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ien In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17)
필드의 외계인-17화(17/404)
제17화
“…….”
아르헨티노 주니어스 U-20 감독은 유지우의 플레이를 보곤 말을 잇지 못했다.
16세밖에 되지 않은 어린 아시아 선수.
남미 선수들과 비교하면 왜소한 체구라 적절한 압박만 가하면 나가떨어질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퍼—-억!
왜소한 체구지만 무게중심을 낮춰 강한 몸싸움에도 버티는 영리함과 스피드를 갖췄다.
감독이 턱을 쓸며 생각에 잠길 때, 수석코치가 유지우를 보며 넌지시 말했다.
“플레이 스타일이 이쪽이죠?”
코치가 말한 ‘이쪽’은 남미 스타일이라는 거였다.
틀에 박혀 있지 않은 자유롭고 화려한 개인 능력으로 기회를 창출해 팀을 승리로 이끄는 것을 보니, 남미 스타일이 맞았다.
‘우리 애들이 이렇게 일방적으로 당할 줄이야.’
현재 수비진은 아르헨티노 주니어스가 5년 전부터 키워온 유망주들이었다.
그들은 곧 2군으로 올라갈 U-20의 자랑이자 팬들 사이에서도 아르헨티노 주니어스의 미래라는 애칭으로 유명했다.
그런 그들의 판단력은 흐트러졌다.
굳건하다고 믿었던 성벽을 허문 단 한 명의 선수 때문에.
퍼—-억!
호흡이 올라오고 급한 마음에 시야도 좁아져 번번이 유지우의 마크를 놓쳤다.
“뭐 하고 있어! 멍청이들아! 정신 차려! 뒷걸음질 치지 말고 들이받으라고!”
한 명이 아닌 두 명.
압박하는 숫자가 늘어났다.
그런데도 그들은 유지우를 잡지 못했다.
‘가만히 좀 있으라고!’
볼을 받기 위해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수비수가 근처에 있으면 빈 곳으로 계속 이동하며 잡아내기 때문이었다.
탁.
유지우가 패스를 잡고 돌아서자 상대 중앙 미드필더 한 명이 소리쳤다.
“저 녀석한테 패스는 없어! 에워싸!”
패스가 없다는 말에 세 명이 함께 동시에 압박했지만, 유지우는 좁은 지역 드리블에 특화된 선수였다.
휙.
휙.
두 번의 고갯짓으로 압박하는 선수들의 움직임을 보곤 판단을 내렸다.
왼쪽으로 몸을 돌리는 척하면서 반응을 빼앗은 뒤에 오른쪽으로 도는 바디 페인팅에 한 명이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다.
툭.
그 뒤에 있던 다른 선수의 다리 사이로 볼을 보내며 뒤로 돌아가는 플레이까지.
아무리 압박을 늘려도 어떻게든 빈 곳을 찾아서 드리블하는 모습에 사람들은 충격을 금치 못했다.
“저 꼬마는 미쳤어. 미친 게 아니면 저 나이에 저런 플레이가 말이 되나?”
아르헨티노 주니어스 감독은 애써 현실을 부정했다.
자신의 팀이 약한 게 아니라 상대가 미친 거라고.
철렁-!
골망이 다시 흔들리자 보카 주니어스 U-20 벤치에서는 열광했고 아르헨티노 주니어스 U-20 벤치에서는 침묵했다.
“하아.”
“…우리 스카우터들은 뭘 하는 걸까요. 저런 선수를 안 찾아오고.”
“잘하긴 하지만 분명한 단점은 있어.”
“아! 패스가 없다는 거죠.”
전반전이 다 흘러간 지금까지 유지우는 동료들에게 패스를 잘 하지 않았다.
하는 패스라곤 드리블이 막히면 그때 뒤로 돌리는 패스가 전부였다. 즉, 결정적인 패스를 하지 못하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다.
그 부분을 공략하면 될 줄 알았는데 유지우는 오히려 그 부분을 이용해 아르헨티노 주니어스의 수비 밸런스를 무너트려 자신이 아니더라도 다른 선수 쪽으로 찬스를 살려주는 플레이 메이킹 능력 또한 보여줬다.
“치명적인 결함을 보완하고도 남을 개인 능력이 있다라…. 보카가 아시아에서 괴물을 데려왔어.”
전반에서도.
후반에서도.
유지우의 돌파는 멈추지 않았다.
돌파 경로를 차단하면서 막으려고 해도 라우타로와 2대1 패스로 가볍게 벗어나니 미칠 지경이었다.
