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ien In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201)
필드의 외계인-201화(201/404)
제201화
전반전이 끝나고 프랑스 라커룸 안은 감독 알베로 모데스트의 음성으로 가득 채워졌다.
“대체 뭣들하고 있는 거야? 전반전에 한 골도 못 넣는다는 게 말이 돼? 어?”
그는 쉽게 흥분하고 쉽게 식는 다혈질 성격의 감독이었다.
“기회를 왜 살리질 못해? 디미트리! 스트라이커라면 결정을 지어줄 줄 알아야지! 상대 수비에 끌려다니면 되겠어?”
“…죄송합니다.”
“죄송하다는 말을 들으려고 하는 게 아니잖아! 후반전에는 확실하게 한 골 집어넣어!”
“네! 반드시!”
실수한 부분은 가감 없이 꾸짖고 잘한 부분은 끊임없이 칭찬을 해줬다.
“그리고 로망!”
“예!”
“잘했다! 상대 에이스는 확실하게 죽여놓고 들어가!”
“네.”
“카드를 한 장 받긴 했지만, 그 템포를 잃지 마. 카드 받지 않는 한도에서 계속 방해해.”
“알겠습니다.”
알베로 모데스트는 축구는 기세 싸움이라고 생각했다.
조금이라도 상대에게 ‘할 수 있다.’라는 희망을 품게 해선 안 됐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대한민국의 에이스, 유지우가 마음껏 뛰어놀 기회를 주지 않아야 했다.
“기어오르는 것들은 철저하게 밟아라.”
알베로 모데스트는 한국에게 진다는 건 생각도 하지 않았다.
유럽 우월주의.
축구에선 유럽이 아시아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간 세계대회에서 유럽이 보인 성적을 생각한다면, 어느 정도는 맞는 이야기였다.
그렇지만, 축구에 100%인 건 없었다.
방심해서 졌던 적도 있었으니까.
“방심은 하지 마, 한국을 어떻게 무너트릴지만 생각해.”
– “네!”
“후반전에는 한국에게 축구 선진국의 플레이가 어떤 건지 제대로 보여주고 와라!”
이대로 밀리는 건 예상에 없었다.
그렇다고 당황하진 않았다.
남은 시간 45분.
이 시간이라면 승리를 챙기고도 남을 시간이었으니까.
* * *
후반전이 시작되고 10분은 중원 줄다리기가 이어졌다.
점유율은 프랑스가 우위였으나 대한민국도 빌드업을 나쁘지 않게 했다.
김우일이 침착하게 볼 전개를 하며 든든하게 후방을 지켜줬다.
“보낼 곳이 없으면 뒤로!”
하지만 프랑스의 압박이 거세지며 백패스 비율이 늘어났다.
그러면서 프랑스는 라인을 올렸다.
‘무조건 넣어라.’
감독의 지시가 내려왔으니, 선수들은 수행하고자 최선을 다했다.
[볼을 빼앗기는 대한민국! 프랑스의 압박에 당하고 맙니다!] [백패스를 보내는 빈도가 높아요. 저러면 프랑스가 라인을 올리기도 쉬워서 백패스는 줄여야 합니다!]프랑스는 라인을 올려 대한민국 진영에서 빌드업하며 빈틈을 노렸고.
까—앙!
계속해서 슈팅을 날렸다.
[다시 골포스트를 맞는 슈티이이이잉! 프랑스에게 운이 따라주지 않습니다!] [여러 번 기회가 만들어졌는데 결정을 짓지 못하는 프랑스! 대한민국에겐 천운이 따릅니다!]만약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면 3골을 실점했을 정도로 프랑스는 파상공세를 퍼부었다.
전력의 우위.
프랑스는 그것이 어떤 건지 확실하게 보여줬다.
선수 개개인의 능력은 대한민국 선수들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왜 이렇게 안 들어가지?’
마르쿠스 디뉴는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보통 이렇게 하면 한 골이라도 들어가야 하는데 그러지 않자 점점 리듬도 느려졌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는 얼마 가지 않아 밝혀졌다.
“허억…. 헉….”
땀을 비 오듯 흘리며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 같은 한국 선수들이 보였다.
‘…….’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한국 선수들의 간절함은 피부로 전해졌으니까.
“이대로 있다간 분위기를 빼앗기겠어.”
마르쿠스 디뉴는 한국 선수들의 헌신적인 플레이로 변하기 시작하는 흐름을 붙잡으려고 했으나, 그들의 간절함은 마침내 흐름을 변화시켰다.
촤—악!
[깔끔한 태클로 볼을 빼내는 김우일 선수! 흐른 볼은 장국현 선수가 오른쪽으로 길게! 차선호 선수를 봤습니다!]대한민국의 역습에 프랑스는 신속하게 라인을 내리기 시작했다.
한 몸처럼 움직여서 한국의 역습을 막아보려고 했으나.
뻐—엉!
그들의 볼은 가장 위협적인 선수에게로 향했다.
“젠장! 반칙으로 끊어!”
