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GATE RAW novel - Chapter 369
화
꽈광!
후두두두둑. 투둑 툭, 툭툭.
“마눌 신경질 났어? 자꾸 거칠어 지는 걸 보니까 우리 마눌 화났구나?”
“아니야! 화 안 났어.”
“안 나긴 뭐가? 봐봐, 이렇게 볼이 잔뜩 부풀었는데.”
“아니라니까!”
“그래. 알았어. 알았어. 마눌 화 안 났어. 믿어 줄게.”
나는 포포니에게 다가가서 살짝 어깨를 안아준다. 포포니는 곧바로 내 어깨로 머리를 기대며 흡족한 표정을 짓는다. 열심히 바닥을 무너뜨리면서 고생을 하고 있는데 그걸 알아주지 않으니 심술이 났던 거다. 이럴 때는 그저 이렇게 말없이 살짝 안아주고 슬슬 갈기를 쓰다듬어 주는 것이 최고다. 뭐 갈기는 옷과 갑옷 안에 있지만 머리에서 꼬리뼈까지 척추를 따라서 쓰다듬어 주는 것을 포포니가 무척 좋아하니까, 이걸로도 충분하다.
“콜록, 콜록. 거 정말 과격하구먼.”
위에서 펠로건 회장이 기침을 하며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시끄러워요. 내려 갈 테니까 꼭 잡아요.”
“아, 알았네. 거참 까칠하기는.”
“조용히 해요. 누구 때문에 내가 고생을 하고 있는데?”
리샤가 이번에도 펠로건 회장을 구박한다.
그러면서 펠로건 회장의 뒷덜미를 잡다시피 해서 잡고는 우리 옆으로 뛰어 내린다.
“이 정도는 할 수 있잖아요. 그것도 못해서 발목을 접질렸다고 엄살을 부려요? 거기다가 그 정도는 캡슐로 벌써 치료가 되고도 남았을 시간이잖아요.”
“이미 이야기를 했지만 나는 이제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몸이라오. 그래서 몸의 회복력도 그다지 기대할 것이 없는 몸이지.”
“웃기는 소리 하지도 말아요. 수명이 다한 것은 전체적인 생체 시계지 육체 기관들이 아니죠. 몸뚱이 자체는 싱싱하단 걸 내가 모를 줄 알아요?”
“오호? 생체 시계까지 알고 있단 말이오? 대단하군. 그런 것은 좀처럼 알려지지 않은 지식인데 말이요. 혹시 중앙 건물에서 태어났소?”
“댁이 알 것 없잖아요.”
“뭐 그야 그렇지만….”
어물어물 물러나는 듯 하지만 저 펠로건 회장은 여간한 사람이 아니다. 꽤나 능글능글 사람의 심리를 건들면서도 또 적당한 수준에서 멈출 줄 아는 능숙한 심리학자 같은 사람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수십 개의 층을 뚫고 아래로 내려가는 중이다.
그 사이에 우리들은 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그들은 모두가 우리처럼 감금되어 있던 사람들일 뿐, 이 연구소인지 실험실인지에 관계된 사람들은 없었다.
그나마 돌아다니는 이들은 우리처럼 에너지 빔 형식의 창살에 갇혀 있었던 이들이, 창살이 사라지자 어둠속에서 더듬거리며 출구나 빛을 찾아서 돌아다니던 이들일 뿐인 것이다.
그들은 빛을 발견하면 미친듯이 달려와서 또 일정 거리를 두고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이들이었다. 암흑의 두려움 때문에 빛을 향해 달려오기는 했지만 그 빛을 가지고 있는 이들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들에겐 우리 일행이 두려움의 대상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납치를 당한 후에 겪었을 여러 상황들이 더욱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을 테니까.
우리는 그런 사람들에게 말을 걸지도 않았고, 관심을 보이지도 않았다. 어차피 그들을 끌고 지하로 내려갈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들에게 우리 시간을 줄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닌가.
