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GATE RAW novel - Chapter 297
화
아까 내게 손가락질 하던 놈이 다시 내게 손가락질을 한다. 저것이 대화를 하려는 동작임을 아니까 참는 거지 성질 급한 놈은 저렇게 손가락질하는 순간에 와락 달려들었을지도 모르겠다. 묘하게 기분이 좋지 않다. 저렇게 손가락질을 하면 말이야.
– 도둑들이 있었다. 몇 번이나 우리를 찾아와서 안심시키곤 우리의 것을 빼앗아가려 했다. 우리의 쉼터를 뜯어 가려고 하고 쉼터를 유지하는 구슬을 훔쳐가기도 했다. 너는 그렇지 않을 거라고 어떻게 믿나?
역시 헌터 놈들이 못된 짓을 많이 했던 모양이다.
“그럼 이렇게 하지. 내가 너희 땅에 오르지 않겠다. 너희가 허락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너희의 쉼터에 오르지 않겠다는 말이다. 그 상태로 우리가 서로 이야기를 해 보자. 어떠냐?”
– 좋다. 그럼 너는 이곳에 오르지 않는 것으로 알겠다.
뭐냐? 그러니까 그 이상하게 생긴 섬에만 올라가지 않으면 된다는 거냐?
– 그리고 한 가지 더 기억해라. 우리 쉼터의 위나 아래나 어디건 침범하지 마라. 그러면 우리도 너희를 강제하지 않겠다.
올라가는 것도 안 되고, 날아가는 것도 안 되고, 물 밑으로 들어가는 것도 안 된다는 말인 것 같은데 꼴을 보니 저들이 하늘을 날 수 있을 것 같진 않고 물속에 뭔가 있는 모양이다. 뭐 일단은 그렇게 알아두자.
“좋다. 그럼 일단 나와 내 동료들이 여기로 올 수 있는 방법을 좀 마련해야겠다. 물론 너희 쉼터라는 그곳으로는 절대 가까이 가지 않겠다.”
나는 섬사람에게 그렇게 말했고 섬사람은 알았다고 답하곤 또 저희들끼리 떠들기 시작한다.
“포포니. 여기서 조금 가다릴래? 허브 기지에 가서 뭐 좀 가지고 와야겠다.”
나는 일단 성간-게이트를 만들 준비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웅? 나 혼자 여기 있어?”
“괜찮을 거야. 저기 부유선에까지 함께 가자. 그래서 거기서 기다리고 있어. 둘이 모두 세포니로 가 버리면 다시 오기 어려우니까 말이야.”
“뭐 하려고?”
“성간-게이트를 설치해야 할 것 같은데 물 위에 할 수는 없으니까 물 밑에 해야지. 그러려면 고정시킬 뭔가가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우웅, 그냥 부유선 하나 가져다 놓으면 안 될까?”
“나도 그렇게 할 생각인데 부유선은 물 속으론 못 들어가게 되어 있거든. 그러니까 껍질만 부유선인 걸 만들어 와야 하지. 페이러 군에게 만들라고 하면 금방 만들 거야. 창고에서 만들라고 하고 다 만들어지면 이곳에서 꺼내면 되니까 일단 작업 명령만 내려 두고 올게.”
“우웅. 알았어.”
시간이 별로 걸리지 않을 것 같으니 포포니가 금방 고개를 끄덕거린다. 나는 그런 포포니와 함께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부유선으로 돌아왔다. 기괴한 섬에선 여전히 열 명의 섬사람들이 뭐라고 떠들면서 가끔 우리쪽을 훔쳐보곤 한다. 저 섬은 도대체 얼마나 크고 또 얼마나 많은 이들이 살고 있는 걸까?
