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ien In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133)
필드의 외계인-133화(133/404)
제133화
유지우의 계약 소식은 아스날 FC 팬들에게도 전해졌다.
아스날 팬 전문 채널인 ‘아스날 TV’는 아스날 팬들 대부분이 보는 인기 채널이었다.
그곳에 유지우의 입단 소식이 업로드되자 커뮤니티는 반응이 쏟아지다 못해 폭발 직전까지 갔다.
[와서 좋긴 한데… 왜 우리한테 와?]그들은 기뻐하는 것보다 놀라는 게 먼저였다.
[쟤 레알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 맨체스터 시티랑 링크됐잖아?]아르헨티나 리그를 제패하고 빅클럽으로 갈 줄 알았던 선수가 갑자기 자신들의 클럽에 온다는 소식이 믿어지지 않았다.
[내가 꿈을 꾸는 건가? 그래, 이런 일이 현실에서 일어날 리 없어, 이건 꿈일 거야. 우리한테 저런 선수가 왜 와? 안 그래? ] [영상을 보니까 실력은 챔스 클럽 가도 될 정도던데? 저런 애가 우리한테 왜 와? 연봉을 많이 주나?]그들도 유지우가 아스날과 링크될 때, 내심 와줬으면 했다.
현재 아스날에는 에이스라고 확신할 선수가 없으니, 에이스가 되어주길 바라면서.
그런데 정작 이적이 정해지자 눈을 비비며 꿈이 아닐까 하고 볼을 꼬집을 수밖에 없었다.
[유가 와주기만 한다면 좋지만…. 왜 사서 고생을 하려고 하지? 우리 클럽에 뭐 볼 게 있다고.]전에도 여러 스타 선수들이 링크됐지만, 결국에는 실패했다.
그중에서 과격한 선수 한 명이.
‘아스날을 갈 바에 자살한다.’
희대의 망언인 ‘아갈자’를 시전하며 많은 아스날 팬들이 분노한 적도 있었다.
그만큼 아스날은 빅클럽들에 밀려 예전의 영광을 추억해야 하는 처지였다.
[맞아, 알고 보니까 주급도 맨체스터 쪽이 많이 불렀다고 하더라.] [우리도 주급 장난 아니게 챙겨주는데? 5만 파운드면 선수단 내 5위 주급이야.]유지우에게 책정된 주급이 적은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건 어디까지나 아스날 내에서였다.
[쟤 맨체스터 갔으면 6만 파운드 넘게 받았을걸?] [진짜? 그런데 그런 곳을 포기하고 우리한테 온 거라고?] [나도 이해가 안 가, 요새 선수들은 다 돈을 보고 가지 않나?]돈이나 명예를 원했더라면 더 나은 선택지가 있었는데 자신들을 선택하자 혼란스러웠다.
[누가 와도 좋으니까… 제발 작년보다 높은 순위 좀 만들어주라.] [유로파 공기만 맡아봐도 소원이 없겠네.] [무패 우승하고 챔피언스 리그도 출전했던 우리가 어쩌다가 유로파 냄새도 못 맡을 정도로 이렇게 망했을까…. 시간을 돌리고 싶다! 진심!] [아르테타 감독이 건강상의 이유로 사퇴하고 뒤에 들어온 니코 키미히 그 개자식 때문이잖아!]아스날은 원래 이렇게까지 추락할 클럽은 아니었다.
미켈 아르테타 감독이 있을 때는 UEFA 챔피언스리그에 출전도 할 만큼 경쟁력이 있는 클럽이었다.
그런데 아르테타 감독이 물러나고 들어온 감독이 문제였다.
‘니코 키미히.’
중소 클럽을 거쳐 아스날의 지휘봉을 잡은 그는 레알 마드리드의 갈락티코 정책을 차용한 제너레이션 정책으로 과감한 방출과 영입을 이어갔다.
그 결과.
목표로 한 챔피언스리그 4강 진출은 고사하고 예선에 탈락하고 말았고.
리그 성적도 6위로 떨어지며 챔피언스리그 출전권도 따지 못했다.
그 뒤로도 니코 키미히는 여러 가지를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했고, 비싼 돈을 주고 데려온 선수들마저 다른 곳으로 탈출하고 말았다.