삐—익!
이런 플레이에 맞서는 아르헨티노 주니어스 U-20은 어떻게든 반칙으로 끊어내긴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나한테 몰리면 다른 곳이 빌 거야. 그러면 그곳으로 패스를 보내.”
언뜻 보면 유지우는 패스하지 않고 잦은 드리블 돌파를 하면서 이기적인 성향을 짙게 보이지만, 실상은 그게 아니었다.
그 누구보다도 필드 상황을 세밀하게 살폈다.
‘나한테 붙는다면 그만큼 다른 선수들에게 기회가 만들어진다.’
무리하지 않았다.
자신이 미끼가 된 상황에서는 다른 선수가 골을 넣으면 되니까.
윙포워드에서 폭발적인 파괴력을 보여준다면 메짤라에서는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는 역할을 수행했다.
그리고 이러한 역할은 라우타로 오르반이 있기에 가능했다.
“알았어.”
그 후에 기예르모 다린도 두 골을 추가하며 점수 차이는 더욱 크게 벌어졌다.
5 – 0.
80분이 지나며 도저히 좁힐 수 없는 점수 차이까지 벌어졌다.
털썩.
아르헨티노 주니어스 U-20 감독은 주저앉았다.
“…젠장.”
아르헨티노 주니어스는 유스에 많은 투자를 아끼지 않으며 심혈을 기울였다.
톱 팀이 1부 리그에서 강등당해 2부 리그 신세라 어린 자원들을 키워 1부로 올라갈 힘을 키우려고 했다.
“…이게 뭐냐고.”
하지만 그들의 다짐은.
뻐——엉!
아시아에서 온 유망주에게.
철렁!
처참하게 짓밟혔다.
무려 네 명의 선수를 홀로 제쳐내고 만드는 골에 아르헨티노 주니어스 U-20 선수들의 의욕은 완전하게 꺾여버렸다.
“찌우!”
“너 보려고 여기까지 왔다고! 여기 좀 봐줘!”
“유우우우우우우!!!”
유지우는 폭발적인 응원을 보내주는 보카 주니어스 팬들이 있는 관중석으로 가 그 앞에서 양팔을 쭉 펼치며 섰다.
그 모습이 마치 예수상처럼 보였다.
세리머니를 본 팬들은 더 열광했다.
“저놈은 대체 어디서 나타난 거야?”
아르헨티노 주니어스 팬들은 충격에 빠졌다.
왜소한 체격.
어린 나이.
험악한 남미 축구에서 살아남기는 어려운 신체 조건이었다.
스윽.
유지우의 등번호를 본 어느 관중이 넌지시 말했다.
“왠지 그가 떠오르지 않아?”
“누구?”
“디에고 마라도나.”
그들은 유지우를 보고서 축구의 신을 떠올렸다.
* * *
아르헨티노 주니어스와 경기가 끝나고 2월과 3월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연습 경기를 비롯해 총 6경기를 치렀고 결과는 ‘전승’이었다.
5경기 출전 15골.
결정적인 패스를 하지 않아 도움이 하나도 없었지만, 한 경기당 평균 3골을 넣었다는 건 엄청난 기록이었다.
“꾸준히 좋은 활약을 보여주는 것을 보니, 미니 엘 수페르클라시코에서 보여준 실력은 운이 아니었군요.”
2군 관계자들은 U-20의 영상을 보며 유지우의 활약에 감탄했다.
영상이 끝나자 상석에 앉아 있는 한 사람이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보카 주니어스 2군 감독 가브리엘 밀리토였다.
“나이가 열여섯이라고 했죠?”
“맞습니다.”
“7월에 2군으로 올리죠. 저 실력이면 공격 자원으로 쓸 만하겠네요.”
“단장님이 허락하셨습니까?”
“유를 2군으로 올리는 건 제 권한으로 하라고 하셨습니다.”
보카 주니어스 2군은 3부 리그 ‘프리메라 B 메트로폴리타나’에 소속되어 있었다.
“…하지만 단점이 있네요.”
코치 중 한 명이 영상을 보다가 눈에 띄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어떤 거죠? 델핀 코치?”
그는 2군 수석코치 델핀 베르토니였다.
60세의 나이, 현 2군 관계자 중 경력이 제일 많은 사람이라 가브리엘 밀리토 감독도 함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패스 빈도가 낮고 돌파 빈도가 높습니다. 개인이 볼을 소유하는 시간이 길다는 거죠.”
“…….”
