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GATE RAW novel - Chapter 309
화
섬사람들은 나와 포포니를 친구로 생각했다.
그리고 그 친구에게 그들의 수정란을 선물하는데 별다른 거부감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까 간단하게 이야기하자면 내가 준비한 작은 용기 안에 백 개 정도의 수정란을 담아서 주더란 소리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준 수정란이 깨어난다고 끝날 문제가 아니란 거다. 어른이 없이 크는 아이들은 섬사람의 아이가 아닌 아이가 될 확률이 높다. 그래서 몇 번이나 부탁을 해서 수정란에서 깨어나는 아이들을 키워 줄 보모들을 구해 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모두 거절이었다. 이 섬사람 종족들은 절대로 자신들의 고향을 떠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태어난 물에서 죽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인데, 그 고집을 꺾을 수가 없었다. 심지어는 물을 바꿔서 살 수도 없다고 버티니 다른 행성으로 데리고 갈 수가 없는 거다.
“혹시 해서 묻는 건데 말이야. 너희 수정란들은 깨어나면 뭐 본능적으로 깨우치는 지혜 같은 거라도 있어? 굳이 가르치지 않아도 된다거나 하는 그런 거 말이야.”
정말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가지고 물어 본 거다. 그리고 그런 것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가득한 질문이고.
– 물에서 태어나서 물을 먹고 물에서 산다. 그건 자연스럽게 배운다. 하지만 말을 가르치고 싸우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지금 내가 하는 말도 배울 수 있을까?”
“빼울쑤이씰꺼따.”
크윽, 머리에 쥐가 나는 기분이다. 세상에 이런 목소리도 있구나.
“아, 참아 줘라. 그냥 손가락질 하자. 도저히 참고 듣기 어려운 소리다. 너는 어떤지 몰라도 나는 아주 죽겠다. 워터.”
– 그래. 그렇게 하도록 하지.
“그런데 정말로 어려운가? 다른 행성으로 가는 것은?”
– 물이 다르다. 그것은 우리들에겐 견디기 어려운 상실감을 줄 것이다. 우리들은 태어난 물에서 살아야 한다.
그래. 정 그렇다면 하는 수 없지. 이 알들은 그냥 타모얀의 물의 종족에게 위탁해서 키워야지 뭐. 어떻게든 되겠지. 온전한 섬사람이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될 수 있으면 섬사람에 대해서 제대로 알려주고 섬사람으로 살게 하고 싶지만 그게 안 되면 어쩔 수 없이 그냥 새로운 종족으로 살게 하는 수밖에. 수가 별로 안 되기는 하지만 번식이란 면에서는 엄청난 종족이니까. 후쿠드 종족 보다도 더 엄청난 번식력을 자랑하는 종족이니 어떻게든 되지 않겠어?
결국 섬사람들의 온전한 이주는 포기하기로 했다. 일단 제3 데블 플레인에서 수정란들을 깨워 보고, 그 다음에 다른 데블 플레인에 이주를 시킬지 어떨지 결정을 할 생각이다. 일단은 아이들이 태어나고 커가는 것을 봐야 어떻게든 결론이 나올 것이다.
“좋아. 워터. 그건 그렇고 다시 근원으로 사냥을 간다고 해도 너희가 승리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건 알고 있지?”
– 그렇다. 우리들도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들은 이미 늙었다. 오래도록 잠들어 있었지만 나이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 후대에게 자리를 비워 주는 것이 당연하다. 때가 지났음에도 계속해서 삶에 미련을 두는 것은 순리가 아니다.
“그래. 이해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의미 없는 죽음을 자초할 필요는 없지 않나?”
– 아니다. 의미가 없는 것은.
“아, 미안. 화났구나? 미안. 의미가 없는 죽음은 아니다. 그래 물을 정화하는 가장 커다란 역할을 하는 거니까 의미가 없다고 할 수는 없지. 하지만 죽음 자체가 아닌 죽기 전까지의 행동에는 의미가 없지 않나. 그저 몬스터에게 달려들어 자살을 하는 것과 같으니 말이야. 그래서 말인데.”
– 하고 싶은 말이 뭔가?
또 발끈 하려고 했겠지. 자살이라는 말에. 하지만 내가 한 발 빠르게 ‘그래서’라는 말을 붙이니 화를 내지도 못하고 내 뒷말을 재촉할 뿐이다. 쯧, 단순한 놈.
“내가 그 악마 사냥을 도와주겠다. 그래도 될까?”
– 기분 나쁘겠지만 네가 도와준다고 별로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어쭈? 그거 지금 나한테 기분 나쁘라고 하는 소리냐? 너 지금 받은 대로 돌려준다는 뭐 그런 거야? 크큿, 마음이 많이 상한 모양이네?
“뭐, 그건 나도 알아. 하지만 나 혼자서 돕겠다는 것이 아니거든?”
– 네 짝이라고 했나? 아내? 어쨌거나 그가 함께 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얘네들은 부부라는 개념이 없어서 그걸 잘 이해를 못한단 말이지.
