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GATE RAW novel - Chapter 358
화
아무튼 이쪽에서 몇 개 행성에 몬스터를 풀어 놓으면서 모성을 압박했고, 모성에선 특수부대란 것을 꺼내서 쉽게 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줌으로써 적절한 대응을 한 셈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모성이 몬스터 전선이란 것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고, 몬스터 전선에서 억울한 일을 당한 이들의 사연에서 발뺌을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당연히 그 문제를 두고 전 우주, 식민 행성이 떠들썩한 상황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런 중에 모성에선 그 몬스터 전선이 일종의 실험적인 장소라고 발표했다. 원래부터 인류가 살지 않는 곳으로 이미 문명이 파괴되어 흔적만 남은 행성에 일종의 코어 수집처를 만들기 위한 실험장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일부 헌터지망자들과 일개미들을 억류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오로지 착취하고 기만하려 했던 것만은 아니라고 항변했다. 그곳에서 활동한 헌터와 일개미들에겐 차후 실험이 끝난 후에 온전한 보상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 말을 믿는 사람은 없다. 이미 몬스터 전선에서 죽어나간 이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어설픈 말로 변명을 하려 든다는 말인가. 죽어간 그들은 어쩔 것인가? 그 발표는 그저 모성의 헛소리에 불과한 것일 뿐이다.
그럼에도 그런 변명이라도 하는 이유는 침묵을 지키는 것 보다는 여론을 흔들기에 좋기 때문이란다. 뭐가 되었건 이런저런 말들이 많이 나와서 웅성거리는 것이 지금 상황에서 여론이 견고하게 굳어버리는 것 보다는 나은 상황이라는 분석이다.
하긴 모성에 대한 불신과 적대적인 감정이 높게 고조된 상태에서 여론이 굳어 버리는 것 보다는 어떻게든 유동적인 상태로 만드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지. 쉽게 말해서 ‘더 나빠질 것도 없으니 어떻게든 흔들어 보자.’라는 거다.
어쨌거나 이번 사태로 네 곳의 몬스터 전선이 완전히 우리 쪽, 그러니까 반 모성 연합, 다르게는 가칭 데블 플레인 연합 쪽에 더해지게 되어서 세력이 그만큼 커지게 되었다.
다만 제5 데블 플레인의 경우에는 상황이 미묘하게 되어서, 우리를 지지하는 이들과 모성을 지지하는 세력이 팽팽하게 맞서서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모성 입장에서는 제5 데블 플레인마저 빼앗기게 되면 에테르 코어를 직접 수급할 길이 막히게 되니 결사적인 면이 있는 것 같다.
그러니 헌터들이나 일개미들에 대한 처우 개선이다 뭐다 하면서 떠들고, 코어에 대한 보상 가격도 크게 상향 조정을 했겠지.
뭐 그런 졸속 행정에 속아서 또 그쪽으로 기울어버린 헌터나 일개미들도 문제는 문제다.
조삼모사도 정도가 있지, 대우가 좋아졌다고 곧바로 그 쪽으로 마음이 돌아선 것을 보면서 정말 뭐라 할 말이 없다.
사실 모성 쪽에서 경제력으로 밀고 나오면 꽤나 답답한 모양이 될 수도 있다. 사실 이번에 알게 된 초거대 화물선과 같은 것이 모성이 지니고 있는 어마어마한 힘인 것이다.
그것들이 우주를 누비면서 제대로 수혈을 해 주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의 차이는 엄청날 것이 분명하다.
그동안 모성에서 몇 백 년에 걸쳐서 준비하고 시행한 일이 드디어 결실을 맺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이제 겨우 본격적으로 혈관을 따라서 피가 돌기 시작하는 때라고 볼 수 있는데, 거기서 우리 연합의 행성들만 제외된다고 하면 미래에 우리 쪽의 손해가 적지 상당할 거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었다.
물론 성간-게이트를 통해서 물류의 이동이 가능하긴 하지만 내가 본 그 초거대 화물선을 떠올리면 아무리 성간-게이트라도 감당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모성의 계획에 따라서 만들어진 초거대 화물선은 대략 한 행성에 2년에 한 번씩 도착한다. 쉽게 이야기하면 빛의 속도로 50년 정도 걸릴 거리에 있는 행성 사이에는 50대의 초거대 화물선이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건조 시간까지 따져서 2년마다 한 대씩 행성을 떠난 화물선은 속도의 차이 때문에 거의 100년이 결려서 목표로 했던 행성에 도착을 한다. 그리고 거기서 다시 화물을 싣고 다음 행성을 향해서 가게 되는 것이다. 그 후에 다시 2년이 지나면 이전 행성에서 출발한 화물선이 다시 도착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위와 같은 화물선 운행은 실제완 다르다. 실제 운행은 수 천 개가 넘는 행성 사이를 이리저리 오고가는 엄청난 숫자의 화물선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거다. 하지만 어쨌거나 일반적으로 식민 행성 하나에는 2년에 한 번씩은 초거대 화물선이 하나씩 도착을 해서 화물을 내려놓고 또 싣고 떠난다.
그렇게 지금 모성의 영향력이 미치는 식민 행성들은 그렇게 혈관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고, 그 장대한 계획이 결실을 맺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그런데 만약 어떤 행성의 우리 편이 되면 그곳은 그 화물선의 해택을 보지 못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양이 어마어마한 물동량을 성간-게이트로 그걸 감당하긴 어렵다.
그래서 당연히 그 행성은 다른 행성들에 비해서 뒤쳐질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물론 데블 플레인에는 그런 화물선이 아무 소용이 없긴 하다. 왜냐하면 대기권 밖에 서 있는 화물선에서 화물을 행성으로 옮길 소형 우주 왕복선이 뜰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전자 장비를 쓸 수 있었으면 데블 플레인이라고 부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당장 데블 플레인이나 에테르가 가득한 행성에선 화물선의 혜택 따위를 고려할 필요는 없는 일이다.