상황이 악화하자, 니코 키미히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고는 감독직에서 사퇴했다.
‘아스날은 희망이 없는 곳.’
팀을 망쳐놓고 본인 잘못은 없다는 듯한 유체 이탈 화법에 팬들은 격노했고, 그렇게 그는 아스날 팬들로부터 역적이라는 별명을 얻게 됐다.
[그놈 얘기는 그만해, 이름만 들어도 혈압이 올라와.] [아직 안 망했어! 폴 사르가 작년부터 조금씩 바꿔가고 있잖아!] [아니 유가 온다고 혼자서 뭘 바꿀 수 있을 거 같아? 똑같아! 3년 전에 왔던 미첼도 결국에는 못 버티고 바르셀로나로 갔잖아!]세월이 흐르며 과거에 가지고 있던 위닝 멘탈리티는 사라지고 패배 의식만 가득한 곳.
이곳이 바로 ‘아스날 FC’였다.
* * *
아스날에서 지낼 집도 빠르게 해결됐다.
아스날이 골라준 집들은 모두 훌륭했고, 보안도 좋아 그중에서 가장 평수가 큰 집을 선택했다.
“집 리모델링은 구단에서 해드리겠습니다.”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구단주님이 유가 지낼 집에 필요한 건 지원하라는 지시가 있어서요. 거절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몇 번 거절해도 계속 말하길래 이럴 때 너무 거절하는 것도 실례라는 아버지의 말씀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죄송하지만, 부탁드리겠습니다.”
“가족분들도 같이 지내실 건가요?”
“가족들도 자주 올 거긴 한데 같이 사는 건 아버지 한 명입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일정을 마무리하고 제임스 댄은 우리를 호텔에 내려주고 구단으로 돌아갔다.
다만 그렇게 일정이 다 끝난 건 아니었다.
한국으로 떠나기 전, 폴 사르 감독이 식사 자리를 마련해서 그곳에 가야 했다.
“아버지는 같이 안 가세요?”
“가봤자 축구 얘기만 할 텐데 내가 가봐야 방해만 되지. 들어가서 쉬련다.”
“알겠어요.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시고요.”
“…보통 그런 얘기는 아버지 쪽에서 하는 게 맞지 않니?”
“누가 하면 뭐 어때요.”
“뭐, 하긴… 맛있게 먹고 와.”
폴 사르 감독은 아직 이곳의 지리를 모를 나를 배려해 사람을 불러주었고, 덕분에 나는 차를 타고 편하게 약속 장소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음식점은 차를 내리자 곧장 보이는 곳이었는데, 스테이크를 파는 곳이었다.
“어!”
들어가자 나를 알아보는 직원이 있었다.
“유! 맞죠!”
“네. 맞습니다. 여기 폴 사르 감독님 이름으로 예약이 되었다고 했는데 어딘가요?”
“아! 이쪽입니다. 안에 룸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도착한 곳.
그 안에는 폴 사르 감독만 있는 게 아니었다.
현 아스날 주장이자 국내 팬들에게 ‘레장군’이라는 별명으로 잘 알려진.
“어서 와라! 난 데릭 레드먼드다!”
데릭 레드먼드도 함께였다.
2m가 넘는 거대한 체구.
근육질에 마초 같은 느낌이 물씬 나는 그는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내 양손을 잡고 위아래로 흔들었다.
“한국인은 이렇게 인사한다는 데 맞나?”
…맞긴 한데, 왜 이렇게 힘을 줘.
아스날 선수들 자주 부상 걸리는 게 다 이 아저씨 탓이었나?
* * *
주문한 스테이크는 나름 먹을 만했다.
육즙이며 식감이며 아버지의 입맛에 길든 내 입맛에 맞는 거면 진짜 괜찮은 거였다.
전에 아버지랑 간 식당과는 차원이 달랐다.
“잘 먹네. 더 시켜줄까?”
“괜찮습니다.”
데릭 레드먼드는 물끄러미 나를 바라봤다.
“…뭐 묻었나요?”
“아니, 그냥 신기해서. 열여덟밖에 되지 않은 어린 녀석이 그 거친 아르헨티나 리그를 휩쓸다니.”
“레드먼드도 가면 충분히 가능할 겁니다.”
