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ien In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181)
필드의 외계인-181화(181/404)
제181화
국가대표는 영광스러운 자리였지만, 동시에 욕을 먹기 쉬운 자리이기도 했다.
열 번을 잘해도 한 번의 실수로 비난을 받는 건 그들에게 익숙한 일이었다.
국가를 대표하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만큼, 사람들은 그 자리에 앉은 이가 그에 걸맞은 모습을 보이길 바랐으니까.
【 대한민국 2 – 1 코스타리카 】
【 주앙 달루트, “승리하긴 했지만, 문제가 보였다.” 】
【 대한민국, 코스타리카에 2 – 1 진땀승. 】
【 새로운 얼굴들의 향연, 대한민국 대표팀에 변화의 바람이 분다! 】
팬들은 코스타리카전이 2 – 1로 승리를 거뒀음에도 만족하지 않고 실수한 부분을 지적했다.
– 아니, 조정후는 대체 왜 발탁한 거야? 저따위로 할 거면 그냥 내보내라.
– 점유율만 보면 우리가 압도적이었음, 네 골은 더 나와야 함.
중원 점유율에서 76 vs 24.
이 차이면 모든 면에서 코스타리카를 압도했다고 봐도 무방했다.
적어도 세 골 이상 차이의 승리를 해야 했는데 한 골 차 승리밖에 못 한 것이 아쉬워 쓴소리가 나왔다.
– 아니 골대 앞에서 볼 좀 그만 돌려라! 수비수야?
– 김기하가 백패스 돌리다가 압박에 걸려서 그대로 실점함….
– 기하야…. 이제 그만 은퇴하고 후배들한테 물려주자, 너 기동력 개판이더라.
– ㄹㅇ 김기하 폼 떨어진 거 다 보이더라.
– 35세면 슬슬 갈 때 아니냐?
– 체력적으로 한계가 온 것으로 보이긴 해.
– 다른 건 이해해도 차선호 안 내보낸 건 이해가 안 되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른쪽 윙으로 나온 권민호보다 100배는 낫다.
– ㄹㅇ 분데스리가 도움 3위를 달리는 녀석을 벤치에서 썩히는 건 뭐 때문이야?
가장 많은 비난의 화살이 향한 곳은 차선호의 기용이었다.
분데스리가에서 21경기를 출전해 4골 10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뛰어난 활약을 보이는 선수인데 벤치에 있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는 여론이 많았다.
– 갓지우 없으면 어제 경기 졌음.
– 마지막 슈팅은 ㄹㅇ 월드클래스가 어떤 선수인지 증명하는 골이었지 ㅋㅋㅋㅋㅋㅋ
– ㅠㅠㅠ 아니 유지우랑 차선호 호흡을 맞추는 게 중요하지 않아? 올림픽에 두 선수 모두 출전하는데 좀 호흡 좀 맞추게 해줘라!
대한민국 축구팬들이 원하는 건 유지우 – 차선호 라인이었다.
아스날의 영웅이 된 유지우.
현 분데스리가 어시스트 3위인 차선호.
이 두 선수의 합을 보려고 기대한 사람들은, 기대하던 그림을 보지 못하자 평소에 축구를 보지도 않으면서 괜스레 감독의 전술을 욕했다.
– 다음 경기는 이것보다는 더 잘 좀 해보자!
* * *
“흐음.”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는 상황에서도 국가대표 감독인 주앙 달루트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마치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듯 평온한 반응이었다.
“유의 컨디션은 어떻지?”
“오전부터 개인 훈련을 할 정도로 좋습니다.”
“다음 경기 선발은 문제없겠군.”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면…. 새롭게 합류한 선수들에 대해 얘기해볼까?”
회의실 화면에 선수들의 프로필이 올라왔다.
새롭게 대표팀에 뽑힌 선수들의 목록이었다.
“테스트 자체는 좋았지만, 아직 부족한 모습이 있긴 합니다.”
“조금만 다듬으면 충분히 경쟁력이 생길 겁니다.”
이번 대표팀 소집에는 새로운 얼굴들이 많았다.
U-20 월드컵 4강 주역들도 있지만, 그 외에 리그에서 폼이 좋은 선수들도 합류했다.
