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GATE RAW novel - Chapter 36
화
제이니란 여자의 평가는 듣고만 있어도 티버가 죽을 거라는 것이 사실처럼 들린다. 묘하게 에테르가 움직이는 것이 신경이 쓰인다.
“흥! 제이니. 이런 수작을 여기서 계속하면 참지 않겠어요.”
셜린이 뭔가에 발끈하며 소리를 지른다.
뭘까?
그 순간 묘한 에테르의 기운이 스르륵 물러난다. 그러면서 알게 되었다. 제이니란 여자가 정신에 영향을 주는 어떤 기술을 사용하고 있었다는 것을.
나는 매서운 눈빛으로 제이니를 노려봤다.
“어머나, 알아차린 모양이네요? 대단해요. 간단한 시험이지만 이걸 그렇게 쉽게 알아차리다니 말이죠. 호호호호.”
웃어? 지금 웃음이 나온단 말이지?
나는 더욱 눈에 힘을 주고 제이니를 노려봤다.
“시험이라? 그 쪽은 아무나 붙잡고 시험 따윌 해도 되는 신분이고 나는 그런 시험을 쳐 주면 고마워해야 하는 사림인가? 제이니? 그 쪽도 저 티버나 다름이 없군. 오만하고 제 멋대로야. 지금이야 실력으로 앞서 있으니 그렇게 자신감이 넘치겠지만 나중엔 어쩔 생각이지? 적을 만들지 말라는 말도 지키지 못했고, 영입 대상에게 나쁜 인상을 심어 줘서 영입 가능성을 낮췄고, 지금 하는 짓을 보니 평소에 적을 많이 만들었을 것 같은데? 그러면서 티버에게 충고를 해? 주제 파악도 안 되고 있군.”
나는 제이니에게도 날카로운 날을 세웠다.
길드라는 것이 이곳 제5 거점도시에서 큰 세력이란 것은 알지만 그렇다고 해 봐야 별 것도 아니다. 여기 제3 데블 플레인에만 거점 도시가 수십 개가 있고 그 각각의 거점 도시에는 또 길드들이 있다. 물론 각 길드는 서로 연합을 하기도 하고 협력을 하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그렇게 난립한 길드니 어딜 가나 지금과 같은 상황을 피하긴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고 매번 숙이고 살 수는 없지 않나.
“워워워. 진정. 진정하십시오. 세이커씨. 티버 때문에 기분이 좋지 않은 모양입니다. 그리고 제이니양도 사과하세요. 괜한 오해로 처음부터 엇나가기 시작하면 정말 곤란합니다.”
알테인이란 사내가 관찰자의 입장에서 벗어나 상황 속으로 끼어든다. 뭘 어쩌자는 걸까?
알테인도 정신 능력자다. 육체 능력이 약간 있기는 하지만 일반인 보다는 조금 나은 정도고 주력은 정신 능력인 사람이다. 그를 감싸고 도는 에테르가 그걸 이야기해 주고 있다.
“우리는 데블 플레인에서 살고 있습니다. 여기서 헌터로 살아가는 동안에 우리는 어쨌거나 동료입니다. 파란색, 남색, 보라색으로 등급이 높아지면 사실 우리에게 길드 따위는 의미가 없습니다. 그런 괴수들을 상대하려면 모두가 힘을 모아야 가능하죠. 안 그렇습니까? 여러분이 지금 이런 등급 낮은 사냥터에서 사냥을 하다보니 데블 플레인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 잊고 사는 모양입니다. 생존이 가장 기본이 되는 곳입니다. 데블 플레인이란 곳은 말입니다. 물론 개인의 욕망이 꿈틀거리고 그 욕망이 충돌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최소한 여기 세이커씨 같은 분에게는 그런 것을 접어 둬야 합니다. 지금까지 밝혀진 세이커씨의 능력만으로도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 보호하고 성장시켜야 할 존재라는 사실을 잊지 말이야 합니다. 우리 길드에서 세이커씨를 서둘러 찾은 이유도 그것입니다. 우리 개미 길드는 세이커씨에 대한 절대적인 보호를 천명합니다. 그가 다른 길드에 소속이 되어도 그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우리 길드에 직접적인 적대 행위를 하지 않는 이상, 우리는 세이커씨를 보호할 것입니다.”
어? 이건 또 뭔 개소리? 나를 왜? 누가?
