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ien In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13)
필드의 외계인-13화(13/404)
제13화
Quiero quemar el gallinero-!
환호를 지르는 보카 주니어스 팬들 사이에서 알리샤 가족들은 입을 벌리며 놀랐다.
“어머니, 저 아이가 정말 앞집 사는 유가 맞는 거죠?”
제일 먼저 입을 연 건 알리샤의 아들이었다.
“…….”
본 건 한 달 조금 지났지만, 워낙 말이 없고 소심한 아이라 거친 선수들 사이에서 적응하는 게 힘들진 않을까 걱정했었다.
하지만 필드 위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생각하던 것과 전혀 달랐다.
압도적.
이 단어 말고 다른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잘한다고 듣긴 했는데 이 정도일 줄은….”
아들 바보인 유한우에게 잘한다고 듣기는 했지만, 예상한 것보다 수준 높은 플레이에 말을 잃었다.
혹시라도 다른 사람이 아닐까 했으나 옆에서 소리치는 사람을 보면 그건 또 아니었다.
“우리 아들! 아빠 여기 있다!”
이 순간 제일 당황한 사람은 리버 플레이트 U-20 감독이었다.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선수 중 제일 체구가 작은 열여섯의 소년.
경기 초반까지는 경계심이 없었는데 방금 플레이로 생각 자체가 달라졌다.
“에스토반!”
감독은 새로운 지시를 내렸고 리버 플레이트는 수비 강도를 높였다.
퍼—억!
특히 유지우에 대한 압박이 거세졌다.
왼쪽 풀백인 에스토반 루카스는 주심의 눈을 피해 옆구리를 치며 교묘하게 신경을 건드렸다.
계속해서 몸을 붙여서 비비는 더러운 수비에 유지우는 볼을 받기 위해 살짝 라인을 내렸다. 하지만 에스토반 루카스는 포기하지 않고 뒤를 바짝 쫓아왔다.
퍼—억!
부딪치면서 균형을 흔들려고 했지만, 유지우는 다리를 벌려 볼을 흘렸다.
스르르르르륵.
에스토반 루카스의 다리 사이로 흐른 볼.
휘릭.
옆으로 돌아서 가려는데 에스토반 루카스는 손을 뻗어 유지우의 유니폼을 잡았다.
꽉!
“어디 가려고!”
유니폼을 잡아끌면서 힘을 주는 바람에 넘어지고 말았다.
삐—-익!
카드를 줘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지만, 카드는 나오지 않았다.
동료 선수들이 달려와서 항의했고 주심은 카드를 꺼낼 생각이 없어 보였다.
‘슬슬 짜증 나네.’
남미의 축구가 거칠다는 건 들었지만, 예상하던 것과 달랐다.
한국에서 했던 몸싸움은 그냥 애들 싸움처럼 느껴질 만큼.
퍼—-억!
화끈하고.
“XXXX!”
거칠었다.
그렇다고 이 흐름 속에서 가만히 당하고 있진 않았다.
퍼—억!
“으억!”
주심이 보지 않는 사이, 붙은 에스토반 루카스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찔렀다.
“한 가지 알려줄까?”
한국에는 속담이 하나 있다.
“An eye for an eye and a tooth for a tooth.”
“…그게 뭔데?”
“지금부터 보여줄게.”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유지우는 당한 만큼 그대로 갚아줘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 * *
유지우에 대한 압박의 강도를 높이자 초반에 강한 압박으로 고생하던 디에고 로시에게 자그마한 공간이 만들어졌다.
“디에고!”
중앙에서 이어진 패스.
다소 강한 힘이 실려 있었고 디에고 로시는 거기에 발만 가져다 댔다.
툭.
볼이 공중에 무지개를 그렸고 뒤에서 밀착 마크를 하던 수비수의 머리 위로 지나갔다.
감각적인 터치와 화려한 턴.
그 순간 관중석에서 환호가 터졌다.
디—-에—–고!
이름을 연호하는 방식이 따로 있을 만큼 디에고 로시는 보카 주니어스 팬들에게 사랑받았다.
“젠장!”
디에고 로시에게 볼이 가자 리버 플레이트는 혼란에 빠졌다.
어떻게든 막으려고 했으나 디에고 로시는 고개를 들어 패스할 공간을 봤다.
‘저 자식은 진짜 알다가도 모르겠어.’
패스를 줄 수밖에 없는 공간.
그곳으로 달려드는 유지우를 보며 디에고 로시는 왼발로 크로스를 올렸다.
뻐—-엉!
스트라이커 기예르모 다린의 머리 위로 아슬아슬하게 지나가는 크로스.
“…진짜 지독하다니까.”
기예르모 다린은 자신을 미끼로 이용한 디에고 로시를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모두가 실패했다고 생각한 크로스.
“아, 안 돼!!!”
에두아르도 구아린이 반대 사이드에서 올라오는 한 선수를 보고 소리쳤다.
