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GATE RAW novel - Chapter 5
화
스스로 에테르에 대한 저항력이 높다고 생각하면 정화는 필요 없는 거니까.
그래도 어느 정도 돈이 있는 일개미들은 간혹 정화를 받는다고 들었다. 뭐 겁이 나니 그렇겠지만 내가 보기엔 그것도 연합의 수작이지 싶다. 돈도 벌면서 헌터의 수도 조절하는 뭐 그런.
“정화는 될 수 있으면 피해야지. 몸에 쌓은 기운도 날아갈 테니까 말이야. 뭐 어느 정도 단단하게 된 후에는 상관이 없겠지만 그 전이라면 고생한 것이 한꺼번에 날아가 버릴 거야.”
내 생각에 적어도 오러 유저가 되어서 그릇을 실체화 시킬 때까지는 정화 근처에도 가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마, 만약에 그게 사실이면 이건 대단한 정보잖아. 그런데 세이커 니가 왜 나에게 이걸 알려 주는 거야?”
이젠 의심이냐? 하긴 아무리 친해도 이런 정보는 날로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우리 일개미들은 세상이 주고받는 걸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많이 주고 적게 받는 것에 익숙한 우리들이니까 말이다.
“파티가 필요하잖아. 혼자 헌팅을 할 생각은 아니지?”
“어? 그, 그야 그렇지.”
“그렇다고 기존의 파티에서 구박받으면서 일꾼 노릇을 하고 싶지도 않을 거고 말이야. 우리는 도구를 쓰는 헌터가 아니라 능력을 쓰는 정통 헌터가 될 거니까.”
“맞아. 도구 따위를 쓰는 놈들 밑에서 굽신거릴 수야 없지.”
능력을 주로 써서 사냥을 하는 헌터들이 정통이고, 에테르가 저장된 무기나 방어구 등을 가지고 사냥을 다니는 이들이 비정통이다. 뭐 그 때문에 간혹 다툼이 생기기도 한다. 일개미로 일해서 도구를 사고, 그것으로 사냥을 나서는 일반 헌터들을 능력자 헌터들이 무시하고 깔보는 경우가 많으니 말이다. 뭐 그래도 상급 헌터들 대부분이 능력자 헌터라서 일반 도구를 사용하는 헌터들은 한 수 접고 들어간다.
그런데 렘리는 방금전까지 일반 헌터를 꿈꾸던 녀석이 삽시간에 능력자가 될 가능성이 열리니까 저렇게 말하고 있다.
하지만 어쩌겠나. 능력자와 일반인은 너무 차이가 큰 것을.
대우가 다르다. 대우가.
렘리는 내가 가장 먼저 손을 뻗을 수 있는 대상이다.
믿을 수 있다. 왜냐하면 녀석과 나는 같은 환경과 같은 처지에서 살아왔으면서 또 비슷한 감성을 가지고 있다.
적당히 악하고 또 적당히 선하다. 그러면서 적어도 이것은 아니라는 선도 가지고 있는 듯하다.
확실치는 않지만 어쩌겠나. 세상에 완벽하게 믿을 놈은 가족 밖에 없는 거다.
“아, 정말이다. 정말 에테르가 변했다. 그게 몸속에서 돌아다니는 것이 느껴져.”
“아직은 아니지만 그걸 움직여서 네가 원하는 대로 쓸 수 있으면 넌 능력자가 되는 거야. 기본이 그거지. 몸 안에 있는 그 기운의 양을 늘리고 또 마음대로 움직여서 쓸 수 있게 되는 거.”
“우와아아아. 고맙다. 고맙다. 세이커.”
“저리 가지 못하냐? 어딜 껴안는 거냐?”
“뭐 어떠냐? 우리 둘 뿐인데.”
“난 싫다. 사내새끼들 끼리 그러는 거.”
“뭐냐? 나도 그건 싫거든?”
렘리가 급하게 떨어져 나간다.
능력자는 남녀의 비율이 비슷하다. 재능이 남녀를 가리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개미는 남자가 월등하게 많다. 아무래도 육체 노동을 제공하는 경우가 많으니 일개미도 남자를 많이 뽑는 거다.
하지만 평생을 모성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살아야 하는 입장에서 여자가 필요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서 데블 플레인에는 몸을 파는 여자들이 있다.
그녀들은 비싸다. 그리고 나나 렘리처럼 계약이 끝나지 않아서 텔론을 받지 못하는 일개미는 그런 여자들의 뒤태도 보기 어렵다. 그게 아니라도 일반 일개미는 그런 여자들과 자주 어울릴 텔론이 없다.
그래설까? 데블 플레인에는 게이들이 많다. 솔직히 간혹 있다는 성소수자, 뭐 여자가 되고 싶은 남자라거나 남자가 되고 싶은 여자라거나 하는 경우라면 이해를 하겠지만 성적 취향 자체가 스스로 남자라고 느끼면서 남자를 원하는 그런 경우는 좀 아니다 싶은 마음인데, 여기선 그게 아니고 그냥 그 짓을 하고 싶은데 여자가 없으니까 남자를 구하는 그런 경우라서 더 싫은 거다. 서로 뒷구멍을 주고 받고 하고 싶을까? 번갈아 가면서 한다고들 하더만.
