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GATE RAW novel - Chapter 367
화
“그건 뭐예요?”
리샤가 내가 꺼내는 동그란 물건을 보고 묻는다. 어디서 났느냐는 질문은 하지 않는다. 내가 마법으로 듀풀렉 창고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리샤도 알고 있는 일이니까 말이다. 그래서 리샤나 포포니도 필요하면 언제든 듀풀렉이 없어도 게이트를 열고 도망을 갈 수 있다는 사실을 믿고 있었다.
“이번에 개발된 에테르 폭탄.”
“에? 폭탄이요? 위험하지 않아요?”
“가까운 곳에서 터지면 조금 위험하긴 하겠지만 열 걸음 정도만 떨어져 있어도 그다지 위험하진 않을 거야. 강력한 바람에 몸이 날릴 수는 있겠지만 그게 끝이지. 파편이 튀거나 하는 일도 없고, 열이 나거나 하지도 않을 테니까 말이야.”
“우웅. 그래도 무지 위험한 물건이라면서? 남편이 그랬잖아.”
“이게 위험하긴 하지. 이게 터지게 되면 아마도 폭심, 그러니까 폭탄이 터지는 중심에서 반지름으로 몇 백 미터 안쪽에 있는 모든 기계들이 멈추게 될 거야. 예전에 사용되었다던 EMP라는 폭탄과 같은 역할이라고 할까?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진화된 형태라고 봐야겠지. 이건 전기를 품고 있는 모든 물건들을 그 상태에서 녹여 버리는 거니까 말이야.”
“녹인다고요? 그냥 멈추게 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었어요?”
리샤가 깜짝 놀라서 되묻는다.
“에테르란 것이 그런 반응을 만들어 낼 줄은 나도 몰랐지. 일정 이상의 전기를 품고 있는 것이면 뭐가 되었건 과부하를 걸어서 녹이는데 그게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라서, 전선이 있다면 전선 전체가 녹아내리지. 거기에 이알게이트 과학자들이 알아낸 바에 의하면 에테르 폭풍 속에 있는 금속 물체에 전기를 통하게 만들면 그 물체 자체가 형태를 잃고 녹는다고 하더군.”
“설마 이 건물 같은 것에 전기를 흐르게 하고 그 폭탄을 터뜨리면 건물 전체가 녹아버린다는 말은 아니겠지요?”
“건물에 전기를 흐르게 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리샤가 방금 말한 그것도 가능할 거야. 하지만 그런 경우는 없겠지. 사람이 생활하는 공간은 전기가 흐르지 않는 물질로 만들어지는 부분이 대부분이니까 말이지.”
“그야 그렇지만 어쨌거나 전기와 에테르가 만나는 것은 무척 위험하군요.”
리샤가 내 손에 들린 폭탄을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그런데 남편, 그거 왜 꺼낸 거야?”
하지만 포포니는 내가 그 폭탄을 어떻게 쓸 건지가 더 궁금한 모양이다. 쓰지 않을 거면 꺼내지도 않았을 테니 이제 에테르 폭탄이 터지는 것을 볼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눈빛이 반짝반짝 한다.
“생각을 해 보니까 어차피 여기까지 끌려온 마당에 앞으로 무슨 일을 당해도 좋은 꼴은 못 볼 것 같고, 더구나 함께 끌려온 사람들 중에서 일부가 먼저 당할 가능성이 더 높잖아.”
“그래서?”
“나중에 우리 차례가 되어서 이곳을 뒤엎는다고 해도, 결국 함께 왓떤 사람의 일부가 희생이 되고 나면 마음이 편하지않을 것 같아서 말이지.”
“그래서 그걸 터뜨린다고?”
“그래.”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모두들 듣는데서 해도 되는 거예요? 여기 감시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은데요?”
리샤가 소곤거리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지만, 다른 일곱 명의 시선은 이미 우리 셋에게 몰려 있었다.
