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GATE RAW novel - Chapter 94
화
“자 포포니 일어나서 정리하고 뭐 좀 먹자. 배가 등에 붙은 거 같아.”
“응응 알았어. 금방 먹을 수 있게 준비해 줄게. 빨리 되는 걸로 먹자. 그래도 되지?”
빨리 되는 거란 간편 건조음식이다. 물에 넣으면 먹을 수 있게 되는 그걸 말한다. 포포니는 내게 그런 음식 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손을 거쳐야 하는 음식을 주길 원한다. 일종의 정성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뭐 그 음식들이 더 맛이 있는 것 같기도 해서 나도 좋아하는 편이다.
지금은 그렇게 할 시간이 없으니 간편 음식을 주겠다며 미안해하는 거다.
“괜찮아. 나 아무거나 잘 먹잖아. 물론 울 포포니가 직접 해 주는 것이 더 맛있지. 하지만 지금은 바쁘니까. 그리고 어쨌든 포포니가 만드는 거니까 어떤 거라도 좋아.”
칭찬, 격려, 감사는 언제나 상대를 기쁘게 하는 법이다. 그리고 부부 사이라도 이건 자주 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늦은 아침을 먹고 자이언트 몬스터의 동굴로 오니 뜻밖의 소식이 우리 부부를 기다리고 있다.
다른 사람들은 벌써부터 제6 임시 거점을 만든다고 구획을 정하고 말뚝을 박고 목책을 세우고 난리가 났다.
다시 붙박이 자이언트가 나타나면 곧바로 초토화될 가능성이 많은데도 아주 열심이다.
그런 중에 리더인 세바스찬은 부관 알프레와 함께 자이언트의 동굴 입구에 지어 놓은 천막에서 우리 부부를 기다리며 노닥거리고 있었다. 어딜 가나 상급자가 되어야 하는 거다. 편하게 지내려면 말이다.
“그러니까 이걸 동생에게 알려주고 싶어서 급히 찾았던 거라니까? 절대로 딴 생각이 있어서 그런 거는 아니었어.”
그런 놈이 남몰래 슬금슬금 다가와서 자는 사람을 깨워?
그냥 멀리서 불러도 될 것을? 어떻게 이런 놈이 그랜드 마스터 차기 기대주냐? 참 세상 요지경이다.
“이것도 일종의 몬스터 물품으로 취급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
세바스찬이 내게 다시 묻는다.
그건 다름이 아니라 자이언트 몬스터가 살고 있던 동굴에서 발견된 물건에 대한 이야기다.
“그거야 연합 연구실에서 밝혀 낼 문제겠죠. 이걸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나는 사람 머리 크기의 돌덩이 십여 개를 쌓아 놓은 곳을 발로 툭툭 차면서 말했다. 다른 암석들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는 돌덩어리. 그 안에는 금속성의 물질들이 점점이 박혀 있어서 일종의 광물임을 알게 해 주는 거였다. 동굴이나 주변의 어떤 돌들과도 차이가 있는 것이니 이것들만 특별한 것이란 사실은 분명했고, 그러니 이게 몬스터가 남긴 물건이란 의미에서 몬스터 물품으로 정의하려는 것이다.
하긴 그렇게 되기만 하면 그건 정말로 큰 뉴스가 될 거다.
보라색 등급의 몬스터를 잡고 그 동굴에서 입수한 광석.
이 정도만 되어도 그 가치는 끝을 모르고 오를 것이 분명하고 사람들의 관심도 집중될 것이다.
“아니야. 넌 모르지? 그 늙은이들이 이것저것 몸에 걸치고 있는 것들이 모두 평범해 보이는데 실제론 전혀 평범하지 않거든? 그거 이제보니까 이런 거 얻어서 지들끼리 입 닦고 챙긴 거야. 그걸로 지들 장비 만들고 비밀이니 뭐니 해서 입 닫은 거지.” 세바스찬의 늙은이는 그랜드 마스터들을 이야기하는 거니까 뭐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보라색 등급의 몬스터에게서 좋은 장비를 만들 수 있는 재료가 나온다는 소문이 돌기라도 하면 무리해서 사냥을 시도 하는 이들이 나올 것이고, 그건 귀중한 인재들을 떼죽음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러니 준비가 되지 않은 이들에겐 알리지 않으려는 의도로 그랬을 수도 있다.
세바스찬 말대로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서 숨겼다고 보긴 좀 어렵다. 들어보니 그랜드 마스터란 인물들을 그런 속된 욕심은 별로 없는 이들인 것 같았다.
세바스찬은 언제나 툴툴거리며 욕을 하지만 그래도 그에게서 들은 전체적인 평가는 물욕이나 세상에 대한 욕망이 별로 없는 늙은 강자들 정도로 정의할 수 있는 것이 그랜드 마스터인 것 같다.
그래봐야 직접 본 것도 아니고 세바스찬에게 들은 것이 전부지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동생 부부가 이거 들고 연합 본부에 좀 갔다 와라. 응?”
“가는 건, 가는 건데 오긴 왜 와요? 본부까지 갔으면 다른 거점 도시들도 좀 둘러보고, 그 쪽에 있다는 강자들도 만나고 해야죠. 더구나 디버프로 이름난 사람들이 있으면 꼭 만나서 이야기도 해 봐야 하고 말이죠.”