“프로들이 뛰는 상위 리그에서 저 스타일이 계속해서 통할지 의문입니다. 현대 축구는 볼 소유 시간을 줄인 패스 위주의 플레이가 주가 되고 있으니까요.”
“저도 그 부분이 걸리긴 합니다.”
“그래도 다른 부분에서 뛰어나니, 2군으로 올려 상황을 보는 것이 좋을 거 같네요. 만약 저 폼에 패스까지 곁들인다면 아주 맛있는 메인디쉬가 될 겁니다.”
유지우는 오른쪽 윙포워드를 비롯해 메짤라를 번갈아 나가며 활약했지만, 패스가 적은 것이 단점으로 꼽혔다.
중요한 기회에서도 패스하지 않고 혼자서 마무리를 하는 모습은 왠지 모르게 외로워 보였다.
‘왜 저런 식으로 플레이를 하는 걸까? 다른 모습을 보면 영리하게 플레이하는 거 같은데.’
패스만 없지 다른 부분에서는 뛰어났다.
볼을 다루는 센스.
동료가 고립되어 있을 때 도와주러 가는 타이밍.
아무리 압박이 많아도 공간을 찾아 돌파하는 개인 능력.
축구 센스는 월등했다.
그러나 이 문제는 고쳐야만 했다.
지금 수준에서는 개인 능력으로 얼마든지 헤쳐 나갈 수 있지만, 상위 리그에서는 말이 달랐다.
3부 리그라고 해도 유스 리그와는 차원이 다른 곳이었으니까.
.
.
.
그 문제로 고민하는 건 로돌포 핀티도 마찬가지였다.
누구보다 유지우의 ‘패스 부족’이라는 단점을 빨리 알았지만, 여전히 해결 방안을 찾지 못했다.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트라우마를 상대하는 건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었다.
연말 파티에서 유한우에게 들은 내용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믿었던 사람들에게 배신당해 다른 사람들에게 믿음을 주는 게 서투른 아이.
그 모습이 필드에서 고스란히 보였다.
화려함 속에 숨겨진 쓸쓸함.
로돌포 핀티의 눈을 속이진 못했다.
똑똑.
“감독님.”
고민하던 그때 감독실로 찾아온 사람은 구단 운영팀원인 다니엘이었다.
“다니엘이 여긴 어쩐 일이세요?”
“그게 유와 관련해서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유요? 무슨 일 있나요?”
곧이어 다니엘의 입에서 나온 말에 로돌포 핀티는 깜짝 놀랐다.
“…정말입니까?”
* * *
“예? 감독님이요?”
훈련 전에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고 있는데 트레이닝 코치가 와서 감독님이 찾고 있다고 말했다.
“바로 감독실로 가봐.”
“알겠습니다.”
건물 안에 있는 감독실로 갔다.
무슨 일로 부르신 거지?
새로운 포지션 때문인가?
이미 포지션은 윙포워드 아니면 메짤라로 굳혀진 거 같은데, 홀딩 미드필더도 실험하시려는 건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걷자 곧 감독실 앞에 도착했다.
똑똑.
“들어와라.”
노크한 뒤에 들어간 감독실에는 구단에 처음 왔을 때 안내를 해줬던 다니엘도 함께였다.
“다니엘 씨, 오랜만입니다.”
“반갑습니다. 유의 활약은 매일 듣고 놀라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다니엘과 인사를 한 뒤에 감독님의 앞자리에 앉았다.
“무슨 일로 부르셨어요?”
“그게 말이다.”
이어서 감독님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귀를 의심하게 했다.
“대한민국에서 U-17 북중미 월드컵에 차출을 요청했다.”
“…대한민국에서요?”
“그래, 오늘 오전에 대한축구협회에서 우리 구단에 공식적으로 요청을 했다. 너를 U-17 엔트리에 포함하고 싶다고.”
뜻밖이었다.
어째서?
나한테?
그딴 식으로 물을 먹여놓고서?
“어떻게 할래? 구단에서 결정은 너에게 맡긴다고 한다.”
“차출 거부 시 징계는요?”
“A대표팀이 아닌 이상, 거부해도 징계는 없다.”
애초에 듣자마자 고민도 하지 않았다. 내 입에서 나올 말은 하나였으니까.
“안 갈래요.”
이제 막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데 국가대표 차출은 부담이 컸다.
그것도 부협회장이 주도해서 만든 선수단이라면 더더욱.
난 갈 생각이 없다.
그 인간이 협회에 있는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