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ien In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104)
필드의 외계인-104화(104/404)
제104화
상승세를 타고 있긴 하지만 보카 주니어스 선수단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새로운 선수들의 적응 문제였다.
대부분의 선수가 적응했지만, 유일하게 한 사람, 카를로스 로호는 여전히 선수들과 가깝게 지내지 못했다.
“카를로스! 이따가 저녁 같이 먹을래?”
친화력 최고인 디에고 로시의 말에도 카를로스 로호는 고개를 저으며 거절 의사를 밝혔다.
“카를로스는 이상하게 말을 안 하더라?”
멀어지는 카를로스를 보며 유지우가 말하자 디에고 로시가 실소를 터트렸다.
“옛날 유를 보는 거 같아.”
“…나?”
“너 처음에 분위기 장난 아니었거든.”
디에고 로시의 말에.
“무서웠다.”
기예르모도 동의했다.
아르헨티나에 처음 왔을 때, 유지우는 냉기를 풀풀 풍기는 사람이었다.
지금이야 괜찮아졌지만, 그때는 분위기 때문에 다가오는 사람들이 적었다.
“지금 카를로스도 똑같아.”
“인정한다.”
카를로스 로호도 유지우가 보카 주니어스에 처음 왔을 때와 모습이 똑같았다.
단답이라도 대답은 하지만 곁은 내주지 않는 모습, 마치 상처받은 강아지가 경계하는 느낌이었다.
‘무슨 일이 있는 건가?’
옆에서 재잘거리는 두 선수를 무시하고 유지우는 물끄러미 멀어지는 카를로스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 * *
“거기로 간다?”
“네.”
에이전트와 함께 가는 곳은 보육권이었다.
“물건은 저번처럼 사놨는데 더 필요할까?”
그 말에 뒤에 실린 짐을 확인했다.
“이 정도면 충분해요.”
“또 애들 안 볼 거지?”
“네.”
“좀 보는 게 어때? 너 보육원에서 17세에 나오고 5년째 애들 안 보고 있잖아.”
카를로스 로호는 보육원 출신의 선수였다.
어릴 때, 부모에게 버림을 받아 보육원에서 자라며 상처가 많았다.
길거리에서 싸움도 하고.
배가 고파 빵을 훔쳐 먹기도 했었다.
마지막에는 안 좋은 일까지 하려고 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축구를 하게 됐는데 그걸 본 라싱 클루브 스카우터 덕분에 프로 선수가 됐다.
그렇게 유스에서 숨겨진 재능을 피워냈고 보카 주니어스까지 인연이 이어지게 됐다.
“다음에요.”
.
.
.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동쪽.
빈민가들이 모인 곳엔 보육원이 하나 있었다.
건물이 다 낡은 곳이지만,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곳이었다.
“원장님.”
오후 2시.
점심을 먹은 아이들이 공터에서 뛰어노는 틈에 조용히 뒷문을 통해 들어간 카를로스 로호는 원장실로 들어갔다.
“또 왔니?”
“예.”
“저번에도 많이 사오더니, 또 사 온 거야?”
“예.”
그는 보카 주니어스와 계약하면서 받은 계약금 대부분을 보육원에 기부하고 주급 받는 것도 생활비를 제외하고선 모두 보육원 아이들을 위한 식료품을 샀다.
“카를로스.”
“네, 원장님.”
“…아이들에게 미안해서 제대로 보지 않고 갈 거냐? 또?”
“철없던 날의 실수라도 어떻게 아이들을 보겠어요. 제가 손찌검까지 했는데요.”
“그래도….”
“이렇게 아이들이 잘 크는 것만 봐도 좋습니다. 일주일 뒤에 또 뵙겠습니다.”
원장은 온화한 목소리로 나가려는 카를로스 로호의 발을 붙잡았다.
“카를로스.”
“네.”
“마르티나가 너 언제 오나 묻는다.”
“…다음에 다시 오겠습니다.”
“고집은 여전하구나.”
원장도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래도 말이다.”
나가려는 카를로스 로호의 뒷모습을 보며 말했다.
“한 번은 봐줘, 네가 일부러 그러지 않았다는 건 애들이 더 잘 아니까.”
“…알겠습니다.”
한 달 뒤.
일주일마다 찾아온 보육원이 다소 달라진 모습에 카를로스 로호는 어리둥절했다.
“이게 대체.”
놀라는 그의 옆으로 원장이 다가왔다.
“유가 후원을 해줬다.”
유라고 하는 사람은 한 사람밖에 없었다.
“…우리 팀의 유요?”
