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ien In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116)
필드의 외계인-116화(116/404)
제116화
“지우야, 너 워밍업 끝나고 제라르 레오랑 무슨 얘기 했어?”
선수들의 관심사는 유지우가 제라르 레오랑 무슨 얘기를 했을까였다.
유지우는 무심히 축구화 끈을 묶으며 대답했다.
“그냥 잘해보자고 하던데요?”
“그게 끝?”
“네.”
“…다른 얘기도 없고?”
“아무 얘기도요.”
“그래도 부럽다.”
“뭐가요?”
“제라르 레오랑 말 섞어본 거…. 그거 사실 내 꿈이었거든.”
스타 중의 스타인 제라르 레오.
선수들은 그런 선수와 말을 섞은 유지우를 부러워했다.
평생 축구 선수 생활을 해도 한 번 만날까 말까 한 선수와 대화까지 나눴으니까.
“너는 유럽 가면 레오랑 자주 보겠다?”
“라리가로 가면 그렇겠죠?”
“아직 어디로 갈지 안 정한 거야?”
“네.”
“슬슬 방향을 잡아야 할 때 아닌가?”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해야죠.”
“이번에 우승하겠던데?”
얘기를 나누고 있자 감독과 코치진이 라커룸으로 들어왔다.
세계 최고 팀인 스페인과의 경기라 코치진도 약간 긴장된 표정이었다.
“지시는 어제 미팅룸에서 실컷 얘기했으니까 더는 말을 안 한다.”
세계적인 선수들이 즐비한 스페인과 전력이 압도적으로 차이가 나긴 해도 강점을 앞세워 싸워야 했다.
“내가 강조할 건 하나다. 상대가! 아무리 최고의 선수라고 해도 내가 본 너희들은 근성만큼은 지지 않는다!”
– “네!”
“세계 최고의 팀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승률이 없는 건 아니다.”
– “…….”
“그러니까! 잃을 것이 없는 놈들이 무섭다는 걸 보여줘라!”
경기 시작 10분을 남겨두고 라커룸을 나서서 터널로 걸어갔다.
터널에 도착해서 에스코트 키즈들과 손을 잡고 섰고 스페인 선수들도 옆에서 나란히 섰다.
“안녕?”
가장 뒷줄에 서 있던 유지우는 에스코트 키즈와 얘기를 나눴다.
“정말 유지우 선수예요?”
“응.”
“사진 찍어주면 안 돼요?”
“이따가 끝나고 찍어줄게.”
“약속해요.”
아이는 조그마한 손을 내밀었고 유지우는 웃으며 손가락을 걸고 약속해줬다.
“그래.”
해맑은 웃음을 짓는 아이의 손을 잡고 필드로 입장했다.
– 와아아아아아아아!
환호가 쏟아지는 필드.
6만 명 이상이 내뿜는 열기는 금세 피부로 와닿았다.
* * *
【 대한민국 vs 스페인 (경기 전) 】
경기 전부터 인터넷은 난리였다.
중계권을 딴 SMC 채널 시청률은 시작 전에 벌써 16%를 찍었다.
– 선수들 부상 없이 잘 마무리하길!
– 입장할 때도 유지우는 빛이 나는구나.
– 스페인 1군 라인업이네 ㄷㄷ 챔스 결승에서 뛴 선수들 다 나옴 ㅋㅋㅋㅋㅋㅋㅋ
시작 전부터 시청률이 높은 이유는 월드컵을 비롯해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활약한 선수들이 대거 포진한 스페인 때문이었다.
– 지더라도 무기력하게만 지지 않았으면 ㅠㅠㅠㅠㅠㅠㅠㅠㅠ 골이야 많이 먹힐 수밖에 없지만, 준비한 건 다 보여주길 바란다.
– 지우가 있으니까 무기력하게 지진 않을 거 같음.
– 유지우가 신이라도 되냐? 걔 혼자 스페인 못 막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승패를 떠나서 뭔가 많은 걸 깨닫는 경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팬들의 글은 쉬지 않고 올라왔다.
– 난 아기 기저귀 찼다. 제라르 레오 플레이 보고 쌀 것 같아서.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럴 만함.
– 제발 수비적인 전술보단 공격적으로 나가서 깨지더라도 화끈한 경기가 보고 싶다.
– ㄹㅇ 강팀이랑 경기할 때마다 선수비 후역습은 이제 질림.
– …근데 스페인 선수 명단 봐라.
– 우주방위대임.
– ㄹㅇ 선수 몸값만 1조 넘네 ㄷㄷ
– 저 정도면 지구 지키고도 남는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그들에게 있어 가장 화제가 된 건 워밍업 때 제라르 레오와 유지우가 인사한 장면이었다.
그건 이미 발 빠른 기자들이 기사화를 했을 만큼 화제가 됐다.
– 경기 전 레오랑 지우랑 주먹 맞대는 거 보고 가슴이 웅장해졌다.