“난 너처럼 다리가 빠르지 않잖아, 오죽하면 감독님이 날 거북이라고 부르겠어.”
데릭 레드먼드는 처음 보는 나에게도 스스로를 전혀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대답했다.
조금의 위선도 없는 그 모습이 내게는 무척 마음에 들었다.
필드에서는 본인 앞에 있는 이들은 다 때려잡을 듯하더니, 사석에서는 다른 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도 보기 좋았고 말이다.
“언제 합류한다고?”
“8일이요.”
“그럼 합류하고 나랑 개인 운동도 같이하는 게 어때? 프리미어리그는 아주 거친 곳이니까 말이야.”
“좋죠.”
“하하하하! 시원해서 좋군! 안 그렇습니까! 감독님!”
“좋지, 너무 좋은데… 자네가 하는 운동을 유한테 똑같이 시키려고 하면 안 돼. 설마 그러려고 했던 거 아니겠지?”
“…….”
“안 된다고 했다!”
“…알겠습니다. ‘데릭 세트’는 한 번만 시키죠, 흐흐.”
“아니 그것도 안 된다니까!”
…대체 데릭 세트가 뭐길래.
나를 두고 아옹다옹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 순간 당황했지만, 이내 웃음이 나왔다.
“푸흡.”
“…거보세요. 감독님, 유도 하고 싶어하는 거라니까요?”
“아니, 유. 열심히 하는 건 좋지만 데릭 세트는….”
우린 그렇게 운동법을 비롯해,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서로 자세한 이야기를 하는 건 처음이었기에 대화 주제는 다양했고, 그중에는 진지한 것도 있었다.
“그런데 바로 공석이던 10번을 받고 부담은 안 돼?”
데릭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내게 물었다.
주장으로서 신인 선수에게 너무 무거운 짐이 간 게 아닐까 걱정이 됐던 모양이다.
10번.
어느 클럽에서나 부담되는 자리긴 했다.
그래서 공석이라도 보통은 다른 번호를 달고 뛰다가 다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난 입단하자마자 10번으로 지정이 됐으니, 부담될 거라고 생각하는 게 당연했다.
“부담은 되지만, 부담보다는 설렘이 더 큽니다.”
“…….”
“축구는 자신감이라고 배웠거든요.”
아르헨티나에서 배운 것.
그건 자신감이었다.
어떤 상황이라도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고 걸 배웠으니까.
내 말을 들은 두 사람은 두 눈이 커지더니, 동시에 웃음이 터졌다.
“뭔 신인이 이렇게 배짱이 넘쳐요? 감독님, 감독님도 선수 시절에 이러셨어요?”
“그럴 리가. 유처럼 이렇게 이야기하는 게 별종이지. 어떻게 열여덟이 이런 소리를 하겠어?”
“…저 앞에 있는데요.”
“그만큼 자네가 대단하다는 이야기야 유. 하하하!”
그렇게 밥을 다 먹고 나오는 길.
밖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그들은 일제히 데릭 레드먼드에게 유니폼을 내밀었다.
“데릭! 사인해주세요!”
“데릭 당신을 여기서 볼 줄이야! 오늘 운이 좋네요!”
데릭 레드먼드는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팬들을 보며 싱긋 웃었다.
사석에서 팬들을 만나는 것에 피로감을 느끼는 경우도 많은데, 그는 그런 내색을 전혀 하지 않았다.
오히려 웃으며 먼저 다가가는 게, 무척 프로페셔널해 보였다.
그리고 어린아이에게는 눈높이를 맞추는 모습에 이 사람의 또 다른 모습을 알게 됐다.
“그런데 여러분들! 우리 신인 안 보여요?”
“신인이요?”
“아, 이런 내가 가리고 있었군! 짜잔!”
나도 183cm로 큰 키인데 2m가 넘는 데릭 레드먼드의 뒤에 있자 가려져서 보이질 않았다.
그리고 나를 본 팬들은.
“유!”
“당신이 아스날로 온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우리한테 와줘서 고마워요!”
“뭐 필요한 건 없어요?”
“여기 명함이요. 혹시 배고프면 우리 식당으로 와요. 아셨죠?”
“사인해주세요! 사인!”
사인 요청을 하는데 막상 해줄 만한 곳이 없었다.