“야아, 그러다가 여긴 보라색 몬스터가 다시 뜨기라도 하면 어쩌라고? 그러니까 갔다가 후딱 오라는 거지.”
“그럴 거면 뭐 하러 갑니까? 그냥 이거 사람들에게 시켜서 제5 임시 거점까지 나르고, 그건 거기서 전차로 실어 보내면 되죠. 쓸데 없이 먼 길을 왜 왔다 갔다 하란 겁니까?”
“아니, 그게….”
뭐야? 이 인간이 말꼬리를 흐려? 뭔가 있는 거지?
내가 세바스찬을 가만히 노려보는데 점점 시선을 피한다. 잠깐 그러더니 갑자기 소리를 지른다.
“아 그냥 가라면 가지 뭔 말이 많아? 아, 내가 너 나쁘게 되라고 시키겠냐? 응?”
“그게 아니라곤 어떻게 믿습니까? 우린 아직 그렇게 친한 사이 아닙니다.”
나는 세바스찬에게 딱 잘라서 선을 그었다.
그는 나를 얼마나 자신의 선 안으로 들여 놓았는지 모르지만 나는 아직 그를 내 기준선의 경계에 두고 있다. 그는 아직 내 친인에 속하지 않는다.
“젠장, 차가운 녀석. 그래 알았다. 알았어. 내가 졌다. 마음대로 해라.”
“여기가 안정될 때까지 있다가 우린 다시 여행을 떠날 겁니다. 다른 거점도시도 가 보고, 실력자도 만나보고 그러면서 세상을 배워야죠.”
“그래라. 늙은이 하나가 너한테 관심이 있는데 움직이기 귀찮다고 좀 보내라더라. 그래서 그런 거다. 뭐 관심 없다면 됐다. 정 궁금하면 늙은이가 쫓아오겠지. 그런데 정말 안 갈거냐?”
“여기서 수련이나 하렵니다. 포포니하고 남색 등급들 잡으면서 이번에 배운 것들 좀 더 익숙하게 만들어야죠. 그걸로도 시간이 부족합니다.”
난 그렇게 세바스찬의 제안을 거절했다.
우와, 그랜드 마스터, 그 존재를 볼 수 있는 기횐데, 아니 그보다 그런 존재가 보고 싶다고 했는데 내가 생깐거야? 나 미친 거 아닐까? 우아아 갑자기 후회가 밀려든다. 어쩌나? 어쩌지?
후회는 후회고, 나는 단 하루만 그랜드 마스터에게 퇴짜를 놓았다는 충격에 빠져 있다가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포포니와 함께 사냥 겸 수련에 나섰다.
일단 내가 해야 할 것은 디버프의 다변화다. 디버프의 성질을 한 가지로 고정하는 것이 아니라 몇 가지의 성질을 변화시키며 상대 몬스터의 생체 에너지 방어 체계를 무너뜨리는 것이 내가 연습해야 할 첫 과제다.
그리고 다음이 몬스터에게 디버프가 성공한 상태에서 디버프를 유지하면서 에테르를 움직여서 몬스터 패턴에 집중을 시키는 연습이다. 이건 어김없이 폭발을 일으키는데 다른 곳에 에테르를 집중시켜서는 그 효과가 크지 않다. 이상하게 몬스터 패턴의 핵심에서 더 강렬한 폭발이 일어난다.
그것은 몬스터의 생체 에너지가 그곳을 지키기 위해 몰려들어서 다른 곳에 비해서 더 밀도가 높아진 상태의 폭발이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어쨌거나 이 연습은 굉장히 피곤하고 또 힘들지만 꼭 해야 하는 연습이다. 그리고 이건 비밀이지만 이 방법이 몬스터가 아닌 인간에게도 쓸 수 있는 방법이란 것은 아무도 모른다. 우리 포포니만 알고 있다.
사실 디버프를 인간에게 걸어봐야 별 소용도 없다.
그런데 재미 있는 것은 디버프가 인간에게 안 걸리는 것은 아니란 거다. 걸리긴 몬스터보다 더 확실하게 걸린다.
다만 그렇게 들어간 에테르 조합이 인간들에겐 아무 영향도 주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인 거다. 감각이 예민한 이들이나 실력이 있는 이들은 자신들이 디버프의 범위에 들었다는 것을 쉽게 알아차린다. 하지만 이내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저 바람의 방향이 바뀐 것보다 못한 영향이 있을 뿐이니, 그런 것에 신경을 쓸 일이 없는 거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 기술은 참으로 유용하다. 디버프를 막지 못하는 인간은 자신의 몸 안에서 움직이는 내 에테르를 막을 도리가 없다. 디버프를 벗어나지 않은 상태에선 그게 안 되는 거다. 왜나면 내가 움직이는 에테르는 디버프에 영향을 주거나 받지 않지만 그 디버프를 기반으로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아직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있는데, 그건 인간의 몸 안에서 에테르를 움직이고 또 뭉쳐 놓는 것은 가능한데 그걸 폭발시키는 것은 잘 안 된다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