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GATE RAW novel - Chapter 270
화
스추알라는 정화 의식을 준비를 서둘러서 다음날 곧바로 할 수 있도록 했다.
사실 준비라고 할 것도 별로 없었다. 어디선가 깝딴 몇 명을 불러 오고, 거기에 정화 의식에 사용할 코어들을 가지고 온 것이 전부였다.
포포리 처제가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치르는 정화 의식인데 포포리 처제는 아무 부담도 없다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나로서는 그리 간단하게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우선 처제의 몸 상태부터 확인을 했다.
“처제, 원래 에테르가 달라서 적응하려면 어려울 텐데 괜찮아?”
“전 괜찮아요. 다른 대전사들은 좀 힘겨워하는 것 같지만 저는 아무렇지도 않아요. 이곳의 에테르는 대지의 프락칸이 지니는 기운 앞에서 큰 힘을 쓰지 못하는 것 같아요. 차라리 이곳이 고향보다 더 편한 것 같기도 해요.”
의외의 말이다.
에테르가 전혀 다른 곳인데 이곳이 더 편하다고 하다니 말이다.
제3 데블 플레인의 에테르는 폭력적이고 거칠다. 그리고 제2 데블 플레인의 에테르는 마르고 푸석거리는 느낌이다. 그런데 포포리 처제는 이곳의 에테르가 더 자신에게 맞는 것 같다고 하는 거다. 참 모를 일이다.
어쨌거나 몸 상태가 좋다니 정화의식을 하는 것도 무리가 없을 것 같아서 일단 안심은 되었다. 사실 스추알라에게 준비를 하라고는 했지만 다음날 뚝딱 정화 의식을 하자고 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래서 문제가 생긴 것이다. 이쪽 사정은 생각도 않고 일을 준비한 스추알라 녀석의 잘못을 그냥 넘어가선 안 될 일인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제 도착한 사람에게 오늘 정화 의식을 하라니 이게 무슨 행패냐? 너는 모르냐? 행성이 바뀌게 되면 에테르가 달라져서 적응 기간이 필요하단 거 말이다.”
나는 곧바로 행사 준비로 이것저것 지시를 하고 있는 스추알라를 한쪽 구석으로 끌고 와서 따졌다.
“안다. 하지만 마음이 급해서 생각을 못했다. 깝딴들을 데리고 오고 정화 의식을 한다고 통보를 하고 나서야 실수를 깨달았다. 하지만 나는 높이 쌓은 돌탑이다. 내가 한 말을 내가 거둘 수는 없었다.”
알아? 아는 놈이 한 마디 말도 없이 행사를 준비하고 있어? 우와 이거 아주 못된 놈이네?
“그래서 어쩌라고? 준비 다 했는데 우리 쪽에서 몸이 좋지 않아서 미루자고 했다고 하면 네 위신이 조금 서냐? 응? 아니면 몸이 아프거나 말거나 네 체면 때문에 우리 처제가 고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거냐? 응? 뭐냐고 도대체!”
나는 조금 언성을 높였다. 이참에 이놈의 기를 좀 꺾어 놓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언제나 내가 양보만 하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지 않은가 말이다.
“아니다. 그건 아니다.”
“그럼 이걸 어떻게 할 거냐고 도대체? 응?”
“그냥 손님들 몸이 좋지 않아서 미룬다고 하면….”
“그러니까 네 실수를 우리 탓으로 돌리자는 이야기잖아 이 자식아!!”
나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게….”
어쭈? 또 연기질이야? 응? 그렇게 기가 죽은 척 하면 내가 모두 덮어주고 넘어갈 것 같으냐? 그래? 내가 그렇게 쉽게 보여?
“몰라 자식아. 니가 벌인 일이니까 니가 해결 해. 손님들의 몸 상태를 고려하지 못하고 행사를 잡은 실수를 인정하고 며칠 후에 다시 하겠다고 하란 말이야. 이건 내 탓이 아니라 네 탓이니까 네가 책임을 져야지.”
나는 스추알라를 몰아 붙였다. 내가 하는 말은 당연한 말이다. 실수를 했으면 실수한 사람이 책임을 져야 하는 거다. 다만 문제는 윗사람이 실수를 하면 그것이 두고두고 꼬리표로 따라 다닌다는 것이다. 스추알라 정도 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성급하게 일처리를 하다가 문제가 생겼다면 그건 그냥 웃고 지나갈 문제가 아니라 지도자로서의 자질에 대한 시비까지 만들어 낼 수 있는 일이 된다. 그러니 스추알라도 잘못을 깨닫고도 일을 계속 진행했을 것이다.
“친구 어떻게 안 될까? 내가 잘못했다. 인정한다.”
“인정한다는 놈이 실수한 걸 알고도 찾아 오지도 않아? 응? 당연히 먼저 와서 양해를 구했어야지.”
“찾아 갔었다. 이른 아침에. 그런데 입구를 지키는 대전사가 너무 이르다고 나중에 오라고 했다. 그런데 이곳에서 일처리를 하다 보니 시간이 나지 않았던 거다.”
“뭐 왔었다고?”
“그랬다. 이른 시간에 갔었다.”
그거야 우리 대전사에게 물어보면 알 일이지. 아마 교대하고 들어가서 자고 있는 대전사가 스추알라를 돌려보낸 모양이다. 그리고 다시 온다고 했으니 따로 말을 남기지도 않았겠지. 그렇게 된 것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
“좋아. 그건 우리 대전사가 말을 전하지 않아서 내가 오해를 했다고 치자. 그럼 결국 이번 행사는 할 수밖에 없다는 말인데, 우리 처제에게 부탁을 해서 어떻게든 일을 성사시키긴 할 거다. 하지만 너 우리 처제와 나한테 크게 빚진 거다. 알지?”