그렇다고 데릭 레드먼드의 유니폼에 하는 건 실례니까.
“사인해드리고 싶은데 어디에 해드려야 할까요?”
“여기요!”
내민 건 그냥 티셔츠였다.
“나중에는 유니폼에 사서 받을게요!”
“감사해요.”
몰려드는 팬들에게 기쁜 마음으로 사인을 해줬다.
아직 아스날 유니폼을 입고 뛴 적이 없는 나를, 벌써 알아봐 주고 응원해준다는 것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으니까.
스스스슥.
한 명.
두 명.
세 명.
어느덧 열 명이 넘어갔고 남은 건 꼬마 아이 한 명이었다.
꼬마 아이는 데릭 레드먼드의 유니폼을 슬쩍 내밀었다.
“어! 그거 내 유니폼인데?”
“…받을 곳이 없어서요.”
시무룩해진 아이를 보자 데릭 레드먼드는 웃으며 말했다.
“자자자! 괜찮으니까 아이가 원하는 곳으로 해줘.”
“감사합니다.”
그리곤 아이가 내민 쪽에 사인을 해줬다.
눈이 마주치자 아이는 초롱초롱한 눈빛을 하다가 이내 눈웃음을 지었다.
“아스날 꼭 우승시켜주세요!”
꽤 큰 목소리로 한 탓에 주변에서도 시선이 몰렸다.
개중에는, 타 팀팬도 있었다.
런던에 있는 축구클럽만 10개가 넘어가니, 식당에도 다른 클럽의 팬들이 있는 거였다.
그들은 아이의 말에 비아냥거리는 말들을 하나둘 뱉었다.
“아스날이? 푸흡!”
“우승해도 토트넘이 먼저지. 우리는 작년에 4위였다고 4위!”
토트넘 홋스퍼의 팬도 있었다.
잉글랜드에서도 가장 치열한 더비 중 하나로 꼽히는 ‘북런던 더비’로 끊임없이 경쟁 구도가 만들어졌던 만큼, 이런 발언에는 예민하게 구는 모양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어린아이가 있는 곳에선 적개심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팬들 사이에 암묵적인 룰인데 말이다.
“저것들이.”
데릭 레드먼드가 주먹을 쥐었다.
상대가 바로 앞에 있더라면 바로 칠 기세였다.
다행히 폴 사르 감독의 제지 덕에 그는 이성을 찾을 수 있었다.
“감독님.”
“조용히 해.”
“…쳇.”
난 우리에게 시비를 건 토트넘 팬들의 말을 가뿐히 무시했다.
그리곤,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괜찮아.”
“예?”
“아까 말했지? 우승시켜달라고.”
“…네.”
아이도 그게 무리한 부탁이라는 걸 아는 듯 목소리가 작아졌다.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한 적은 03-04시즌이 끝이었다.
그 후에도 기회가 있었지만, 현재는 그 기회마저도 없는 실정이었다.
리그 9위.
암울한 성적이, 그들에게 꼬리표처럼 달려있었으니까.
“이름이 뭐야?”
“리카요. 리카 밀스.”
“리카.”
“네.”
“앞으로 아스날이 무시당하는 일이 없도록 최선을 다할게.”
“그, 그러면 우승도!”
리카와 얘기를 하며 시선은 토트넘 홋스퍼 팬들이 있는 곳을 향했다.
“그러려고 온 거야. 아스날과 함께 최고의 자리에 올라가기 위해서.”
“…….”
“그러니까 누가 뭐라고 해도 기죽지 말고 고개 들고 똑똑히 봐, 앞으로 아스날이 어디까지 올라가는지.”
의욕이 생겼다.
아스날의 팬들이 패배 의식에 찌들었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실제로 보니 그게 더 뚜렷하게 보였다.
마치, 예전의 내가 차성인 일파에게 당했을 때처럼.
그들은 바뀌지 않는 현실에 주눅이 들어있었다.
그래서 어깨를 펴게 해주고 싶었다.
누구도 무시하지 못하도록.
“데릭.”
“어?
“우리 이번 시즌 끝까지 올라가 보죠. 아스날을 무시하는 놈들이 고개도 들지 못하는 높은 곳까지.”
지금 실컷 웃어둬라.
31-32시즌이 종료될 때 웃는 건 우리 아스날이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