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GATE RAW novel - Chapter 62
화
“정신이 좀 드는 모양이네? 눈동자가 돌아가는 것이 힘이 있어.”
타샤님께서 내가 깨어난 것을 귀신같이 알아차리신다.
“깨어났습니다. 타샤님.”
나는 쉰 목소리로 겨우 대답을 했다.
“어머나, 내가 누군지도 알고, 그 사이에 가끔 정신이 들면서도 그런 상황까지 파악을 한 건가요? 대단하네요. 아주 좋아요. 그래야죠. 세상 살려면 그 정도는 되어야죠.”
나는 타샤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처음으로 타샤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오오 타샤님은 역시 타샤님이다. 저 엄청난 포스라니. 대단하다.
나는 잠시 까무룩 정신줄을 놓았다.
타샤님의 모습은 간혹 연극 같은 곳에 나오는 빅의 엄마를 닮았다.
빅은 빅이다. 아주 크고 둥근 사람이지. 그리고 그 엄마는 그 빅보다 아주 약간 작은 체구다.
그래 생각나는 비유 대상이라곤 살찐, 그것도 많이 찐 두꺼비 밖에 없다.
아, 타샤님 죄송합니다.
아마 내가 정신줄을 놓은 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타샤님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기 때문일 거다.
그럴 수가 없어야 하지만 현실이 그렇다.
내가 비록 미추에 따라서 사람 차별을 별로 하지 않지만 그래도 아름다우면 더 좋지 않나? 하필이면 우리 타샤님께서 그런 모습이라니. 앞으로 더 열심히 모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정신을 차리고 난 후로는 본격적으로 회복기에 들어갔다.
타샤님의 지도에 따라서 명상도 하고, 포포니가 입에 부어주는 먹을 것으로 배가 터질 지경이 되기도 하고 그러면서.
그러면서 느낀 건데 나는 이제 남색 등급의 몬스터에게도 디버프를 걸 수 있을 것 같다.
이건 뭐랄까 전혀 새로운 세상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다. 정신 능력을 써도 머리에 부담이 거의 없다. 그리고 이전에는 약간씩 어려워했던 기술들도 너무 쉽게 발현이 된다. 아니 쉽게 만이 아니라 쉽고 빠르고 강하게 된다.
난 정말로 어디 가서 고개 뻣뻣하게 들고 어깨에 힘을 주고 다닐 수 있게 된 걸까?
그렇게 한동안 희망에 부풀어 있었더랬다.
하지만 우리의 타샤님과 포포니가 함께 파란색 등급의 몬스터를 세 마리나 몰아서 사냥을 하는 것을 보고는 내가 아직은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도 파란색 등급 몬스터,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포포니와 함께라면 두 마리도 잡을 수 있을 거다. 아니다 세 마리도 되겠구나. 내가 한 마리, 포포니가 두 마리 맡고 등 붙이고 싸우면서 범위 디버프 유지하면 될 것도 같다.
하지만 타샤님과 포포니가 세 마리 잡을 때엔 포포니 혼자서 세마리를 상대하고 타샤님은 멀찍히 떨어진 곳에서 그저 도움만 줬을 뿐이다.
그게 그거란다. 에스폴 종족의 능력이라고 하는 그거.
그런데 뭘 했는지도 감이 안 잡히니 아마 그건 내가 배울 수 있는 영역의 기술이 아닌 모양이라고 포기 했다.
딱 보니까 알겠더라. 타샤님이 뭔가 하는데 그게 뭔지 전혀 알 수가 없는 거다. 그럼 말 다했지?
그걸 어떻게 배우나? 그건 아마도 종족 기술이 분명하다. 그럴 거다. 내가 못 배워서 아쉬워서 하는 말이 아니다. 정말 그건 에스폴 종족만 아는 걸 거다.
그리고 나에겐 한층 강화된 디버프가 있다. 남색 몬스터도 이젠 디버프 걸릴 테니까 포포니가 잡는 거 도와줄 수 있다.
응? 내가 잡지는 못하냐고?
글쎄? 일단 칼질은 별 가능성이 없지 싶다. 난 아직도 익스퍼트에 머물고 있다. 그러니 디버프 걸었다고 해도 남색 등급의 몬스터에게 칼이 박힐 것 같지는 않다. 그럼 디버프 없이 에테르 방패로 막고, 정신 공격으로 어떻게 해 봐야 하는데 그것도 아무래도 무리가 아닐까?
내 에테르 방패는 파란색 등급의 공격도 간신히 버티는 수준이라서 말이지.
뭐 연습을 더하고 그러면 나아질 거다. 지금은 늘어난 정신 능력에 적응도 못했고, 기술들의 수준도 끌어 올리지 못한 상태니까 말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그래서 결론이 뭐냐고?
그래 남색은 무슨 수를 써도 지금의 나는 잡을 가능성이 없다.
포포니에게 도움은 줄 수 있지만 그 이상은 안 되는 거다. 하아, 난 아직도 약골이다.
그래 약골 맞다.
몸을 추스르느라 거의 한 달을 보내고 나서야 겨우 이젠 괜찮다는 타샤님의 허락을 받았다.
