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GATE RAW novel - Chapter 44
화
나는 주로 스프 한 컵과 고기와 콩, 채소가 함께 들어 있는 음식을 먹는다. 이게 맛도 괜찮다. 뭐 이런 음식은 손가락 한 마디 정도 크기 밖에 되지 않아서 많은 양을 지고 다녀도 부담이 없다.
이런 것이 없었으면 아마 나는 몬스터 사냥 보다는 일반 동물을 사냥하는데 더 많은 정성을 쏟아야 했을 거다. 먹고는 살아야 할 것이 아닌가.
나는 음식을 준비하고도 먹지 않고 힐끔거리며 놈이 숨어 있을 곳을 봤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뚫어지게 그 놈이 있는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놈의 모습을 볼 수는 없지만 거기 있다는 것은 분명히 알고 있다.
나무 뒤에 있나? 그 나무 곁에 있는 돌덩이 뒤? 아니면 나무 위인가?
위치를 어림짐작하긴 하지만 정확하진 않다.
그래서 그 부근은 모두 눈에 담고 쳐다보는 것인데 그래도 반응이 없다.
나는 내가 준비한 음식을 두어 걸음 앞쪽에 놓고, 새로 음식을 준비했다. 그리고 준비가 끝나자 맛나게 먹기 시작했다.
이것은 내 방식의 식사 초대다.
하지만 내가 음식을 반이나 먹을 때까지 반응이 없다. 꼼짝 않고 있는 것을 보니 나를 감시하는 것은 분명한데 말이다.
“거기 있는 거 아니까 나와. 여기 음식도 준비를 해 뒀는데 뭐하자는 거야? 호의를 거절하면 싸우자는 소리가 되는 거 알지? 잘 판단해서 결정을 하라고.”
나는 목소리를 높여서 놈에게 경고를 보낸다.
그런데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약간 움찔 했던 놈이 여전히 반응이 없다.
저거 어떤 놈인지 확 족칠까?
하지만 이런 곳에서 혼자 사냥을 하는 헌터는 무섭다. 쉽게 볼 수 없는 상대일 것이다.
방응이 없으니 그냥 갈 수밖에.
컵과 접시 하나가 아깝지만 그냥 두고 가기로 한다.
나는 내가 먹은 컵과 접시를 잘 닦아서 배낭에 챙겨 넣고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길을 나선다.
놈이 계속 나를 따라온다면 참 곤란하겠지만 뭐 몬스터를 사냥할 때에 기습을 해 오는 경우만 조심하면 별 문제는 없을 거다. 나도 내 자신의 실력을 조금은 믿어보기로 했다.
그런데 어째 따라오는 기색이 없다. 다행인가?
또 따라 붙었다.
거기다가 컵과 접시가 내가 가는 길목에 또 놓여 있다.
이건 자기 음식도 준비를 해 달라는 의사 표시다.
처음 내가 놓고 왔던 컵과 접시는 그 날 저녁에 발견이 되었다.
내가 가야 할 길 앞쪽에 접시 위에 컵을 올려서 놓아 뒀던 거다.
그래서 내친 김에 음식을 준비해서 줬다.
이번에는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 내가 앉은 곳에서는 보이지 않을 곳에 놓아 줬다.
그랬더니 그리로 꼬물꼬물 움직여서는 내가 준 것을 먹어 치웠다. 그리고 컵과 접시를 들고 가버렸다.
그런데 그 이후로 점심을 먹을 때와 저녁을 먹을 때면 어김없이 접시와 컵이 내 앞에 놓여 있다. 깨끗한 상태로.
그렇게 교류 아닌 교류가 이어진 것이 벌써 열흘은 된 것 같다.
그 사이에도 나는 사냥을 하고 몬스터 사체를 해부하고 새로운 재료를 찾는 일에 몰두했다.
물론 마법진을 그리는 짓은 하지 않았다. 그저 오러 로드를 돌리고 정신력 수련을 하는 일상이 계속되고 있다.
다만 나는 더 이상은 전진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건 아무래도 앞쪽이 파란색 등급의 몬스터가 나오는 곳일 것 같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멀리서 봤던 몬스터는 정말 느낌만으로도 내 상대가 아니라는 느낌이 팍팍 들었다.
그게 파란색 등급의 몬스터일 가능성이 높았다.
생긴 것을 툴틱에 올려봤는데 답이 없다. 미확인 이거나 혹은 소수의 사람들만 아는 몬스터일 것이다.
그래서 발길을 돌려서 근처를 돌아다니며 초록색 등급의 몬스터를 사냥하고 때로는 도망도 다니면서 지내고 있다.
여전히 전에 봤던 그 비행형 몬스터는 상대할 방법이 없다.
날개를 어떻게든 꺾어 놔야 해결이 될 것 같은데 내가 가지고 있는 정신 능력의 기술 중에는 그 놈의 날개를 꺾을 기술이 마땅찮다.
