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GATE RAW novel - Chapter 268
화
스추알라는 연회를 준비했다는 놈이 우리를 끌고 커다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이전에 이곳 도시가 번창했을 때에는 여관으로 쓰였을 법한 곳인데 1층의 홀에 탁자와 의자들이 놓여 있다.
원래 스추알라가 속한 부족은 탁자와 의자가 아니라 그냥 바닥에 앉아서 먹고 마시고 떠들고 또 이야기를 나누는 부족이다. 그런데 의외로 탁자와 의자를 준비하고 거기에 음식들을 차려 놓았다.
더구나 그곳에는 아무리봐도 스추알라 보다는 지위가 높아 보이는 이들이 있었다.
스추알라는 우리 일행을 그들이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가서 인사를 시켰다.
“일족의 은인이며 제가 친우로 사귄 세이커입니다. 그리고 이번에 죽어가는 대지를 살려내기 위해 이곳까지 오신 프락칸님과 그 호위 대전사분들이십니다.”
스추알라는 우리를 그들에게 먼저 소개를 시키고 이어서 그들을 우리에게 소개했다.
“여기 이 분들은 우리 솟구치는 번개 일족의 족장님과 우리 부족의 동맹인 타오르는 검붉은 불길 부족의 족장님, 그리고 나무를 타고 오르는 덩굴 부족의 족장님이십니다.”
“반갑소 젊은 영웅이여.”
“우리가 이곳으로 오지 않을 수 없게 하였으니 마땅히 그 가치만큼의 대우를 받으리라. 나는 그대를 인정하오.”
“솟구치는 번개 부족의 후계자가 큰 인물이라 해서 부러워 했지만 그가 사귄 친우의 능력을 듣고는 인물을 부러워하기 보다는 인맥을 부러워하게 되었지. 나 역시 젊은 영웅을 직접 보게 되어 영광일세.”
솟구치는 번개 일족, 타오르는 검붉은 불길, 나무를 타고 오르는 덩굴 부족의 족장이 차례로 내게 말을 건넨다.
나 역시 정중하게 만나뵙게 되어 반갑다며 인사를 건넸다. 사실 그 왜에 다른 인사를 하기에는 그들에 대해서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이런 빌어먹을 스추알라 녀석. 이런 일이 있을 것 같으면 미리 이야기를 해 줘야 할 것 아닌가 말이지.
“자자, 앉읍시다. 앉아서 이야기를 합시다.”
솟구치는 번개 일족의 족장이란 사람은 딱 봐도 스추알라의 아버지다. 생긴 것이 딱 그 모양인 것이다. 아래 어금니가 기이하게 발달한 텀덤이 꼭 저 모양일 거다. 그냥 거인인데 얼굴에 어금니가 아래에서 위로 웃자라서 조금 흉하게 돌출되어 있다면 그나마 근접한 묘사일 것 같다. 우리가 몬스터 중에서 오크라고 부르는 놈의 얼굴을 인간에 가깝게 만들다보면 저 얼굴이 나올 것도 같다.
연회는 애매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 우리들 그러니까 처제와 대전사 그리고 나는 음식이 낯설었고, 탁자와 의자에 앉은 다른 사람들은 탁자와 의자가 불편해 보였다.
그렇게 어찌어찌 식사를 하고 뭔지 모를 음료를 마시고 했는데 그 사이엔 별다른 이야기를 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결국은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스추알라가 탁자들을 모두 걷어 내게 하고, 의자들을 벽으로 붙여서 세웠다.
그리고 족장과 그들을 따라온 이들은 그 의자 앞쪽에 의자에 기댄 모양으로 앉았고, 우리들은 의자에 앉은 상태로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나름대로 우릴 배려한다고 한 것 같은데, 의자에 앉은 우리와 바닥에 앉은 저들을 보자니 여러가지로 마음이 불편했다.
“우리들은 이렇게 앉는 것이 편하고, 그대들은 그렇게 앉는 것이 편하니, 그저 편할 대로 하기로 합시다. 아까 소개를 했지만 내가 솟구치는 번개 일족을 이끌고 있고, 저기 스추알라가 내 아들이오. 세이커.”
“네.”
그래서요? 하실 말씀을 하시라니까요? 아까부터 분위기만 잡고 우리에게 부담을 잔뜩 주고 있는데 그런다고 내가 쉽게 넘어갈 것 같습니까? 내가 이미 스추알라 저 놈에게 당한 것이 있어서 그렇게 호락호락 하지는 않을 겁니다.
