이다. 그래서 장모님께서 하코테 깝딴에게 그 이야기를 하신 거다. 신분을 설명할 때에 주의하라는 이야기 말이다.
어쨌거나 이제 본격적으로 대회합을 위한 막후 접촉들이 시작되는 모양이다.
저렇게 무리지어 모여서 이야기를 하면서 대회합에서 다루어야 할 내용들을 조율하는 거라고 했다. 그 동안 어떻게 지냈고,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 알아보고, 타모얀 종족의 대지의 일족 전체와 연관이 있을 문제들을 추려서 의제로 삼는 과정이 필요한 거다.
아직도 간혹 사람들이 도착하고 있지만 그 나중에 온 사람들의 의견은 또 나름의 과정을 거쳐서 걸러지고 걸러져서 대회합에서 의논해야 할 이야기들만 추려지게 된단다.
그럼 나는 또 할 일이 없어지는 건가?
“우웅. 남펴언.”
포포니가 나를 찾아 이곳까지 왔어? 음식 만드느라 정신 없었을 텐데?
“아, 여기 있어. 마눌.”
나는 급히 천막 밖으로 나갔다. 마눌님께서 찾으시는데 꼼지락 거릴 여유따윈 없는 거다.
“남펴언.”
포포니가 폭하고 품으로 뛰어든다.
갸르를를.
뒤따라서 칸 녀석이 내 발치에서 맴을 돈다. 이 놈이 눈치가 있어서 나와 포포니 사이에는 끼어들지 않는다. 그러다가 정말 죽도록 혼이 난 거다. 응? 나? 아냐. 내가 안 그랬어. 포포니가 그랬지. 포포니가 주인이잖아. 그러니까 포포니가 야단을 쳐야지. 커엄. 그러니까 어디 부부 사이에 끼어들고 그래 그러길.
“무슨 일이야?”
“그 사람 왔어.”
“응? 그 사람이라니? 그 무서운 그랜드 마스터 말이야. 세바스찬의 스승.”
“까, 까흐제? 그가 여길 왜 와?!”
나는 전혀 상상치도 못한 말에 깜짝 놀라서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웅웅. 정말 이상하지 그지. 그 사람이 옴파롱 울룰루의 아들 중에 한 사람하고 친하데. 그래서 그 사람이 손님 자격으로 그 사람을 데리고 왔데. 그래서 그 사람이 우리 일족에게 얼마나 유익한 사람인지 설명을 한다고 그랬어.”
“뭐?”
까흐제 이 인간이 타모얀 종족의 호감을 얻었다고? 도대체 무슨 방법을 쓴 거지? 그리고 그가 왜 그런 짓을 하지? 그랜드 마스터라면 헌터들이 모두 떠받드는 사람인데 그런 그가 선주민인 대지의 일족에게 뭔가를 주고 호감을 샀단 말이야? 이 인간이 뭔가 노리는 것이 있단 말인가?
나는 슬금슬금 뒤통수가 간지러워지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이거 골치가 아플 수도 있겠는데?
“형님!!”
그런데 텀덤 녀석이 또 저기서 달려온다.
“뭐냐?”
“큰일 났습니다. 글쎄 헌터 그랜드 마스터가 여기에 나타났습니다.”
아니 이 녀석은 왜 뒷북을 치고 그래? 이미 포포니가 와서 이야기하는 중이거든?
“그래, 알아. 까흐제 그 양반이 나타났다며?”
“네? 까흐제요? 아닌데요? 그 사람 말고요. 다른 사람인데요? 러츠커라는 그랜드 마스터요. 그 왜 전에 봤던 탁테드 그양반 있죠? 그 양반이랑 동급이라는 그랜드 마스터가 러츠커라는 사람이거든요? 그 사람이 지금 이곳으로 오고 있데요.”
“온 것이 아니라 오고 있어? 그걸 어떻게 알았는데?”
“전령이 왔습니다. 그 러츠커라는 양반이 마티아노 종족의 족장과 함께 오고 있다고 알려왔습니다. 대회합을 축하하기 위한 축하 사절이라는 모양입니다.”
축하사절이 올 때가 되기는 했다. 워낙 타모얀 종족의 대회합이 거창한 행사이다보니까 다른 종족의 대표들도 이 때를 노려서 일부러 찾아와서 대회합이 끝난 후에 축소된 종족회의 같은 것을 연다고 했다. 그걸 위해서 몇몇 종족의 대표들이 이곳으로 온다는 이야기였지.
