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GATE RAW novel - Chapter 306
화
섬사람들의 주검이 가는 곳마다 쌓여 있다. 처음 저들의 주검을 보고 받은 충격은 몇 번이고 거듭 발견되는 비슷한 모습에 차차 무디어져 간다. 하지만 벌써 우리 부부가 본 것만 몇 만은 될 것이다. 그 많은 수가 수면중에 몬스터들에게 당한 것이다.
“잠깐 남편.”
“왜?”
“남편 감각에도 걸리는 것이 없어?”
포포니가 내 디버프 최대 범위를 생각하고 묻는다. 지금은 눈으로 봐서 확인할 수 있는 범위가 너무 좁기 때문에 에테르를 이용해서 주위의 기척을 살피는 방법이 최선이고, 그 방법 중에서 가장 범위가 넓은 것이 디버프 기반 에테르를 넓게 펼쳐서 살피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반경 400미터까지는 억지로라도 생명체의 기척을 살필 수 있다.
“몇 몇 돌아다니는 몬스터들 말고는 걸리는 것이 없어.”
“우웅. 어떻하지?”
“글쎄? 어쩌면 좋을까?”
“혹시 말이야. 남편.”
“응? 뭐?”
“잠들어 있는 섬사람들은 그 디버프에도 걸리지 않는 것이 아닐까? 완전히 가사상태 같은 상황이면 말이야.”
“음?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럼 몬스터가 많이 모여 있는 곳을 찾아가자. 그럼 거기 섬사람들이 자고 있을지도 모르잖아.”
“그래. 포포니 말이 맞을 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하자.”
우리는 지금까지 일부러 몬스터가 많은 곳을 피해왔다. 어차피 그 쪽에서 다른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에 몬스터가 몰려 있는 곳으로 갈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만약에 잠들어 있는 섬사람들을이 디버프 기반 에테르에 걸리지 않는 거라면 몬스터가 많은 곳에서 학살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
왜 디버프를 이용한 기척 살피기에 잠든 섬사람들은 걸리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못 했을까?
포포니와 나는 드디어 잠들어 있는 섬사람들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유유자적 학살을 하고 있는 수 십 마리의 몬스터들 또한 찾았다.
포포니는 말릴 틈도 없이 몬스터 사이로 파고들었고, 나도 곧바로 몬스터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가 나타나자 몬스터들이 잠들어 있는 섬사람들에 대한 학살을 멈추고 우리에게 덤볐다는 것이다. 아마도 잠든 섬사람들은 위협이 되지 않으니 우리부터 해결을 하려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덕분에 섬사람들의 희생이 줄어서 다행이었다.
쉼터의 동굴 통로가 넓지 않아서 그런지 안쪽으로 들어와 있는 몬스터들의 등급은 그렇게 높지 않았다. 아무래도 등급이 높으면 덩치가 큰 경우가 많은데 이 제7 데블 플레인같은 수중 생활을 해야 하는 곳에선 그런 경향이 더 강한 모양이다. 몸집이 곧 등급과 맞아 떨어지는 것 같다. 겨우 노란색 등급이나 초록색 등급 정도의 몬스터들만 버글버글 거린다. 아주 간혹 파란색과 남색 등급이 보이는데 이것들은 주로 두족류들이다. 몸이 유연하니 이런 곳까지 기어 들어 올 수 있었던 모양이다.
어쨌거나 몬스터들을 순식간에 쓸어버리고 확인을 해 보니까 약 반수 가까운 섬사람들이 살아 있는 것 같다.
“어쩌지?”
“응?”
“이곳 물을 소금물로 만들기엔 소금이 모자라 남편.”
아, 그것도 그렇다. 지금 소금을 꺼내서 저들을 깨워야 하는데 우리 부부에겐 주사기 같은 것이 없다. 이럴 때에는 섬사람들의 저 다기능 피부가 부럽기도 하다.
“페어리군에게 갔다 올게.”
“그러지 말고 그냥 이 사람들을 기지로 옮겨서 소금을 뿌리면 되지 않아?”
“일일이 한 명씩 그렇게 하고 있을 틈이 없잖아. 그냥 주사기 만들어 와서 소금물을 주입하는 걸로 하자.”
“그게 더 빠를까?”
“사람들 옮기고 거기 소금 뿌리고 또 이곳으로 옮기고 하는 건 너무 오래 걸리지. 아니다 잠들어 있는 몇 명을 그냥 수상마을이나 하늘호수 마을로 보낼까? 깨어나면 잘 설명을 하고 말이야.”
“에? 어떻게?”
“그냥, 이곳에서 구했다고 하는 거지. 뭐. 구해서 우리 세상으로 데리고 왔다고.”
“그렇게 정착을 시키려고?”
“안 될까?”
“너무해. 남편!”
아, 포포니가 화난 모양이다. 하긴 이건 좀 방법이 좋지 않긴 하지. 그래도 깔끔하게 한 100명씩 제1.2.3 데블 플레인에 이주를 시켜 놓으면 알아서들 잘 번성할 것 같은데 말이지. 모두 바다가 있는 곳이니까. 뭐 그래도 그건 일종의 납치나 다름이 없으니 포포니가 저렇게 질색을 하는 거겠지? 아, 내가 어쩌다가 이런 편법까지 쓸 생각을 하게 된 걸까?