기술이 없는 것이 아니라 숙련도의 차이다.
기본 기술 중에 하나인 에테르 랜서만 하더라도 잘 사용하면 그 날짐승 따위는 한 방에 잡을 수도 있을 거다. 뭐 나 말고 실력있는 정신 능력자라면 그렇다는 거다. 그래 나는 안 된다는 소리지. 다른 기술들도 마찬가지다. 알고 있는 것들 중에서 원거리 공격 기술은 많은데, 초록색 등급의 몬스터를 디버프도 없는 상태로 잡을 만한 위력의 기술은 아직 없다.
그래, 내가 디버프 쪽으로만 많이 팠지. 내 잘못을 인정한다.
그냥 디버프에 칼질로 끝을 보는 사냥에 익숙해서, 디버프 없이 사냥을 해야하는 상황은 준비를 하지 않은 거다.
하아, 그러니 이제부터 원거리 공격 기술을 수련해야 하는 입장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적당한 계곡을 찾아서 동굴을 파고 들어가 거처를 정했다.
당분간 수련을 해 볼 생각이다.
“뭐지요? 그 동안 연락을 씹고 있더니 어쩐 일로 먼저 연락을 다 했나요?”
율티 이 여자가 까칠하게 나오네. 하지만 끝까지 그럴 수 있는지 두고 보자.
“물어볼 것이 있어서 연락했어요.”
“그렇겠죠. 할 일도 안하고 도망만 다니는 세이커씨.”
스티커 때문에 하는 말이겠지. 매진 되었는데 문의가 많아서 골치가 아프다더니.
“급합니다. 여기 데블 플레인에 몬스터가 아닌 행성 주민이 있습니까?”
“뭐? 뭐라고요? 잠깐 기다려요. 이거 지금 보내는 것을 툴틱에 실행하고 그걸로 다시 연락을 해요. 그건 비상통신이고 특별한 사람이 아니면 절대 통신에 참견하지 못해요. 그리 알고 그걸로 연락해요. 끊어요.”
얼얼얼, 이건 또 무슨 엄청난 리엑션인가?
나는 뭔가 있다는 것을 확신하면서 율티 지부장이 보낸 프로그램을 실행했다.
그와 동시에 자그마치 수십 개의 사각형 창들이 뜨면서 거기 사람들의 모습이 나타난다.
빈 곳도 있고 사람의 얼굴이 있는 곳도 있다.
“커엄. 이거 이 회선이 열린 것도 오랜만의 일이군. 한 달은 된 것 같은데? 그래 제5 거점 도시의 율티 지부장이군. 그리고 음, 세이커 위아드. 헌터 보조 지원 인력으로 게이트를 넘었고 지금은 정신 능력과 육체 능력을 모두 수준 높게 쓰는 기대주? 뭔 보고가 이래? 음 별첨으로 헌터 보조 지원 인력을 능력자로 만드는 방법을 가지고 있다? 이건 별 것 아닌 것 같은데 별첨이면 그 기간을 단축하거나 뭐 그런 특별한 방법이 있다는 소리겠군. 아, 반갑네. 나는 제3 데블 플레인의 연합본부 본부장일세.”
커헐? 연합 본부 본부장? 그러니까 여기 제3 데블 플레인에 있는 헌터 연합의 수장? 그 짱?
“그래, 율티 지부장에게 했던 보고를 다시 해 보게. 무슨 이유로 이 회선이 열렸는지 알아야 하니 말이야.”
보고? 뭔 보고?
“저기 잘못 아신 것 같습니다만. 저는 보고가 아니라 문의를 했을 뿐입니다. 이 제3 데블 플레인에 몬스터가 아닌 행성 주민이 있는가 하는 질문 말입니다.”
“크음. 그 질문은 어째서 한 것인가? 혹시 그 정황을 발견하기라도 한 것인가?”
“질문은 제가 했는데 답이 아니라 또 질문을 하시는군요. 그럼 제가 뭐라고 할 것 같습니까?”
내 대답이 이렇게 삐딱하게 나오자 연합 본부장이란 사람 이외에 사각형 창에 모습을 보이고 있던 이들이 웅성거린다. 뭐 저딴 놈이 있냐는 투다.
“장난이 아니네. 자네가 언급한 문제는 굉장히 중요한 일이야. 그러니 묻는 말에 대답을 하게.”
“모르겠습니다. 그냥 혼자서 이렇게 멀리 나와서 수련을 하다보니까 외롭기도 하고 그래서 갑자기 다른 식민 행성에도 있는데 여긴 주민이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친분이 있는 지부장에게 지나가는 말로 물어 본 겁니다. 그런데 갑자기 통신을 끊고 뭔 프로그램을 보내고 하더군요. 그 결과가 이거지요.”
와아, 율티 작살나겠네. 이를 어쩌냐? 봐봐 저기 제일 구석에 있는 창에 보이는 율티 표정이 죽은 표정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