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GATE RAW novel - Chapter 84
화
우리는 다음날도 꼼짝 않고 천막 안에서 지냈다. 그런데 전차장이 나에게 소식을 전해왔다.
그 때에 그 자리에 있던 이들에게 회유와 협박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죽은 이들이 우리에게 했던 행동은 없었던 일로 처리가 될 것 같다는 것이다. 자신도 그게 잘못인 것은 알지만 힘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단다. 그러면서 조심하란 이야기를 전해왔다. 연합의 감찰과 화원의 간부들이 나섰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 때에 포포니가 영상을 어디까지 찍었는지는 전차 승무원들끼리 입을 다물기로 했으니 그걸 이용하면 크게 한 방 먹일 수 있을 거라고 조언도 해 줬다.
이건 또 무슨 일인지.
죽일 놈들을 죽였는데 이런 식으로 나온다는 말이지? 하아, 세상 사는 것이 편하질 않구나.
“남편 무슨 일이야?”
“포포니, 그 동영상 있지? 그거 편집을 좀 해야겠다.”
“응? 왜에?”
무슨 일이냐며 묻는 포포니에게 전차장이 전해준 내용을 일러 줬다.
“우웅. 그러니까 사냥 끝나는 부분까지만 올려놓고, 그 다음에는 비공개 설정으로 올려뒀다가 남편이 말하는 순간에 공개로 바꾸는 거야? 우웅. 어렵다. 그냥 남편이 해. 남편이 하면 될 일을 왜 나한테 하라고 그래?”
그래, 내가 한다. 내가 해. 그래도 포포니도 이런 일에 좀 더 익숙해지고 그래야하는데 정보를 찾는 것만 제대로 할 줄 알지 다른 건 아직도 걸음마 수준도 안 되니 걱정이네.
우리가 그렇게 내일을 준비하고 있을 때에, 연합에서 공문이 도착을 했다. 이번 살인 사건에 대한 청문회를 연다는 거다.
살인 사건이란다. 그냥 사건도 아니고 살인이라고 공식 문서에 명시하고 있다.
이건 의도가 명확하다. 나와 포포니를 범죄자로 만들겠다는 뜻이 훤하게 보인다.
이미 전차 승무원들은 모두 포섭이 끝났을 것이고, 연합 감찰이 설치는 걸로 봐서는 그 놈도 화원에 회유가 된 놈일 거다. 즉 내 편은 포포니 밖에 없다는 거다.
어쨌거나 청문회에 오라니 갈 수밖에. 가서 무슨 짓을 하는지 알아볼 일이다.
여관 사장이 따로 준비한 커다란 천막이 이번 사건에 대한 진상을 밝힌다는 청문회가 열리는 장소다.
나와 포포니는 날이 밝은 후에 정해진 시간에 맞춰서 청문회장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는 그레이트 아이보리 두 마리를 사냥하는 모습의 영상을 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헌터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나와 포포니를 살피기에 여념이 없었다.
하지만 대체적인 이야기는 화원 소속의 헌터들이 큰 실수를 하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 우리들이 대처를 잘 해서 무사히 사냥이 끝났는데 굳이 그들을 죽인 것은 과했다는 쪽으로 이야기가 흐르고 있는 것 같다.
그건 아마도 곳곳에 있는 화원 소속의 헌터들이 분위기를 이끌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청문회장에 거의 도착했을 때, 셜린과 미셀, 라니에 등의 옛 친구들의 모습이 보였다.
“세이커 이번 일은 좀 과했다. 그들이 잘못을 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다 죽일 것 까진 없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너에게 조금 실망했다.”
셜린이 대표로 하는 말이었지만 그 속에는 겉으로 드러난 말과는 다른 걱정과 안타까움이 들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셜린 누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곳은 데블 플레인입니다. 뭐 힘이 약해 당하는 일이 많은 곳이지만 또 정당함이 승리하는 곳이기도 하지요. 그럼 우린 들어가 봐야 되겠네요.”
셜린과 미셀 등은 내가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이지만 이번 싸움은 이미 우리가 이긴 싸움이다.
난 포포니와 함께 청문회가 준비된 천막으로 들어섰다.
긴 테이블은 식당에서 가지고 온 건가?
가로로 놓인 테이블에는 십여 명의 사람들이 이렬로 앉아서 입구쪽을 보고 있고, 그 앞에는 의자 두 개가 놓여 있다.
이건 완전히 범죄자 심문하는 분위기네?
“거기 앉으시오. 세이커씨. 포포니씨.”
중앙에 있는 놈이 우리에게 의자에 앉도록 지시를 한다.
“저길 앉으란 말입니까? 이건 뭐 죄수석 같은 느낌이라 앉고 싶은 생각이 안 드네요. 그냥 할 이야기 있으면 하십시오. 여기서도 잘 들리니까.”
