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ien In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129)
필드의 외계인-129화(129/404)
제129화
코파 리베르타도레스를 우승한 뒤, 아르헨티나로 돌아온 보카 주니어스 선수단을 맞이하는 건 수많은 팬이었다.
– 보카! 보카! 보카!
근 10년 동안 브라질 리그에 가 있었던 남미 대륙컵 트로피를 가져와 팬들의 오랜 염원을 이뤄준 역사적인 날이라 팬들은 공항에서 선수들을 마중했다.
“하비에르! 네가 해낼 줄 알았어! 난 널 믿고 있었다고!”
“어이! 앙헬! 여기 좀 봐봐! 너 보려고 다섯 시간을 달려서 왔어!”
“디에—-고! 사랑한다!”
주장인 하비에르 카세로를 필두로 뒤이어 선수들이 공항을 나와 밖에 있는 퍼레이드 카에 올랐다.
“와.”
“구단에서 돈 좀 썼는데?”
퍼레이드 카는 2층이었다.
1층은 일반좌석이었고 2층은 오픈된 공간으로 팬들과 인사할 수 있게 개조되어 있었다.
“유—-!”
뒤이어 퍼레이드 카에 올라타려는 유지우를 부르는 앳된 목소리.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가르델 로마노였다.
고개를 돌려 본 그곳엔 휠체어에 탄 딕 로마노를 비롯해 로마노 패밀리가 있었다.
“우승 축하드려요!”
유지우는 잠깐 코치진에게 말하고 크로스백에서 유니폼을 꺼내 가져갔다.
“경기에서 뛴 유니폼은 아니지만, 받아줄래?”
“와아아아아! 감사해요! 정말 감사해요!”
감사 인사를 하는 가르델 로마노에게 웃어준 뒤에 딕 로마노의 손을 잡아줬다.
“이 정도면 약속 지킨 거죠?”
리그 우승을 한 뒤에 병실을 찾아가서 한 약속.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할 테니까 가족분들이랑 보러오세요.’
그 약속을 제대로 지켜냈다.
“아주 훌륭히.”
“가보겠습니다.”
“고마워, 이 늙은이 마지막 소원 들어줘서.”
“마지막이라뇨.”
“…….”
“앞으로 제가 보카 주니어스 출신으로서 어디까지 올라가는지 보셔야죠.”
그 말을 하고 퍼레이드 카에 올라타는 유지우를 보며 딕 로마노는 웃음을 지었다.
“너희가 부럽구나.”
자식들은 의아해했다.
“왜요?”
“앞으로 유를 더 많이 볼 수 있으니까.”
조금만 젊었더라면 지금껏 본 선수 중에 가장 빛나는 선수의 활약을 더 오래 지켜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피어올랐다.
“그런 말씀 마시고 앞으로는 저희랑 같이 지켜봐요.”
“…….”
“유가 보카라는 둥지를 벗어나고 어디까지 날아오를지.”
그날 보카 주니어스의 연고지인 부에노스 아이레스 라보카 지역은 보카 주니어스의 금빛 물결이 거대한 파도가 되어 가득 뒤덮였다.
* * *
【 보카 주니어스!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 역사적인 트레블을 달성하다! 】
【 세바스티안 란첼라, “나를 믿어준 보드진과 우리 선수들이 자랑스럽다! 오늘은 보카 최고의 날로 기억될 것이다!” 】
【 남미 클럽 역사상 최초 트레블의 보카 주니어스!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다! 】
【 ‘보카의 황제’ 유, “이적하겠습니다.” 】
코파 리베르타도레스를 우승하자 보카 주니어스 구단 사이트는 물론 공식 커뮤니티 사이트는 서버 다운 직전까지 갔다.
[남미 클럽 역사상 최초 트레블을 달성하다니! 이건 평생 누구도 이룰 수 없는 업적이라고!] [작년에 아쉽게 놓쳤을 때는 너무 슬퍼서 눈물이 났는데 지금은 너무 기뻐서 눈물이 나.] [마침내 내가 사랑하는 보카가 남미 최고의 클럽이 됐어, 그냥 최고가 아니라 역사상 최고가 됐다고!!!] [하비에르와 앙헬! 그리고 보카 3대장 녀석들이 보카를 남미에서 제일 높은 곳에 올려놨어! 난 그 녀석들 집 방향으로 매일 기도할 거야!] [근데 정말 유가 이적하는 걸까?] [원하는 것을 다 이루면 떠나겠다고 작년부터 말했었잖아. 아마 떠나지 않을까.] [난 그가 떠나지 않았으면 해, 팬 서비스면 팬 서비스, 실력이면 실력, 보카의 자랑이 바로 유니까!]댓글 반응은 엄청났다.