그래서 호흡이 맞지 않는 부분이 여러 군데 보였고 코스타리카전에서 그 문제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카메룬전에서는 안정적인 포메이션으로 나서는 게 어떻습니까?”
“안정적인 포메이션이라면…. 유지우와 차선호를 기용하자는 건가요?”
“네, 그리고 김기하 선수 대신에 이번에 새로 발탁한 김우일도 기용하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중원에서 안정감이 좋은 선수니까요.”
“앞으로 유지우를 더 효율적으로 활용하려면 김우일 테스트를 해야죠.”
코치진들은 여러 얘기를 나눴고 주앙 달루트를 쳐다봤다.
선수 기용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감독의 결정이었다.
그들은 주앙 달루트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답을 기다렸다.
“감독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수석코치의 물음에 주앙 달루트는 고민하다가 말했다.
“다음 경기는 유와 차를 선발로 기용하도록 하지.”
그도 내심 기대했다.
지난 A매치에 보여줬던 두 사람의 호흡을 다시 볼 수 있기를 바라며.
“그러면 이번에는 이렇게 해보는 게 어떻습니까?”
“어떻게 말인가?”
“여기서….”
그렇게 코치진들의 회의는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 * *
“흐—암.”
“입 찢어지겠어.”
“졸려서 그러지, 이상하게 자도 자도 피곤하다.”
유지우와 차선호는 오전 훈련 전에 나란히 식당으로 밥을 먹으러 갔다.
영양은 물론이고 맛이 있기로 소문이 난 국가대표 식당의 밥이라 두 선수는 기분 좋게 식당으로 들어갔다.
특히, 셰프를 아버지로 둔 유지우와 다르게 차선호는 자주 먹을 수 없는 한식을 먹게 되어 한껏 들뜬 기색이었다.
두 선수는 여러 반찬을 양껏 담아 테이블로 갔고, 나란히 앉아서 밥을 먹기 시작했다.
“런던에서도 아버지가 직접 식단 관리해주셔?”
“응, 먹는 건 다 가족들이 챙겨주지.”
“부럽다. 나도 파스타 그만 먹고 싶어….”
“그냥 요리사를 고용해. 돈도 많이 벌면서.”
“그냥 요리사도 아니고 염분이랑 밸런스 맞춘 한식 요리사를 어떻게 구하겠냐. 그냥 먹는 거지.”
“…나중에 아버지한테 부탁해서 반찬이라도 좀 보내줄게.”
두 사람의 이야기는 간단한 근황부터 시작해, 골든보이로 옮겨갔다.
“골든 보이 트로피는 한국 집에 두는 거야?”
골든 보이는 신인상 개념의 상이라 평생 딱 한 번 수상이 가능했기에 어린 선수들이 특히 더 관심이 있었다.
“아니, 다시 가지고 갈 거야.”
“굳이 왜 들고 들어온 건데?”
“협회에서 요청이 와서.”
대한민국 역사를 넘어 아시아 역사에 처음이자 마지막 수상이 될 수도 있어 협회에서는 유지우로 하여금 골든 보이 트로피를 들고 입국하는 걸 부탁했다.
유지우도 크게 부담스러운 요청이 아니라 흔쾌히 응했던 거였다.
“하아, 난 언제 너처럼 상을 받아보냐.”
“형도 하다 보면 받겠지.”
“무슨 개근상처럼 말하고 있네. 그게 한다고 되는 거였어?”
“음… 매일 열심히 훈련하니까 되던데.”
“…너 어디 가서 그런 말 하지 마라. 이래서 천재랑은 말이 안 통해요.”
두 사람이 얘기를 나누며 밥을 먹고 있자 어느새 그들 곁에 자연스레 다가온 사람이 하나 있었다.
국가대표 미드필더, 최남일이었다.
“너희 내일모레 라인업 봤어?”
“어제저녁에 감독님이랑 미팅하면서 선발이라고 말씀해주셨어요.”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라.”
최남일이 말하는 건.
“기하 형, 선발에서 제외됐잖아.”
대표팀 주장인 김기하의 선발 라인업 제외였다.