대신에 나는 각 층마다 발광 스틱을 수십 개씩 던져 놓았다. 그것을 들고 사람들이 무얼 하건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다. 어차피 그들은 우리가 뚫어 놓은 통로를 따라서 위로 올라가거나 혹은 내려오거나 할 테지만, 이곳이 지하라고 알려 줬으니 미련스럽게 아래로 내려오는 이들은 없을 것이다.
이제 위로 올라가면 갑작스럽게 터진 에테르 폭탄으로 마비된 건물 때문에 출동한 정부 관계자나 회사 관계자들이 이곳 지하에 있는 시설로 들이닥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이 연구소를 관리하는 회사가 될지, 아니면 그 회사의 경쟁 회사가 될지, 그도 아니면 정부의 관리들이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 납치된 사람들의 상황은 이전보다는 나아질 것이다. 그대로 죽여서 묻어 버리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조금만 더 내려가면 아마도 살아 있는 건물을 만나게 될 거야.”
나는 포포니와 리샤에게 그렇게 주의를 줬다.
“살아 있는 건물?”
“전기가 통하는 상태를 말하는 거야. 솔직히 전기가 없는 건물은 그 자체로 죽은 거잖아. 지금까지 우리가 지나온 곳처럼. 하지만 이제 에테르 폭탄의 직접적인 영향권을 벗어날 것 같으니까 어떻게든 응급 복구를 한 곳이 나오겠지. 완전하진 않더라도 어는 정도는 복구가 되지 않았을까?”
“그런데 왜 우린 아직까지 한 번도 이곳 연구원들이나 관계자를 만나지 못한 거죠?”
리샤가 이상하다는 듯이 묻는다.
“그거? 그거야 간단한 이유지.”
나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네? 간단한 이유요?”
“지금까지 약 30개 층을 지나는 동안에는 납치된 사람들도 없었고, 또 다른 사람들도 없었어. 하지만 그건 복도에 지나다니는 이들이 없었다는 거지 건물 내에 사람이 없었던 건 아니지.”
“그래요?”
“실내에 있다가 갇혀 버린 상태라고 봐야지. 그들 중에서 복도를 오가는 이들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은 좀 이상하긴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각각의 방에 갇혀 있었어. 내 감각이 그걸 확인했으니 맞을 거야.”
“그런데 왜 그냥 두고 왔어? 남편?”
“그거야 잔챙이는 두고 대물을 잡기 위해서지. 이 건물의 핵심이 되는 곳은 아무래도 제일 아래층일 것 같거든? 그러니 거기 있는 놈들을 족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그냥 온 거야.”
“우웅. 그렇구나. 나는 왜 남편이 갇혀 있는 사람들을 두고 그냥 계속 아래로만 내려가는가 했어. 응응. 두목을 잡으러 가는 거구나?”
“하하. 그렇지. 두목. 그놈을 잡으러 가는 거야.”
“그런데 이제 곧 살아 있는 건물을 만나게 될 거라는 건 어떻게 아는 건가? 그냥 에테르 폭탄인가 하는 것의 유효범위만 계산해서 나온 것을 아니겠지?”
“거참, 늙은이가 눈치는 빨라가지고.”
“뭐라고?”
“들었어도 못 들은 척 하시죠. 들어봐야 기분 좋은 것은 아니데 또 물어서 확인하려 들지 말고. 아무튼, 내 감각에 한 층만 더 지나면 뭔가 복잡하고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것들의 느낌이 잡혀서 하는 말이었어요. 바로 아래는 괜찮은 것 같지만 그 아래에선 아주 시끄럽게 난리가 난 거 같군요.”
“우웅. 나도. 나도.”
“저도 집중하니까 느껴지네요.”
“그러니까 오러 활용을 잘 하라니까. 평소에 연습을 해 둬야지. 겨우 얼마 되지도 않는 아래에서 일어나는 움직임을 이제 알았단 말이야?”