타다다다닷-!
그러나 오른쪽 측면에서 올라오며 탄력이 붙은 유지우의 속도를 따라잡는 건 불가능했다.
빈 곳으로 간 유지우는 크로스를 가슴 트래핑으로 받았다.
트래핑이 부정확해 살짝 옆으로 궤도가 틀어졌고.
“막아!”
자칫 잘못하면 수비수들에게 둘러싸일 상황.
유지우는 수비수들이 달려오는 것을 보곤 본능적으로 몸을 비틀며 뛰어올랐다.
뻐—엉!
바이시클킥.
오른발에 맞은 볼은 오른쪽 구석으로 낮게 깔렸다.
털썩.
유지우는 공중에서 떨어지면서도 볼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고 오른발을 떠난 볼은 골키퍼가 미처 반응할 틈도 없이 골대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철렁.
엄청난 원더골이 나오자 관중들은 물론 보카 주니어스 관계자들도 모두 일어나 열광했다.
– 와아아아아아아아아!
리버 플레이트 U-20이 이길 확률이 76%라고 예측한 경기에서 유지우의 매드무비급 플레이는 사람들을 흥분시키기 충분했다.
* * *
[보카 주니어스 U-20 < 2 – 0 > 리버 플레이트 U-20]전반전이 끝나고 후반전이 시작되면서 리버 플레이트는 어떻게든 격차를 줄여야 했기에 공격적으로 라인을 올렸다.
후반 초반부터 적극적인 공격으로 전반전보다 더 많은 슈팅을 시도했고 골포스트를 빗나가거나 골키퍼의 신들린 선방으로 골로 연결되진 않았다.
‘명심해! 저놈들에게 슈팅 기회는 절대 주면 안 돼!’
라커룸 대화 때, 로돌포 핀티가 그 점을 지적했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만약 골키퍼와 골포스트가 없었다면 이미 10점이 나왔을 만큼 수비 부분에서 실수가 잦았다.
“제길! 야! 그만 좀 뚫리라고! 아, 진짜! 미치겠네!”
후반 10분이 지나면서 니자레노는 결국 폭발했다.
상대 선수가 아닌 동료 선수에게.
“뭐가?”
“뭐가? 뭐가라고 했냐? 그따위로 춤을 출 거면 축구 선수가 아니라 댄서나 해!”
볼이 라인 밖으로 나가서 잠시 멈춘 사이에 두 선수는 언성을 높였다.
“내가 태클로 공격 끊은 것만 해도 세 번이 넘어. 그때 동안 센터백은 뭐 했는데? 볼이 오기만을 기다리냐? 어? 그러면 알아서 볼이 멈춰?”
“이 자식이!”
“성질만 더러운 놈이.”
어린 선수들이라 감정 컨트롤이 되지 않았다.
멀리서 가만히 지켜보던 나의 옆으로 기예르모 다린이 한숨을 쉬며 다가왔다.
“미안하다. 보다시피 엉망진창인 녀석이라.”
“어느 정도 예상은 했어.”
첫 만남부터 지금까지 훈련하면서 느낀 점은 니자레노는 재능만 믿고 까부는 선수였다.
“너 진짜 열다섯 맞아? 나이 속인 거 아니야?”
“얼마 전에 생일 지나서 이제 열여섯이야.”
“…체격만 보면 맞는데, 하는 행동이나 말하는 거 보면 나랑 동갑이거나 더 나이가 많은 거 같단 말이지.”
서로 소통하는 안정적인 공격진과 달리 소통 부재의 수비진은 많이 흔들렸다.
중심을 잡아줄 선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욕심만 더럽게 많은 니자레노는 몇 차례 좋은 수비를 보여주긴 했지만, 수비진을 통솔하는 부분이 부족했다.
번번이 동료 선수들과 호흡이 틀어지며 마찰을 빚었고.
철-렁.
결국 후반 16분에 실점을 하고 말았다.
“하아.”
로돌포 핀티는 고개를 저었고 니자레노는 분한지 주먹을 쥐고 바들바들 떨었다.
[보카 주니어스 2 – 1 리버 플레이트]점수 차이가 한 점 차이로 좁혀진 이상, 결과는 이제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 * *
점수가 한 점 차이로 좁혀지자 리버 플레이트는 볼을 빠르게 돌리며 보카 주니어스 진영을 휘저었다.
뻐—엉!
리버 플레이트 U-20의 빌드업은 짜임새가 뛰어났다.
평소에 얼마나 훈련하는지 그 훈련량이 예상될 만큼 패스 수준이 높았다.
내가 다시 중앙으로 이동해서 막아보려고 했는데 발걸음을 멈췄다.
촤—–악!
세바스티안이 몸을 날려 패스를 차단한 거였다.
그때 세바스티안과 눈이 마주쳤다.
일어나지도 않고 넘어진 상태에서 세바스티안은 발만 움직여 패스를 찔렀다.
“지우!”