“커엄. 그러니까 전에 내 아들에게 말하기를 몇 가지 기묘한 물건들을 합당한 대가를 받고 나누어 줄 의향이 있다고 했다는데 그 말이 정말이오?”
“듀풀렉 게이트와 부유선과 은폐 도구라면 제가 그렇게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맞소. 그것들이라고 했소. 전에 우리 일족과 또 다른 일족들을 위기에서 구할 때에 썼던 것과 같은 먼 거리를 한순간에 오고 갈 수 있는 기물이 듀풀렉 게이트, 땅에 사는 존재로서 위대한 하늘로 올라가고 또 내려오게 할 수 있다는 그것이 부유선. 마지막으로 어린 아이들이나 힘을 잃은 노약자들을 괴물들로부터 보호해 줄 수단이 된다는 은폐 도구. 그 모두가 우리가 들은 것과 같소. 그래서 세이커 우리 일족의 은인에게 부탁을 하기 위해서 우리들이 여기까지 온 것이오.”
부탁이라?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스추알라에게 이야기 할 때에 그러한 기물들을 만드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고 또 그 재료가 워낙 희귀하여 쉽게 내어 주기에는 내 처지가 너무 궁색하다 말한 적이 있는데 듣지 못하신 것은 아니실 테고 말입니다. 그러면 따로 부탁을 하실 일이 뭐가 있을까 싶습니다만. 저는 친우의 어려움을 살피기 위해서 친우가 그것들을 만들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면 크게 이득을 보지 않고 만들어 줄 생각으로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이득을 아예 보지 않을 수는 없지. 그러니까 약간만 이득을 보겠다는 거지. 뭐 이를테면 게이트 설치비를 받고, 이후에 게이트 이용료의 얼마간을 받는 방법을 쓰려고 하는데 말이지.
“바로 그걸세. 우리 부탁은 다른 것이 아니라 자네가 말하는 재료비라는 것은 어떻게든 준비를 해 줄 터이니 그 기물들을 빠른 시간 안에 받을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라네.”
음? 재료비는 다 주겠다? 다만 빨리 물건을 받았으면 한다? 그 이유는 뭐지? 뭔가 급한 일이라도 있나?
“커엄. 우리들 이외의 종족들은 지금까지 헌터들을 상관하지 않고 살았소. 하지만 우리들은 헌터들을 우리 땅에서 밀어 내기를 원하고 그를 위해서는 좀 더 많은 부족들이 우리에게 힘을 보태주기를 원하오. 그리고 그걸 위해서는 듀풀렉 게이트라는 것과 부유선, 그리고 줄어든 전사들 때문에 위험해질 사람들을 보호할 은폐 도구가 모두 필요한 것이오.”
그러니까 세력을 모아서 이곳에 있는 헌터 연합을 완전히 몰아낼 생각이란 말이지? 음, 그건 또 생각을 좀 해 봐야 하는 거 아닌가? 그렇게 되면 제2 데블 플레인은 너무 고립이 될 수도 있는데? 플레인 게이트가 닫혀 버리면 제2 데블 플레인은 외부와 단절된 행성이 되어버릴 가능성이 높다. 물론 내가 있으니 완전히 단절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헌터들과의 대대적인 전투는 좀 말리고 싶은 생각이다.
“우리도 젊은 영웅이 헌터들이라고 불리는 이들과 같은 종족임을 알고 있소. 그래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어렵기는 하지만 이즈음 헌터들의 착취가 너무 심하오. 이전에 반에 반도 안 되는 가치로 코어를 거래하고 있소. 그러니 그런 착취를 당하느니 저들에게 우리의 힘을 보여주고 정당한 대가를 치르게 만들거나 혹은 완전히 이곳에서 물러나게 하겠다는 것이오.”
착취? 여기서? 무슨 이유로?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일단 제1 데블 플레인이 엉망이 된 이후로 그곳에서 나오던 코어의 수가 많이 줄었다. 그런 상태에서 제2 데블 플레인의 선주민을 그렇게 대할 이유가 있을까? 아무리 적대적인 관계로 있었다곤 하지만 밀무역처럼 행해지던 거래에서 적지 않은 코어를 얻고 있었을 연합이 그런 무리수를 둘 이유가 뭘까? 대놓고 선주민들을 충동질해서 다시 예전처럼 싸움을 벌이겠다는 뜻이 명확히 보이는 것이 아닌가 말이다.
