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ien In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117)
필드의 외계인-117화(117/404)
제117화
스페인은 세계 축구의 중심에 있는 나라가 어떤 수준인지 제대로 보여줬고 대한민국은 리드를 잡지 못한 채 계속해서 끌려다녔다.
그렇다고.
당하고만 있을 리가 없었다.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물듯이 대한민국도 스페인을 무는 힘은 가지고 있었다.
타다다닷-!
오른쪽 측면에서 매서운 속도로 중앙으로 올라오는 한 선수.
비어 있는 곳으로 가 안정적으로 볼을 잡은 유지우는 침착하게 대한민국 공격을 이끌었다.
[유지우 선수가 볼을 터치! 이걸 놓치지 않고 마누엘 바예호가 다가오는데요! 오오오오오오! 넛맥! 다리 사이로 볼을 빼냅니다!]마누엘 바예호는 폭발적인 속도를 내며 옆으로 돌아 나가는 유지우를 순간적으로 놓쳤고 유지우는 볼을 잡기 전, 스페인 수비 위치를 파악했다.
‘패스하기엔 늦었어.’
황우식과 강우태가 완벽하게 마크당하고 있었다.
패스했다간 빼앗길 위기.
유지우가 선택한 건.
중거리 슈팅이었다.
뻐—엉!
오른쪽 상단을 노린 슈팅은 바깥쪽으로 휘며 골대를 종이 한 장 차이로 벗어나고 말았다.
– 아아아아아!
관중석에선 아쉬운 탄식이 나왔다.
[이게 들어갔으면 동점이 됐을 수 있었는데요!] [유지우 선수의 슈팅이 날카롭긴 했지만, 운이 따라주지 않았습니다!]전반 40분.
스페인이 전력 우위로 점유율을 압도적으로 가지고 갈 때, 유지우는 스페인의 자그마한 틈새를 노렸다.
감각적으로 볼을 흘리거나 머리와 어깨를 가리지 않고 트래핑을 하며 강도 높은 압박을 벗어나는 수준 높은 탈압박을 선보였다.
– 오오오오오오!
탈아시아급 플레이.
세계 최고 스페인에 전혀 밀리지 않고 물고 늘어지는 모습을 본 관중들은 더욱 열광했다.
“유가 마음대로 설치지 못하게 해!”
스페인의 집중 견제 대상은 유지우였다.
퍼—-억!
거친 몸싸움으로 라인 근처로 밀며 제대로 플레이하는 걸 방해했다.
‘대한민국에선 유만 막으면 된다.’
스페인 감독 보르하 아두리스가 한 얘기대로 선수들은 유지우 집중 견제에 들어갔다.
한 명이 놓치면 두 명이, 두 명이 놓치면 세 명이.
삐—–익!
주변에 받쳐주는 선수 없이 유지우 혼자서 이끌어 가기에는 상대가 너무 나빴다.
[탈압박 능력이 좋은 유지우 선수가 어떻게든 기회를 만들려고 하지만 쉽지 않습니다.]아직 전반이 끝나지 않았는데도 스페인의 지독한 압박 때문에 유지우의 유니폼은 엉망이 되어 있었다.
45분이 지나고 주어진 3분의 추가 시간.
스페인의 공격이 잘리자 유지우는 지체하지 않고 제일 먼저 달려가며 역습을 주도했다.
탁.
오는 패스를 안전하게 잡아놓은 뒤.
바짝 압박해온 마누엘 바예호를 마르세유턴으로 제쳤다.
[유지우 선수의 역습 전개! 아직 대한민국 선수들이 올라오지 않은 상황!]앞에서 달려오는 나초 세바요스를 보곤.
타, 타닷!
라 크로케타로 제치며 중앙으로 방향을 접었다.
황우식과 강우태가 올라오는 게 늦었고 유지우가 혼자 해결해야 했다.
더 가까이.
골대와 더 가까이.