“우리 부부 말고, 다른 이들의 도움도 얻을 생각이다. 그러니까 잘 들어 봐. 내가 데리고 올 사람들의 특기는 너희가 악마라고 부르는 것들이 가지고 있는 힘을 약화 시키는 능력자들이야. 혼자라면 별 효과가 없겠지만 그들 수십 명이 모이게 되면 상황이 달라지지. 아마도 너희의 공격에 상처를 입을 정도는 만들어 줄 수 있을 거다. 어떠냐?”
– 그게 정말인가?
오호? 이 제안은 관심이 있어?
“내가 알기로 열 명이 넘게 모이면 너희가 상대하는 그 정도 악마도 잡을 수 있다는 이들이 있다. 거기에 악마를 약화시키는 능력이 있는 다른 이들도 제법 있지. 그들을 데리고 와서 너희의 사냥에 도움을 주겠다. 어떤가?”
– 의논을 해 보겠다. 하지만 거부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워터도 이왕 죽을 거라면 악마를 사냥하고 죽는 것이 더 의미 있는 죽음이란 것은 인정하는 모양이다. 어째 몸에 있는 무늬가 화려한 빛을 내는 것 같다. 저게 섬사람들 기분에 따라서 변하고 그러는 거였나? 아니었던 것 같은데?
– 아! 나는 가 봐야겠다. 동족들과 네가 한 제안에 대해서 의논을 해 보겠다. 그럼.
뭐냐? 갑자기 급하게 서둘러서 가는 이유가. 누가 뭐라고 했나? 아무튼 저것들 목소리는 잘 들리지가 않으니까 누가 뭐라고 소리를 질렀다고 해도 나는 알아들을 수가 없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아, 그나저나 일단 나도 이크아니 프락칸이나 거우거우미 프락칸을 만나봐야겠다. 아무래도 이크아니 프락칸의 수상마을 보다는 하늘 호수의 거우거우미 프락칸에게 알을 부탁하는 것이 좋겠지? 거기가 그래도 담수니까.
아닌가? 이 섬사람들이 원래 소금물에서 살았고 알을 기를 때에도 제법 염도가 있는 물이 필요하다는 걸 생각하면 바닷가가 가까운 이크아니 프락칸의 수상 마을이 좋을까? 흐음. 그것 참 고민되네?
나는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섬사람들의 수정란이 들어 있는 그릇을 들고 물속으로 잠영을 시작했다. 일단 돌아가서 의논을 해 볼 생각이다. 빨리 가야지. 포포니가 저녁 준비를 해 놓고 기다리고 있을 거다. 장모님에게 우리 출산 준비에 필요한 지식 코어를 몇 개 얻겠다고 요즘 장모님께 바짝 붙어서 뭔가 협상을 하고 있는 모양인데, 아무래도 부유선이나 듀풀렉 게이트 몇 개가 더 나갈 것 같다. 예전에는 둘이서 사냥을 다니면서 지식 코어를 만드는 걸 당연하게 생각을 했었는데 요즘은 장모님이 준비해 둔 것들을 하나씩 얻어 내는 데에 재미를 붙인 모양이다. 뭐 내가 워낙 바쁘니까 나를 배려한다는 생각에서 그러는 것 같기도 하지만, 포포니나 장모님 둘 모두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섬사람들의 수정란은 결국 이크아니 프락칸의 수상마을에서 키우기로 결정이 났다. 아무래도 강의 하구에 있어서 바다가 멀지 않다는 것이 제일 크게 작용을 했다. 어차피 섬사람들이 살 곳은 호수나 강보다는 바다가 될 테니 거기에 적응하기 쉽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물의 종족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그리고 섬사람들의 아이들을 교육시키는 문제는 물의 종족들이 나서서 도움을 주기로 하고 또 후쿠드의 어머니들이 만들어 내는 석판들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그들 후쿠드의 어머니가 사용하는 방법을 온전히 쓸 수는 없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기본적인 지식을 수정란이 깨어나면 그 아이들에게 주입을 시키기로 한 것이다. 말조차 통하지 않는 아이들에게 기본적인 지식은 전해야 이후에 아이들을 키우는 것이 쉬울 거라는 논의 끝에 내린 결론이다. 뭐 그걸 위해서 제7 데블 플레인의 섬사람들 중에서 나이가 많은 이를 통해서 지식 코어를 하나 만들고 그것을 다시 후쿠드의 어머니에게 전해서 그 내용을 분석하고 석판으로 만드는 과정이 필요할 것 같다. 그건 이번에 지역 코어 공략을 준비하면서 워터를 설득해서 하기로 일단 계획을 잡아 뒀다.
어쨌거나 다행인 것은 내가 가지고 온 백여 개의 알들이 이곳의 물을 부어서 만든 커다란 수조에서도 튼튼하게 잘 크고 있다는 것이다. 반투명한 알 속에서 뭔가 꼬물거리며 움직이는 것을 보고 있으면 짜릿한 전율이 등줄기를 타고 흐르곤 한다. 흐음. 이 아이들이 깨어날 때에는 나도 곁에 있어야 할 텐데. 워낙 바쁘게 돌아다니니 그게 될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