새로운 글들이 초 단위로 올라왔고 거리의 펍들은 연신 사람들이 몰려 자리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유! 유! 유!!! 고오오오오오올! 유가 선제골을 넣으며 보카가 앞서가기 시작합니다!]TV에서 나오는 결승전 재방송을 보며 사람들은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열띤 반응을 보였다.
“봐도 또 봐도 왜 이렇게 설레냐.”
“그야 그동안 누구도 이루지 못한 걸 해냈잖아.”
“하하하하하! 하긴! 리버 녀석들 아주 죽으려고 하더라!”
“리버 녀석들 반응만 보면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르다니까! 하하하하!”
리버 플레이트는 보카 주니어스가 트레블을 달성하자 배가 아파 죽으려고 했다.
-삐익! 삐익! 삐이이이이익!
종료 휘슬이 울린 후에 선수들이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마치 현장에 있는 것처럼 큰 목소리로 클럽 응원가를 불렀다.
“오늘은 실컷 마셔! 내일이 없는 것처럼!”
그리고 술을 마시다 보니, 문뜩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유는 어느 클럽으로 갈까?”
유지우의 이적이었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이적하겠다고 한 뒤라 사람들의 관심사는 유지우의 차기 행선지에 쏠려 있었다.
“난 유가 더 오래 우리랑 있으면 했는데.”
“그러니까.”
“한 시즌만 더 있으면 안 되나.”
“그러면 좋겠지만… 이렇게 고마운 선수한테 우리 욕심을 강요해서는 안 되겠지.”
한 시즌 최다 공격 포인트를 비롯해 여러 기록을 세우고 역사상 첫 트레블의 주역이 된 선수.
유지우는 보카 주니어스 유니폼을 입고 이룰 수 있는 모든 걸 이뤄냈다.
“하아. 술이 달다가 쓰다가 한다.”
우승한 기쁨으로 달콤했던 술이 에이스의 이적 소식을 듣고선 세상 그 어떤 것보다도 썼다.
“나도 마찬가지야.”
그건 단 한 사람만 느끼는 게 아니었다.
보카 주니어스를 사랑하고 유지우를 사랑하는 팬들 모두가 똑같은 감정이었다.
“…그날이 오지 않았으면.”
* * *
제일 바쁜 건 구단 운영팀이었다.
매일같이 선수 문의 전화가 빗발쳤고 유지우를 원하는 클럽이 줄어들기는커녕 계속 늘어났다.
“이번에는 어디예요?”
“바이에른 뮌헨.”
“그러면 유럽 5대 리그에서 제안이 다 온 거네요?”
바이아웃 조항이 있더라도 선수와 협상하려면 구단에 알려주는 것이 당연해서 보카 주니어스 운영팀의 전화는 쉴 새 없이 울렸다.
“그런데 아직 유는 어디로 갈 건지 우리한테 언급도 안 해주고 있잖아.”
“유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요?”
그들은 유지우의 생각을 전혀 읽을 수가 없었다.
“에이전트는 유럽으로 가서 여러 클럽과 접촉 중이라던데 아직 확실하게 알려진 게 없어.”
그래서 구단에선 에이전트인 차명훈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했다.
“빅클럽들은 대부분 제안하지 않았어요?”
“어, 맞아.”
“음…. 그럼 미스터 차가 유럽으로 간 게 제안한 클럽들과의 연봉 조율 때문일까요?”
“그럴 가능성이 크지. 바이아웃 조항이 있어서 이적료는 조율하지 않아도 되지만, 선수는 연봉을 조율해야 하니까.”
해외에서 영향력을 가진 클럽들의 제안은 이미 다 와 있었다.
차명훈이 굳이 유럽을 힘들게 오가는 이유는 새로운 클럽이 아니라 제안이 온 클럽들과 계약 조건을 협상하기 위해서였다.
“유가 이번에 떠나더라도 언젠가 보카에 돌아왔으면 좋겠어요….”
“나도.”
“저도요.”
“다 그럴걸요.”
보카 주니어스의 에이스이자 새로운 시대를 이끈 신세대의 리더.