“에헷, 남편이 알아서 할 테니까 그렇지.”
“저야 두 분이 있는데 나설 이유가 없죠. 솔직히 오러를 낭비할 이유가 없잖아요.”
뭐 이렇게 나오면 또 내가 할 말이 없지. 이곳에선 오러의 소비를 최소한으로 해야 한다. 움직이는 동안에는 오러 회복이 무척 더디기 때문이다. 물론 오러 로드를 따라서 오러를 돌리면서 외부의 기운을 끌어 모으면 회복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그러자면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하다.
데블 플레인처럼 에테르가 풍부한 곳에서는 포포니나 리샤의 경우 자연스럽게 회복이 되는데 에테르가 없으면 저 둘의 회복 능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것이다.
그에 비해서 나 같은 경우에는 에테르가 아닌 다른 기운이라도 쉽게 사용할 수 있다. 에테르가 없는 행성에는 이전 세상과 비슷한 자연의 기운이 흐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마나라 불러야 할지, 그냥 기운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제여넌의 세상에서는 세상의 근원이 되는 기운이라고 마나라 불렀었다. 그걸 마법사가 활용하면 마력으로 바뀌고, 또 전사들이 활용하면 오러로 바뀐다고 해서 이름을 붙였었지. 그래서 그런지 나는 에테르가 되었건 일반 행성의 기운이 되었건 상관없이 편히 사용할 수 있다.
“그것 참. 신기한 일이로군. 어떻게 데블 플레인의 선주민들이 이곳까지 와서 이런 일을 하고 있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구먼.”
펠로건 회장이 설레설레 고개를 젓는다.
그동안 그와 함께 이곳까지 내려오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 정도 친분이 쌓였다. 아니 정확하게는 마법에 의한 인위적인 친분 관계가 형성되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온전히 내게 종속된 정신을 지니게 된 것은 아니고, 그저 큰 호감을 가지게 된 것으로 보면 된다. 펠로건 회장은 이곳 모성에서도 제법 규모가 큰 회사인 회사 펠로건의 수장이라고 했다.
그런 인물이 이런 곳에 직접 들어 온 것은 이전에도 이야기했던 한계 수명으로 인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란다.
이왕 죽을 거라면 한 번 모험을 해 보자는 심정으로 온 것이라는데 실은 일이 이상하게 꼬이는 바람에 그를 호위할 사람들을 모두 잃고 혼자만 납치를 당했다는 것이다. 물론 그 직후에 언제든지 탈출하거나 구출 신호를 보낼 수 있었지만 펠로건 회장이 스스로 마다하고 실험실로 실려 온 거란다.
그러면서도 언제든 자신이 위험하면 회사의 경호팀이 들이닥칠 거라고 자신있게 말을 하는데 정말 그런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가 어떤 통신 수단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에테르 폭탄이 터진 이상에는 그의 몸에서 어떤 전자기기도 활동을 하지 못할 테니 말이다.
다만 조금 걱정이 되는 것은 내가 먹은 의료용 영구캡슐과 같은 수준의 장비라면 아직도 작동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 문제다.
그런 종류의 것들은 전자제품이라고 하기 어려운 체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에테르에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펠로건 회장이 그런 종류의 어떤 수단을 몸에 가지고 있다면 그의 부하들과 지금도 연결이 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지금까지 그를 데리고 오면서 강제적인 마법 세뇌를 자제하고 있는 것이다. 그저 계속해서 호감이 쌓이도록 하는 하급 마법을 끊이지 않게 걸어줄 뿐이다.
뭐 그랬더니 저 양반이 제 멋대로 떠들고 까불면서 우리와 꽤나 가까운 듯이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러면서도 저 펠로건 회장은 속으로 자신이 어째서 우리들에게 큰 호감을 가지게 되었는지 궁금해 미칠 지경일 것이다. 아무 이유도 없이 무조건 우리들이 좋아지는 그 느낌을 어쩔 것인가 말이다. 크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