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GATE RAW novel - Chapter 362
화
언제나 그랬다. 식민행성에서도 이렇게 뒷골목을 걷고 있으면 이곳 모성의 뒷골목이 생각났다. 내 어린 유년의 기억들이 티눈처럼 박혀있는 그런 곳이니 어쩔 수 없는 조건 반사 같은 것이었을 터다.
그리고 지금은 정말로 모성의 뒷골목을 걷고 있다. 비록 내가 나고 자란 골목은 아니지만 분위기나 냄새, 색깔, 바닥이나 벽, 버려진 쓰레기 같은 것이 유달리 그 옛날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리고 사람들까지도.
“여어, 이런 곳에 오실 양반이 아닌 것 같은데? 거기다가 그렇게 여자들까지 끌고 말이야.”
나타났다. 그나마 경험이 제법 되는 사람인 모양이다. 대뜸 욕부터 하고 겁을 주려고 하지 않는 것을 보면 말이다.
“볼 일이 있어서 온 거야.”
“그렇겠지. 안 그럼 이런 곳에 올 일이 없으니까.”
“난 여기에 대해서 잘 몰라. 모르는 곳을 찾아 온 거니까.”
“우린 상관없지. 알아도 그만이고 몰라도 그만이야. 하지만 우리가 당신에 대해서 전혀 모른다는 것이 조금 걸리네?”
“볼 일이 있다고 했잖아. 볼 일만 마치면 갈 거고 다시 안 올 거야.”
“오호? 그래?”
사내의 눈빛에 탐욕이 스친다. 볼일을 마치고 가서 안 온다고 했으니 내가 볼 일에 필요한 재화를 들고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한 것이다. 이런 쪽으론 눈치가 빠른 것이 또 저런 놈들이다.
“처음 생각을 잊지 마. 나와 내 일행을 보고 느낀 그 느낌말이야.”
나는 정중하게 경고를 한다.
사내는 나와 포포니 그리고 리샤를 처음 발견하고 머리를 굴렸을 것이다. 그리고 쉽게 건드릴 놈이 아니란 판단을 했을 거다. 이런 골목을 거침없이 누비고 다니는 것을 보면 당연히 쉬운 먹잇감이 아니란 것은 알아야 하는 거다. 그래서 저 놈이 우리에게 그나마 격식을 차리고 말을 던진 것을 보고, 내가 저 놈을 경험이 좀 되는 놈을 분류를 했던 거고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 저 놈이 조금 더 능력 있는 놈이 되려면 욕심에 눈이 멀지 않아야 한다. 그 정도가 되어야 제 명을 끝까지 지키면서 살 수 있는 뒷골목 인생이 되는 거다.
그렇지 못하면 내일 해가 뜨는 것을 보지 못할 지도 모르는 것이 이곳의 삶이다.
“뭐 그렇겠지. 하지만 그래도 내가 받은 손님인데 뭔가 남는 것이 있었으면 하는데?”
사내는 그냥 물러나고 싶은 생각은 없는 모양이다. 또 그래야 한다. 그런 끈질김이라도 없으면 이곳에서 조차도 제 자리를 지키기 어려운 것이 삶이다.
“안내를 해. 대가를 주지.”
나는 그에게 내가 원하는 곳으로의 안내를 부탁한다. 그렇게 서로에게 유익한 관계가 되는 거다.
“오, 좋지. 좋아. 어딜 가고 싶나? 내가 이쪽은 또 꽉 잡고 있지.”
“물건을 처리하고 신분증 셋을 얻을 수 있으면 되는 거야.”
“오호? 새로운 신분이 필요하다? 뭔가 일탈이라도 하려고? 하긴 그런 놈들이 늘고 있다고 듣기는 했지.”
“나같은 놈들이 여길 자주 오나?”
“그렇지. 괜히 돌아다니다가 잡혀서 끌려가기 싫은 놈들이 임시로 쓸 신분증을 마련해서 돌아다니곤 하지. 그래서 제법 많은 사람들이 신분증을 빌려주는 일을 하곤 하지.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신분증을 분실했다고 우기면 되거든. 그리고 그 사이에 자신들이 어디서 뭘 하고 있었는지만 증명하면 되니까 괜찮은 장사잖아.”
“그도 그렇군.”
가난한 이들의 이야기다. 자신들의 신분증을 빌려주고 그 대가를 받는 이들이 있다는 거다. 도대체 그렇게 빌린 신분증으로 뭘 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신분증을 빌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니 내가 모성을 떠난 이후로 새로 생긴 일거리인 모양이다.
“자자, 이리 오라고.”
사내가 우리를 끌고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기 시작한다. 나는 저 사내가 될 수 있으면 엉뚱한 생각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 괜히 포포니아 리샤의 성질을 건드려서 좋을 것은 없으니까 말이다. 이런 뒷골목으론 행정관들도 들어오지 않는다.