‘하아, 미안합니다. 세이커씨. 사실 우리 트리 길드 역시 개미 길드와 뜻이 같습니다. 당신을 시험한 것은 미안합니다. 정말로 길드에서 보호하고 육성할 가치가 있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건 제 개인적인 판단이지 길드의 뜻은 절대 아닙니다. 이후로 방금 전의 제 실례로 저희 길드에 나쁜 감정이 없었으면 합니다. 대신에 제가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의 뜻으로 원하시는 일이라면 한 가지 부탁을 들어드리겠습니다. 그게 뭐든.
우후, 화끈한데? 방금 그 눈빛하고 표정은 한 번 줄 테니까 잊자. 뭐 이런 거였지?
“흥! 저게 어딜 꼬릴 쳐? 쟈갸. 지금 설마 넘어갈 생각은 아니겠지?”
발끈하는 셜린을 보니 내 짐작이 틀리지 않은 모양이다.
“사과 받아들이지요. 그런데 궁금하군요. 두 길드에서 함께 이렇게 과도한 호의를….”
“틀렸소. 우리 호른 길드 역시 개미와 트리 길드의 의사를 존중하며 그 결정에 동의합니다. 우리 호른 역시 세이커씨의 절대적인 보호를 결의했습니다.”
사람들의 벽을 뚫고 새로운 인물이 나타났다.
그는 티버와 같은 일각수 뿔을 가슴에 달고 있었다.
“늦었습니다. 타렌입니다. 티버는 숙소로 돌아가 자숙하도록.”
덩치가 큰 사내다. 키가 2미터는 되겠고. 체구도 장대하다. 넘실거리는 에테르가 매우 강한 사람임을 증명하고 있다.
“오호홋. 이제 격이 맞네. 티버 따위가 우리와 어울리다니. 짜증이 만발이었다고. 타렌 늦었어.”
“제이니. 오랜만이야. 알테인도.”
“그래. 저번 사냥 이후로 한동안 못 봤군.”
알테인이나 제이니 모두 타렌과는 친한 모양인지 적대적인 기운은 전혀 없다. 마치 동료를 대하는 듯한 분위기다.
“아, 다시 인사합시다. 난 타렌입니다. 보다시피 호른 길드에 속해 있고. 거기서 한 자리 차지하고 있습니다. 뭐 이름뿐인 간부지만.”
“알겠지만 세이커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길드 차원에서 나를 보호하느니 어쩌느니 하는 겁니까?”
나는 어느새 다가와서 테이블에 마주 앉은 세 사람을 차례로 훑어 보며 물었다.
“후훗, 그거야 미래를 생각하는 거지요. 데블 플레인은 우리들의 것이 아닙니다. 사실 아직도 싸움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여러 지역에서 공략을 하고 있지만 아직 한 곳의 지역 코어도 획득하지 못한 실정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헌터의 전력이 늘어나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바람입니다. 그러니 세이커씨 같은 분은 길드의 영입 최우선 순위죠.”
타렌이 그렇게 말을 하자, 곧이어 제이니가 끼어든다.
“그런데 길드는 셋이고 능력자는 하나야. 그럼 어째? 서로 싸워? 그건 곤란하지. 그래서 타협을 하는 거지. 뭐 말로 하는 건 아니지만 그냥 그렇게 결정이 되는 거야. 저 헌터는 미래에 큰 전력이 될 테니까 괜히 건드려서 적으로 삼지는 말자. 우선 좋은 인상을 줘서 길드로 데리고 오면 좋고 아니어도 서로 돕고 살 수 있을 정도는 만들어 놓자.”
다시 말을 편하게 하는 제이니지만 별로 거슬리지는 않는다. 이 여자는 친화력이 좋은 모양이다. 아니면 정신 능력의 계열이 이쪽으로 되어 있어서 그런 탓일 수도 있고.
“그래서 세이커씨는 그런 대상이 된 거지요. 그 디버프 우리가 알기로 배운 것이 얼마 되지 않는 걸로 압니다. 그런데 그 정도의 위력이라면 그건 정말 대단하죠. 지금 당장이라도 상위 사냥터에서 모시고 싶을 정도니까요. 조금이라도 몬스터의 능력을 깎을 수 있다면 사냥은 그만큼 쉬워지고 안전해지는 거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지금 당장 보다는 미래를 봤습니다. 그 재능이 꽃을 피우면 어떻게 될까 하는. 그것만으로 무조건 보호해야 하는 인재란 결론이 났습니다.”
이야기가 이렇게 된단 말이지? 이거 데블 플레인의 상급 사냥터는 정말 무시무시한 모양이군. 서로 갈라져서 싸우는 길드들이 심심찮게 연합을 하는 모양이니 말이지.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란 사실을 또 깨닫게 되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