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ien In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151)
필드의 외계인-151화(151/404)
제151화
국가대표팀은 많은 선수가 거치는 자리였다.
인정받는 선수는 오래 있을 수 있지만, 가치를 증명하지 못한 선수는 도태되는 곳.
어떻게 보면 프로팀보다도 잔혹한 곳이 국가대표라고 볼 수 있었다.
‘…몇몇 형들이 안 보이네.’
본 훈련에 앞서 스트레칭을 하면서 몸을 풀던 유지우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같이 월드컵을 뛴 선수들 몇몇이 보이지 않았다.
주앙 달루트가 과감하게 새로운 선수를 소집한 만큼, 기존 선수들이 제외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와, 유지우 선수 맞지?”
새로운 얼굴.
“우리랑 또래 아니야?”
새로운 환경.
“10대 선수는 유지우 선수가 유일한데요?”
많은 것이 달라진 환경에, 분위기마저 달라졌다.
“제일 가까운 나이대는… 선호지.”
국가대표에 처음 소집된 선수들은 유지우에게 쉽사리 다가오지 못했다.
멀리서 힐끔힐끔 보는 선수들을 발견한 김기하는 피식 웃었다.
“애들이 어째 나보다 널 더 어려워하냐?”
주장인 김기하에겐 다들 잘 다가갔지만, 유지우에겐 다가오지 못했다.
“저야 모르죠.”
“진짜? 난 알 것 같은데.”
“…그게 뭔데요?”
“말해줄까 말까?”
“…안 여쭤볼게요.”
“야, 안 궁금해? 진짜 안 궁금해? 이거 궁금하면 밤에 잠도 못 잘 건데?”
그건 두 사람의 성격 때문이기도 했다.
김기하는 새로 온 선수들이 빠르게 적응할 수 있게끔 유쾌하게 다가가는 반면.
유지우는 새로운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걸 어려워했기 때문이었다.
“근데 민연이 형은 안 보이네요.”
“뭐…. 아쉽지.”
늘 붙어 다니던 듀오가 사라지자 김기하는 아쉬워했다.
“너도 이런 분위기에 익숙해지는 게 좋을 거야. 국가대표는 오직 실력으로 증명해야 하는 자리이니까.”
국가대표로서 경험이 많은 김기하였기에 유지우에게 많은 조언을 해줬다.
이별은 자연스러운 거라고.
“어, 저기 선호 온다.”
차선호.
현 레버쿠젠 주전 미드필더.
유지우보다 두 살 많은 스무 살의 어린 선수이자, U-20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에이스로 활약한 선수였다.
“반갑다! 난 차선호라고 해!”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두 살 많은 선수라 유지우는 깍듯하게 인사했다.
차선호는 친근하게 말을 걸며 편하게 하라고 했지만, 유지우는 언젠가 그러겠다며 거리를 뒀다.
“……?”
한데 차선호는 그런 소리를 듣고도 물러나지 않았다.
가만 보니 손에 뭔가 들고 있는 게, 다른 꿍꿍이가 있는 모양이었다.
“…사인 좀 해줄래? 내 여동생이 사인 좀 받아달라고 해서. 네 팬이야.”
“사인이요?”
“부탁이야. 안 해가면 맨날 찡찡거릴 거 같아서.”
“알겠습니다.”
차선호가 가져온 종이에 사인을 해줬다.
“이럴 게 아니라 유니폼에 해드리는 게 더 낫지 않아요?”
“고마워! 네가 내 목숨을 살린 거야!”
“목숨이요?”
“아, 우리 동생이 축구에 극성이기도 한데 네가 간 아스날의 열렬한 서포터라.”
“구너에요?”
“어…. 내가 있는 레버쿠젠은 응원 안 하면서 다른 클럽만 응원하더라.”
“…선배님의 동생분도 그렇군요.”
“응?”
“아, 저희 집에도 악마가 하나 있거든요. 누나라는 탈을 쓴….”
“…그 마음 알 거 같다. 이따 훈련 끝나고 밥 먹으면서 이야기 좀 더 할까?”
“좋습니다.”
새로운 사람이 오면, 새로운 기류가 생기기 마련.
유지우와 차선호가 새롭게 합류한 대표팀에는, 이제껏 없던 신선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 * *
A매치 첫 번째 경기인 코스타리카전을 준비하며, 선수들은 점차 가까워졌다.