엉? 무슨 허락이냐고? 그거야 사냥을 다녀도 된다는 허락이지. 음? 그거? 그래 그것도 물어봐야 하는 건데 못 물어봤다. 그래도 이젠 다 나았다고 했으니까 그거도 될 거야. 아무렴.
사실 요즘 포포니가 살짝 어깨 깨물고 하는데 아우, 그거 견디는 것이 어찌나 힘들던지.
거기다가 우리 타샤님께서 언제나 함께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건 뭐 방법도 없어.
그렇다고 타샤님께 잠시 어디 갔다 오시라고 할 수도 없는 거잖아.
참, 우리의 포포니 마눌께서 타샤님에게 내가 만든 공간 확장 가방을 들키고 말았다는 사실은 얼마 전에야 알게 되었어.
그런데 그거 뭐 상관없어. 아닌 말로 나 죽고 나면 몽땅 끝인데, 사실 여기 어디에 다시 태어난다는 보장도 없잖아. 이번에 죽으면 다시 예전 거기로 태어날 수도 있고 그러겠지. 사실 그걸 누가 알겠어? 내가 여기서 각성을 한 것도 뭔 일인지 모르는 판데.
암튼 그런 목숨 구해준 분인데 뭐 가방 따위의 비밀이 들켰다고 크게 상관할 일도 아니야.
포포니는 그게 미안해서 타샤한테 절대 비밀을 지킨다는 약속을 받았다지만 뭐 괜찮다고 했어.
사실 타샤님께 가방 하나 선물할 생각도 있었고 그랬으니까 말이야.
도시에 가면 하나 만들어서 드려야지 하고 있었던 거야.. 사실 여자들이 은근히 그런 선물 좋아하잖아. 백 같은 거 말이야.
물론 난 백을 만들 재주는 없으니까 가방을 만들어 드리는 거지.
아니다. 내 걸 드리고 나는 포포니걸 같이 쓸까? 아니면 포포니 가방을 드리고 내 가방을 우리 부부가 같이 써도 되고.
그동안 이것저것 꺼내 먹고 그러느라 빈 공간도 제법 되니까 그래도 될 것 같기는 하다.
포포니에게 슬쩍 운을 떼니까 당장 내 가방을 타샤님께 주자고 한다. 이유는 자기 가방은 내가 선물한 거라서 누구 줄 생각이 없다는 거다.
어우 말을 해도 어쩜 이렇게 예쁘게 하는지.
그래서 내 가방을 깨끗하게 비워서 타샤님께 드렸다.
그러면서 코어를 때마다 갈아줘야 한다고 했더니 타샤님이 지고 있던 짐에서 화이트 코어를 꺼내서 그걸로 달아 달란다.
와우 우리 타샤님은 재력도 출중하시지. 어떻게 이런 걸 가지고 계신데? 그게 딱 봐도 초록색 등급의 화이트 코어인 거다. 우어어어. 이제 타샤님 가방은 거의 영구적인 공간 확장 가방이 되었고, 거기에 코어의 성능이 좋아서 확장률도 약간 상승했다.
그걸 수치로 따지긴 어렵지만 그래도 약간이나마 좋아졌다는 말에 타샤님 얼굴이 활짝 폈다. 눈이 아주 곱게 그려진 선으로 보일 정도로 웃으시는 모습이 너무 보기가 좋다.
그런데 받기만 해서는 염치가 없다면서 화이트 코어를 하나 내어 주시는데 우와! 이렇게 감사할 일이 있나. 그건 뒀다가 봉인쥬얼 연구할 때에 쓰기로 하고 일단 포포니 가방에 넣어 뒀다.
결국 왔다.
포포니가 찍어 뒀던 남색 등급의 몬스터들이 있는 곳.
인간형의 몬스터들이 부족을 이루고 사는 곳에 다시 돌아왔다.
전에도 사냥은 못하고 그냥 보고만 갔던 곳이다.
“위험한 놈들을 골랐구나. 포포니.”
“우웅. 하지만 저 칼. 너무 멋지잖아요.”
포포니는 몬스터들이 가지고 있는 칼에 확실히 꽂혔다. 다른 건 거들떠 볼 생각도 없는 것 같다.
“그래. 알았다. 알았어. 하지만 저 녀석들은 한 마리는 절대 돌아다니지 않는단다. 세 마리 정도가 함께 다니지.”
뭐라? 지금 내가 들은 말이 바로 들은 거야? 남색 등급 세 마리가 몰려 다녀? 그걸 지금 잡아야 한다는 거야?
워워워, 이봐 마눌. 그냥 나중에 오면 안 될까?
하지만 이 말을 하고 싶어도 차마 할 수가 없다. 저 초롱초롱한 눈빛에 어떻게 먹물을 뿌리란 말인가.
어후! 한숨이 절로 나온다.
보아하니 타샤님도 방법을 찾기가 쉽지는 않은 모양이다.
타샤님 한 마리, 포포니 한 마리. 그리고 내가 한 마리. 이러면 될 것 같지만 내가, 이! 내가 그걸 못한다는 거! 그게 문제인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