“어, 작년 겨울부터 우리 보육원에 꾸준히 후원해주고 있단다.”
주마다 찾아왔는데도 처음 안 사실이었다.
“왜 그동안 말씀을….”
“굳이 뭐 하러 해, 유도 네가 여기 출신인 거 모를 텐데.”
“그러면 저것도.”
가리킨 곳에는 인부들이 건물 보수공사를 하고 있었다.
“유가 아이들이 지내는 곳이 많이 낡았다고 보수공사를 해준다고 했다.”
“…….”
“거절했는데 지난달부터 계속 설득해서 받기로 했다.”
유지우가 아이들이 생활하는 곳이 많이 낙후되어 보수공사를 의뢰한 거였다.
“한번 보고 갈래? 같은 팀 동료잖아.”
원장은 카를로스 로호를 데리고 슬쩍 공터 쪽으로 갔다.
아이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 서서 아이들과 볼을 차는 유지우를 봤다.
‘…….’
믿기지 않았다.
아르헨티나 리그 역사를 새롭게 쓴 보카 주니어스 최고의 슈퍼스타가 이런 흙바닥에서 볼을 찬다는 게.
“좋은 사람이야.”
“…….”
“가끔 저렇게 볼을 차준 덕분에 아이들이 많이 밝아졌어.”
보통 슈퍼스타들은 쉬는 날에 다음 스케줄을 위해 쉬는 경우가 많았다.
근데 유지우는 그런 사람들과 달랐다.
가식이 아니었다.
필드 위에서 보여주는 웃음보다 더 많은 웃음을 짓고 있었으니까.
스윽.
카를로스 로호의 시선이 촬영팀을 향했다.
“저분들은?”
“유의 다큐멘터리 촬영팀이라던데?”
“아.”
훈련장에서도 몇 번 봤었다.
인터뷰를 요청했는데 거절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한 시간 후.
유지우는 다음 일정이 있어서 갈 준비를 했고 아이들은 유지우 근처로 몰렸다.
“유! 다음에도 올 거죠?”
“언제 올 거예요?”
작년 겨울부터 반년 이상 이어진 인연.
유지우는 귀여운 아이들을 보며 대답했다.
“2주 뒤에 올게.”
“약속한 거예요!”
“저 다음에는 고기 먹고 싶어요!”
“유! 사랑해요!”
아이들의 웃음을 보며 보육원 밖으로 나갔고 다큐멘터리 촬영팀은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차를 주차한 곳으로 가자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카를로스?”
카를로스 로호였다.
“네가 여길 왜?”
구단에서도 훈련 때나 경기를 제외하고 자주 못 보는 선수가 눈앞에 있자 유지우는 눈이 커지며 놀랐다.
“물었어, 네가 여길 왜 왔냐고.”
“내가 기부하는 곳이니까.”
“…내가 여기 출신이라는 것도 알아?”
“마르티나한테 들었어.”
“근데 왜 말 안 했어?”
카를로스는 가슴이 뛰었다.
두려운 거였다.
혹시라도 자신의 환경을 안 뒤에 보는 시선이 달라질까 봐.
“네가 말하기 싫어하는 것 같아서.”
“…….”
“남 이야기를 타인에게 함부로 말하는 건 예의가 아니잖아.”
카를로스 로호는 가만히 유지우를 응시했다.
눈빛에는 거짓이 없었다.
옛날 자신이 어릴 때, 그저 보여주기식으로 온 사람들과 달랐다.
“잠깐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래서 그런지 마음 한편에 굳건하게 쌓여있던 성벽이 살짝 허물어졌다.
“얼마든지.”
차에서 조금 떨어져 걸었다.
잠깐 걸으니 경치가 좋은 강변이 보였다.
두 사람은 강변에 있는 벤치에 앉았다.
“어째서 이곳에 후원하는 거야? 여기 말고도 보육원 많잖아.”
보육원은 아르헨티나 여러 곳에 있었다.
“반년 전.”
“…….”
“후반기 시작하기 전, 구단에서 보육원에 물품을 전달해주며 선수들이 봉사 활동하는 게 있었어.”
유지우는 천천히 아이들과의 첫 만남부터 얘기했다.
처음에는 봉사하러 왔는데 환경을 보고 마음이 쓰였다.
그래서 어떻게든 도움을 주고 싶어서 매주는 무리더라도 매달 후원을 해주며 보육원을 찾아왔다.
“후원은 그때부터 결심한 거야, 저 아이들이 웃는 얼굴을 더 많이 보고 싶어서.”