“…그게 진짜예요?”
유지우는 그답지 않게 눈을 키우며 깜짝 놀란 얼굴을 했다.
마찬가지로 들은 내용이 믿기지 않았던 차선호는 다시 한번 되물었고, 최남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 라인업에 적혀있더라.”
“주장을 선발에서 빼기도 해요?”
“그래서 민연 선배가 주장 완장 차고 뛰기로 했어.”
김기하는 대표팀 주장이었다.
그런데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했다는 건 자칫 선수의 자존심을 건드는 문제로 발전될 수 있었다.
“무슨 얘기를 그렇게 해?”
그때였다.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김기하가 밥을 받아 세 사람이 있는 테이블로 와서 앉았다.
“뭐야, 내 뒷담이라도 한 거야? 갑자기 조용해지네.”
“아니요.”
“그러면 내 선발?”
세 사람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자 김기하는 웃으며 대답했다.
“너무 신경 쓰지 마.”
“…….”
“나도 슬슬 떠날 때가 된 거지.”
“형이 왜 떠나요.”
“농담이야, 농담. 뭘 그렇게 진지하게 받아들여?”
“감독님이랑 상의하신 거예요?”
“야, 내가 명색의 국가대표 주장인데 당연히 사전미팅한 뒤에 결정한 거지.”
이건 주앙 달루트의 독단적인 결정이 아니었다.
김기하와 얘기 끝에 결정된 사항이었다.
“국가대표라는 게 내 욕심으로 뛸 수 있는 자리가 아니잖아. 보시는 분들 즐겁게 해드릴 수 있어야 하는데. 최고의 경기력을 보일 수 있는 선수가 나오는 게 맞지.”
“…….”
“뭔 초상 났냐? 분위기 왜 이래? 나 없다고 지기만 해봐라.”
“이길 거예요.”
“너희 둘이 뛰니까 이기긴 하겠다.”
“형도 있어야죠.”
“난 이제 끝물이고, 새로운 물인 너희들이 이끌어야지.”
김기하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지만, 그 웃음은 온전히 즐거움 때문에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유지우는 그 모습을 보며, 언젠가 느꼈던 감정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아르헨티나에 있을 때, 리카르도 메사가 은퇴를 농담처럼 했는데 그게 진담이었던 때처럼.
* * *
늦은 밤.
선수들이 모두 잠을 자는 시간, 잠이 오지 않았던 김기하는 같이 방을 쓰는 김재민이 깨지 않게 조심스럽게 방에서 나와 옥상에 올라가 바람을 쐬었다.
의자에 앉아 홀로 음료수를 마시고 있자 누군가가 뒤에서 걸어왔다.
“여기 있었냐?”
그는 김기하와 동갑내기 친구로 오랜 시간 대표팀에서 동고동락한 최민연이었다.
“왔냐?”
“안 자?”
“잠이 와야 자지.”
“선발 제외 때문에 그래?”
“약간은? 선발 제외라는 건 더는 이곳에 필요가 없어진다는 의미잖아.”
“뭘 경기 한 번에 그렇게 의미 부여를 하고 있어, 다음에 선발로 들어가면 되지.”
최민연은 김기하의 옆에 앉았다.
“그게 되겠어?”
“우일이가 잘못하면 다시 네가 선발로 올라가겠지.”
“…그건 악담 아니냐? 우일이가 잘하길 빌어야지.”
비록 선발에서 밀렸다곤 하지만 주장으로 뛴 세월이 긴 만큼 국가대표에 대한 애정도 컸다.
자신이 없더라도 이겼으면 좋겠다는 것이 김기하의 본심이었다.
“아니 말이 그렇다는 거지.”
두 사람은 같이 음료수를 마셨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긴 침묵을 깬 건 최민연이었다.
“…은퇴하게?”
“눈치챘냐?”
“내가 너랑 대표팀에서 구른 세월만 11년이다.”
대표팀에서 함께한 11년이라는 시간 동안 단짝이 된 두 사람은 눈빛만 봐도 서로가 어떤 감정인지 알 수가 있었다.
“감독님 플랜에서 서서히 밀리니, 슬슬 떠날 때가 된 거지.”
