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GATE RAW novel - Chapter 320
화
몬스터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쳐들어온다. 아니 사실은 시도 때도 없이 우리쪽 헌터들과 일개미들이 티니페들을 자극해서 싸움을 거는 거다.
그 놈들이 가만히 있어도 우리가 가서 사냥을 해야 하는 입장이니 어쩔 수가 없다. 일정한 코어를 상납하지 않으면 보급을 받지 못하고, 보급을 받지 못하면 풀뿌리나 나무 껍질이라도 벗겨 먹어야 하는 상황이 된다. 그런데 여긴 온통 바위와 흙밖에 없어서 뽑아 먹을 풀이나 나무도 거의 없다. 또 있는 풀이나 나무도 먹을 수 있는 종류가 아니고 말이다.
그러니 티니페를 찾아서 끊임없이 이동을 해야 하는 것이 몬스터 전선의 군인들이고 일개미들이다.
“또 이동입니다.”
샤마렐이 불퉁한 얼굴로 던지듯이 말을 내뱉는다.
“그래? 이번 달에 필요한 코어는 확보하지 않았어?”
“우리 조는 그런데, 다른 조는 아닌 모양입니다.”
“하긴, 우리 조는 두 사람이 1코어면 되지만 위로는 좀 다르지.”
1코어. 그건 빨간색 등급의 몬스터 코어 하나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리고 상급 코어는 꼭 10배씩의 가치를 인정해 준다. 주황색 몬스터의 코어는 10코어라는 말이다. 물론 그 중에서 화이트 코어는 빨간색 등급의 화이트 코어도 30 코어로 계산을 해 준다. 30배 정도 가치가 있다고 해 준다는 말이다. 어쨌거나 우리 4조, 그러니까 이제 겨우 전선에 도착해서 적응하기 시작한 일개미들은 두 사람이 열흘에 코어 하나를 구하면 된다. 그런데 3조는 개인별로 코어 하나씩이고, 2조는 두 사람이 코어 셋을 구해야 한다. 거기에 1조는 개인별로 코어 두 개를 구해야 하는 거다. 실력자들을 모아 뒀으니 그만큼 할당량도 많아야 한다는 것인데 이전에는 그렇게 실력에 따라서 조를 나누지 않았던 때도 있었단다. 그런데 실력별로 나눠 놓는 것이 그나마 희생이 적게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에는 실력에 따라 조를 나누고 또 상납해야 하는 코어의 양이 늘어나는 것을 감수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게 차라리 초보자가 들어와서 문제를 일으키고 또 그 때문에 어이없이 죽어나가는 일개미가 없도록 하는 최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나? 어쨌거나 그 결과 실력이 떨어지는 4조에선 수시로 사람들이 죽어 나가지만, 1,2,3조에선 그나마 사망자의 수가 줄었다고 한다.
“그리고 입체 프린터 말입니다.”
“응? 그게 왜?”
나는 샤마렐이 입체 프린터에 대한 말을 꺼내는 것에 반색을 했다. 그거 못 구한다고 내가 샤마렐을 엄청나게 구박을 하고 있지만 샤마렐도 방법을 찾지 못해서 동분서주 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데 제 입으로 이야기를 꺼낸 것은 뭔가 있다는 말일 테니까.
“조만간 하나 구해서 가지고 오긴 할 텐데 좀 문제가 있습니다.”
“문제? 설마 코어로 안 움직이는 뭐 그런 거야?”
“그건 아닌 모양입니다. 그런데 그게 워낙 오래 된 고물인데다가 크기가 요만합니다.”
“뭐?”
나는 샤마렐이 양손을 모아서 만들어낸 입체 프린터의 크기에 깜짝 놀았다.
아니 어른 머리통 정도의 입체 프린터도 있나? 그걸로 대체 뭘 만들라고?
“야, 샤마렐, 너 그런 크기로 칼이나 하나 제대로 만들어 낼 수 있겠냐? 아니면 신발은? 장갑도 제대로 못 만들어 낼 것 같은데?”
“아, 아닙니다. 그래도 이 정도 굵기라면 길이에 상관없이 만들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샤마렐이 반뼘 정도의 지름을 가진 원을 두 손으로 만들어 보인다.
그래 길게 뽑는 건 그렇다고 치자. 그런데 그거 기초 재료를 가지고 합성은 할 수 있는 거냐?
“그거 재료 합성은 되는 거지?”
혹시 안 된다고 하면 저 놈의 면상을 두드려 주리라고 벼르면서 물어본 말이다.
“넵. 기본적인 것은 다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재료 합성이야 당연히 되는 거겠죠.”
“그게 어디서 나온 건데?”
“몬스터 전선 개발 초기에 들어온 물건이라는데 취미로 이런 저런 장식품을 만드는 사람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사람이 가지고 있던 것이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서 지금은 도끼 집단군의 집단군장 책상 위에 장식으로 올라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 방패 집단군도 아니고 저기 서쪽에 있는 도끼 집단군의 그것도 집단군 대장의 책상위에 있는 장식품을 빼돌리겠다 뭐 그런 말이냐?”