“아스날 생활은 어때?”
유지우는 특히 차선호와 급격히 가까워졌다.
어린 나이에 외국에서 생활한다는 공통점이 있을 뿐만 아니라.
가족 관계를 비롯해 여러 면에서 생각하는 바가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둘은 어느새 형 동생처럼 서로를 편하게 대하고 있었다.
“응, 다들 잘해줘서 좋아.”
“아, 당연히 잘해주겠지! 넌 거기서도 에이스잖아.”
“형도 주전이면서.”
“그런 거 말고 있잖아. 구단 시설이나 지원 같은 거 말이지. 예전에 나황찬 선배님 <나는 솔로로 산다> 나오신 거 봤는데, 진짜 시설이 끝내줬거든.”
“아, 그런 건 확실히 있지. 아르헨티나에는 없었는데, 여긴 마사지만 전문으로 하시는 분이 있거든….”
어릴 적 우상인 나황찬이 프리미어리그에서 뛰었기 때문인지 차선호는 프리미어리그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그동안 궁금했던 걸 물어봤고, 유지우는 자신이 아는 선에서 최대한 답을 해주었다.
“나중에 챔피언스리그에서 만나면 재미있겠다.”
“레버쿠젠이, 챔스에 올 수 있던가…?”
“이게. 공손한 척하면서 실제로는 막말하고 있네? 레버쿠젠도 챔스 갈 수 있거든! 너네도 지금 챔스 못 가면서 무슨 소리야!”
“우린 리그 3위인데.”
“…그렇게 순위가 높았냐?”
“그래서 레버쿠젠은 몇 등?”
“…아무튼 우리도 갈 수 있다고! 내가 그렇게 만들 거야!”
차선호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허황된 소리는 아니었다.
실제로, 그는 레버쿠젠에서 중요한 역할을 받으며 중용 받고 있었으니까.
‘10경기 출전 2골 4 어시스트.’
그리고 기대에 걸맞은 뛰어난 성적을 내며 차세대 에이스라는 걸 증명하는 중이었다.
“그럼 이건 어때?”
“응?”
“레버쿠젠에서 레전드로 남는 대신 우승은 영원히 못하기. 아니면 여러 팀을 옮겨 다니는 대신 좋은 커리어 쌓기. 둘 중 뭐가 좋아?”
“어… 그거면….”
“…이 형 레버쿠젠에 충성심도 별로 없네.”
“아니. 얘기가 왜 그렇게 돼!”
유지우와 차선호가 그랬듯, 새롭게 선발된 선수들은 서로에게 익숙해지며 점차 친근감을 느끼고 있었다.
한편, 대한민국의 축구 국가대표 감독인 주앙 달루트는 밤낮을 지새우며 여러 전술을 구상하고 있었다.
“흐음.”
주앙 달루트는 코치진들과 분석실에서 새로운 선수들의 데이터를 띄워놓고 경기 영상을 살펴봤다.
선발할 때부터 장단점에 대한 분석을 끝냈지만, 훈련하면서 새롭게 발견한 부분을 전술에 녹이기 위함이었다.
‘아직 호흡이 맞지 않긴 해도 훌륭한 그림이 만들어지긴 하겠어.’
A매치를 준비하면서 선수들의 경기를 수십, 수백 번은 살펴봐서 선수들의 장단점이 머릿속에 선명하게 기억되어 있었다.
“유와 차의 조합은 기대가 됩니다.”
코치진들도 대부분 기대하는 조합이었다.
유지우가 데뷔하기 전부터, 차선호는 연령대 대표팀은 물론 대한민국의 희망이라고 불려온 선수였으니까.
“차는 오른쪽 윙과 왼쪽 윙까지 소화가 가능한 선수입니다.”
“레버쿠젠에서는 오른쪽이랑 왼쪽, 윙으로만 기용되고 있으니, 그쪽으로 출전을 시키는 것이 좋아 보입니다.”
“공격형 미드필더로서는 아직 아쉬운가요? U-20 월드컵에선 괜찮았잖아요.”
“메이킹 능력은 있지만…. 아직 부족한 점이 있습니다. 압박받으면 판단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있으니, 비교적 압박을 받지 않는 윙으로 배치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의견을 끊임없이 주고받았다.
“그렇다면.”
주앙 달루트는 수많은 의견 사이에서 하나의 결론을 도출해냈다.