그런데 그 중에 하나인 마티아노 종족의 족장과 헌터 그랜드 마스터인 러츠커가 온다는 말이지? 그 양반은 또 어떤 양반인데 이런 자리까지 온다는 거지?
이거 뭔 변수가 이렇게 많아? 잘못하다간 이거 헌터 연합에게 몽땅 들키게 생겼네. 젠장.
“그런데 형님 까흐제는 또 뭡니까?”
“니 형수가 그러는데 까흐제란 양반이 대지의 일족 울룰루의 아들 중에 하나랑 같이 도착을 했단다. 그런데 그 양반이 무슨 큰 도움이 된다는 식으로 소개를 한다는데 이거 원 일이 어떻게 되려는지 모르겠다.”
“크크큿. 형님도 참. 그래봐야 아무 소용도 없는 짓 아닙니까. 그 까흐제 양반 지금은 무서워 할 이유도 없죠. 형수님이 나서면 그냥 끽소리도 못하고 찌그러져 있어야 할 겁니다. 실력이야 뭐 비슷하다고 해도 우리 형수님 대지의 첫째 딸 아닙니까. 거기다가 까흐제 양반이 아무리 대지의 일족을 많이 도왔다고 해도 형님에게 댈 수야 없지요. 그가 무슨 짓을 했다고 해도 안 될 겁니다.”
텀덤이 잔뜩 흥이 나서 떠든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쉬운 생각이 들지 않는다.
물질적인 지원이 아무리 많았다고 해도 그건 물질일 뿐이다. 까흐제가 만약 한 마을을 구했다거나 많은 대지의 일족의 목숨을 구했다거나 하면 나는 그에 비해서 한참 모자란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나는 그저 물질적인 지원 이외엔 한 것이 없지 않은가.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웅? 남편?”
포포니가 내 안색을 살피면서 묻는다.
“아, 아니. 그냥 내가 타모얀이나 대지의 일족에게 해 준 것이 별로 없구나 싶어서. 그냥 텔론으로 생색을 낸 것 밖에 없는 것 같아.”
“뭐? 남편 그게 무슨 말이야? 남편이 왜? 남편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고. 남편은 음, 그러니까 우리 대지의 일족, 아니 우리 타모얀 전체를 구할 사람이란 말이야. 누가 뭐래도 남편은 그런 사람이야. 나는 알아. 난 이곳에 와서 그걸 알게 되었다고. 움알마가 내게 그렇게 이야기했어. 수 많은 대회합을 거치면서 가장 위대한 사람이 이곳에서 날 거라고, 그리고 그 사람이 내 남편이라고 했단 말이야. 우앙!”
“포, 포포니!”
나는 갑자기 내 가슴으로 뛰어들어 분을 이기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리는 포포니 때문에 당황했다. 이건 또 무슨 일이야.
“포포니. 진정해 진정. 응? 뚝 해야지 뚝. 다 큰 여자가 이렇게 울면 어떻게 해. 그쳐. 응? 그쳐.”
“흐흑. 남편은 대단한 사람이야. 그건 대지가 내게 준 능력이 말하고 있어. 이 움알마를 거쳐간 조상들이 내가 말하고 있단 말이야. 그러니까 남편은 당당해야 해. 절대로 기죽으면 안 되는 거야. 그 까흐제 따위는 절대로 남편을 이길 수 없어. 흥! 어딜 감히 그 따위 늙은이가.”
포포니는 말을 하면서 울음은 그쳤지만 대신에 잔뜩 화가 난 것 같다.
“포포니. 자자, 괜찮아. 알았어. 난 다른 사람에겐 몰라도 포포니 앞에선 언제나 당당한 남편이야. 그러니 포포니가 시키는 대로 할 게. 절대로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가슴을 펴고! 응? 그렇게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마음 풀어. 응? 포포니.”
“우응 알았어. 알았어. 나 괜찮아. 그렇지만 남편도 괜찮아야 해. 응?”
“그래. 그래. 난 괜찮아. 까짓 누가 오더라도 내가 제일이야. 암, 우리 마눌이 그렇다는데야 누가 뭐라고 해도 난 최고야. 아무렴. 아무렴.”
나는 가슴을 펴고 오른손 주먹으로 가슴을 쳐 보였다.
포포니, 우리 마눌, 잘 봐. 앞으로 절대로 마눌 앞에서 기죽은 모습 보이지 않도록 노력할게. 정말로 열심히. 그러니 믿어. 나 당신 남편 세이커야. 세이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