페널티 에어리어의 오른쪽 라인을 밟고 들어가자 디에고 산체스가 앞길을 막았다.
‘밸런스는… 안쪽이다.’
유지우의 움직임을 유심히 보더니, 골대 쪽으로 돌파하려고 균형 이동하는 게 보였다.
아주 찰나의 순간.
세계적인 수비수에게 판단은 찰나의 순간이면 충분했다.
살짝 안쪽을 막으려고 밸런스를 이동한 순간.
‘설마!’
발목이 꺾이며 달라진 방향.
유지우가 선택한 건 안쪽이 아닌 바깥쪽이었다.
안쪽으로 이동했던 밸런스를 단숨에 바깥쪽으로 이동하는 페이크 동작으로 디에고 산체스를 속였다.
‘당했다.’
유지우가 비어 있는 슈팅 공간이 보이자 자세를 잡고 때리려는 순간.
촤—-악!
뒤에서 세르히오 고메스의 태클이 들어오며 발이 걸려버렸다.
균형을 잃으며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고 주심은 휘슬을 불며 카드를 꺼냈다.
삐—-익!
– 와아아아아아아!
페널티킥을 줘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지만, 주심은 페널티 에어리어 라인에서 1cm도 되지 않는 거리에 프리킥을 찍었다.
[페널티킥이 아니라 프리킥입니다!] [이게 프리킥이라뇨! 페널티 에어리어 안에서 넘어지지 않았습니까?]모두가 페널티킥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곧이어 해설위원들은 리플레이를 보고 납득했다.
[프리킥이 맞네요. 한 걸음만 안쪽이었으면 페널티킥이었습니다.] [페널티킥이 아니긴 하지만 좋은 위치에서의 프리킥입니다! 이 거리라면 유지우 선수가 몇 번이나 득점으로 연결했던 위치입니다!]관중들은 두 손을 모으며 기도했고 키커는 유지우가 서서 준비했다.
후우.
심호흡하고 스페인 수비벽 너머의 골문을 바라봤다.
거리.
바람.
골키퍼의 위치.
머릿속에 모두 담고 어떤 코스로 찰지 계산했다.
삐—익!
주심의 신호가 떨어지자 발걸음을 떼며 슈팅을 때렸다.
뻐—엉!
수비벽 위가 아닌 수비벽이 점프를 뛴 아래 공간을 노린 슈팅.
골키퍼는 예상치 못한 코스로 오는 슈팅을 보곤 한 박자 늦었고 볼은 골키퍼의 손을 피해 아슬아슬하게 오른쪽 구석으로 들어갔다.
철렁.
[와아아아아아! 유지우 선수의 엄청난 프리킥이 나왔습니다! 모두를 속인 환상적인 프리키이이익!] [고오오오오오오오올! 유지우 선수가 동점 골을 넣으며! 경기는 1 – 1 동점이 됐습니다! 이게 대한민국의 저력입니다!]– 유지우! 유지우! 유지우!
골을 넣은 유지우는 카메라 앞으로 다가가서 등 뒤에 번호와 이름을 가리켰다.
[스페인에 제라르 레오가 있다면! 대한민국엔 유지우 선수가 있습니다!]세리머니를 하고 진영으로 돌아가던 유지우는 선수들에게 축하받으면서 고개를 돌렸다.
스윽.
그곳엔 제라르 레오가 있었다.
두 선수의 시선은 허공에서 부딪쳤고.
씩.
제라르 레오가 웃음을 짓자 유지우도 마찬가지로 웃음을 지었다.
두 국가의 에이스.
그들이 만들어내는 플레이는 보는 이들을 즐겁게 했다.
* * *
[대한민국 1 – 1 스페인]스페인이 우세할 거라는 예상과 달리 무승부로 전반전이 끝났다.
대한민국 라커룸 안에선 선수들이 물을 마시며 전반전에 관해 얘기했다.