“빼돌린다기보다는 책상 청소를 하면서 싹 치우는 거지요. 그래놓고 만약에 그걸 다시 찾으면 올려 놓는 거고, 안 찾으면 그냥 슬쩍 숨겨 뒀다가 적당한 때를 봐서 이쪽으로 공수를 하는 겁니다.”
“그래?”
“아마 괜찮을 겁니다. 들어보니 그 집단군단장 싸우는 거 말고는 거의 아무 것도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하더군요.”
“그랬으면 좋겠다만. 크기가 작으니 가지고 와도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네.”
“없는 것 보다는 좋지 않겠습니까. 그거 말고 다른 곳은 어떤지 알아보고 있는데 중앙 지휘부엔 좀처럼 촉수가 닿지를 않아서 말입니다. 거긴 확실히 많이 다릅니다. 안으로 들어가는 건 코어 말고는 없고 나오는 것도 딱 정해놓은 보급품 이외에는 가끔 나오는 일개미나 헌터들 밖에 없으니 말입니다.”
“준비 다 된 것 같다. 가자.”
“아, 넵. 그런데 이번에는 앞쪽으로 제법 많이 나간다고 들었는데 아십니까?”
“닷새 전에 조장 회의에서 그 이야기 했다고 했잖아. 티니페들 숫자가 많이 줄어서 앞으로 전진을 해야 한다고 말이야. 뭐 당분간 사방에서 달려드는 티니페 때문에 고생을 좀 해야 하게 생겼어. 지금은 전면에서 달려드는 것들이 대부분인데, 우리가 전진하면 좌우에서 나오는 놈들도 상당할 거라고 하더군.”
“언제나 그렇죠. 여길 깔끔하게 정리하고 가는 것이 아니니까 남은 것들이 좌우에서 치고 들어오고 그러는 거죠. 또 한 동안은 운이 좋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겠습니다.”
“티니페가 뜨는 순간만 놓치지 않으면 되는 거야.”
나는 이곳 전선에서 잊지 말아야 할 한 마디를 샤마렐에게 해 주며 걸음을 옮긴다. 여기저기서 4조 일개미들이 등에 한 가득 짐을 지고 내 주위로 다가와서 정렬을 하고 있다.
나야 조장이니까 당연히 빈 몸으로 무기만 들고 움직이는 거지 뭐. 그래도 우리 조원들은 불만 없어. 내 곁에 있으면 죽을 확률이 많이 줄어든다는 것을 알고 있거든. 그게 내 실력이건 아니건 상관없는 일이지. 조원들이 나를 마스코트 정도로 여기거나 말거나, 어쨌거나 내가 석궁으로 구해 준 놈들이 많으니까 다들 나를 조장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거다. 물론 그렇지 않고 밖으로 나도는 놈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뭐 그런 놈들은 티니페랑 싸우고 나면 언제나 한 둘씩 숫자가 줄어든다. 죽는 놈은 언제나 그런 놈들 사이에서 나오니까 말이다.
“참, 조장.”
“왜?”
샤마렐 이 놈은 정말 덩치에 맞지 않게 말이 많은 놈이다. 잠시도 쉬지 않고 입을 연다.
“이 앞쪽에 유적이 있다는 소리 들었습니까?”
“유적?”
“뭐 이번에 가는 곳이 도시가 있던 장소랍니다.”
“그래?”
“넵. 거기다가 지금까지 한 번도 우리 군대가 들어가지 않았던 곳이라서 뭔가 얻을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기대를 하고 있답니다.”
“그래봐야 몇 백 년 전 수준의 것들이라며?”
“그래도 가치가 변하지 않는 것들은 있지 않습니까. 귀금속이라거나 하는 그런 거 말입니다. 티니페에게 순식간에 당하거나 했으면 그런 것이 남아 있지 않겠습니까?”
“도시에서 버티면서 항전을 했다고 해도 남을 건 남았겠지. 그나저나 금이라도 좀 있을까 모르겠네.”
“으흐흐. 제 말이 그 말입니다. 그런 거 구하게 되면 으흐흐.”
“그렇게 웃지마라. 징그럽다. 그리고 그런 거 구해 봐야 어디 쓸 거냐? 그걸로 보급품을 얻을 것도 아니고 말이다. 왜? 그 몸에 장식이라도 하고 다니게? 여기선 쓸데가 없는 물건인 거다.”
“그런 조장도 욕심을 냈잖습니까?”
“난 입체 프린터에 쓸 재료로 욕심을 낸 거지, 너처럼 쓸데 없이 짐만 늘리려고 욕심을 낸 건 아니다.”
“아, 프린터 재료, 그렇군요. 아무래도 금이나 은 같은 것도 재료로 좋은 거니까. 하하하.”
뒷머리를 긁기는. 어쨌거나 이곳 선주민들의 유적이라니 호기심이 생기네. 지금까지 봤던 것은 가끔씩 다 허물어진 건물터가 고작이었는데 이번에는 도시 규모란 말이지? 뭔가 얻을 것이 있을까 모르겠네.
그건 그렇고 빨리 듀풀렉을 만들어야 할 텐데, 우리 마눌이 얼마나 걱정을 하고 있을지 눈에 선하다. 어째 일이 이렇게까지 꼬여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