“미안, 포포니. 안 그럴게. 일을 쉽게 하려다보니 하지 말아야 할 짓도 떠올리게 되네. 그래도 포포니가 말려 주니까 다행이다.”
슬쩍 포포니에게 쓰담쓰담을 해 준다.
“헹! 남편 그럼 안 되는 거야. 난 남편 편이니까 남편이 정말 그렇게 하겠다면 돕기는 하겠지만 마음은 안 편할 거야.”
“그래. 알았어. 포포니. 내가 잘못했어. 그런 생각 안 할 테니까 나 허브 기지로 좀 보내 줘.”
“웅. 남편.”
이게 또 묘한 거다. 듀풀렉 게이트는 원래가 창고 용도로 만들어진 공간이라서 대상물을 넣고 뺄 때에 손에 접촉하고 있는 것만으로 넣고 또 창고 안에 들어 있는 물건은 의지만으로 꺼낼 수도 있다. 그러니 지금처럼 물속에선 포포니가 나를 넣어 주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다. 그렇지 않고 내가 통로를 열어서 그 안으로 들어가자면 동시에 얼마간의 물도 함께 쏟아져 들어간다. 사실 이런 활용법은 이미 알고 있어야 하는 건데 그 동안은 알면서도 잘 쓰지 않았던 방법이었다. 사람들이 오가는데 굳이 그런 방법을 쓸 이유가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물속에 통로가 열리면서 허브 기지가 홍수가 난 이후에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이렇게 도움을 얻어서 이동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곧바로 페러리군을 이용해서 커다란 주사기를 만들었다. 굳이 바늘을 만들 필요는 없다. 그저 접촉을 시키고 소금이나 소금물을 섬사람의 피부에 접촉을 시킬 수 있으면 그걸로 되는 것이다. 그러니 간단하게 주사기가 만들어졌다. 급한 대로 두 개의 주사기를 만들어서 다시 게이트가 열리는 창고 공간으로 돌아오니 또 포포니가 나를 곁으로 불러들인다. 손에 들린 두 개의 주사기를 확인하고 곁으로 나를 꺼낸 것이다. 이렇게 하면 물이 기지로 쏟아져 들어가는 것을 피할 수 있다.
“자, 여기.”
나는 포포니에게 주사기 하나를 내민다. 그리고 그 커다란 봉지를 꺼내서 그 안에 소금봉투를 넣고 찢었다. 그리고 큰 봉투를 흔들어서 봉투 안에 소금물을 만들고 거기 주사기 입구만 조금 넣어서 소금물을 주사기에 주입했다.
“웅. 나. 나도. 나도.”
포포니가 내가 준 빈 주사기를 내민다. 나는 소금물이 들어 있는 내 주사기와 포포니의 주사기를 바꿔주고 같은 동작을 반복해서 주사기에 소금물을 채운다.
“시작하자.”
“웅. 남편.”
우리들은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도 모르는 섬사람들의 몸에 일일이 조금씩 소금물을 주입하기 시작한다. 사실 얼마를 주입해야 하는지 모르니까 그냥 투박한 주사기 끝을 몸에 대고 약간씩 소금물을 밀어 내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도 살아 있는 섬사람들은 확실히 반응을 한다. 소금물이 닿은 부분에서 약간의 빛이 나는 것이다. 몸에 그려진 무늬가 희미하게 빛을 내면서 섬사람들이 깨어난다. 그래봐야 뭔가 마약을 한 것처럼 정신을 못 차리고 한동안 비몽사몽이다.
그렇게 우리 부부가 반 수 가까운 섬사람들에게 소금물을 주입했을 때, 처음 우리가 깨웠던 이들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정신을 차린 모양이다.
그들 중에 하나가 내게 손가락질을 하려는 걸 보곤 곧바로 다가가서 손을 잡았다. 갑작스런 동작에 놀라는 것 같았지만 내게 적의가 없다는 것을 느꼈는지 손을 잡은 상태로 대화가 시작되었다.
나는 그에게 워터와 다른 쉼터에서의 이야기를 간략하게 전하고 지금 이곳 쉼터의 상황을 전했다. 그리고 빠른 시간 안에 쉼터의 남은 동족들을 구해야 한다고 전하면서 소금이 들어있는 봉지를 꺼내서 그에게 주었다.
“그 안에 물의 은총이 들어 있어. 그러니까 그걸 나눠 가지고 동족들을 구하러 가. 나와 내 아내는 이곳 지리를 잘 모르니까 너희가 움직이는 것이 훨씬 빠를 거야.”
– 이것이 물의 은총?
“안에 들어 있어. 찢으면 물과 섞여서 녹아버리니까 그건 뭐 알아서 해야지.”
– 걱정 없다.
그는 내 앞에서 봉지에 들어 있는 소금을 그대로 피부로 감쌌다. 그리고 주위에 몰려 있는 이들과 대화를 하더니 그들과 소금이 들어 있는 부분을 서로 마주하고 조금씩 소금을 나눴다.
뭐 정말 소금을 나눴는지 눈으로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딱 봐도 소금이 들어 있는 부분을 동족과 마주하고 잠깐동안 붙였다가 떼는 것을 보면서 그렇게 다른 이에게 소금은 나누어 준다고 짐작한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