“의외로 할 만한데?”
점수 차이가 크지 않자 몇몇 선수들은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을 품었다.
그러나 필드에서 뛴 선수들의 생각은 달랐다.
‘…봐주는 느낌이 들어.’
스페인이 전력을 다하지 않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그래서 표정이 좋지 않았다.
잠시 후, 라커룸으로 들어온 주앙 달루트는 대형 모니터에 양 팀 포메이션을 띄웠다.
“이건 친선경기라 승패가 크게 작용하지 않아 부담감이 크진 않다. 하지만! 난 이왕 시작하면 이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그런 생각을 가졌다.
“세계 최고 팀과의 경기라 배우는 태도를 갖추는 것도 좋지만, 그들에게 한 방 먹여주는 패기도 있어야지!”
– “…….”
“그게! 국가를 대표하는 자들이 가져야 하는 마음이니까!”
주앙 달루트의 말을 통역사는 최대한 생동감 있게 전해줬다.
“후반전은 더 힘들 거다. 그렇다고 주눅 들지 말고! 우리가 계획한 걸 해라!”
– “네!”
“수비적으로 나갈 필요는 없다! 우리의 모토는 공격! 전반 마지막 보여준 환상적인 프리킥처럼! 후반전에도 세계 최고의 팀에 한 방 먹이고 와!”
패배할 때 하더라도 무력하게 패배하는 것보다 조그만 가능성을 보여주면서 패배하는 그림이 더 나았다.
그래야 나중에 성장할 희망도 있는 법이니까.
* * *
전반전을 무승부로 마무리하며 할 수 있다고 생각은 했지만, 월드컵 우승팀은 달랐다.
전반전과 달라진 경기력.
그들은 템포를 올려 철저하게 대한민국을 농락했고.
철렁.
후반전이 시작하고 11분 만에 제라르 레오의 득점포가 가동됐다.
[아…. 또 흔들리는 골망, 제라르 레오의 왼발이 매섭습니다.] [제라르 레오는 어디서든 슈팅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선수입니다. 특히 하프 스페이스에서 전개하는 능력은 세계 최고죠. 어떻게든 저 패턴을 막아내지 않으면 반전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스페인에는 제라르 레오만 있는 게 아니었다.
각 포지션에서 최고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는 선수들이 포진되어 대한민국의 숨통을 조였다.
“제라르!”
중원에서 볼을 잡은 안드레아 비야르가 스루패스를 찔렀고 제라르 레오는 달려가면서 마크를 붙은 선수의 움직임을 파악했다.
발의 방향.
내딛는 타이밍.
그 모든 걸 계산하더니.
투—웅.
완벽하게 타이밍을 빼앗는 원터치 로빙 패스를 시도했다.
치명적인 패스에 반응한 건 스페인 스트라이커 오스마르 토레스였다.
[오스마르 토레스!!! 아아아아아! 김재민 선수가 반응하긴 했지만, 늦었습니다!]특유의 순발력으로 수비진을 찢는 라인 브레이킹을 하며 침투했다.
들어가는 오스마르 토레스를 본 한국 선수들이 이를 악물며 쫓아갔다.
잡을 듯 말 듯 한 거리.
어느 정도 거리가 좁혀지자 슬라이딩 태클로 막으려고 했는데.
철렁.
골키퍼의 키만 살짝 키만 넘긴 로빙슛이 골망을 갈랐다.
유연한 동작으로 수비수를 속이는 라인 브레이킹과 탁월한 골 결정력.
현 프리미어 리그 득점왕에게 한 방 제대로 먹어버렸다.
– 와아아아아아아아!
“이거 빠져나갈 구멍이 안 보이네.”
압도적인 차이에 김기하의 푸념에 유지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요.”
“…근데 너 왜 웃냐?”
“아, 제가 웃었어요?”
“봐봐, 말하면서도 웃고 있잖아.”
