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GATE RAW novel - Chapter 359
화
원래 듀풀렉이란 물건이 반칙과 같은 물건인 거다.
따지고 보면 그렇게 많다고 할 수 없는 에너지를 이용해서 게이트를 열 수 있고, 그 게이트는 자그마치 행성 사이를 오고 갈 수 있을 정도다.
그 행성이란 것이 어디 가까이 있는 근접 행성을 말하는 것인가하면 그것도 아니다. 몇 만 광년 떨어진 곳이 있는 행성을 건넛집 가듯이 갈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 바로 듀풀렉이란 물건인 거다.
물론 그걸 처음 사용할 수 있게 되었을 때에는 사실 운이 크게 따라 준 결과로 세포니 행성에 창고 공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고, 그 공간을 중간 경유지로 해서 곳곳에 듀풀렉 게이트를 설치하며 행성과 행성을 건너 뛰어서 돌아다닐 수 있게 된 것이 아닌가.
정말 멋진 일이었지.
다만 한 번은 직접 가서 듀풀렉을 설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어려움이 언제나 내 발목을 잡고 있었던 건데, 이제 그 족쇄를 풀게 되었으니 그야말로 오크가 마정석을 삼킨 격이 된 거다.
이거 참, 오랜만에 제여넌 시절의 속담이 나온다. 오크가 마정석을 삼키면 엄청난 능력을 가지게 되지. 그런 탓에 나온 속담이 저거다. 모성에서는 고대 속담으로 호랑이가 날개를 달았다고 하던가?
아무튼 정밀한 우주 지도가 있으면 어디든 원하는 곳에 듀풀렉 창고를 열 수 있게 되었다.
수많은 자릿수의 듀풀렉 좌표에서 어느 부분이 행성을 뜻하는 것인지, 그리고 그 행성의 경도와 위도, 그리고 행성의 중심에서부터의 거리 등등을 나타내는 부분이 어딘지를 드디어 알아냈다. 다만 아직도 문제가 되는 것은 행성에 식별 가능한 좌표, 혹은 기호가 있다는 사실이다. 도대체 그 기준이 뭘까? 무엇을 기준으로 행성들에 일정 기호를 부여했을까?
그러니까 우리 제3 데블 플레인을 뜻하는 행성의 좌표가 있다고 치면, 그 좌표는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가 하는 궁금증이 생기는 거다.
이에 대해선 사실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없다.
‘내가 듀풀렉에 이러이러한 좌표 표식을 쓰는데 그게 이러저러한 뜻을 지니고 있는 것같다. 그런데 그게 왜 그런지 이해를 못하겠으니 연구를 좀 해 봐라.’ 뭐 이렇게 이알 회원들 중에 능력있는 과학자에게 연구 과제로 던져줄 수도 없는 일이 아닌가 말이지.
그저 지금까지 내가 알아낸 바에 의하면 지금 지도가 어느 정도 나온 우주가 아니라 그보다 훨씬 먼 곳에 있는 어떤 지점을 기준으로 해서 행성들에게 일정한 번호가 붙여진 것 같다는 거다. 그러니 내가 가지고 있는 우주 지도의 행성들에 적당한 좌표를 산출해 낼 수가 있는 거다.
질서가 있다는 말이다. 물론 조금만 잘못된 좌표를 기입하게 되면 내가 가진 우주 지도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어느 곳에 공간이 열려버린다.
그나마 이젠 그곳이 어디건 행성의 중심에서 일정 거리가 떨어진 위치의 공간이 열리게 되니 전혀 엉뚱한 우주 공간에 열리는 경우는 없다.
그저 어딘지도 모를 행성의 지하나 대기권 혹은 대기권 밖이라도 행성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의 공간이 지정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 먼 곳의 행성이라고 생각되는 좌표를 이용해서 듀풀렉을 만들어 보기도 했는데 그곳은 인류가 생존할 수 없는 환경의 행성이어서 어이없이 기대가 무너져 버린 경험이 있다.
사실 그게 제일 문제다. 지금 내가 우주 지도를 가지고 유인 행성, 그러니까 인류가 살고 있는 행성으로 공간을 여는 것은 어렵지 않다. 우주 지도가 있으니까 가능한 이야기지만 말이다.
그런데 전혀 모르는 우주의 행성을 향해 듀풀렉 공간을 열게 되면 그 행성이 인류의 생존이 가능할 확률은 그야말로 극악하게 낮아진다. 사실 인류가 생존할 수 있는 환경을 가진 행성이 도대체 몇 개의 행성 중에 하나씩 있을까?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우주 지도. 그러니까 모성을 중심으로 반지름 2만 광년의 범위 안에 행성이 아닌 항성만 2백억개가 넘는데 그 중에서 인류가 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 행성, 아니 플레인 게이트가 열려서 식민지가 된 행성의 수가 고작 2천 개도 안 된다. 그러니 항성 천만 개를 찾으면 그 중에 인류가 살거나 살 수 있는 행성이 하나 정도 있을 수 있다는 거다.
그런데 사실은 그것도 아니다. 유인 행성은 보통 가까운 곳에 몰려 있는 경우가 많은 거다.
왜냐하면 어느 행성 하나에서 인류가 우주로 나와서 다른 행성으로 퍼져 나가는 경우나 혹은 테라포밍을 거쳐서 인류가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든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니 실제로는 1억 개의 항성을 뒤져도 한 개의 유인 행성을 발견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어마어마하게 희박한 확률인 거다.