“지금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은 밖에 있는 모두가 볼 수 있도록 툴틱으로 전송이 되고 있소. 그러니 말과 행동을 조심하길 권고하오.”
중앙에 있는 저 사람이 청문회를 주관하는 사람인 모양이다. 뭐 자기소개 시간 같은 것은 따로 없나? 없으면 그냥 이야기 시작하지?
“그러시던가. 그런데 언제 이야길 시작할 생각입니까? 우린 바쁜데?”
“허어. 세이커씨 당신은 지금 열 명의 헌터들을 살해한 죄를 지은 몸으로 여기 불려와 있는 것이오. 자신의 처지를 자각하시오.”
제법 나이를 먹은 것 같은 또 다른 사내가 붉은 얼굴로 목소리를 높인다. 근데 너 실수하고 있는 거거든?
“죄를 지은 몸으로 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죄가 있는지 아닌지 알아보는 자리 아니었소? 거 여기가 무슨 자린지도 모르는 사람이 왜 거기 앉아 있는 거요? 그냥 나가시오. 헛소리 하지 말고.”
“아니 저 놈이 지금!!”
“이 놈이고 저 놈이고, 여기가 무슨 자린지도 모르고 날 죄인 취급하려는 넌 죄의 진상을 밝힌다는 청문회의 취지에 맞지 않는 놈이니까 빠지라고. 너 같은 놈의 질문에 답을 할 생각도 없으니까 말이야. 대답도 못 들을 놈이 거기 앉아서 뭘 하려고? 얼굴이나 알려볼까 하는 거야? 그냥 꺼져!”
내 신랄한 비판에 놈은 당황했는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우물쭈물한다.
여기 모습이 툴틱으로 전송되고 있다는 것은 저들에게도 족쇄가 될 수 있는 일이다.
“좋아요. 그럼 정식으로 청문회를 열지요. 나는 화원의 정원사예요. 정원사는 화원의 간부를 말해요. 원주가 있지만 그 분은 이런 일에 잘 나서지 않는 분이라 우리 정원사들이 청문회에 참석을 했어요. 희생자가 다들 우리 화원의 가족들이어서 그런 거지만 우린 최대한 공평하게 사건을 심리할 것을 약속해요. 그럼 질문을 해도 될까요?”
그러고 보니 우리가 보는 쪽에서 왼쪽 다섯은 모두 화원 소속이다. 벌과 나비 꽃을 가슴에 달고 있는 것을 보니 맞을 거다.
그리고 나머진 연합에서 나온 감찰들인 모양이다.
“물어보시오.”
난 짧게 답했다. 물어볼 말이 있다니 물어 보랄 수밖에.
“세이커씨와 포포니씨가 우리 화원 소속의 헌터 열 명을 죽인 것이 사실인가요?”
“사실이오. 내가 넷, 포포니가 여섯을 베었소.”
방청객이라도 있었으면 웅성웅성 난리가 날 순간이지만 의외로 청문회장은 조용하다. 다들 알고 있는 이야기의 확인에 지나지 않으니 놀랄 일도 아닌 거다.
“좋아요. 그럼 묻겠어요. 그들을 왜 그렇게 잔인하게 죽였나요?”
“잔인이라. 어느 죽음인들 잔인하지 않은 것이 있을까? 뭐 좋습니다. 그들이 죽어야 했던 이유, 그건 그들이 우리 부부에게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했기 때문입니다. 데블 플레인에선 죽을 짓을 하면 죽게 되지요. 그래서 항상 조심해야 하는 겁니다.”
“아아, 그 소리는 이미 들었어요. 세이커씨 당신은 당신의 잣대에 맞지 않으면 그것이 죽을 짓이라 규정하고 힘이 약한 헌터를 함부로 대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더군요.”
“그건 어디서 나온 평가요? 내가 그런 평가를 받을 이유가 없을 텐데?”
나는 화원의 정원사라는 여자를 보며 물었다. 도대체 어떤 근거로 저런 소리를 하는 걸까?
“근거가 있죠. 먼저 코무스에서 나온 허벌이란 사람을 기억하시죠? 그 분을 세이커씨는 자택에서 폭행을 하셨더군요. 그것도 허벌이란 분이 무례했단 이유로 말이죠. 맞나요?”
“맞소. 그 사람이…..”
“그럼 다음, 유명한 영상인 쉬엥씨에 대한 건데, 그것도 잘 생각하면 너무 과한 행동이었죠. 사실 세이커씨가 쉬엥씨를 살려준 것이 아니라 죽이려고 했는데 쉬엥씨가 운이 좋아 살아난 것이 라는 이야기도 있어요. 어느 쪽이 진실인지는 모르지만요.”
교묘하다. 여자의 화술이 나를 내 잣대에 따라서 사람들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으로 만들고 있다.
대단한 말솜씨다.
나는 여자가 떠드는 대로 묵묵히 듣고 있다. 여기서 뭐라고 해 봐야 추해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