지고 있는데도 유지우의 입꼬리는 올라가 있었다.
“재미있어서요.”
“지고 있는데도? 너 아르헨티나한테 졌을 때는 펑펑 울었잖아.”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에 패배했을 때, 유지우는 재미있다는 말 대신 눈물을 보였다.
“그랬죠. 그때는 정말 분했으니까요.”
“지금은 안 그렇고?”
“네, 친선경기라 그런가?”
“…넌 봐도 봐도 특이해.”
“저도 인정해요. 제가 왜 이러는지 저도 잘 모르겠거든요.”
“근데 뭐가 그렇게 재미있어?”
김기하의 물음에 유지우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형은 세계 최고의 선수들을 상대로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 궁금하지 않아요?”
그 말을 한 유지우는 필드를 종횡무진 누볐다.
스페인 선수들에게 전혀 밀리지 않는 퍼포먼스.
어떤 부분에서는 스페인을 압도하며 포기하지 않았다.
철렁.
[아아아아아아아아! 회심의 슈팅이 옆 그물을 흔들었습니다! 아쉬워하는 유지우 선수!] [스페인의 수비 백업이 빨라요. 때리는 자세가 정확했다면 들어갔을 겁니다!]그 뒤로도 유지우는 대한민국 선수 중에서도 필드에서 홀로 빛났다.
스페인 국가대표 감독 보르하 아두리스도 그걸 유심히 봤다.
‘참 안타까워.’
툭.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저 빛나는 재능을.’
뻐—-엉!
‘더 활짝 피울 수 있는 곳이었다면 결과는 달랐을 텐데.’
후반 종료 직전에 제라르 레오의 추가 골이 더 나왔다.
4 – 1.
제라르 레오는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차이를 걷잡을 수 없이 벌렸다.
– …….
관중석도 압도적인 차이를 보곤 조용해졌다.
삐익-! 삐익-! 삐이이이이익-!
이변 없이 경기는 끝났다.
대한민국 선수들은 허탈해했고 유지우는 방전이 되어 필드에 누워버렸다.
후우.
“…끝났구나.”
결국, 단 한 번의 리드도 가져오지 못하고 끝나버렸다.
어느 정도 예상한 결과였지만, 그래도 아쉬움이 남았다.
“괜찮아?”
“예.”
선수들의 부축을 받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스페인 선수들이 필드를 빠져나가지 않고 다가왔다.
“이 녀석한테 완전히 당했다니까! 하하하하하하!”
“너 진짜 열일곱 맞아?”
“유럽에 올 거지?”
“다음에 만나면 완벽하게 막을 거니까 각오해.”
유지우와 인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유지우에게 다가와 인사를 했고 제라르 레오는 관중들에게 손을 흔들어주고 제일 늦게 다가왔다.
“유.”
와락.
다가온 제라르 레오는 유지우와 포옹했다.
카메라 부대가 두 사람의 모습을 찍었고 관중석에선 큰 함성이 나왔다.
“앞으로 자주 만날 거 같으니까 여기서 긴말은 할 필요 없을 거 같고.”
“…….”
“더 큰 무대에서 만나자.”
“네.”
“다음은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이려나?”
“…제가 같은 팀으로 갈 거라곤 생각 안 하는군요.”
“언젠가는 같이 뛸 것 같긴 하지만 당장은 아닐 거 같거든.”
담백하게 말한 뒤, 유니폼 교환을 했다.
제라르 레오는 웃으며 떠나갔고 유지우는 그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봤다.
비록 패배하긴 했지만, 뭔가 가슴이 더 뜨거워졌다.
더 많이.
더 치열하게.
더 뜨겁게.
저런 선수들과 겨뤄보고 싶어졌다.
그렇게 한 선수의 가슴에 뜨거운 불씨를 남긴 대한민국 vs 스페인의 A매치는 스페인의 4 – 1 승리로 마무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