진심이 느껴지는 말에 카를로스 로호는 말없이 강변을 봤다.
어릴 때부터 봤던 풍경.
이상하게 이 강변에 앉아 강을 볼 때는 마음이 편안했다.
그래서 그런지 그동안 하지 못했던 말을 시작했다.
“난 다섯 살에 이곳에 맡겨졌어, 부모님이 날 버리고 떠났거든.”
유지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카를로스 로호의 말을 경청했다.
“그 당시에는 데리러 오겠다는 부모 말을 믿을 때라 그냥 친구들이랑 동생들이 많이 생겨서 기뻤어.”
“…….”
“근데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그게 아니더라.”
뒤에 이어지는 말은 카를로스 로호가 상처받은 이야기였다.
부모가 없는 놈.
가난한 놈.
못 배운 놈.
온갖 손가락질을 받아오면서 성격도 삐뚤어지고 사고도 많이 쳤다.
지금이야 시간이 흘러 좋아졌지만, 예전 성격은 워낙 다혈질이라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냥 소처럼 들이박는 게 일상이었다.
“그 수많은 실수 중에서 내가 한 제일 큰 실수는… 마르티나 이마 봤어?”
“흉터가 있던데?”
“그거 내가 그런 거야.”
“…….”
“마르티나가 놀아달라고 다가오는데 귀찮다고 밀쳤거든…. 계단에서 떨어지면서 이마가 찢어졌어.”
한 번 쏟아지는 진심은 계속해서 쏟아졌다.
“그때 이후로 그 흉터를 볼 수가 없더라…. 그래서 더 선을 그었고.”
그 뒤로 마르티나를 피해 다녔고 다른 아이들과도 선을 그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마르티나가 동네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받는 걸 보고 격분해서 주먹을 휘둘렀다.
너무 심하게 때려서 경찰서에도 갔고.
보육원에서 자란 배경이 나오자 카를로스 로호는 온갖 손가락질을 당했다.
‘이래서 부모가 없는 것들은 어쩔 수 없다니까.’
먼저 상처를 입힌 건 상대 아이들이었지만, 경찰은 믿지 않았다.
그들은 편견을 가진 채, 카를로스 로호를 대했고 보육원장은 선처를 바라며 막대한 합의금을 냈다.
‘제가 안 그랬어요.’
‘안다.’
‘근데 왜 합의를 한 거예요!’
‘거기서 나까지 그랬으면 넌 감옥에 갔을 거다.’
‘감옥에 보내시지 어차피 원장님도 저 얼른 내보내고 싶은 거 아니었어요?’
‘아들을 감옥에 보내는 부모는 어디에도 없다.’
‘…….’
‘보육원에 있는 애들 모두 내 자식이야. 자식이 엇나간다고 감옥에 보내면 그게 무슨 부모냐.’
‘…….’
‘가자, 오랜만에 고기 좀 사가서 구워 먹자.’
원장의 진심을 듣고서 펑펑 울었다.
그때의 사건이 달라지기 시작한 계기이자 사람들을 믿지 않게 되는 계기가 됐다.
그 후로는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말하지 않았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 편견을 가질까 봐.
“그래서 프로 선수가 되고 나서는 그 사실은 숨겼어…. 사람들이 동정하는 시선으로 보는 게 싫었거든.”
카를로스 로호는 자신의 모든 걸 얘기했다.
“이 얘기는 구단에서도 몇 사람 몰라.”
그 말을 들은 유지우도 지는 노을을 보며 말을 꺼냈다.
“나도 그렇게 부유한 집에서 살았던 건 아니야.”
사실 유지우의 집도 예전에는 가난했다.
유한우는 요리사로 성공하기 전, 유럽 곳곳을 돌아다녔고 어머니 서설희는 작은 약국에서 다른 약사들의 등쌀에 치였다.
누나 유민하는 가정형편이 좋지 않아 대학교에 가지 않고 바로 취업해서 내 뒷바라지를 하려고 했었고.
“살다 보면 인생이 달라지는 분기점이 있더라고.”
“…….”
“그게 나한테는 보카였어.”
한국에서 누명으로 힘들어할 때, 손을 내밀어 새로운 인생을 준 곳.
그곳이 ‘보카 주니어스’였다.
“내가 그랬듯이 너한테도 보카가 그런 곳이었으면 좋겠다.”
카를로스 로호는 유지우의 얼굴을 보고 말을 하지 못했다.
씩.
활짝 웃는 모습은 너무나도 멋져 보였으니까.
“나도 달라질 수 있을까?”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자 유지우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당연한 걸 묻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