단시간에 엄청난 행복을 안겨준 그가 떠난다는 소식은 구단 직원들을 슬프게 했다.
* * *
나는 우승한 뒤에 파티와 여러 행사를 다니며 시간을 보냈다.
“흠흠.”
“……?”
“뭐 좀 물어봐도 되겠니?”
“그럼요.”
여느 때와 같이 저녁을 먹던 중.
아버지가 비장한 표정으로 입을 여셨다.
마치 큰 결단을 내리기라도 한 듯한 얼굴이었다.
“이적 이야기요?”
“그래!”
다만 난 아버지가 말을 꺼내시기도 전에 무슨 이야기를 하실지 알 수 있었다.
이제껏 이적 관련해서 말을 아끼셨지만, 내가 밖에 나갔다 올 때마다 늘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셨기 때문이었다.
“혹시… 갈 곳은 정했어?”
말투부터 아버지가 조심스러워하는 게 느껴졌다.
가족이라면 그냥 편하게 말씀하셔도 되는데 말이지.
나는 미소를 띠고 답했다.
“몇 군데 접촉 중이긴 해요.”
“그러면.”
내 말을 들은 아버지는 태블릿 PC를 내밀었다.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 맨체스터 시티! 유지우 영입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다! 필드 밖 맨체스터 더비 성사?! 】
【 프리미어 리그, 라리가, 세리에A, 프랑스 리게, 분데스리가! 5대 리그의 제안을 받은 유지우! 행선지는 어디? 】
【 레알 마드리드, 유지우 영입을 위해 어떤 금액을 제시할까? 】
그중에 제일 위에 있는 기사.
아버지가 따로 스크랩한 기사였다.
“맨유랑 시티 중에 고민하는 거야?”
“왜요?”
“아니아니! 그냥 궁금해서! 난 개인적으로 우리 아들이 근본을 찾아갔으면 좋겠구나!”
얼마 전에 어머니한테 맨체스터에 집을 사야 한다고 했던 분이 누구셨더라.
의도가 투명해도 이렇게 투명할 수가 없다.
“유나이티드가 주전 경쟁하기엔 더 낫죠.”
유나이티드가 주전 경쟁하기에는 수월할 테니, 거짓말을 한 건 아니었다.
그곳으로 이적할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하나, 아버지는 내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신 건지 잔뜩 흥분해 소리치셨다.
“그렇지! 시티보단 맨유지! 흐물흐물한 하늘색 유니폼보다 정열의 붉은 유니폼이 너한테는 더 잘 어울려!”
-지이이잉
말문이 트이신 아버지가 한참 열변을 토하던 찰나, 핸드폰이 울렸다.
우리 집안의 또 다른 열성 축구 팬이었다.
“아버지, 잠시만요.”
“…민하니? 걔는 바쁜 애한테 톡을 보내고 있어. 혹시라도 이상한 소리 하면 넘어가면 안 된다!”
아버지의 촉은 정확했다.
요즘 누나는 내게 맨체스터 시티로 이적하면 어떻겠냐고 계속 문자를 보내고 있었다.
자는 시간만 빼고 시티 찬양 글을 보내는 터라 휴대폰이 뜨거울 정도였다.
누나 : 사랑하는 동생~
누나 : 맨유랑 시티가 영입 경쟁에 들어갔다고 하던데.
누나 : 어디 갈지 정했어?
누나 : 그냥! 물어보는 거야! 그냥! 오늘따라 기분이 하늘하늘해서!
우리 가족은 축구에 진심이었다. 그리고 하나 같이 내가 본인들이 좋아하는 클럽으로 가길 원했다.
나 : 시티 오른쪽 윙이 나이가 있으니까 시티가 더 나으려나?
뭐, 이것도 거짓말은 아니다.
유나이티드와 마찬가지로 시티에 갈지는 모르는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누나 : 내 동생이 머리가 똑똑하다니까!
누나 : 축구도 머리가 똑똑한 사람이 잘한다고 하더라!
누나 : 축구의 신이시여! 문어 아저씨가 행복 축구하게 도와주시옵서서!
다만,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내 립서비스에 미친 듯이 톡을 보내는 누나를 보고 있자니… 한숨이 나올 뿐이었다.
‘진짜, 우리 집 혼란하다….’
어쩌다가 한집에 맨유 팬이랑 맨시티 팬이 생기게 된 걸까.
난 세계 미스터리보다 이게 더 미스터리였다.
이러다가 한쪽으로 가게 되면 난리 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