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ien In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18)
필드의 외계인-18화(18/404)
제18화
조국을 대표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명예로운 일이었다.
하지만.
유지우의 입장은 조금 달랐다.
국가대표가 명예로운 자리라는 건 알지만, 자신의 미래를 망치려는 사람들에게 이용당하긴 싫었다.
로돌포 핀티는 유지우가 어떤 대답을 할지 어느 정도 예상했는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
“차출을 거부해도 징계는 없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된다.”
“어떤 게요?”
“네가 욕먹을까 봐.”
국가대표 차출 거부.
프로가 아닌 유스 신분에 있다고 하더라도 예민한 문제였다.
“욕을 먹는 건 익숙합니다.”
로돌포 핀티는 무표정으로 한 말을 듣고선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세상 짐을 다 짊어진 표정이군…. 저 나이에.’
도저히 열여섯의 아이가 지을 표정이 아니었다.
“그리고 구단에서 도와주실 거잖아요?”
“…….”
“차출 거부를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게요.”
유지우는 운영팀 다니엘을 봤고 다니엘은 살며시 웃으며 대답했다.
“맞습니다. 유가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피해가 없도록 조치하라는 지시가 있었습니다.”
“부탁드립니다.”
“물론이죠.”
다니엘은 대답을 한 뒤에 휴대폰을 들어 어디론가 연락을 했다.
“차출 거부 매뉴얼로 준비해 주시면 됩니다.”
다니엘이 이곳까지 온 이유는 유지우가 결정을 내리면 빠른 일 처리를 위해서였다.
“유.”
“예?”
“차출 거부는 언제까지 유지하면 좋겠습니까?”
“제가 1군에서 자리를 잡을 때까지요.”
아르헨티나와 대한민국의 거리는 직항편도 없을 만큼 멀었다.
그런 거리를 대표팀 차출이 있을 때마다 가는 건 어린 몸으로는 무리였다.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아무것도 이루지 않고서 그 거리를 되돌아가는 건 내키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만일 요청이 들어온다면 지금처럼 유에게 물어보고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귀찮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전혀요. 선수를 지켜주는 것 또한 구단이 할 일이니, 신경 쓰지 마세요.”
그날 저녁, 보카 주니어스 측은 대한축구협회에 공문을 보냈다.
‘선수의 개인 사정으로 차출 거부.’
그 후에 대한축구협회에서 무수히 많은 전화가 빗발쳤지만, 보카 주니어스에선 강경하게 나갔다.
“아, 글쎄, 선수 본인에게 문제가 생겨서 차출할 수 없다니까요.”
– “그러니까 그 문제가 무엇입니까?”
“선수 개인 사정을 외부로 발설하는 건 규정에 어긋납니다.”
– “아니….”
“더 할 말이 없으시다면 이만 끊겠습니다.”
다니엘이 전화를 끊자 운영팀장인 세르히오가 커피를 마시며 들어왔다.
“어디 갔다가 오십니까?”
“커피 마시고 왔지, 자 너도 한잔해.”
다니엘은 종이컵을 받아서 한 모금 마셨다.
“하아, 한국에서는 왜 이렇게 유에게 집착하는 걸까요? 전화 한두 통이면 이해하는데, 벌써 열 통이 넘어갑니다.”
세르히오는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유의 재능이 엄청나니까 고집을 부리는 거지.”
“하긴 그렇죠. 아!”
다니엘이 뭔가 떠올랐는지 놀라자 세르히오는 커피를 쏟을 뻔했다.
“으악! 왜 그래!”
“혹시 유가 귀화를 생각하는 걸까요?”
“귀화?”
“예, 가능성이 아예 없진 않다고 봅니다.”
귀화는 까다로운 문제였다.
국적을 바꾸는 건 인생이 바뀌는 문제니까.
“한번 물어볼까?”
* * *
< 대한축구협회! U-17 북중미 월드컵 엔트리 발표! >
< 전구한 감독, “최선을 다해, 최대의 결과를 만들어낼 것.” >
< 독일 레버쿠젠 소속 차선호 발탁! >
< 근본의 차선호, “국가대표 엔트리에 들 수 있다는 건 축복입니다. 최선을 다해 결과를 만들어 내겠습니다!” >
< 아르헨티나 보카 주니어스 U-20 소속 유지우 차출 거부! >
대한축구협회 부협회장실.
“…감히 국대 차출을 거부해?”
차성인 부협회장은 보카 주니어스에서 보내온 공문을 구겨 쓰레기통에 넣었다.