“그런 물건은 어디서 나온 건가? 개인 물품은 그 깡패 놈들이 빼앗아 가고, 또 여기 와서는 옷까지도 모두 갈아 입었는데 말이지.”
전에 리샤에게 이곳이 지옥이라고 떠들던 사람이 나서서 묻는다.
“세상을 살면서 남모르는 재주 하나씩 가진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지요. 이건 그 재주로 가지고 들어 온 겁니다.” “듣자니 폭탄이라고?”
“맞습니다.”
“위험하지 않겠나? 여기 사람들이 열이나 되는데?”
아마도 에테르 폭탄이란 소리는 듣지 못한 모양이다. 포포니의 목소리가 커서 포포니가 내게 그걸 왜 꺼내고 있느냐고 물었을 때부터 우리 이야기에 관심을 가졌을 것이다. 내가 느끼기에도 저들의 시선이 몰린 때가 그 때였으니 맞을 것이다.
“사람은 다치지 않을 겁니다. 그냥 전자제품만 못쓰게 만들죠. 그것도 벽이 있거나 없거나 상관없이 반지름 400미터 정도의 구형으로 위력을 보일 겁니다. 뭐 그 밖으로도 못쓰게 되는 전자제품이 제법 있겠지만 그 안쪽은 완전히 전멸이죠. 심지어는 개인 툴틱도 망가집니다.”
“단지 전자제품에만 영향을 준다는 건가? 사람은 괜찮고?”
“그렇죠.”
“그런 물건을 어떻게 가지게 된 건가?”
“뭐, 만들기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재료가 구하기 어려운 거죠. 재료가 에테르 코어니까요.”
“뭐, 뭣? 에테르 코어?”
사내가 놀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부부와 리샤를 쳐다보고 있던 다른 사람들도 놀라서 웅성거린다.
하긴 모성에서 에테르 코어란 것은 정말 귀한 물건이다. 중상층 이하로는 평생동안 구경도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중상층 이상도 직접 코어를 손에 쥐는 경험을 할 확률은 높지 않다.
일상에서 에테르 코어가 사용될 일이 거의 없으니 당연하다. 하지만 누구나 알고 있는 한 가지는 있다.
에테르 코어는 무척 비싼 물건이고 희귀한 것이란 사실 말이다.
“일부러 이곳에 잡혀 온 모양이구먼. 목적이 있어서.”
역시 나이를 먹고도 정신이 온전한 경우에는 저렇게 괜찮은 식견을 가지게 되는 모양이다. 앞서도 이야기한 삶의 연륜 같은 거겠지.
“그렇다고 해 두죠.”
“하하, 덕분에 우리도 도움을 받게 되는 건가? 나는 몰라도 젊은 사람들은 그나마 죽다 살아나는 거니 새 삶을 살게 되는 셈이로군.”
“자기 자신에겐 해당 사항이 없다는 듯이 말을 하는군요.”
“뭐 나야 어차피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느끼고 있으니까 말이야.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실험에 참가하기 위해서 일부러 왔다고 해야겠지.”
“뭔가 아는 것이 있다는 말입니까? 아니, 일부러 잡혀왔다고요? 우리처럼?”
“뭐 그렇지. 사실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나같은 경우엔 실험이 꽤나 매력적이거든.”
“실험 내용이 뭔지도 알고 있군요?”
“인체 실험이지. 정확하게는 수명 연장을 위한 세포 단위 이하의 개조 실험이라고 하는 것이 맞겠지. 그것도 이젠 거의 완성이 된 단계고 말이야. 그렇지 않았다면 내가 여기까지 올 이유가 없었지.”
“그, 그건 금지되어 있는 연구 아닌가요? 수명 연장은 지금 상태로 자연 수명을 지키도록 되어 있잖아요.”
리샤가 깜짝 놀라서 끼어든다.
“맞지. 그래도 텔론이 넘치는 이들은 인공장기나 인공신체를 이용해서 수명을 한계까지 늘리기도 하지. 하지만 결국 말 그대로 한계라는 것에 닿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그러니 영생이란 말은 있을 수가 없는 거고 말이야.”