어쨌거나 그 초거대 화물선 하나만 보더라도 모성의 식민 행성에 대한 지배력의 기초는 탄탄하기 짝이 없다.
실제로 데블 플레인이라거나 몬스터 전선과 같은 특수한 상황이 행성이 아닌 일반 식민 행성 중에서 우리 연합의 편에 설 행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사실 좀 더 잘 살게 해 주는 것, 혹은 편하게 살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우선 아니겠는가.
그런 면에서 보자면 어떻게 봐도 모성의 능력이 우리가 모인 일명 데블 플레인 연합을 압도한다.
민심이란 그런 거다. 분명 도덕적으로 잘못된 모성의 행태를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직접 당한 소수를 제외한 나머지는 눈을 감고 만다. 사실 그렇게 당한 사람들 때문에 대다수의 사람들이 지금의 번영을 누리고 사는 것이 아닌가.
그걸 사람들은 아는 것이다.
아주 간단한 논리다.
[나만 아니면 된다.]
아주 오래 된 이 말이 어처구니없는 현재의 사회상을 대변해 주고 있다. 씁쓸하지만 또 저 말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얼마나 될까 생각해보면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다. 누구나 그러하다.
‘나만 아니면 상관없는 일이잖아. 까짓 누가 당하거나 말거나.’
이런 생각을 나도 한다.
하지만 그래서 문제인 것이다.
나만 아니면 되는데 어째서 나인가?
그냥 가만히 두란 말이지. 건드리지 말고 그냥 두면 나도 내가 알아서 잘 살 테니까 건드리지 말란 말이지.
하지만 세상이 내 바람을 들어 줬으면 지금까지 내가 이렇게 아등바등하지도 않았겠지.
사실은 그게 문제인 거다. 다른 놈이 당하는 거면 그냥 어떻게든 참고 넘어갈 일이지만, 나와 내 가족과 내가 아는 이들이 당하는 것은 그렇게 참고 넘어갈 수가 없다는 거.
그래, 내가 바로 제3 데블 플레인의 세이커 위아드란 사실이 문제인 거다.
내 아내가 타모얀 종족의 포포니고 장인 장모가 타모얀 종족이라는 것이 문제다. 내 친구 스추알라가 제2 데블 플레인의 선주민인 것도 문제고, 제1 데블 플레인의 후크드 종족의 어머니들이 나와 친밀한 사이란 것도 문제다. 제7 데블 플레인의 섬사람들도 문제고 제9 데블 플레인의 대륙 선주민들도 문제다.
아니 간단히 말해서 모성 놈들이 문제다. 놈들이 우리를 착취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 문제고, 이용물로 보는 것이 문제다.
우리가 조금 더 잘 살고 싶다는 것도 문제다. 그러자면 또 싸워야 하니까.
아, 세상 모든 것이 문제인 거다.
“남편, 정신 차려! 무슨 생각을 하는데 그렇게 멍한 표정을 짓고 있어?”
“아? 아! 그래. 아니야. 아무것도. 그냥 어떻게 하면 우리 포포니랑 같이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어. 하하핫.”
“우웅. 그랬어? 그래서 어떻게 하면 될 것 같은데?”
“음, 일단은 우리 포포니랑 이렇게 껴안고 있는 거야.”
“그럼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거야?”
“후후훗. 일단은 이렇게만 있어도 행복하잖아.”
“우웅. 그렇기는 하지. 웅, 맞아.”
“이러고 있다가 우리가 행복할 수 없게 만드는 것들이 있으면 용감하게 나서서 박살을 내는 거야.”
“그런 거야?”
“아니면 행복할 수 없게 만들 가능성이 있는 것들을 찾아서 감시하고 있다가 그것들이 우릴 방해하려 하면 나서서 박살을 내는 거야.”
“우웅?”
“그것도 아니면 못된 것들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을 일찌감치 모두 정리를 해버리고 우리끼리 알콩달콩 사는 거야.”
“으으음?”
“왜? 마음에 안 들어?”
“점점 복잡해지고 할 일이 많아지잖아. 그럼 남편하고 나하고는 언제 이렇게 안고 있어? 응? 그럴 시간이 없어지잖아. 그럼 언제 행복해지는 건데? 언제 일이 끝나서 행복해져?”
“그래. 그게 문제야. 그냥 이렇게 안고 있으면 행복한데 말이야. 이 행복을 지키기 위해서 이리저리 뛰어 다녀야 하고, 그러자면 별로 안 행복한 시간이 자꾸 늘어나고 그러니까. 그게 문제지.”
“그래도 하지 않을 수는 없다고 할 거지? 그렇지 남편?”
“그렇지. 하지 않을 수는 없지.”
“누굴 위해서?”
“누구긴 우리 마눌과 나, 그리고 우리가 아는 사람들을 위해서지.”
“그래도 오늘은 어디 안 갈 거지? 웅? 이렇게 안고 있을 거지?”
“그래. 그렇게 하자. 마눌. 오늘은 이렇게 안고 있자. 꼬옥 안고 있자.”
내게도 이런 보상이 필요하지 않겠나. 근래에 들어서 얼마나 많은 일들이 나를 바쁘게 했고, 또 앞으로 바쁘게 할 텐데, 잠깐 휴식 시간을 가지는 것도 좋겠지. 이렇게 포포니의 품에 안겨서 말이다. 으음, 슬슬 포포니가 깨물 시간이 되어 가는데?
아흑! 쎄, 세게 물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