“그, 그래. 알았다. 친구. 고맙다.”
그래도 정화의식을 끝까지 해 주겠다는 말이 나온 것이 뜻밖인지 녀석이 그 웃기지도 않는 감격스런 표정을 다시 보여준다. 아, 이것도 놈의 연기질 아닐까 몰라. 쯧.
처제의 정화 의식이 다른 프락칸들의 그것과 다른 점은 없었다. 단 위에 올려놓은 두 개의 보라색 등급의 화이트 코어로 손을 뻗어 정신을 집중하고 그 후에는 코어로부터 기운이 흘러 나와서 처제의 손으로 들어가고 그 기운이 처제의 몸을 흘러 다시 맨발의 발바닥으로 이동하고 거기서부터 대지로 빨려 들어가는 모습은 나도 몇 번 본적이 있는 대지 정화 의식의 모습과 같았다.
하지만 그걸 처음보는 이들은 온통 감격에 겨운 표정으로 긴긴 시간동안 한결같이 진행되는 정화 의식을 참관했다.
그러면서 깝딴들은 점차 환희에 찬 표정으로 변해가며 대지가 살아나고 있다고 몇 번이나 호들갑을 떨었다.
“아!”
“처제.”
나는 처제가 비틀거리는 것을 보고 뛰어나가 처제를 부축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프락칸의 의식은 프락칸이 중지할 때까지 계속 된다. 쓰러진다고 해도 쓰러져서 의식이 끝날 때까지는 누구도 참견해선 안 되는 것이다. 프락칸의 의식에 참견할 수 있는 이는 같은 프락칸들 밖에 없다. 그러니 내가 끼어들면 처제는 물론이고 처제를 호위하고 있는 대전사들까지도 분노할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처제를 살피는데 나는 처음으로 처제가 꽤나 연기를 잘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약간 비틀거린 것은 다 연기였던 거다. 디버프가 없었다면 몰랐을 것이다. 디버프를 통해서 처제의 몸 상태를 점검해 보니 아직도 처제는 여력이 어느 정도 있었다. 그런데도 그런 연기를 펼쳐서 스스로의 가치를 높인 거다.
우와 무섭다. 우리 마눌은 안 그런데, 처제는 무서운 데가 있는 것 같다. 커어엄.
어쨌거나 잠깐의 긴장감을 조성한 후에 처제는 정화 의식의 후반으로 갈수록 지친 모습을 보이며 사람들을 걱정하게 만들었지만 어쨌거나 두 개의 화이트 코어를 모두 정화하는데 성공했다.
“후웃, 이건 너무 부담이 커요. 다음부터는 하나씩 하지고 해요. 안 그럼 나 정말로 기절할지도 모르니까요.”
처제는 정화 의식이 끝나고 처소로 돌아가는 길에 나에게 낮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아마도 보라색 등급의 화이트 코어 두 개는 처제에겐 무리가 되었던 모양이다. 음, 이건 내가 그렇게 하자고 한 건데 그냥 스추알라가 준비한 걸로 하고 넘어가야겠다. 어차피 먹을 욕, 스추알라가 다 먹게 해야지. 내가 괜히 나서서 자수할 이유는 없겠지. 아무렴.
나는 처제가 돌아가는 것을 확인하고 스추알라와 깝딴 그리고 족장들이 모여 있는 장소로 다가갔다.
“오오, 어서 오시오. 대단하오. 정말 대단하오. 우리 깝딴들이 말하기를 이곳의 땅에는 곡식들이 잘 자랄 것이라고 하오. 아마도 몇 년 동안은 풍년이 될 거라고 모두들 기뻐하고 있다오.”
스추알라의 아버지가 족장이라는 지위에 맞지 않게 호들갑을 떤다. 아마도 그 정도로 이들에겐 이번 정화 의식이 남다른 가치를 지니고 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프락칸의 정화 의식은 한 달에 서너 번이 고작입니다. 그 이상을 하게 되면 무리가 됩니다.”
나는 딱 잘라서 처제를 혹사하는 일이 없도록 못을 박았다. 그리고 대전사들에게도 한 달에 많아야 네 번, 그 이상의 정화 의식은 절대 할 수 없게 하라고 단단히 일러 둘 생각이었다.
“이해하오. 당연하겠지. 이런 대단한 일을 하는데 그 정도의 휴식도 짧은 것이지 아무렴. 그렇고 말고.”
“그래서 제가 스추알라에게도 부탁을 했습니다만 이곳의 깝단 몇 분을 보내 주시면 우리쪽의 프락칸 몇 분을 보내 드리는 것이 가능할 것 같다고 말입니다. 우리 프락칸들께서는 괴수를 잡는 데는 그다지 힘이 되지 못하는 분들이라서… 하지만 이곳에선 큰 도움이 될 테니 어떨까 합니다만.”
“그 말은 나도 아들에게 들었소. 하지만 그것은 우리들이 결정할 문제가 아니고 깝딴들이 결정을 할 문제라오. 하지만 오늘 이 일이 깝딴들에게 널리 퍼지면 당연히 먼 길을 떠나는 희생을 감수할 분들이 나올 거라고 생각하오. 그러니 좋은 소식을 기다리고 계시오.”
정말로 깝딴들은 족장들도 어쩌지 못하는 이들인 건가? 뭐 정 그렇다면 또 하는 수 없는 문제지. 쯧, 깝딴들이 있으면 하늘 몬스터들을 어떻게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말이지. 부유선에 깝딴들을 태우고 가서 그냥 깝딴들이 괴수들을 날려 버리게 하면 될 것 같아서 어떻게 좀 데리고 가려고 했던 건데 쉽지는 않을 것 같네. 그것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