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GATE RAW novel - Chapter 374
화
대부분의 연구자들, 그러니까 어느 정도 연구의 줄기를 잡고 있는 이들은 110층에서 125층 사이에 연구실을 가지고 있었다. 그건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열다섯 개 층의 사람들만 납치를 하면 되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그래 납치다. 억지로 문을 열고 사람들을 끌어내서 한 곳에 모은 후에 은폐 마법을 펼치고 게이트를 열어 교역 행성에 있는 텀덤에거 보냈다. 텀덤은 그들을 사람들의 이목이 닿지 않은 곳에 가둬버렸는데 그들은 텀덤에게 갈 때부터 몸에 지니고 있는 전자기기가 하나도 없는 상태, 혹은 모두 고장이 난 상태였기 때문에 자신들의 처지를 누구에게 알릴 방법도 없었다. 그러니 그저 텀덤과 이알 회원들이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보낸 연구원들의 수가 도합 300명에 이른다. 한 층에 20명 정도씩인데 그 중에는 연구자들이 아니라 실험체들도 있었다. 음, 실험체라고 한 사람들은 말 그대로 실험을 당해서 몸에 에테르 기관을 가지게 되었다거나 혹은 세포 재생을 거치면서 에테르 세포라고 부르는 특이한 세포를 지니게 되었다거나 하는 등의 결과물을 몸에 지닌 이들을 말한다.
그들은 아직까지 제대로 규명되지 않은 신체 특성을 지니고 있는 이들도 있었고, 인류의 보편적인 능력을 뛰어넘는 능력을 지니게 된 이들도 있었다.
포포니는 그들 중에서 영혼의 뒤틀리고 있는 이들을 찾아내고 그들에게 안식을 줘야 한다고 했지만, 나는 그런 포포니를 말렸다.
어쩌면 영혼의 순수를 유지하기 위해서 그들을 죽여야 한다는 포포니의 말이 맞을지도 모르지만 또 다른 면으로 그들을 치료할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뭐 그렇게 치료방법을 연구하는 동안에 그들에 대한 것을 조금은 더 알게 될 거라는 점에도 유혹을 받긴 했다.
“남편, 절대로 안 되는 거야. 남편이 에테르 폭탄을 터트려서 관리 컴퓨터를 부술 때하고 지금하고 또 다른 것 같아. 그럼 안 돼. 초심을 지켜!”
포포니가 이렇게 말리니 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연구원들을 확보하고 나니까 욕심이 생기기도 하는 것이다.
뭐 그래도 참을 건 참아야지. 우리 마눌이 진저리를 칠 정도로 끔찍하게 여기는 일인데, 굳이 그걸 파헤칠 필요는 없겠지.
나는 그렇게 마음을 다스린다. 욕심이 과하면 화를 부르는 법이다. 그걸 경계해야 한다는 묘한 예감이 나를 짓누른다.
어떻게 연구소를 벗어날 것인가를 두고 고민을 하다가 그냥 모성에서 처음으로 만든 거점으로 게이트를 열고 이동하기로 했다. 그곳에는 언제나 은폐 마법이 펼쳐져 있으니 게이트를 열어도 감시에 걸릴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펠로건 회장은 데리고 갈 수가 없다. 그래서 그를 납치된 사람들 사이에 두기로 하고 몇 십 개의 층을 거슬러 올랐다. 그런데 올라가다보니 이곳저곳에서 난리가 났다.
무장한 다수의 인간들이 다니면서 굳게 닫혀버린 문들 억지로 뜯어내고, 안에 있는 사람들을 끌어내는가 하면, 또 어떤 곳에서는 서로 소속이 다른지 전투가 벌어지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 펠로건을 그냥 버려두고 갈 수가 없으니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무장한 이들을 처리하면서 위로 위로 올라갔다.
“너무해요.”
그리고 리샤는 곳곳에 죽어 있는 사람들을 보며 그렇게 탄식했다.
딱 봐도 이곳에 억지로 끌려왔던 것이 분명한 사람들이 핏물 속에 누워있다. 그들을 죽인 것은 분명히 회사에서 나온 무장 경비들일 것이다. 사람들을 죽여서 입을 막으려고 했던지 아니면 그냥 방해가 되어서 죽인 것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가 뚫고 내려갔던 구멍 주변에는 어김없이 사람들의 사체가 널려 있다. 어쩌면 내가 던져놓고 갔던 발광 스틱을 발견하고 그것을 가지고 위층으로 올라가려고 모였던 사람들이 위에서 내려온 경비대에 당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죽은 사람들 사이엔 내가 놓고 갔던 발광 스틱이 피 묻은 붉은 빛을 뿌리고 있다.
저들의 죽음에 내 책임도 적지 않은 것 같아서 가슴이 무겁다. 하지만 어차피 우리가 일을 벌이지 않았어도 실험을 당해 죽었을 사람들이다. 구하지 못한 것이 아쉽고, 저들이 자유를 찾지 못한 것이 안타깝지만 그 모든 책임을 내가 지고 싶은 생각도 없다. 저것이 저들의 운이겠지. 그리 생각할 밖에.
그래도 중간 중간 살아남은 사람들이 기척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어떻게 모으다보니 쉰 명은 될 듯한 인원이 모여서 우리 뒤를 따르고 있다. 물론 그 안에는 펠로건 회장도 섞여 있다. 저들의 안전을 보장할 이들을 만나게 될 때까지 우리가 함께 움직여 주기로 했다. 그 이후에는 당연히 몸을 피해야지. 굳이 다른 세력이나 정부와 부딪히기에는 아직 시기상조다.