강하게 오는 패스를 발아래에 잡아놓자 에스토반 루카스가 기다렸다는 듯이 거리를 좁혔다.
슬라이딩 태클로 볼을 노렸지만, 난 볼의 밑부분을 찍으며 몸 위로 볼을 넘겼다.
오오오오오오!
오른쪽 측면이 열리자 그대로 밀고 들어갔다.
센터백 한 명이 내려오면서 백업을 했고 난 거리가 좁혀지자 헛다리를 짚었다.
왼쪽으로 가는 척하면서 오른쪽으로 가자 센터백은 역동작에 걸리며 가볍게 제쳐졌다.
슈팅 각도는 없었다.
그러면 빠르게 판단을 내려야 했다.
기예르모 다린은 다른 센터백에게 묶여 있었고 나의 시야엔 달려오는 선수가 한 명 보였다.
툭.
몇 초의 판단 후에 나온 컷백 크로스.
수비수들 사이로 지나간 볼은 페널티 박스 밖에서 들어오는 디에고 로시의 앞으로 굴러갔다.
완벽한 슈팅 찬스.
그러나.
디에고 로시는 뒤에서 들어오는 에두아르도 구아린의 태클에 다리가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삐—-익!
주심은 휘슬을 불면서 카드를 꺼냈고 보카 주니어스에게 프리킥이 주어졌다.
“네가 찰래? 넣으면 해트트릭이잖아.”
페널티 박스 바로 밖에서 얻은 프리킥이라 득점할 확률이 높은 위치였는데 디에고 로시는 갑자기 나에게 양보를 해준다고 했다.
“그냥 네가 차.”
“진짜? 후회 안 해? 이거 넣으면 해트트릭이잖아.”
“어.”
“너 설마, 아까 내가 도움 줘서 양보해주는 거야?”
“아니야.”
“아니긴~ 다 티 나거든!”
계속 쫑알거리는 디에고 로시를 무시하고 내 위치로 가서 전광판 시간을 봤다.
89분.
경기가 거의 끝날 시간이라 여기서 추가 골이 들어간다면 사실상 승리를 결정짓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삐익!
주심의 휘슬과 동시에 디에고 로시가 발을 뗐다.
투-웅!
왼발로 왼쪽 구석을 향해 가볍게 차올린 볼.
수비벽을 아슬아슬하게 넘기려고 했지만, 수비벽에 선 선수가 필사적으로 점프를 뛰어 헤딩으로 막아냈다.
아——-!
쏟아져 나오는 탄식.
볼은 선수들이 밀집된 곳에서 벗어나 약간 오른쪽에 서 있던 내 쪽으로 날아왔다.
“에스토반!”
에스토반 루카스가 몸을 날렸고 난 내 앞으로 떨어지는 볼을 땅에 떨어지기 전에 발리슛으로 때렸다.
휘이이이익-!
볼은 강한 힘이 실려 뱀처럼 휘면서 수비수의 옆을 지나 골대 왼쪽 상단으로 향했다.
까-앙!
골포스트를 맞고선.
철렁!
골대 안으로 들어간 볼.
또다시 나온 골에 충격에 빠진 리버 플레이트 U-20 선수들.
침묵에 빠진 리버 플레이트 서포터즈들.
보——카!
이내 터져 나오는 보카 주니어스의 응원가.
“야! 누가 저 꼬맹이 이름 좀!”
“전광판에 이름 뜨잖아! 지우 유! 미스터 유래!”
“지우 유?! 이 자식아! 보카 주니어스에 온 걸 환영한다!”
“해트트릭이라고! 해트트릭!”
지—–우!
“넌 무조건 보카 주니어스에 남아야 한다! 내 전 재산을 털어서라도 연봉 줄게!”
관중들은 금방이라도 필드로 달려올 것처럼 요동쳤다.
‘아발란차(Avalancha).’
눈사태라는 뜻의 말로 보카 주니어스의 시그니처 응원 방식이었다.
그것을 보고 있자 가슴이 요동쳤고 동료 선수들이 골을 넣은 나를 덮쳤다.
이제야 실감이 났다.
내가 축구에 미친 아르헨티나에 왔다는 게.
“이런 미친놈!”
“유우우우우우!”
두근.
즐거웠다.
두근.
축구 하는 게 더 이상 외롭지 않았다.
여기라면 한국보다 행복하게 축구를 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생기자 잠시 잊고 있던 변화가 일어났다.
“어! 야! 유가 웃었어!”
“얘도 감정이 있는 사람이었다고! 로봇이 아니라!”
“올해 안에 유가 웃었으니까 내기는 내가 이긴 거다!”
“거봐! 그렇게 웃으니까 좋잖아!”
재잘재잘 떠드는 소리가 들렸고 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다.
유독 푸른 하늘.
그 하늘 아래 가장 뜨거운 필드.
내가 꿈꾸던 모든 게 있는 이곳에서 조금 더 축구를 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