“그러니까 그 많은 회사들이 연구하고 있는 것이 수명 연장에 대한 연구란 말입니까?”
나는 다시 한 번 확인하기 위해 물었다.
“그게 목적이지. 하지만 그 사이에 이런저런 부과적인 수확들이 많았지. 하나의 목표로 연구를 한다고 해서 결과가 꼭 그것으로 나오진 않으니까 말이지. 의도하지 않은 긍정적인 결과들도 많이 나오고 그러지. 하지만 나는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어. 그냥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여기까지 와 봤을 뿐이니까 말이야. 몇 달 남지도 않은 생을 침대에서 보내긴 싫었으니까.”
“재미있군요. 실험체가 되어 죽을 수도 있는데 이런 도박을 하시다니 말입니다.”
“제대로 된 실험 성공 케이스들은 따로 모아서 관리를 한다고 들었지. 그리고 그런 상황이라면 나도 어느 정도 손을 써서 밖으로 나갈 수도 있을 거라고 믿고 있었고.”
“가진 능력이 제법 되시나 보죠?”
“이런 실험을 할 정도는 되지. 하지만 우린 너무 늦었거든. 따라잡을 수 없다는 건 아니지만 그 때까지 내가 버티기가 어려울 것 같더란 말이지. 그래서 여길 내 발로 찾아 온 거지. 그 쪽처럼 신분을 바꿔서 말이야.”
“운이 없군요. 실험에 참가도 못하게 생겼으니 말입니다.”
“그렇지 운이 없지.”
사내는 조금 침울한 표정이 되었다가 곧 활짝 웃는다.
“그래도 아직 기회는 많지. 내가 죽기 전에 갈 수 있는 실험장이 여기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지. 밖으로 나가면 다시 다른 실험장을 찾으면 되지. 여기가 제일 앞서 있는 회사 소유의 실험장이긴 하지만, 따지고 보면 큰 차이도 아니니까 말이야.”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사내의 웃음은 억지스러운 가식이 끼어 있다. 최선이 아닌 차선을 선택하게 된 것에 대한 짜증과 분노가 깊은 곳에 녹아 있는 것이 느껴진다. 관심을 가지고 살피니 그러한 것들이 보이는 것이다. 저 사람은 다른 일반적인 납치 피해자들과는 다르니 나도 세밀하게 살피게 된 것인데 확실히 저 깊은 곳에 자신의 속마음을 숨기는 데에 너무도 익숙한 사람이다.
“우웅. 높은 사람인가 보다.”
“그러네요. 언니.”
“그럼 아는 것도 많겠다. 웅. 남편.”
“그렇겠네? 확실히 그렇겠어.”
나는 사내를 보며 입맛을 다신다. 이거 얼떨결에 호구 하나가 굴러 들어왔다고 생각하면 되나? 보통 이런 사람들은 찾으려고 해도 찾을 수가 없는 사람인데 말이지.
들어보니까 제법 능력이 있는 사람이 분명하다. 다른 회사의 실험실에 압력을 행사해사 빠져 나가는 것이 가능할 거라고 큰소리를 칠 정도니 말이다. 거기다가 회사에서 하고 있는 비밀 실험에 대해서 알고 있고, 또 그 실험의 수준까지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이면 보통은 아니겠지. 이런 사람을 하수인을 만들면 꽤나 쓸모가 있을 것 같다.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 문제지만, 끼리끼리 어울린다고 이 사람을 이용하면 얼마든 이와 비슷한 위치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내가 거느린 하수인의 수준이 확 올라가게 되겠지. 다만 그러려면 시간이 좀 걸린다는 것이 문제지만 여길 빠져 나갈 때까지는 저 사람도 우리와 함께 행동하면서 우릴 파악하려고 할 것 같으니까 조금씩 세뇌를 시키면 될 것 같기도 하다.
자, 일단은 에테르 폭탄부터 터뜨리고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