그런데 우리가 지상으로 올라올 때까지 그런 사람들은 만나지 못했다. 도리에 끌어 모은 생존자의 수만 400명 가까이 되어서 처치곤란이 되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펠로건을 뺀 나머지는 모두 교역행성으로 보내버렸다. 텀덤과 게리 등이 고생을 좀 하겠지만 당장에 이쪽에선 어떻게 할 방법이 없으니 그게 제일 좋은 대책인 거다.
이제 펠로건은 계획과 달리 이곳 연구소를 완전히 벗어난 이후에 사람들이 많은 거리에 놓아 주면 될 것이다. 그럼 알아서 자신의 회사로 연락해서 제 자리를 찾겠지.
뭐 몸에 있는 생체 컴퓨터가 다운된 상황이라서 절차가 복잡하긴 하겠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회사를 잃어버릴 일은 없을 거라고 자신하는 것을 보니 믿어도 될 것 같다. 그나저나 완전히 알몸이나 다름없는 상태에서 펠로건이 어떻게 회사로 돌아갈지 조금 궁금하긴 하다. 하긴, 정 방법이 없으면 정부에 도움을 청해도 될 일이긴 하다. 신원 증명이야 정부에서 어렵지 않게 해 줄 테니까 별 어려움이 없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지상으로 통하는 입구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어차피 모든 것이 먹통이 되어 있는 건물로 그 많은 사람들이 들어왔으니 곳곳에 그들이 들어온 통로가 있었다.
그 중에 한 곳을 택해서 은폐 마법을 건 상태로 우리들은 지상으로 올라왔다.
제법 이름이 있는 회사 건물의 1층 로비다.
그런데 이 회사에선 지하에 다른 회사의 연구 시설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 물론 건물 밑에 다른 회사 소유의 시설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곳에서 인간들을 이용한 생체 실험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몰랐다는 것이다.
그건 펠로건 회장이 이야기를 해 준 것인데, 회사들도 그 순위에 따라서 능력이 천차만별이라 연구소 위에 있던 회사는 그리 큰 힘이 없는 회사였다는 것이다. 기껏 모성이 회사들 중에서 순위 80위권 밖에 있으니 신경 쓸 일도 없다는 그런 식이었다.
하기는 펠로건 회사의 순위가 15위권 안쪽이라 80위권 정도는 눈 아래로 본다니 그럴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힘이 있는 놈이 약한 놈을 무시하는 것이야 어딜 가나 같은 것 아니겠어?
그런데 로비에 올라오니 완전 난리가 난 모양이다. 여기저기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서 구경을 하고 있고, 위층으로 통하는 길을 뚫고 올라간 흔적도 여기저기 보인다. 아마도 위로도 수백 개의 층이 모두 격리된 상태로 모든 전자 장치가 멈춰 있을 것이다. 창문이 있는 쪽을 제외하면 다른 모든 사무실이나 방들은 암흑 천지에 문까지 폐쇄된 상태일 것이다. 지하쪽만 그런 것이 아니란 소리지. 그러니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 사람들이 투입된 것도 당연한 일이겠지. 다만 지하쪽으로 내려간 이들의 목적은 목격자 사살이나 연구 자료의 확보나 폐기, 증거 인멸, 뭐 이런 것이었을 거다.
이제 시간이 지나면 내려겄던 이들이 올라오고 나서 어쩌면 이 건물 전체를 폭파시켜서 흔적을 지울지도 모르겠다.
에테르 폭탄 때문에 회복 불가능 상태가 된 건물이고, 연구실 역시 그런 상태라면 회사라는 곳에서 내릴 결정이야 뻔하지 않겠어?
증거를 통째로 없애는 거 말이지.
그래 나라도 그렇게 했을 거야. 입장을 바꿔보면 당연한 일이지.
독하다고 해도 하는 수 없는 일이지. 그리고 내가 생각해 낼 수 있는 방법이면 회사 놈들도 생각을 했을 거고,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되면 그렇게 하겠지.
“저기 위층에서 구조되어 내려오는 사람들 틈에 끼어서 나가자. 보아하니 사람들도 모두 신분을 증명할 것들이 망가진 상태라서 일단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격리 수용을 할 모양이니 함께 나갔다가 적당한 곳에서 빠지자.”
“웅, 그냥 은폐를 하고 나가면 안 될까?”
포포니가 귀찬은 표정이다.
“나도 그러고 싶은데 사람들이 많아서 잘못하면 은폐 상태도 다른 사람과 부딪힐 수도 있어. 그렇게 되면 곤란한 상황이 될 수도 있으니까 그냥 적당히 다른 사람들과 섞여서 나가자.”
“우웅. 그럼 하는 수 없지.”
“펠로건 당신도 조용히 따라와. 나갈 때까지는 책임을 져 줄 테니까.”
“고맙습니다.”
펠로건은 내게 고개를 숙여서 인사를 한다. 이젠 나를 자신의 명령권자 정도로 생각을 하고 있으니 저렇게 존중하는 표현을 하는 것이다. 아직도 완전히 마법이 정착되지 않은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심어준 암시에 따라서 변하게 될 것이다. 세뇌 마법은 일순간이 아니라 꽤나 시간이 걸리는 지속형 마법인 것이다.
한순간에 넋이 나가게 만들 수도 있지만, 결국 그 사람이 정상적이게 보이려면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자, 이제 나가보자.
그나저나 뭐가 이렇게 복잡하지? 무기를 들고 있는 이들의 복장이 모두 제각각이네? 그나마 정부에서 파견된 사람들은 확실히 구별할 수 있어서 다행이랄까?
둥근 원에 다섯 삼각 모서리를 둘러놓은 모양의 정부 표시를 달고 있는 이들을 구별하지 못하면 그게 더 이상한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