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GATE RAW novel - Chapter 368
화
에너지 빔으로 만들어진 창살 밖으로 던진 에테르 폭탄은 화끈한 폭발을 일으켰다. 마치 거대한 풍선이 터진 것처럼 한바탕 바람이 휘몰아쳤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에트르 폭탄의 위력을 실감하게 하는 일이 벌어졌다.
“남편!”
포포니가 내 팔을 잡는다. 그리고 곁으로 다가온 리샤 역시 나의 옷깃을 잡는 것이 느껴진다.
눈에 힘을 줘봐도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발광체가 하나도 없는 짙은 암흑의 세상에 우리들 모두가 떨어진 것 같다. 우리를 가두고 있던 에터지 빔의 빛도 사라지고 없다.
하긴 에테르 폭탄이 제 역할을 했다면 제대로 작동하는 전자기기는 하나도 없을 것이고, 또 망가진 전자기기 회로나 전선으론 다시 전기가 통하지 않을 테니 이 상황이 이해가 되기는 한다. 그럼에도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한 것은 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실제로 경험을 해 보지 못했으니 말이다.
전에 초거대 우주 화물선의 경우에는 에테르 폭탄의 실험용으로 쓰려다가 이왕 해커들이 접수한 우주선이라면 그대로 우리가 사용을 하기로 하고, 그 우주선을 제9 데블 플레인의 정기 궤도에 놓고 우주 개발의 기지로 쓰리고 했기 때문에 에테르 폭탄을 직접 터뜨려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우리 과학자들은 이미 실험을 몇 번 했다지만, 그 때에도 주변에 이런저런 전자 기기를 놓고 실험을 해 본 것이지, 이렇게 폐쇄된 실험실 같은 곳에서 해 본 것은 아니었으니 암흑 세상이 되는 것을 예상하지 못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보게. 어떻게 안 되나? 어두워서 보이는 것이 없군.”
어둠 속에서 목소리를 높인 사람은 역시나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아서 일부러 왔다고 했던 그 사람이다. 다른 여섯 사람은 지금까지 우리 이야기를 듣기만 할 뿐, 이런 저런 간섭이 없다. 지금도 그들은 벽쪽으로 바짝 붙어 서서 우리 눈치만 살피고 있는 중이다.
하기는 저들로선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주도적으로 뭔가를 해보지 못할 사람들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밀면 밀리고, 끌면 끌리면서 살던 사람들에게 급격한 상황 변화 속에서 재빠르게 적응하고 행동하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일 테니까.
나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듀풀렉 창고에서 몇 가지 물건을 꺼낸다. 빛을 낼 수 있는 도구와 포포니와 내가 쓸 칼과 방어구 세 세트를 꺼냈다.
옷 위에 그대로 착용이 가능하게 만든 거라서, 스틱형으로 생긴 발광체를 천정에 붙인 상태로 우리 셋은 방어구를 착용하고, 칼까지 하나씩 들었다. 리샤는 에스폴이 된 이후로 정신 능력쪽으로 더 발전을 한 상태라 따로 무기를 들지는 않았다.
“도대체 그것들이 어디서 나온 건가?”
어둠 속에서 물건들을 꺼내고, 다 꺼낸 후에 발광 스틱을 작동시킨 것이어서 물건들이 어디서 나왔는지 보지 못한 사내는 궁금한 듯이 묻는다. 하지만 우리는 누구도 그의 질문에 답을 해 줄 생각이 없다.
“모두들 여기서 기다리는 것이 좋을 겁니다. 지금부터 우리는 이곳을 관리하는 자들을 제압하기 위해서 움직여야 하니 말입니다. 괜히 그들과 부딪혀서 좋은 것이 없을 테니 그냥 여기 있으란 말입니다. 이후에 우리가 여길 정리하게 되면 당신들은 자유를 찾을 것이고, 우리가 실패하게 되면 그 때는 당신들의 선택에 따라서 행동하십시오. 뭐 어차피 당신들이 이곳을 나갈 방법은 지금으로선 없습니다. 문을 열고 닫는 장치들도 모두 파괴된 상태일 태니까 말입니다.”
“맞아요. 그러니까 우리가 가고 난 후에 조용해졌다 싶으면 천천히 우리가 만든 길을 따라서 오는 것도 괜찮을 겁니다. 벽을 뚫거나 문을 억지로 열면서 이동을 할 테니까 흔적을 놓칠 일은 없겠죠.”
리샤가 내 말에 이어서 덧붙인다. 뭐 그것도 맞는 이야기다. 여기서 마냥 기다린다고 뾰족한 수가 생기는 것도 아닐 테니까 말이다. 정말 그러다간 굶어 죽을 가능성도 있다.