“이렇게 하면 얼마나 걸릴까?”
렘리가 한창 운동을 한다고 부산을 떨다가 묻는다. 겨우 팔굽혀펴기 정도가 실내에서 할 수 있는 운동의 전부다.
“그건 모르지. 하지만 그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방법도 있다.”
“뭐, 뭣이라?”
렘리가 벌떡 일어나 불이 쏟아질 것 같은 눈빛으로 나를 본다. 덩치가 크지도 작지도 않게 날렵한 녀석이 지금은 정말 나를 잡아먹을 듯한 모습이다.
“진정해라. 렘리. 머리를 차갑게 해야지. 아무리 일개미라도 여긴 데블 플레인이다. 그걸 잊지 마라.”
내가 너무 차갑게 말을 해서일까? 렘리가 털썩 바닥에 주저앉는다.
“맞아. 그렇지. 여긴 데블 플레인이지.”
저 말에는 많은 뜻이 들어 있다.
모성에 다시는 가지 못하는 이들의 심경과 매일같이 죽음을 벗하며 사는 이들의 마음과 착취당하고 살아가는 일개미 하층 인생의 자괴감이나 슬픔까지도 담겨 있는 말이다.
이곳은 데블 플레인이다.
누가 쓰느냐에 따라서 너무도 달라지는 말.
힘이 있는 놈이 쓰면 그걸로 모든 것이 끝나는 말이고, 힘이 없는 놈이 쓰면 또 그걸로 모든 체념을 담는 말이다.
그래서 정말 상반되는 말, [이곳은 데블 플레인].
“그래. 이제 조금 진정이 돼?”
“그래. 세이커. 난 정신이 들었어. 그래 대가가 필요해? 세이커? 내게 그걸 알려주는데 무슨 대가를 원해?”
이거다. 이미 렘리는 많은 것을 받았다. 여기서 더 큰 것을 받아선 안 된다. 이젠 거래를 해야 하는 거다.
이미 렘리는 능력자가 되는 길을 알았다. 그게 비록 시간이 걸리더라도 어제와는 전혀 다른 오늘이 된 상태다. 이것도 그냥 받기에 과하다. 그걸 내가 나와 파티가 되는 걸로 양보해서 렘리에게 준 거다. 하지만 그 시간을 단축시키는 무엇까지는 렘리가 공짜로 받을 수 없다. 나도 공짜로 줄 생각이 없고.
“계약을 원해. 렘리.”
“계약? 어떤 계약?”
렘리는 상당히 경계하는 눈초리로 나를 본다. 하긴 계약이란 것이 워낙 갑과 을의 차이가 심하게 되는 경우가 많으니 당연한 반응이다.
“영속적인 파티, 그리고 네 지분의 20%.”
“으음?”
렘리는 의외의 표정이다. 그리 나쁘지 않은 조건이란 생각일 터다. 맞다. 아주 좋은 조건이다. 지분의 20%는 말 그대로 소득의 20%를 내가 가지고 가겠다는 거다. 하지만 그래도 렘리로선 감수할 일이다. 능력자가 되는 마당에 그 정도야 뭐 어떠랴 싶겠지. 거기다가 영속적인 파티란 곧 계속해서 함께 다니는 관계를 말한다.
“리더가 될 거야?”
“맞아. 파티를 꾸리고 그 리더가 될 거야.”
“파티 조건은 어떻게 할 건데?”
“분배로 할 거야. 능력에 따른 가변적인 분배로 하고 일정 기간마다 분배율을 조절할 거야. 능력이 모자라면 적게 받겠지. 물론 기본 분배율은 있을 거야. 그 이하로 떨어질 정도라면 파티에서 내 보내야지.”
“아, 그런 거라면 나도 좋아. 그렇게 할게.”
많이 쓰이는 파티 구성 방법이다. 다만 렘리는 나와 계약을 하니까 파티에서 나갈 수가 없고, 잘못하면 최저 분배만 받으면서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제 능력이 모자란 탓이면 누굴 원망할까.
“그럼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은 조건으로 데리고 올 거야?”
“앞으로 둘은 더 그렇게 모으고, 나머진 나중에 보고 결정을 할 거야.”
4인 파티는 가장 소수의 파티 구성이다.
4인이면 당연히 25%씩 소득을 나누지만 리더는 언제나 10%를 더 받는다. 그래서 나머지 90%를 넷이 나누지만 여기서도 10%는 파티 공금으로 넘어가고 나머지를 나눠서 20%정도씩을 받게 된다. 그런데 내가 나머지 둘과도 렘리와 같은 계약을 하면 그들의 이익 중에서 또 일부는 내게 돌아온다.
솔직히 내가 폭리를 취하는 듯이 보이지만 그건 절대 아니다. 일개미를 능력자로 만들어 주는데 이 정도가 대수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