이대로 유지우가 돌파할 틈을 주면 안 됐다.
곧바로 반칙으로 끊어야 했다.
그걸 아는 로망 아길라르가 달려가 봤지만.
툭-!
유지우는 그보다 한발 먼저 어깨로 트래핑을 하며 로망 아길라르의 타이밍을 완전히 빼앗았다.
[유지우 선수가 감각적으로 볼을 잡아두곤 드리블을 시작합니다!] [빠른 스피드! 단숨에 밀집된 중앙이 아닌 왼쪽 사이드로 갑니다!]왼쪽 공간으로 볼을 길게 차 놓고 달리며 뒤에서 따라오는 선수와 격차를 더 벌렸다.
뒤에서는 쫓아오지 못했고 앞은 골대와 가까워졌다.
왼쪽으로 살짝 치우쳐진 경로.
유지우는 페널티 에어리어 안으로 과감히 들어갔다.
[때려야 합니다!]수비수들이 차분하게 자리를 잡았고 센터백 마사디오 사냐가 다가왔다.
‘아직.’
유지우는 침착하게 마사디오 사냐의 스텝을 살폈다.
그러다가 그의 균형이 한쪽으로 쏠리자 바로 반대쪽으로 전환했다.
툭.
골대 방향인 왼쪽이 아닌 오른쪽으로 치고 나가며 순간적으로 슈팅 공간을 만들었다.
비어있는 공간.
그렇게 오른발로 파 포스트를 겨냥해서 때린 슈팅.
철렁.
골키퍼가 날았지만, 볼을 그보다 빠르게 골대 안으로 들어갔다.
[흔들리는 프랑스의 골망! 선제골을 넣은 것은 대한민국입니다!] [후반 시작하고 16분 만에 만들어낸 득점! 유지우 선수가 정석과도 같은 골을 만들어냅니다!]골을 넣은 유지우는 전반전, 자신을 도발한 로망 아길라르의 앞으로 가서 다이빙 세레머니를 했다.
“까불지 말라고 하면 더 까불고 싶어지거든.”
도발에는 도발로.
유지우의 세레머니에 열받은 로망 아길라르는 주먹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 개자식이.”
“도발하지 마, 그럴수록 의욕이 더 생겨나니까.”
세레머니를 마치고 진영으로 돌아가던 중, 강현오가 힐끔거리며 프랑스 진영을 봤다.
“…선배님, 저 사람들 되게 무섭게 쳐다보는데요?”
그곳에선 이를 갈며 유지우를 죽일 듯이 쳐다보는 프랑스 선수들이 있었다.
“현오야.”
“네.”
“너 유럽에서 뛰고 싶다고 했지?”
“네.”
“그러면 명심할 게 하나 있어, 얕보이는 행동은 절대 하지 마. 누가 시비를 걸면 주먹 한 방 날릴 각오는 있어야 해.”
“…….”
“유럽에서 살아남으려면 실력보다도 중요한 게 정신력이니까.”
이건 유지우가 일찍 해외 생활을 하면서 얻은 교훈이었다.
얕보이면 호구가 된다.
그러기 전에 기선을 잡아야 했다.
상대가 얕보지 않도록.
“무슨 말인지 알겠어?”
“…네! 명심하겠습니다!”
* * *
1 – 0.
대한민국이 리드를 잡았다.
남은 시간은 30분.
프랑스는 라인까지 올려 총공세를 펼쳤다.
[한국 선수들! 집중해야 합니다!] [양 사이드로 매섭게 볼을 전개하는 프랑스! 오른쪽에서 사무엘 라미가 올린 크로스—!]부메랑처럼 휘는 크로스는 스트라이커 디미트리 타메즈를 겨냥했다.
퍼—억!
디미트리는 몸싸움을 하곤 타이밍을 맞춰 점프를 뛰었다.
그대로 이마에 맞춰 골대 쪽으로 돌려놓으려고 했으나.
툭.
대한민국 센터백 김재민에게 공중볼 경쟁에서 지고 말았다.
[김재민 선수가 있으니, 수비가 든든합니다!] [저 피지컬에 저 점프력! 왜 유럽 빅리그에서 김재민 선수가 통하는지 알 수 있는 장면이었습니다!]프랑스는 한국의 적극적인 수비에 막히며 좀처럼 기회를 잡아내지 못했다.
그러한 답답함이 쌓이며 선수들 간의 언성도 높아졌다.
“젠장!”
“다들 뭐 하고 있어! 이대로 저것들에 질 거야?”
“정신 차려!”
흐름은 대한민국이 가져가긴 했어도 프랑스에겐 그 흐름을 가져올 저력이 있었다.
올림픽 남자 축구 금메달 후보이자 공격력 2위의 팀.
침착하게 기회를 만들어 갔고 한국 선수들의 체력소모가 극심해졌다.
“다들 잘 들어!”
유지우 대신 김우일이 소리쳤다.
“우리가 경기 전에 했던 말 기억해?”
“……”
“그것만 기억해! 이 경기를 이기면서 우리가 얻을 것만!”