‘나한테 한 방 먹이기 위해서라도 올 줄 알았더니, 다른 꿍꿍이라도 있는 건가?’
차성인이 여러 생각을 하던 그때, 회의실에 있던 누군가 입을 열었다.
“건방진 놈… 기회를 줄 때 잡지 않고 말이야.”
남자는 대한축구협회의 주요 간부로, 차성인과 같은 파벌이었다.
그와 함께 테이블에 앉아있던 이들이 동조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차성인을 따라 협회 내에서 권력을 받은 이들은, 대한민국 축구계가 어떻게 되는지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그저 차성인의 비위를 맞추며 한 자리를 차지하는 게 그들이 바라는 전부였다.
“정말 이대로 괜찮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모두가 한마음으로 유지우를 욕하던 그때.
한 남자가 목소리를 냈다.
차성인에게 직언을 하는 유일한 사람인, 박우근이었다.
“괜찮냐니,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유지우 선수, 억울하게 당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뭐요?”
차성인은 박우근의 말에 버럭 화를 냈다.
옳고 그름을 따지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감춰둔 치부를 들춰내는 박우근이 미워, 성을 내지 않고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박 전무. 그런 말 할 거면 이 자리에서 나가시오. 지금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차성인이 노기가 섞인 음성으로 축객령을 뱉었다.
“그러죠. 저도 이런 자리는 참기 힘들었던 참입니다.”
박우근은 조금도 기죽지 않은 채로, 그대로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저, 저런…!”
차성인은 자신의 말에 기죽지 않는 박우근에 화가 나 소리를 질렀다.
그의 주변인들은 그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얼른 달콤한 말을 뱉었다.
“저거, 영 세상 물정 모르는 놈입니다.”
“처음부터 우리에게 호의적이지 않았잖아요.”
박우근에 대한 이야기도 잠시, 자리에 앉은 한 사람이 구중태라는 이름을 꺼냈다.
“그나저나 구 감독이 이번에 또 일을 하나 쳤다고 들었습니다.”
“저도 이야기는 들었어요. 축구부 부모 한 명이 뇌물 관련 자료를 언론사에 제보했다고 하던데요.”
“KTB 방송국이라고 하던데. 거기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거기 국장이랑 잘 알고 지내거든요.”
자신을 달래는 목소리들에 차성인은 조금씩 안정을 찾았다.
구중태.
그가 저지른 잘못은 차성인 본인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잘못을 저질러놓고도, 유지우에게 죄를 뒤집어씌운 인물.
하나 차성인은 진실이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그에게 중요한 건 구중태가 자신의 사촌 동생이라는 사실이었고, 그렇기에 그 사실은 덮어져야 한다는 것뿐이었다.
“…막을 수 있는 거, 확실하지?”
“물론입니다. 늘 하던 대로 하면 되는걸요. 어려운 것도 아니죠.”
“그래, 그건 부탁할게. 그리고… 조만간 아르헨티나로 떠날 팀이 꾸려졌다고 했나?”
“네, 다음 주 월요일에 출발합니다.”
“팀장에게 아르헨티나에 가면 유지우를 만나보라고 전해.”
“알겠습니다. 그놈도 직원이 직접 가면 적당히 허리를 굽힐 겁니다.”
차성인은 그제야 흡족한 듯 미소를 지었다.
* * *
1승.
2승.
3승.
보카 주니어스 U-20은 착실하게 승리를 쌓아갔다.
그 과정에서 유지우가 출전한 경기는 단 한 경기의 패배도 없었고 팬들 사이에서 별명이 생겼다.
hada de la victoria(승리의 요정)
팬들은 유지우를 요정이라고 불렀다.
“유.”
그러던 어느 날.
로돌포 핀티가 훈련이 끝난 뒤에 유지우와 감독실에서 면담했다.
“훈련 때는 괜찮게 하면서 실전에서 전진 패스는 왜 안 하는 거야?”
후방으로 돌리는 패스는 이제 어느 정도 수가 늘어갔다.
하나, 결정적인 패스는 여전히 나오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알고 있지만, 고쳐지지 않았다.
패스하려고 하면 망설이는 마음이 생겼으니까.
“내가 누누이 말했잖아. 너의 플레이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라도 위협적인 패스를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유지우의 플레이 스타일은 파괴력 있는 돌파가 주가 됐다.
하지만 이런 플레이는 심한 견제를 받게 되면 막힐 확률이 높았다.
지금이야 통할지 몰라도 더 높은 수준의 리그로 올라가면 통하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그래서 로돌포 핀티는 유지우에게 패스 빈도를 높여야 한다고 하는 거였다.