수심이 얼마나 되나 측정을 해 보니 200미터 내외다. 얕은 곳은 80미터 정도고 깊은 곳은 300미터 정도 되는 것 같다. 그 중에서 가장 얕은 곳을 찾아서 새로운 기지 하나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수중 기지인 셈이지만 마법진을 활용한 공간 제작은 원래 마법사들의 특기다. 내가 비록 데블 플레인에선 에테르 때문에 서클을 봉인하고 있다지만 그렇다고 마법진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얼마 전까지는 마법진의 활용이 굉장히 저급한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그런데 데블 플레인이 아닌 다른 식민 행성들에 거점을 만들면서 마법진을 사용해서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 내는 것을 터득하게 되었다.
이미 알고 있던 것을 이제야 사용하는 것인데 가만히 고민을 해 보니까 아무래도 기억이 온전한 것이 아니던가 아니면 세이커 위아드로 살면서 과거 제여넌의 기억을 무의식적으로 외면하는 것이 있었던 것 같다. 분명히 머리속에는 백과사전이 들어 있는데 실제로 그 백과사전을 찾아서 활용하는 세이커는 아주 대표적인 내용들만 거들떠보고 그렇지 않은 것들은 그냥 묵혀두고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다. 듀풀렉 게이트의 경우에는 워낙에 활용성이 높고 또 쓸 곳이 많아서 기억을 떠올린 것인데 다른 것들은 그냥 필요한 것이 있을 때만 잠깐씩 떠들어 본 것이 전부였던 것이다. 그런데 식민 행성들에 거점을 만들면서 마법진을 활용한 공간왜곡이나 은폐, 방어 등등의 마법진 활용이 필요해지면서 그것들을 찾아 사용하게 되면서 마법진 활용 능력이 늘어난 것 같다.
아니다. 어쩌면 내가 서클의 봉인을 풀고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점점 마법진에 대한 기억이 새롭게 떠오른 것일 수도 있다.
서클이 봉인되어 있는 동안에는 마법진에 대한 기억들도 깊이 가라앉아 있는 상태가 된 것 같기도 하다.
뭐 어쨌거나 이즈음에 내가 마법진을 더 많이 떠올려 사용하게 되고 활용도가 높아진 것은 무척 고무적인 일이다. 뭐가 되었건 내가 쓸 수 있는 패가 늘어나는 것은 좋은 일이니까 말이다.
아, 뭔 이야기를 하다가 이렇게 이야기가 산으로 온 걸까? 그렇지 수중에 새로운 공간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말았군. 그렇다. 내가 수중에 성간-게이트를 위한 기지를 하나 새로 건설을 했다.
약 80미터 정도의 수심에 포포니윙 크기의 작은 부유선으로 시작을 한 수중 기지는 그 후에 페어리군 형제들이 열심히 만들어 내는 작은 공간들을 계속 이어 붙여서 하나의 기지로 완성이 되었다. 일종의 조립식 건물들이지만 마법진의 보호를 받는 수중 기지는 섬사람들도 발견하지 못할 정도로 은폐가 되어 있다. 사실 그들에게 우리가 오고 가는 곳을 들키면 그것도 좀 위험할 수 있는 문제라서 저들이 알 수 있도록 겉으로 드러난 곳을 하나 만들고 그곳에서 비밀 지지로 오는 듀풀렉 게이트를 설치해서 비밀 기지를 숨겼다.
일단 성간-게이트로 비밀기지로 와서 다시 듀풀렉 게이트를 타고 드러난 기지로 가는 방식이다. 처음부터 그렇게 만들력 한 것은 아닌데 안전하게 하자는 생각에 중간에 그렇게 바꾼 것이다.
아무튼 며칠 동안 허브 기지와 이곳 제7 데블 플레인 사이를 오가면서 바쁘게 생활을 했다.
그런데 묘한 것은 이곳에 와서 섬사람 이외에는 다른 생물은 하나도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에테르 기반 생명체, 그러니까 몬스터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조금 멀리까지 나가서 살펴야 하나 고민을 하는 중이다.
“남편, 남편.”
