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GATE RAW novel - Chapter 304
화
태풍은 길었다. 자그마치 닷새를 하늘 위에 있게 될 줄은 몰랐다. 물론 그 사이에 나는 몇 번이나 옴파롱트에 다녀왔다. 내가 비록 한량처럼 이렇게 돌아다니고 있지만 실제로 나를 찾는 사람들은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거기다가 이번에 갔더니 모라산 마을에서 난리가 났다고 해서 그걸 어떻게든 정리하느라고 또 바빴다.
예전에 이크아니 프락칸의 수상 마을에서 문어 괴물을 잡으면서 확보했던 세균 덩어리가 있었다. 이상하게도 에테르 기반 생명체의 몸에서 일반 생명체가 나온 최초의 형태였기에 연구를 하라고 모라산 마을에 맡겨 놓았었다. 사실 모라산 마을은 우리 이알-게이트의 중심 마을로 키우고 있는 곳이라서 이알-게이트의 핵심 사업들이 그곳에서 거의 모두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연구 단지도 거기에 있었고, 이런 저런 생산 시설도 거기에 만들었다. 물론 아직은 생산시설이랄 것도 별로 없지만 어쨌거나 에테르가 넘쳐나는 데블 플레인에서 사용 가능한 거의 모든 물품들이 그곳에서 만들어진다. 알다시피 뭔가를 만드는 데는 페어리군 계열이 아주 유용하다. 그래서 그 페어리군들을 코어를 사용해서 움직일 수 있도록 개조를 하는 것이 그곳 생산 기지의 가장 중요한 일이다.
처음에는 성공하는 것보다 실패가 많았지만 요즈음에는 코어를 에너지로 작동하는 페어리군들이 속속 만들어지고 있다. 이건 어떻게 자동으로 만들 수가 없는 것이 기계의 문제가 아니라 코어 동력 기관의 문제이기 때문인데 코어 동력 기관은 여러 부품의 결합인데 그것을 한꺼번에 페어리군이 만들어 내면 꼭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부품들을 각기 만들어서 사람들의 손으로 결합을 해야만 가동이 되는 묘한 성질이 있었다. 이를 두고 연구원들은 코어가 사람을 가린다고들 하는데 내가 보기에도 뭔가 이성을 지닌 존재의 의지가 투영되어야 코어를 활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보면 볼수록 그 끝을 알 수 없는 에테르고 또 몬스터 코어다. 그 비밀을 언제 풀 수 있을까?
아, 아무튼 모라산 마을이 그렇게 이알-게이트의 중추로 커나가고 있는 중인데 그곳에서 연구 중이던 그 세균 덩어리가 문제가 되었다.
어떤 놈들이 그 세균을 훔쳐 간 것이다. 그 동안 이알=게이트 내부에 다른 세력의 스파이가 들어와 있을 거란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별다른 조짐이 없어서 마음을 놓고 있었다가 뒤통수를 시원하게 한 방 맞은 셈이다.
그래서 게리와 렘리, 마토가 직접 나서서 이알-게이트 회원들을 다시 한 번 점검하는 계기가 되었다는데, 뭐 난 그에 대해선 게리 등에게 맡겨두고 있는 중이다. 어차피 이알-게이트는 게리와 렘리, 마토가 키워 온 단체니까 말이다. 그러면서 나를 내세워서 세력을 키운 까닭에 내가 총괄 리더라는 이상한 명칭으로 우두머리 자리에 있긴 하지만 내게 이알-게이트란 단체는 뭐랄까 내 등을 받치는 커다란 배경과 같은 단체일 뿐이다.
나는 그들에게 강제적인 명령을 할 위치가 아니다. 협조를 부탁할 수 있을 뿐. 물론 그 협조가 잘 먹혀들어가고 있으니 지금은 문제가 아니지만 내가 그들의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 이알-게이트 회원들은 언제라도 내게 등을 돌릴 수가 있는 이들이다. 사실 계약서에 의지해서 묶인 피라미드 아니던가.
어쨌거나 연구소에서 그 세균 덩어리를 연구해서 얻은 결론은 그 놈이 아주 강력한 독성을 지닌 세균 덩어리란 것이고 필요에 따라서 몇 가지의 형태로 가공이 가능하며 또한 길들여서 써먹을 가능성이 있는 놈으로 파악이 되었다.
몇 가지 형태라고 하는 것은 일단 어떤 것이건 녹여버리는 성질, 무언가에 붙어서 끈적거리는 형태로 늘어지는 성질, 수용성으로 물에 녹아서 잠복하는 성질, 대기에 미세한 개체로 흩날려서 퍼지는 성질 등을 가진 형태로 가공이 된다는 것인데 그것들이 몇 가지 성질과 형태를 동시에 지니게 만드는 연구를 진행중이었단다. 한 마디로 세균 무기를 만들고 있었다는 소리다. 물론 그 방향은 에테르 기반 생명체에게만 반응하도록 만드는 것이었으니 연구원들이 잘못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걸 누가 훔친 것이다.