“유의 배치를 살짝 바꿔보는 건 어떻습니까?”
“유의 배치를요?”
코치진들은 주앙 달루트가 유지우를 어떻게 기용할 것인지에 대해 듣고서 작게 감탄했다.
* * *
대한민국 vs 코스타리카.
경기 당일.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은 만석을 기록했다.
– 와아아아아아아!
수만 명의 관중이 내뿜는 환호성은 주변 일대를 울렸다.
[대한민국 1 – 0 코스타리카]전반전이 시작하고 25분 만에 유지우의 스루패스를 받은 강예수가 골망을 흔들며 기선을 잡았다.
[오늘 유지우 선수가 공격형 미드필더로 출전하면서 많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공격형 미드필더로 뛴 적은 몇 차례 있지만, 경기 처음부터 뛰는 건 거의 처음 아닙니까?]주앙 달루트는 유지우를 아예 처음부터 공격형 미드필더로 출전시켰다.
프리미어리그에서 충분히 공격형 미드필더로서의 가치를 증명했지만, 국가대표에서는 데이터가 많지 않았다.
그래서 아스날과 달리 자신을 지원해줄 선수가 없어도 그 실력을 보일 수 있을지 확인이 필요했다.
[아–! 강예수 선수가 달려갔지만, 아쉽게도 볼이 라인 밖으로 나가는 게 빨랐습니다!] [유지우 선수가 공격형 미드필더 위치에 있으니까 확실히 다양한 패스가 많이 나오네요.]유지우는 황우식 – 석태훈, 두 명의 공격수들의 뒤에서 2선을 지배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너무 들어가지 말고! 나와!”
유지우는 강한 압박 속에서도 안정적으로 볼을 보호하면서 경기를 운영했다.
“왼쪽 사이드로!”
선수들이 고립되어 어쩔 줄 몰라 하면 뒤에서 지시를 내리며 대한민국의 공격을 이끌었다.
촤—악!
게다가 주앙 달루트가 주문한 전방 압박까지.
유지우는 코스타리카 선수들이 나오지 못하게 만들었고, 대한민국 수비진이 수비하기 편하게 해줬다.
‘그렇지!’
주앙 달루트는 벤치에서 조용히 주먹을 쥐었다.
그렇게 전반 종료 직전.
– 와아아아아아!
세 명의 선수에게 압박받던 유지우가 볼을 잡고 라 크로케타로 압박을 벗어나자 관중석에서 환호성이 나왔다.
[이거죠! 유지우 선수는 프리미어리그에서도 볼을 빼앗기지 않기로 유명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턴 오버를 하지 않는 선수! 감독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는 선수입니다!]경기 중 턴 오버는 아직 기록하지 않았다.
그만큼 볼 보호 능력이 탁월하다는 얘기였다.
스르르르륵.
압박을 벗어났지만, 한국 선수들이 침투할 타이밍이 안 보이자 볼을 발바닥으로 끌며 선수들의 타이밍을 만들어줬다.
투—웅!
전방의 선수들이 수비에게 고립되어 있자 오른쪽 측면으로 침투하는 선수에게 로빙 패스를 보냈다.
[유지우 선수가 오른쪽으로 길게! 차선호 선수입니다! 차선호 선수가 잡고 깊숙하게! 골라인 쪽으로 몰고 갑니다!]차선호는 직접 돌파로 만드는 것보다는 주변 선수들을 이용하는 이타적인 플레이를 선호하는 유형의 선수였다.
“형!”
훈련하면서 그런 점을 알고 있던 유지우는 빠르게 차선호가 패스를 줄 수 있는 위치로 이동했다.
툭.
짧게 대각패스를 보내주자 유지우는 노룩으로 원터치 크로스를 올렸다.
페널티 에어리어 안에서 짧게 올린 크로스는 수비수들의 키를 아슬아슬하게 넘겼다.
[유지우 선수가 볼을 페널티 에어리어 안으로!]톡 찍어서 올려준 크로스를, 수비수들 사이에서 타워처럼 튀어나온 황우식이 마무리 지었다.
철렁.
정확하게 이마에 맞으며 강하게 골망을 흔들었다.