장점을 더 극대화하기 위해서라도.
“…노력해 보겠습니다.”
씁쓸한 표정을 짓는 유지우를 보자 로돌포 핀티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뭐, 넌 아직 어리니까 서서히 고쳐가면 되니 벌써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만 나가봐도 돼.”
로돌포 핀티는 내심 아쉬웠다.
‘지금도 충분히 1부 리그에서 통할 재능이긴 하지만 패스까지 갖춰지면… 더 높은 곳을 바라볼 수 있을 텐데, 아쉬워.’
* * *
집으로 가는 차 안.
차명훈이 운전을 하며 물었다.
“여전히 패스 때문에 고민이 많으시죠?”
“…네.”
“조급해하지 마세요. 언젠가 ‘예전’처럼 패스할 수 있지 않겠어요?”
예전이라는 말에 살짝 놀랐다.
“예전이라면.”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요.”
“알고 계셨어요? 제가 어떻게 뛰었는지?”
“지우 선수를 만나기 전부터 지우 선수의 영상을 찾아봤죠. 구하기 힘든 자료까지 전부 다요.”
머릿속으로 그 시절을 떠올리다 보니 집에 도착했고 차명훈이 무언가를 보고 당황했다.
“어라? 지우 선수, 집에 손님이 온다고 했나요?”
응?
우리 집 쪽이 시끄러웠다.
휙!
아버지는 대문에서 바구니에 든 하얀 무언가를 바닥에 뿌리며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썩 가세요! 그쪽들이랑은 할 말 없으니까!”
아버지가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의 앞에 뿌리던 하얀 건 소금이었다.
“그, 그러지 말고 아버님! 유지우 선수를 한 번만 보고 가겠습니다.”
“아니! 글쎄! 협회 사람들이랑 할 말 없으니까 가라니까요!”
“아버님!”
“지우가 차출 거부한다니까 똥줄이라도 타는 거요?”
아버지는 평소 뭐든 괜찮다고 웃으며 넘어가는 능구렁이 같은 사람이지만, 한 번 화가 나면 독을 잔뜩 품은 독사가 되어버린다.
“아버지?”
내가 다가가자 시선이 나에게 쏠렸다.
“어! 지우야! 얼른 집에 들어가. 이 사람들 상대할 필요도 없다!”
“예.”
검은 양복을 입은 한 사람이 다가왔다.
“유지우 선수?!”
“네, 맞는데요?”
스윽.
“전 이런 사람입니다!”
명함에는 직책과 이름이 있었지만, 어차피 안 볼 사람이니까 제대로 확인도 안 하고 그냥 주머니에 넣어버렸다.
“다름이 아니라 U-17 북중미 월드컵 엔트리 차출을 다시 생각해보실 수 없을까 해서….”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난 아버지 옆으로 갔다.
“이미 제 결정은 구단에서 협회 쪽에 보낸 걸로 아는데, 아닌가요?”
“그게….”
공문을 보냈다면 그걸로 끝이었다.
이렇게 선수 개인의 집에 와서 따지는 건 선을 넘는 행동이었다.
예전의 나였다면 그냥 웃으며 넘어가겠지만, 이 사람들에게 웃는 낯을 보여주기도 싫었다.
“아버지.”
“응?”
“소금 더 뿌려요. 팍팍.”
“오냐! 내가 고기 간을 하듯이 저놈들도 간을 해버려야 직성이 풀리겠다!”
대한민국 국가대표는 어릴 때부터 내 꿈이었다.
하지만.
축구협회라는 족속들이 이렇게 뻔뻔할 줄은 몰랐다.
내 인생을 망가트리려고 사방에서 압박을 가했으면서 이제 와서 엔트리에 포함이라고?
뭐,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심보도 아니고, 직접 찾아와서까지 이게 뭐냐고.
“저, 저기! 유지우 선수!”
뒤로 돌아서 양복을 입은 사람들을 쳐다봤다.
“부협회장님한테 전하세요. 병풍 역할을 하라는 차출에 응할 생각 없습니다.”
그 인간의 병풍 뒤 장식이 되어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아.”
그리고 마지막 한마디 더.
“차출 거부 이유는 하나입니다.”
거부 이유도 그냥 개인 사정이라고 둘러댔으니 진짜 이유를 말해 줘야겠지.
“눈이 뻐근해서요. 안구건조증인 거 같아요.”
내 대답을 들은 협회 사람들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아버지는 여전히 고기에 간을 하듯이 연신 소금을 뿌렸고 차명훈은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어디 한번 끝까지 가보자고.
당신이 무너질지 내가 무너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