“이보게들, 나, 나는 자네들을 따라가면 안 되겠나?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아직 몸은 괜찮은 편이라네. 짐이 되지는 않을 거야.”
훗, 내심 기다리던 반응이다. 저 사람도 우리 정체를 밝히고 싶어서 저러는 거겠지만, 은근히 저 사람에게 작용하고 있는 마법의 영향도 있다. 어쩐지 친근감을 느끼면서 가까이 붙어 있고 싶은 마음. 즉 의지하는 마음이 조금씩 저 사람에게 스며들고 있는 것이다. 원래는 인간이 아니라 이성이 없거나 사고 능력이 떨어지는 생명체의 적대감을 해소하고 친근감을 만들어주기 위해서 사용하는 마법이지만, 이곳처럼 마법에 대한 내성이 전혀 없는 세상에서는 인간에게도 잘 먹히는 마법이다. 물론 여러 차례의 경험에 의한 판단이다.
“우리는 우리끼리 움직이는 것이 편합니다만.”
그래도 냉큼 따라 나서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보게, 내가 다른 것은 몰라도 이곳 실험장, 아니 연구소의 대략적인 구조를 알고 있다네. 그래, 그러니까 길안내를 어느 정도는 할 수 있을 거란 이야기지. 지금 당장 자네들은 이곳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지 않나.”
우와, 이 아저씨 핵심을 제대로 짚을 줄 아는데? 확실히 저 말이 맞긴 하지. 길안내가 있으면 일이 훨씬 쉬워지겠지.
“그럼 이곳 책임자나, 연구원들이 어디에 있을지 알 수 있습니까?”
“나를 데리고 간다고 약속하면 이야기를 해 주겠네.”
“따라오는 것을 말리지는 않죠. 그 이상은 알아서 해야 합니다.”
뭐, 이정도 양보를 하고 나중에 정말 저 사람에게 도움이 필요한 것 같으면 리샤나 포포니에게 슬쩍 도와주라고 하면 되겠지. 그렇게 데리고 다니면서 계속 낮은 수준의 현혹 마법을 건다면 이후에 세뇌를 시키기에도 수월해 질 테고 말이지.
“알겠네. 일단 우리가 있는 이곳은 이 연구소의 윗부분이라고 생각하면 되네. 자네들이 어떻게 예상을 하는지 몰라도 이 연구소는 지하로 내려가며 지어진 건물이네. 물론 윗부분에도 건물이 있긴 하지만 연구소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회사에서 운영하는 건물이지. 그렇게 감춰진 연구소란 소리네.”
“그러니까 우린 밑으로 내려가야 한다는 겁니까?”
“적어도 수십 층은 내려가야 할 거네.”
“정확히 얼마나 깊은지는 모릅니까?”
“깊이로 따지자면 400미터가 조금 넘을 거네. 정확하진 않지. 한 층을 3미터로 잡고 130층 정도라고 계산한 거니까 말이지.”
그럼 저 밑에는 아직도 전자기기가 살아 움직이고 있을 확률이 높다는 말이다. 에테르 폭탄의 영향을 덜 받는 거리에 있는 부분이 있을 테니까. 그리고 이런 정도의 규모라면 꽤나 빠른 복구 능력도 있을 테니까 우리가 내려가는 동안에 어느 정도의 복구가 이루어질 가능성도 있다.
“흠. 아래로 내려가면서 한 번 더 터뜨려야 하나?”
내가 그렇게 중얼거리는데 사내가 화들짝 놀란 듯이 양 손을 저어가며 소리를 지른다.
“그, 그만 두는 것이 좋을 거네. 그렇게 하면 이곳에서 무슨 연구가 얼마나 이루어졌는지를 알 수가 없게 되지 않나. 그건 매우 귀한 연구 자료라네. 그걸 얻을 기회를 그렇게 버리는 것은 옳지 않지.”
웃기는 소리다. 이 순간에도 저 사람은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건 내가 결정할 문젭니다. 그럼 일단 아랫층으로 내려가는 길을 찾아야 할 텐데?”
“우웅. 남편 그냥 뚫고 가자. 어차피 열리는 문도 없을 거라며? 그럼 통로를 찾아도 또 뚫고 지나야 한다는 건데 그러느니 그냥 바닥을 뚫고 가는 것에 좋지 않아?”
역시 화끈하신 우리 마눌님. 뭐 그 말이 맞긴 하지.
“그 말이 맞는 것 같긴 하네. 그럼 어디 힘을 한 번 써 볼까?”
“아니. 내가 할 거야. 내가 할게.”
칼을 뽑아드는 나를 포포니가 말린다. 뭐 마눌이 하고 싶다면 그러라고 해야지. 아직 칼질로만 따지면 우리 마눌이 나보다는 더 윗줄에 있으니까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