포포니가 온 모양이다. 처음에는 나와 떨어지지 않으려고 그렇게 달라 붙어 있더니 요즘은 혼자서 여기저기 잘도 돌아다닌다. 그래서 그런지 이젠 수중 호흡이 두 시간 정도는 된다고 자랑을 한다. 나도 이것 저것 공사를 하느라고 제법 늘어서 한 시간 정도는 수중 호흡을 할 수 있는데 포포니의 성장에 비할 바는 전혀 못 된다. 이제 포포니는 완전히 인어나 다름이 없어 보인다. 머리카락과 갈기를 휘날리며 물 속에서 자유롭게 오가는 모습을 보면 캬아, 완전 환상이다. 환상.
“왜? 무스 닐이야?”
아, 이것도 문제다. 수중 호흡을 하면서 물속에서 대화를 하는 것에 나는 아직 익숙하지 못하다. 공기의 떨림으로 목소리를 전달하는 것이 일반적인 대화라면 물 속에서는 입 안에서 공기의 떨림을 만들어서 그것을 다시 물을 매개로 전달을 해야 한다. 하지만 그저 약간의 요령이 필요할 뿐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니다. 문제는 이것 역시 포포니는 쉽게 하는데 나는 좀 어렵다는 거다. 입에 에테르로 만들어진 산소여과 장치를 물고 말까지 하는 것이 어디 쉬워야 말이지.
“저기 쉼터 밑에 고기들이 무지무지 많아. 우와 엄청나게 많아.”
“뭐? 쉬임터에 안 가기로 약속 했자나.”
“우웅. 나도 그랬는데 일부러 간 거는 아니고 그냥 가다보니까 쉼터 밑이었어. 정말로. 그런데 거기 새끼 물꼬기가 있는 거야. 그래서 따라 가다가 보니까….”
“안 들켰어?”
“은폐 스크롤 쓰고 피했는데 몰라.”
아아, 이 여자가 무슨 사고를 친 거야? 그 놈들 물속에서 평생을 산 놈들이라 아무리 은폐를 썼어도 들켰을 확률이 높은데 말이지. 이걸 어떻게 하지? 에휴, 우리 마눌 때문에 내가 아주 죽겠다. 죽겠어.
나는 어쩔 수 없이 곧바로 섬사람들이 쉼터라고 부르는 섬으로 향했다. 몸을 숨지기 않고 포포니 윙을 타고 저들이 발견하기 쉽도록 적당한 고도로 쉼터 근처에 가서 멈춰섰다.
포포니 윙이 뭔지 모르겠다고? 초창기에 우리 포포니하고 내가 타고 다니던 그 소형 부유선 이름이 포포니 윙이었다. 그 사이에 몇 번 부유선이 바뀌긴 했지만 우리 부부만의 부유선으로 새로 만든 소형 부유선에 다시 포포니 윙이란 이름을 붙여 준 거다.
어쨌거나 조금 기다리니 전에 봤던 것처럼 쉼터의 많은 연못들 중에 한 곳에서 섬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마눌, 여기 있어. 가서 이야기 좀 하고 올게. 사과를 해야지. 마눌이 실수를 했으니까 의도적인 것이 아니었다고 이야기를 하고 뭔가 원하는 것이 있다면 사과의 표시로 준다고 할 거야. 그러니까 여기 있어. 응?”
“괜찮을까?”
“저들이 아무리 대전사의 능력을 지니고 있어도 내가 쉽게 당하진 않아. 그리고 만약 일이 생기면 곧바로 도망갈 테니까 우리 마눌도 나 따라서 와. 알았지?”
“우웅. 알았어. 미안해 남편.”
“미안은 무슨.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해. 괜찮아.”
사실 물속에서 놀다보면 위치 감각을 잃는 경우가 많다. 평면에 붙어살던 인간은 삼차원 공간에서 노는 것에 쉽게 익숙해지기 어렵다. 그래서 생긴 실수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