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GATE RAW novel - Chapter 273
화
협상은 잠시 중단되었다. 내 말에 대한 답을 찾을 수가 없는 탁테드와 고다비가 말문을 닫았고, 곁에서 듣고만 있던 허틀러가 잠시 쉬었다가 이야기를 하자며 차를 내 온다 어쩐다 수선을 피웠기 때문이다.
딱 봐도 탁테드와 고다비 두 양반들 어떻게 여유를 만들어 주자는 수작이지만 뭐 내가 따지고 나설 일도 아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제가 알아보니까 제2 데블 플레인에서 이상한 움직임이 있던데 말입니다.”
탁테드와 고다비가 잠시 자리를 비운 틈에 허틀러가 작은 목소리로 은근하게 말을 걸어 온다.
“무슨 움직임 말입니까?”
“그쪽 선주민들이 뭔가 바쁘게 움직인다는 소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듀풀렉 게이트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가고 있다더군요.”
“듀풀렉 게이트요? 그게 무슨? 전에 사람들 구할 때에 쓰고 탈취를 당한 후에는 그 쪽에서 듀풀렉 게이트가 쓰인 적이 없지 않습니까. 시간도 제법 흘렀는데 거기서 왜 듀풀렉 게이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는 겁니까?”
“모르십니까?”
“모르니까 묻지요.”
알아도 안 물을 수 있겠냐? 이 사람이 도대체 뭘 가지고 나를 떠 보는 거야? 이거 그 쪽에서 무슨 문제가 생겼나? 거기서까지 듀풀렉 게이트가 돌아다닌다는 이야기가 나돌면 곤란한데? 그렇게 되면 이알-게이트 즉 행성 간 이동 게이트에 대한 짐작이 사실로 굳어지게 될 테니 꽤나 심각한 제재가 들어올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시다면 저도 할 말은 없습니다만, 사실 제가 세이커님 스티커 때문에 다른 데블 플레인에 제법 유통망을 만들어 뒀습니다. 그래서 다른 데블 플레인에 대한 정보는 제법 빠른 편이지요. 그 당사자들이 아닌 이상은 아마도 제가 가장 빠르고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니까 제2 데블 플레인의 헌터 연합에서도 그 쪽 선주민들의 이상 행동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는 거지요. 이번에는 또 무슨 정화 의식을 통해서 땅을 회복시켜서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 생겼다고 아주 난리가 났다는데 말입니다.”
“농사요? 그럼 그 전에는 못 지었습니까?”
최대한 능청을 떨어 보는데 이거 어쩐지 불안하단 말이지. 이 허틀러가 뭔가 단단히 꼬리를 잡은 모양인데 말이야.
“왜 이러십니까? 저도 알아볼 만큼 알아봤습니다. 거기 대지의 일족 프락칸이 들어간 거 아닙니까. 아마 맞을 것 같은데 말이죠. 그런 능력은 대지의 일족 프락칸이 가진 능력이지 않습니까.”
“글쎄 그런 능력을 대지의 일족 프락칸이 가진 것이야 당연히 아는 이야기지만 그래 무슨 수로 그곳에 이곳 사람들이 갔다는 말입니까? 그게 가능합니까?”
“불가능해야 하는데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 같으니까 제가 미칠 노릇이지요. 그러지 말고 좀 살려주십시오. 그래야 저도 이제 거취를 정할 것 아닙니까.”
“거취를 정해요?”
“계속해서 세이커님 스티커를 취급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대부분 눈치로 알고 있는 상황이니까요. 계속 세이커님이 연합과 맞서게 되면 결국 판매 중지가 될 것이 분명하죠. 그러니 그렇게 되기 전에 따로 거래망을 구축해 두거나 아니면 포기해야 할 입장이라고요.”
“아니 이젠 스티커 장사까지 건드리겠단 말입니까? 뭐 그렇다면 저도 하는 수 없지요. 어디 해 보자고 하십시오. 확 밀어 버리고 새로운 지휘부 구성해서 연합을 갈아치워버릴 테니까 말입니다. 그리고 그 때는 연합이 핵심은 선주민들이 차지하게 될 겁니다. 허, 참. 참고 있으니까 누굴 허수아비 취급을 하는데 어디 해 봅시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허틀러가 나를 넘겨 짚으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뭐였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가 진심으로 나를 위해서 한 말이라도 장소가 아주 좋지 않았다. 연합 지부의 건물 내에서 그딴 이야기를 하고 있다니 그것도 바로 가까운 곳에 그랜드 마스터 두 명을 두고 말이다. 아마도 그들이 마음을 먹었다면 지부장과 나의 이야기는 다 들었을 것이다.