“왜 그들이 그렇게 나오는 겁니까? 그래봐야 선주민 여러분들과 싸울 일만 남았다는 것을 모르지 않을 텐데요?”
“그래야 헌터들의 힘을 모을 수 있을 테니까 그런 거지.”
대답은 스추알라가 했다.
“뭐?”
“외부에 적을 만들어서 내부의 균열을 수습한다는 거다.”
“아직도 문제가 있는 거야? 헌터들 사이에?”
“일개미들이 묵은 원한을 잊지 않았지. 거기다가 지역 코어를 얻었던 그 때에 그 지역 코어가 아무도 모르는 상태로 사라진 것이 또 문제가 된 거야. 그래서 헌터들이 연합을 신임하지 않게 된 거지. 그 코어가 모성으로 갔다고들 하거든? 그런데 그 코어에 대한 어떤 보상도 없었다는 거지. 누가 받아서 챙긴 건지 모르는 거야. 물론 그 당시에 지역 코어 사냥에 참가했던 이들 중에서 살아 남은 이들이 얼마 없지만 어쨌거나 헌터들의 피로 일군 성과를 어디의 누군가가 낼름 했다는 이야기가 퍼지면서 더 엉망이 된 거지. 거기에 무슨 회사도 관여가 되어 있다고 하고, 아무튼 시끄럽지.”
“툴틱은 조용하던데?”
“그것도 이젠 못 믿어. 중요한 내용은 올리지도 못하고 중간에 사라진다고들 하더군. 검열이라나 뭐라나. 뭐 우리들이 사용하는 쪽에는 그런 것이 없지만 말이야.”
아니 있다고 해도 이들은 잘 모르는 거다. 그리고 어차피 툴틱을 완전히 다운시키지 않는 이상 선주민의 툴틱만 따로 어떻게 손을 볼 길은 없다. 이곳의 툴틱은 그렇게 많이 퍼져 있는 거다. 선주민이나 헌터들이나 일개미들이나 거의 툴틱을 사용하고 있으니까.
“정말 싸우려고 한단 말이지? 그럼 그걸 다 알고 있으면 이쪽에서 좀 참지 그래? 굳이 코어를 거래해야 하나?”
“커엄. 뭐 솔직히 말하면 우리도 연합과의 거래에 의지하는 것이 제법 되지. 없으면 불편한 것들도 많고 말이야. 그래서 우리도 코어를 헐값에 넘기는 것은 많이 곤란하다는 말이지.”
허허. 이 자식. 결국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거다. 나한테 코어를 제 값을 받고 팔고 싶다는 그거. 물론 듀풀렉 게이트나 부유선, 은폐 도구도 필요할 거다. 그러면서 남아도는 코어를 나에게 넘기는 거겠지. 물론 남는 것은 같은 가치의 다른 물건들로 바꿔 달라고 하는 거고 말이다.
왜? 그거야 내게 이알-게이트가 있으니까 플레인 게이트를 통하지 않고 물건을 가지고 올 수 있다고 믿는 거다. 이 자식이. 아무튼 이 놈도 구렁이 여럿 삼키고 있는 놈인 거다.
“생각을 좀 해 보자. 솔직히 저 쪽에 벌여 놓은 일이 장난이 아니다. 그래서 거기 쓰이는 것을 충당하는 데에도 허리가 휜다. 코어가 있어도 더 이상 구하는 것은 사실 무리거든? 그러니 친구가 바라는 그 거래는 당장 하기 어렵다는 말이지.”
“그런가?”
어지간히 실망을 한 눈치다. 이렇게 되면 어쩔 수 없이 결국 식민 행성 어딘가에 수입상을 차려야 한다. 그래서 거기서 직접 물건들을 구입하고 그 대금으로 코어를 사용하는 방법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아직 조금 이르긴 하지만 언젠가는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플레인 게이트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알-게이트를 이용해서 데블 플레인 이외의 행성에서 여러 재료들을 수급하는 것은 꼭 필요한 준비 과정이다. 이거 어떻게든 하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일단 저 쪽의 노림수에 말려들지 말고 좀 기다려 봐. 어떻게 수를 내 보자.”
나는 그렇게 스추알라에게 희망이 섞인 말을 해 주었다. 곰 같은 놈이 어디서 연기질인지 꼭 죽을 병 걸린 놈같은 표정을 하고 있는 거다. 내 참. 어이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