“…아직 밀린 건 아니잖아.”
“그것도 그렇지만, 감이 있잖아.”
오랜 시간 대표팀 생활을 하며, 많은 선수를 보았다.
그중에는 먼저 떠난 선배도 있었고, 뒤늦게 들어왔지만 빛을 발하지 못하고 사라진 후배도 있었다.
다양한 선수를 보았던 만큼 김기하는 선수가 물러나야 하는 시기가 언제인지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벌써 은퇴 생각은 하지 마.”
“은퇴라…. 우리가 20대였을 때만 해도 선배들이 떠나는 걸 보고 마음 아팠는데 이제 우리가 그런 시기가 됐네.”
“난 아직이거든.”
“넌 나보다 1년은 더 해야지, 난 12년 차고 넌 11년 차인데.”
국가대표에 승선한 지 12년이 되자 김기하는 이상하리만큼 옛날 생각이 많이 났다.
데뷔하던 날부터 선배들이 했던 조언과 선배들과의 이별, 그리고 지금까지.
“하아.”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일이 코앞까지 다가오자 여러 감정이 휘몰아쳤다.
“진짜 은퇴할 거야? 더 안 해보고?”
김기하는 최민연의 말을 듣고서 생각에 잠겼다.
“…….”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도 많이 노력했다.
클럽에서도 꾸준히 체력 훈련을 하며 풀타임을 소화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35세가 되고 대표팀까지 병행하니, 체력적인 한계에 부딪혔다.
머리는 아직 할 수 있다곤 하지만 몸은 한 군데씩 고장 나며 경기력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내가 설 곳이 점차 사라지는구나.’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더 발전할 국가대표를 위해서라도.
자신이 장애물처럼 여겨지기 시작했으니, 이대로 마무리하는 방향이 맞다고 생각했다.
“2034 월드컵까지 버텨보려고 했는데…. 안 되겠다. 밑에서 올라오는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이제 그만 방 뺄 때가 된 거지.”
“네가 A매치 몇 경기지?”
“112경기.”
“은퇴 시기는 언제쯤으로 보고 있는데?”
최민연의 말에 김기하는 자신이 생각한 것을 그대로 말했다.
“지우가 주장이라는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 때까지.”
유지우에게 완장을 주려고 했다.
“…다음 세대 주장으로 지우를 생각하고 있구나?”
“나 말고도 다 그렇게 생각할걸?”
대한민국 축구팬들 사이에서는 이미 다음 세대 주장을 유지우가 맡아야 한다는 여론이 있었다.
월드컵에서도 잠깐이긴 하지만 주장 완장을 달고 뛴 경험이 있으니, 훌륭히 소화할 거라고 보는 거였다.
그리고 그건 동료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어린 나이지만, 항상 솔선수범하며 모범이 되는 선수라 신뢰가 갔으니까.
“그래서 그 녀석이 더 성장하면 후련하게 주장을 물려주고 떠날 생각이야.”
“그게 언제쯤인데?”
“음, 늦어도 내년쯤.”
결심을 한 김기하를 보고 최민연도 웃음을 지었다.
“그러면 나도 그쯤 생각해야겠다.”
“뭘?”
“은퇴.”
“…넌 조금 더 뛰어야지.”
“야, 나 너랑 동갑이야, 37세에 은퇴할 생각인데 마지막 1년은 클럽에만 집중하고 싶어.”
국가대표를 비롯해 모든 곳이 새로운 물이 들어오면 고인물들이 빠져나가는 형태였다.
김기하, 최민연.
박찬우가 은퇴하고 시작된 암흑기에서도 묵묵히 국가대표팀을 지탱하며 이끌어온 두 기둥.
“은퇴하고 가족여행이라도 갈래?”
“좋지.”
두 사람의 은퇴가 비록 두 사람을 사랑했던 이들에게는 아쉬움을 남길 테지만, 그렇다고 너무 슬퍼할 필요는 없었다.
유지우를 비롯해 새로운 세대들이 합류하며 한국대표팀이 새롭게 태어날 수 있는 것은.
대표팀의 두 기둥이, 암흑기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단단하게 땅을 다져둔 덕분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