그러니 내가 그런 미친 짓을 할 이유가 없다. 지금 지도가 만들어진 범위 안에서만 찾는다고 해도 평생 다 찾지 못할지도 모를 일인데 어딘지도 모를 까마득한 우주 공간을 무얼 하려고 뒤질까?
지금은 그냥 필요한 일이나 하는 거다.
필요한 일이 뭐냐고?
그거야 당연히 모성으로 게이트를 여는 거지. 아니 게이트가 아니라 듀풀렉 공간을 확보하는 거다.
응? 그런데 왜 그게 문제냐고? 다른 행성들은 어렵지 않게 만들었는데 모성이라고 특별할 것이 있냐고?
그래 있다. 솔직히 자존심 상해서 말을 하고 싶지 않은데, 그 빌어먹을 모성에 듀풀렉 공간이 열리지 않는 거다. 아니 열리는가 싶으면 곧바로 뭔가 알 수 없는 힘이 작용해서 그것을 방해하는 거다.
아주 미칠 노릇이지.
벌써 몇 번이나 시도를 해 보고, 또 혹시나 그곳에 특별한 에너지가 있어서 문제가 생기는 것인가 하는 생각에 다른 듀풀렉을 만들어 보기도 했는데 번번이 실패하고 있다.
아마도 이 놈들이 에테르의 움직임에 반응해서 방해를 하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럼 하는 수 없이 다른 방법을 쓸 밖에.
내가 에테르 코어를 이용해서 듀풀렉을 사용하니 이것들이 그걸 알아차리고 방해를 할 방법을 만들어 낸 모양인데, 내게는 에테르가 아니어도 사용할 수 있는 힘이 또 하나 있다. 아니 둘이나 더 있다. 하나는 마나를 이용한 순수 마력이고, 하나는 에테르와 마나가 섞여 있는 융합 마력이다.
어차피 융합된 경우도 에테르의 성질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니 모성의 뭔가가 감지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 순수하게 마나를 이용해서 듀풀렉 공간을 열 필요가 있지. 그런데 어째 시도를 해 보려고 하니까 예감이 좋지 않다.
뭔가 서늘한 느낌이 자꾸만 나를 자극하는 거다. 이건 뭘까?
여섯 번째의 고리가 조금씩 확실하게 자리를 잡기 시작하면서 이런 감이 더욱 확실해지고 있는데 지금의 이 느낌은 위험은 아닌 것 같으면서 마땅치 않은 느낌을 준다.
그래서 마법을 사용해서 모성으로 넘어가는 것을 망설이게 되는 것이다. 으음. 포포니를 데리고 가야 하나?
어? 그런 생각을 하니까 조금 느낌이 좋아지는데? 그럼 뭐야? 포포니를 두고 간다는 것 때문에 기분이 그랬단 말이야? 단지 그거였어? 하긴, 내가 우리 마눌을 무지 좋아하기는 하지. 또 저번처럼 나 없다고 엉뚱한 데로 가고 그러면 안 되니까 우리 마눌을 챙겨서 데리고 가긴 해야겠지.
아, 굴리야, 아니 리샤에게도 물어 봐야겠군. 예전부터 굴리야는 모성으로 돌아가고 싶어했었으니 말이지.
그동안 고생을 많이 했는데 원한다면 데리고 가서 그녀가 바라는 바를 이뤄 주는 것도 좋겠지.
자, 그럼 된 건가? 그래도 여전히 등골이 조금 서늘하긴 하지만 뭐 어디서 무슨 짓을 하건 간에 이 정도의 긴장감이야 늘 있는 거고 또 있어야 하는 거니까. 이해를 해야지.
나는 서둘러서 준비를 시작했다. 일단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야 하니 준비할 것들이 많았다. 모성으로 잠입을 하는 건데 그게 간단할 수는 없지 않은가. 더구나 만약에 이번 잠입이 들키기라도 하는 날에는 상황이 곤란하게 될 수도 있다.
모성에서 에테르를 이용한 듀풀렉을 감지하고 방해할 수 있었다면 마력을 이용한 것도 가능할 수 있다. 그럼 이번이 마지막 잠입일 수도 있는 거다.
어쩌면 갔다가 돌아오지 못하는 수가 생길 수도 있겠지.
뭐 그래도 은폐 마법을 믿어 보는 거다. 기운까지 완벽하게 숨길 수 있는 은폐 마법이라면 모성의 감시 장치도 속일 수 있지 않을까? 뭐 그럴 거라고 믿는다.
자자, 그럼 일단 사람들을 만나서 출장을 간다고 이야기도 하고 내가 없는 동안에 해야 할 일들도 정리를 해야지.
이건 뭐 어딜 한 번 가려고 하면 그 전에 정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다. 예전처럼 자유롭게 살 수는 없을까? 그것 참, 요즘은 사는 것이 너무 복잡하고 여유가 없는 것 같다. 빨리 모성 쪽을 어떻게든 하고 나서 여유를 찾아야지.
그러려면 또 서둘러야 한다는 거? 지금 난 쳇바퀴 돌고 있는 거냐? 같은 말을 하고 또 하고 그러는 것 같네. 그것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