모든 식민 행성을 다스린다는 모성에서도 뒷골목에서 죽어가는 이들은 집계가 되지 않는다. 그저 실종으로 집계되는 숫자가 얼마나 많은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만약의 상황에서 포포니나 리샤가 날뛰게 되면 적잖은 희생자가 나올 수도 있다. 뭐 그런 경우엔 포포니나 리샤가 나서기 전에 내가 먼저 처리를 해야겠지만 말이다. 여자들에게 험한 일을 맡길 수야 있나.
“왜 그랬어? 욕심 부리지 말라고 그렇게 경고를 했는데 말이야.”
“커어억. 어, 어떻게?”
“몰라도 되는 일이야. 자, 그러니까 여기 있는 이 신분증들이 우리가 써도 되는 거란 말이지?”
“그, 그렇습니다.”
“여기에 텔론도 들어 있나? 어디 보자. 음, 별로 많지는 않은데?”
“피, 필요하시면 더 넣어 드리겠습니다.”
“아니야. 괜히 그랬다가 너희들 실종되고 나면 혹시라도 여기로 들어온 텔론 때문에 귀찮은 일이 생길지도 모르잖아. 그냥 아껴서 쓰지 뭐. 아니면 다른 곳에 가서 물건을 넘기고 텔론만 충전을 받아도 될 일이고.”
“살려 주십시오. 제발.”
“그런 소리를 하기엔 이미 늦었잖아. 저길 봐. 너 때문에 죽은 녀석이 자그마치 여덟이나 된다고. 그런데 너만 살아 있으면 저들이 억울하지 않겠어?”
“제, 제발. 끄르르륵.”
나는 녀석의 머리에 뭉쳐 두었던 작은 에테르 덩어리를 터뜨렸다. 그걸로 녀석은 생을 마감했다. 아니 곧 할 것이다. 의료 캡슐의 도움을 받지 못한다면 말이다.
나는 잠시 쓰러진 이들의 몸에 디버프 기반의 에테르를 슬쩍 흘려봤다. 그걸로 놈들의 상태를 점검한다. 아니 확실히 죽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영구 캡슐 같은 것의 혜택을 입은 놈이 있다면 곤란하니까 확인은 꼭 필요하다. 여기서 내가 저들을 죽인 것이 일반적인 방법이 아니라 에테르를 이용한 정신 능력 중에서 디버프 기반의 독자적인 기술이기 때문에 자칫 살아나는 놈이 있어서 신고라도 하는 날에는 피곤하기 짝이 없는 일을 당할 수도 있다. 그래서 더더욱 신경 써서 놈들의 죽음을 확인했다.
“남편, 왜 다 죽였어? 하수인 안 만들어?”
포포니가 의외로 몰살을 시킨 것이 낯설었는지 내게 다가와 묻는다.
“여기 알고 보니까 너무 작은 도시야. 여기 나와 있는 주소로 보면 그야말로 깡촌인 거지.”
“에? 여기가?”
포포니가 깜짝 놀란다.
“응, 그래. 솔직히 모성은 어딜가나 비슷하게 생겨서 작은 도시 큰 도시를 따질 이유가 없는데, 그건 일반인들의 문제고 우리 경우에는 될 수 있으면 모성의 중심 도시로 가야지. 거기서 일을 풀어 나가야 하니까 말이야.”
“아, 그래서 그렇구나? 혹시나 우리를 신고할지도 모르니까 모두 죽인 거야?”
“그냥 기억만 지울 수도 있었는데 하는 짓들이 너무 극악하잖아. 여기 신분증도 빌린 것이 아니라 죽이고 실종시킨 다음에 가지고 있던 거였어. 이런 놈들을 살려둘 이유가 없지.”
나는 남편과 아내, 그리고 남편의 동생으로 이루어진 신분증을 팔락팔락 흔들면서 그렇게 설명을 해 줬다.
“그러네. 죽어도 할 말 없는 것들이네. 그런데 이대로 두고 가?”
“여긴 이놈들의 아지트야. 어지간해선 들어오는 놈들이 없겠지. 있다면 이놈들의 패거리가 분명하고 말이야. 그리고 놈들의 패거리가 발견하면 그냥 적당히 청소하고 시체를 치우고 말 거야. 굳이 공권력에 기대거나 할 놈들이 아니란 말이지.”
“그렇구나. 그럼 그냥 가면 되겠네?”
“괜히 손쓰는 것이 더 이상하지. 그냥 가자.”
나는 포포니와 리샤를 이끌고 건물 밖으로 향했다.
우리를 안내한 녀석은 밖으로 나가는 현관에서 얼마 들어오지 않은 곳에 죽어 엎어져 있다. 쓸데없이 욕심을 부려서 우리를 자신의 패거리 아지트로 데리고 온 것이다.
안내를 해 왔으면 그냥 서로 원하는 거래를 하고 말았어야 하는데, 욕심 때문에 소형 머신건까지 동원해서 우릴 공격하려다가 한꺼번에 몰살을 당한 거다. 쯧쯔.
끝까지 처음 감각을 믿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결과가 영원한 안식이 된 셈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이곳에 온 목적을 달성했으니 목적지로 향하는 일만 남았다. 모성의 중심 도시로 가는 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