[황우시이이—-익! 강력한 헤더로 코스타리카의 골문을 열어젖히며! 대한민국의 두 번째 골을 신고합니다!] [이 골로 유지우 선수는 전반전에서만 2개의 도움을 기록하네요…. 정말 어느 포지션에서 서도 유지우 선수의 존재감은 확실합니다.]공격형 미드필더로 출전한 유지우는 윙포워드 때랑은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주앙 달루트의 입가가 호선을 그렸다.
‘대한민국에 이런 선수가 있다는 게 정말 큰 축복이지.’
그리고 유지우는 사전에 약속한 대로 전반 45분만 소화했다.
그 후에 진행된 후반전에서 차선호의 패스를 받은 강예수가 한 골을 추가하며 3 – 0의 스코어로 경기는 종료됐다.
[대한민국 3 – 0 코스타리카]새로운 세대로 구성된 대표팀은 코스타리카를 큰 점수 차이로 격파하며 더 높은 곳으로 갈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줬다.
* * *
【 대한민국 vs 코스타리카! 3 – 0 완승! 】
【 주앙 달루트, “우리는 새로운 길을 봤다.” 】
【 ‘명불허전!’ 유지우, 2개의 도움으로 승리에 기여하다! 】
【 놀라운 경기력! 대한민국! 일본과의 경기에서도 승리를 거둘 수 있을까? 】
A매치 두 번째 경기는 한일전이었다.
대한민국과 경기는 일본에서도 화제가 됐다.
연령대 대표팀이 아닌 성인 대표팀으로서는 무려 3년 만에 성사된 매치라 관심이 집중됐다.
그래서 일본 축구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하루가 멀다고 댓글들이 계속해서 업데이트됐다.
[대한민국이면 지우 유의 원맨팀 아닌가?] [아시아 최고는 우리 일본이야. 대한민국 따위에 질 순 없지.] [지우 유가 잘한다고 하지만 우리한테는 나카무라가 있어!] [작년 라리가 어시스트 5위! 나카무라 겐키! 지우 유보다 유럽 경험이 더 풍부하고 UEFA 유로파에도 나가니까 더 이름값이 있지!]그들이 얘기하는 선수는 나카무라 겐키.
26세.
스페인 라리가 세비야 소속.
패스가 주무기인 중앙 미드필더.
일본의 전체적인 빌드업을 책임지는 선수였다.
[지우 유는 솔직히 주변 선수들이 도와주지 않으면 활약하는 거 어렵지 않나? 지금까지 경기를 보면 주변 동료들 덕을 본 게 절반 이상이야.]그들은 자연스럽게 자국의 선수인 나카무라 겐키를 올려치기 했고, 타국 선수인 유지우는 내려치기를 했다.
그도 그럴 게, 나카무라 겐키는 인품도 훌륭하고 아시아 축구선수 중에서도 인기 투표를 하면 상위권에 뽑히는 선수라 일본의 자부심이었다.
그래서 일본 국민들의 관심은 점점 커졌다.
유지우 vs 나카무라 겐키.
이번 경기 중 이기는 선수는, 아시아 최고의 자리에 당당히 이름을 올려놓을 수 있을 테니까.
* * *
그날 밤.
훈련이 끝난 선수들은 각자 쉬었고, 김기하는 룸메이트인 차선호와 방에서 음료를 마시며 얘기를 나눴다.
“내일 기대 되지 않아?”
“일본전이요?”
“우리 팀 에이스가, 일본을 박살 내는 거.”
차선호는 그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최근에 본 유지우의 모습.
그리고 실제로 코스타리카전에서 호흡을 맞추며 느낀 경험을 토대로 보면.
“솔직히 나카무라 겐키가 잘하긴 하지만 지우만큼은 아니죠.”
유지우가 더 뛰어났다.
“아! 너 나카무라 겐키랑 뛰어봤었지?”
“아시안게임에서 일본 와일드카드로 합류했었잖아요.”
차선호는 이미 나카무라 겐키와 경기를 해본 경험이 있었다.
26세에 라리가의 5대 클럽 중 하나인 세비야의 주전으로 뛰는 선수.
실력도 뛰어나서 아시안게임에서 고전했었다.
“확실히 인성도 좋고 축구도 잘하긴 해요. 일본 대표팀 에이스라고 불리는 이유도 알겠고.”
“……”
“근데 지우를 경험해보면 평범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자세히 얘기해 봐, 어떤 점이?”
“나카무라 겐키는 사람인데 지우 걔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에요.”
“그러면 어디 사람인데?”
차선호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걔…. 외계인 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