나는 서둘러서 사무실 문을 열고 나가려 했다. 하지만 곧바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두 명의 그랜드 마스터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아주 딱 맞춰서 들어오시는데 늦으신 것 같습니다. 일단 확실하게 말씀드리지요. 듀풀렉 게이트는 제가 지킬 자신이 생길 때까지 선주민 마을에만 설치를 할 것입다. 거기에 대해선 더 협상할 생각 없습니다. 그럼 이만.”
어차피 두 그랜드 마스터와 해야할 협상의 내용은 그것이었다. 듀풀렉 게이트의 설치에 대한 문제. 하지만 내가 지킬 자신이 없어서 설치를 못하겠다고 나가면 협상이고 뭐고 없어지는 것이다. 내가 싫다는데 저들이 어쩔 것인가.
“잠깜만 기다리게, 내 본의 아니게 자네와 허틀러 지부장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는데….”
“그랜드 마스터나 되시는 분이 남의 이야기를 몰래 들었다는 소리군요? 아주 대단하십니다.”
나는 탁테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빈정거리며 웃어 주었다.
“커엄. 그건 미안하게 생각하네. 하지만 자네와 허틀러의 이야기가 너무 심각한 내용이라…”
“말을 엿듣기 전까진 무슨 이야기를 나눌지는 아무도 몰랐을 겁니다. 혹시 둘이서 사적인 연애에 관한 이야기라도 하고 있었으면 어쩌려고 그랬습니까? 그런 사적인 이야기는 들어도 되고 심각한 이야기는 들으면 안 되는 겁니까? 아니면 둘 다 들어도 되는 거라고 생각한 겁니까? 난 당신들과 더는 이야기하고 싶은 생각 없습니다. 내 스티커 거래를 막겠다면 그렇게 하십시오. 그 즉시 나는 내 사람들을 동원해서 연합의 축출을 위한 실력 행사에 나설 테니까 말입니다. 이참에 몽땅 쓸어버리고 새 판을 짜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요.”
“말이 심하군.”
“연합이 이익집단이라면 당연히 다른 이익집단과의 마찰을 각오해야지요. 안 그렇습니까?”
나는 헌터 연합을 더는 헌터들의 이익을 위한 집단으로 취급하지 않기로 작정을 했다. 어차피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었던 참이지만 그래도 대우는 그렇게 하지 않았는데 이젠 확실하게 이익집단으로 대하기로 한 것이다.
“크음. 정말로 우리와 싸울 생각인가?”
“굳이 당신들과 싸울 이유가 있습니까? 제가 이끄는 사람들만 데리고 물러나죠. 모든 거점도시와 임시 거점에서 물러나서 헌터 연합과 일체의 거래를 하지 않는 걸로 하고, 이후에 우리쪽 사람들이 많다면 당연히 플레인 게이트에 대한 권리를 요구할 것입니다. 만약 그걸 거부하면 뭐 피좀 보고 말겠지요.”
“정말!!!”
탁테드가 무시무시한 기운을 끌어 올리며 곧이라도 내게 덤벼들 듯 자세를 잡았다.
“괜한 짓 하지 마십시오. 날 죽일 수도 없겠지만 나를 공격하는 즉시 선주민 전체를 이끌고 연합을 깡그리 지워버릴 테니 말입니다. 그 때는 내 편이 아닌 헌터들까지 몽땅 핏속에 잠길 겁니다. 약속하죠.”
나는 담담하게 탁테드를 보며 경고했다.
일은 그야말로 순식간에 극단을 치닫고 있었다.
사실 지금 이 순간 나는 가진 패가 거의 드러난 상태나 마찬가지였다. 행성 간 이동 게이트도 거의 드러난 것 같으니 따로 뭘 숨기고 말고 할 것이 없는 상황인 것이다. 허틀러가 이알-게이트에 대해서 알고 있다는 눈치만 주지 않았어도, 그리고 이전에 협상 중에 내가 이알-게이트를 가지고 있다는 듯한 말만 하지 않았어도 일이 이렇게까지 급격하게 진행되진 않았을 것이다.
행성 간 이동 게이트의 존재를 알게 되면 모성이나 플레인 게이트에 기대서 이익을 얻고 있는 엄청난 세력들이 나를 잡아 죽이거나 혹은 자신들의 손에 넣기 위해서 별 짓을 다 할 것이다.
그러니 그렇게 되기 전에 제3 데블 플레인이라도 장악을 해야 할 입장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