이미 플레인 게이트가 폐쇄되었다고 마음을 놓은 것이 문제였을까? 그것을 훔친 놈들은 곧바로 교역 행성으로 도망을 가서 그곳에서 플레인 게이트로 사라졌다.
뭐 딱 봐도 그 배후에 누가 있을지는 뻔 한 것 같다. 그래도 별 걱정을 하지 않는 것은 일단 그 세균도 회복 캡슐을 복용하면 처리가 되기 때문이다. 뭐 솔직히 말하는 내 주변 사람들은 모두 영구 캡슐을 복용한 상태라서 그 세균 따위를 겁낼 이유가 없으니 차라리 모성 놈들이 그걸 가지고 몬스터 퇴치용 세균을 멋지게 만들어 낼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설마 모성 놈들이 그것을 인류용으로 만들어서 여기저기 뿌리는 짓이야 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걸 쓴다고 해 봐야 뭐 몬스터용으로 밖에 더 쓰겠는가. 사실 세균 무기라고 한다면 훔쳐간 그것보다 훨씬 뛰어난 것이 모성엔 널리고 널렸을 것이다. 수 많은 식민 행성을 개척하면서 그들이 얻은 생물 샘플에 어디 한 둘일까? 그 중에 기이한 세균들도 넘칠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 연구소에서 그 세균 덩어리의 일부를 훔쳐간 것은 그것이 에테르 기반 생명체, 그러니까 몬스터의 몸에서 나온 것이라는 특이성 때문일 것이다.
어쨌거나 그 세균이 몬스터에게 어떻게든 영향을 줄 수 있을 거란 가능성이 보이니까 그 놈들도 관심을 가지게 된 거겠지. 아무튼 잘 만들어서 몬스터들을 싹 쓸어버릴 수 있으면 더없이 좋을 텐데 말이지. 이왕에 가지고 간 거라면 잘 쓰길 빌어주고 있다. 물론 그 도둑들의 배후에 어떤 놈들이 있는지는 여전히 뒤를 캐고 있는 중이다. 정말로 모성이 있는지 어떤지 모르는 일이 아닌가 말이다.
“우와아! 온통 파란 색이야아. 하늘이 조금 우중충하긴 하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봤던 데블 플레인이 아닌 것 같아.”
아, 포포니의 감탄사가 내 정신을 일깨운다.
나도 창밖으로 펼쳐진 광경으로 시선을 던진다. 확실히 감탄을 할 만 하다. 바다와 하늘이 온통 푸른색이다. 뭐 데블 플레인이 어디나 그렇듯이 하늘은 잿빛인 것이 문제지만 그 잿빛 하늘도 태풍이 지나간 다음에는 많이 옅어진 느낌이다. 그래서 그런지 데블 플레인에선 보기 어려운 맑은 날씨에 세상의 모습을 하늘에서 내려다보게 되었다.
– 이런 광경이라니… 놀랍다.
우와 워터 너도 그런 표현을 할 줄 알아? 감성이 살아 있네? 살아 있어.
“남편 저기 봐봐. 저기 저거 쉼터 아냐?”
역시 눈이 좋은 포포니다.
“우웅. 싸우고 있는 것 같아. 몬스터가 쳐들어 왔나 봐.”
“그런 모양이네. 가자. 가서 도와야지. 워터 소금 잘 챙겼어?”
나는 뒷자리에 앉은 워터에게 물었다. 소금만 있다면 쉼터의 바닥에 붙어서 잠들어 있는 이들을 얼마든지 깨울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어지간한 몬스터 따위는 문제도 되지 않는 것이 이들 섬사람들이다.
– 걱정하지 마라. 이미 은총 가득한 물로 바꾸어 놓았다.
아, 그래. 그 이상하게 생긴 주사기 같은 거?
물속에 있는 동족들에게 소금을 주입하기 어려우니 주사기 같은 것이 농도 짙은 소금물을 넣어서 그걸 동족의 몸에 주사하는 방법을 쓴다. 그래서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이들 섬사람들은 어떤 물건을 만들어서 사용하는 경우가 없는데 그 주사기는 어디서 나온 건지 궁금했던 거다.
그런데 알고 보니까 그게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신체의 변형이었다. 몸을 감싸고 있는 가죽 갑옷 같은 껍질을 이용해서 주사기 같은 형태로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고 무슨 이상한 걸 상상하진 마라. 정말로 팔뚝에서 손목까지 이어지는 가죽옷이 두툼하게 변하고 그 안에 소금물을 저장하는 것 뿐이다. 그것을 동족의 몸에 닿게 하면 옷이 서로 이어지듯 붙으면서 소금물이 전해지는 거다. 누가 무슨 주사기 이런 생각 하는 것 같은데 절대 아니다. 뭐 그런 형태도 가능은 할 것 같지만 이 섬사람들은 원래 생식을 그런 식으로 하지 않는다. 그냥 웅덩이에서 체외 수정을 하는 놈들인 거다. 커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