– ㅠㅠㅠㅠㅠㅠ 세계적인 선수와 악수 ㄷㄷ
– 내 축구 인생에서 제일 감동적인 순간이었음
– 제라르 레오도 유지우를 알고 있는 건가?
– 한국인이라는 게 자랑스럽다 ㄹㅇ.
– 제발 지우가 스페인한테 한 방 먹여줬으면!
– 언제 시작하냐!
– 어어어어어어! 이제 시작한다!
* * *
브루노 가르시아 / 오스마르 토레스 / 테오 레이나
제라르 레오 / 마누엘 바예호 / 안드레아 비야르
나초 세바요스 / 디에고 산체스 / 세르히오 고메스 / 파블로 가야
크리스티안 하르케
4 – 3 – 3의 스페인.
황우식 / 강우태
강예수 / 김기하 / 최남일 / 유지우
우동하 / 정상훈 / 김재민 / 김윤태
강은우
4 – 4 – 2의 대한민국.
삐익-!
휘슬이 울리며 경기가 시작됐다.
[대한민국 vs 스페인의 친선경기가 시작됐습니다!] [FIFA 랭킹 1위! 세계 최고의 팀을 상대로! 대한민국 선수들은 과연 어떤 플레이를 보여줄지! 기대됩니다!]스페인은 전방 프레싱이 아닌 지역방어로 대한민국이 들어올 길목만 노련하게 막았다.
대한민국은 스페인의 수비 패턴을 파악한 뒤, 양 사이드로 볼을 보내며 공간을 만들려고 했다.
[줄 곳이 없자 김기하 선수가 뒤에 있는 최남일 선수에게! 하지만 빠르게 압박하는 제라르 레오! 최남일 선수가 급하게 오른쪽에 있는 유지우 선수에게 패스합니다!]탁.
유지우가 잡자 나초 세바요스가 앞을 막아섰다.
레알 마드리드의 주전 풀백.
체구는 작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밸런스와 빠른 주력으로 레알 마드리드의 한 축을 담당하는 선수였다.
휙.
돌파하려고 왼쪽으로 돌아 나가려는 페인트를 걸었는데 쉽게 속지 않았다.
‘흠.’
무리해서 돌파하는 것보다는 경기 초반이니, 스페인의 전술을 파악하는 게 우선이었다.
뻐—-엉!
유지우는 침착하게 볼을 발바닥으로 끌며 지켜낸 뒤, 반대 사이드로 길게 넘겼다.
끝에서 끝으로 가는 롱패스를 본 관중석에선 감탄이 나왔다.
5분.
10분.
경기 초반 공방전은 스페인의 우세였다.
중원 싸움부터 대한민국이 크게 밀렸다.
그 이유는 스페인 홀딩 미드필더 마누엘 바예호의 존재 때문이었다.
툭.
툭.
툭.
간결한 볼 배급.
완벽한 포백 보호.
홀딩 미드필더가 어떤 것인지 제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치열한 몸싸움 과정에서도 오히려 부딪친 선수가 밀려났다.
[마누엘 바예호의 피지컬과 볼 보호 능력은 타고났죠. 괜히 바르셀로나의 철벽으로 불리는 게 아닙니다.]바르셀로나의 홀딩 미드필더로 뛰며 세계적인 선수들과 겨뤄온 경험이 필드 위에서 고스란히 펼쳐졌다.
뛰어난 수비적인 부분을 제외하고 그에게 있는 또 하나의 무기.
뻐—-엉!
날카로운 스루패스였다.
[아아아아! 기습적으로 찌른 패스! 대한민국의 중원이 순식간에 뚫립니다!]패스 하나도 막지 못했고 2선에 있던 제라르 레오에게 갔다.
최남일은 부딪치며 균형을 흔들려고 했지만, 제라르 레오는 밀리지 않았다.
투—웅.
제라르 레오는 최남일을 등진 채, 볼에 발만 가져다 대며 띄웠다.
툭.
뜬 볼을 한 번 더 차며 뒤로 보냈고 단숨에 돌아서 들어갔다.
‘와.’
한 번에 훅 들어오는 위압감에 최남일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균형을 잃고 뒤로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었다.
제라르 레오의 강점은 파괴적인 드리블이었다.
스트라이커가 아닌 공격형 미드필더지만, 순식간에 최전방까지 접근하는 순발력을 갖췄고 어느 위치에서든 슈팅을 때리는 그의 모습은 위협적이었다.
뻐—-엉!
좁은 공간에서 슈팅 코스를 발견하곤 오른발로 낮게 깔아 찬 슈팅.
골키퍼가 슬라이딩하며 손을 쭉 뻗었다.
스르르르륵.
볼은 골대 밖으로 휘어 나갔다.
– 오오오오오오!
[제라르 레오의 슈팅이 아슬아슬하게 골대를 벗어납니다!] [와, 굉장히 위협적인 슈팅이었습니다. 방금 투 터치를 가져가면서 김재민 선수의 타이밍을 빼앗는 거 보셨습니까?]제라르 레오의 플레이가 눈을 사로잡는 만큼 대한민국 에이스 유지우의 플레이도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현란한 개인기.
두 명의 압박에도 전혀 당황하지 않고 돌파해내는 화려함.
간혹가다 시선을 사로잡는 플레이가 나올 때는 환호성이 들렸다.
뻐—-엉!
측면에 있다가 중앙으로 올라와서 때린 기습적인 중거리 슈팅은 골대를 맞고 라인 아웃이 선언됐다.
[스페인의 기세에 전혀 눌리지 않는 당당함! 이 선수가 바로 대한민국의 에이스 유지우 선수입니다!] [세계 최고의 선수들 사이를 휘젓고 다니는 저 모습을 보십시오!]UEFA 챔피언스 리그를 단골로 나가는 선수들 사이에서 밀리지 않는 당당함.
오히려.
투—웅.
선수들의 키를 넘기는 감각적인 솜브레로 개인기로 농락하는 모습은 관중들의 환호성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미쳤다.”
“한국 선수처럼 안 보여.”
“스페인한테 전혀 안 밀리는데?”
유지우에게 볼이 가면 저절로 기대감이 생겼다.
어떤 것을 보여줄지.
“침착해! 움직임에 속지 마!”
하지만 가장 중요한 마무리가 되지 않았다.
슈팅해도 골대를 벗어났고 패스를 하면 빼앗기는 탓에 번번이 잡은 기회도 날려버리고 말았다.
[아, 대한민국의 공격을 이끄는 건 유지우 선수지만, 그 곁을 지탱해주는 선수들이 없습니다.] [유지우 선수가 줄 곳이 없어서 백패스를 보내는 게 말이 됩니까? 공격 진영에 있는 선수들이 조금 더 많은 움직임을 가져가면서 공간을 만들어야 합니다! 가만히 서서는 스페인을 못 뚫습니다!]해설위원의 입에서도 이런 말이 나올 만큼 마무리를 해주는 선수들의 기량 부족이 눈에 띄었다.
상대보다 기량이 부족하면 한 발 더 많이 뛰면서 공간을 만들어 주려는 노력이라도 해야 하는데 그런 모습마저 부족했다.
잠시 후.
스페인은 대한민국의 공격을 막은 뒤, 흐름을 타서 역습을 전개했고 왼쪽 사이드에서 나초 세바요스가 빠르게 대한민국의 측면을 휘저었다.
오버래핑으로 라인을 올린 뒤.
고개를 들어 선수들의 위치를 파악하곤.
뻐—-엉.
크로스를 올렸다.
[나초 세바요스의 크로스으으으으! 페널티 에어리어 안이 아닌! 바깥으로 휘어서 나갑니다! 어? 크로스 실수인가요?]보는 사람들은 크로스 실수라고 알았다.
하지만 몇 초 뒤.
그 크로스는 철저하게 계산된 크로스라는 걸 깨달았다.
“누가 놓친 거야!”
제일 먼저 눈치챈 김재민의 외침과 다급한 최남일의 움직임.
휘어서 페널티 에어리어 밖으로 나간 크로스가 향한 곳에는 제라르 레오가 있었다.
투—웅.
가슴 트래핑으로 볼의 힘을 죽이고 주발인 오른발로 차기 편하게 방향만 바꿨다.
군더더기 없는 동작에 모두가 홀린 듯 시선을 집중했다.
촤—악!
최남일이 필사적으로 몸을 날렸다.
다 막진 못하더라도 슈팅 궤적이라도 틀어지게 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뻐—엉!
하지만 최남일의 압박은 전혀 영향을 주지 못했다.
이어진 제라르 레오의 논스톱 발리슛.
볼은 작은 무지개를 그리며 무회전으로 날아갔고 오른쪽 크로스바를 맞은 뒤, 골대 안으로 들어갔다.
“…이 코스를 어떻게 막아.”
코스도 코스지만, 믿을 수 없는 슈팅 속도.
골키퍼가 반응하기도 전에 이미 볼은 골망을 흔든 뒤였다.
철렁.
“…….”
말문이 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골에 모두가 시선을 빼앗겼다.
[제라르 레오오오오오오오! 전반 35분에 스페인의 선제골이 나옵니다!] [세계 최고의 선수이자! 라리가 득점왕의 위엄! 제라르 레오가 수준 높은 골이 어떤 것인지 보여줍니다!]몇 번의 위협적인 찬스를 만들기도 해서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 무렵에 나온 실점.
그러자 실감이 났다.
상대는 언제까지나 세계 최고의 선수, ‘제라르 레오’가 이끄는 무적함대 스페인이라는 걸.
두근.
두근.
멀리서 뒷모습을 보던 유지우는 이상하게 가슴이 뛰었다.
두려워서 뛰는 게 아니었다.
‘설렘.’
유지우는 설렘을 담은 한 걸음을 필드에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