많은 말들을 했으나 이때 김우일이 선수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군 면제’였다.
“조금만 더 하면 된다! 조금만!”
선수들도 알고 있었다.
이 경기만 이기면 군 면제라는 걸.
그래서 이를 악물었다.
“으아아아-!”
포효하고.
“막아—!”
또 포효했다.
프랑스에게 전력으로 밀리더라도 바짓가랑이를 물고 늘어지는 수비를 펼쳤다.
오직 한국에서만, 한국 선수들에게만 적용할 수 있는 버프였다.
미친 사람들처럼 달려들었고 위험지역 밖에선 과감하게 반칙으로 흐름을 끊었다.
“끝까지 가자—!”
김재민의 외침에 선수들은 정신 무장을 했다.
이기자.
이기면.
인생이 달라진다.
시간이 흐를수록 거세지는 저항에 프랑스 선수들은 당황했다.
‘뭐야? 다른 사람들 같잖아?’
그들은 아마 평생을 지나도 모를 거다.
한국 선수들이 지금 어떤 마음가짐으로 경기에 임하는지.
80분.
85분.
90분.
정규 시간이 지나며 추가 시간 2분이 주어졌다.
[정규 시간이 다 지납니다! 이제 남은 시간만 버티면 대한민국이 결승에 올라갑니다!]빠르게 볼을 돌리던 프랑스는 한순간 빈틈을 발견했다.
길을 본 로망 아길라르의 스루패스가 뒷공간으로 침투하는 마르쿠스 디뉴의 발에 정확하게 배달됐다.
-오오오오오!
결정적인 기회.
프랑스 응원단은 한두 명씩 자리에서 일어났다.
“넣어!”
“놓치지 마!”
마르쿠스 디뉴는 침착하게 수비 한 명을 제친 뒤에 반박자 빠르게 니어포스트로 슈팅을 때렸다.
[마르쿠스 디뉴의 슈팅을 가까스로 막아내는 강인우! 슈퍼 세이브로 실점 위기에서 벗어납니다!]그러나 강인우가 예측하며 가까스로 손끝으로 쳐냈다.
[안심하긴 이릅니다! 프랑스의 코너킥입니다. 골키퍼까지 올라와 동점을 노리는 프랑스! 이때 한국 벤치에서 마지막 남은 교체 카드를 씁니다!]한국은 최전방 스트라이커 조정후를 빼고 공격형 미드필더 이연조를 준비시켰다.
[이렇게 되면 유지우 선수를 최전방으로 올리겠다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라인을 모두 올린 프랑스의 신경을 계속해서 자극하는 겁니다.]강동하 감독은 과감하게 마지막은 남은 교체 카드를 종료 1분을 남겨두고 썼다.
그와 동시에, 유지우가 스트라이커로 위치를 옮겼다.
뻐—엉!
마르쿠스 디뉴가 날카롭게 올린 크로스.
골키퍼까지 가세하며 매섭게 몰아붙였지만, 강인우가 과감하게 골대를 비우고 나오며 펀칭으로 클링어링 했다.
– 와아아아아아!
[강인우 선수의 펀칭! 볼은 흘러서 유지우 선수에게! 그리고 프랑스의 골키퍼는 전력으로 달려갑니다!]반칙으로 끊으려고 손까지 쓰려고 했다.
‘퇴장당하더라도 여기선 끊어야 해.’
냉정한 판단이었다.
이대로 실점하는 것보단 퇴장당하며 다시 기회를 잡는 것이 나으니까.
그러나 그 생각으로 뻗은 손을 유지우는 한발 빠르게 벗어났다.
그리곤.
스윽.
고개를 들어 비어있는 골대를 봤고 하프라인에서 롱 슛을 시도했다.
뻐—-엉!
하늘 높게 올라간 볼.
선수들은 물론 관중들의 시선까지 볼에 고정됐다.
시간이 느리게 가는 착각.
그러나 그건 착각이 아니었다.
골키퍼가 전력으로 달려가 보지만.
철렁.
먼 거리를 날아가 정확하게 골대 앞에서 원바운드되며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는 것과 동시에 프랑스 선수들이 고개를 떨궜고 대한민국 선수들은 포효했다.
[드, 들어갔습니다아아아! 유지우 선수의 초 장거리 슛! 프랑스의 의지를 완벽하게 꺾어냅니다!] [종료 직전! 2 – 0의 격차를 만드는 대한민국의 캡틴! 대한민국의 결승 진출이 확정 짓는 골입니다!!!]추가 시간 2분에서 1분이 지나가며 사실상 이 골은 대한민국의 결승 진출을 확정 짓는 골이었다.
– 와아아아아아아아!
귓가를 울리는 함성.
유지우는 광고판에 올라가 태극마크에 키스하는 세레머니를 했고 뒤이어 선수들이 달려와 덮쳤다.
삐익-! 삐익-! 삐—익!
잠시 후, 그토록 원하던 종료 휘슬이 울리자 대한민국 선수들은 울먹였다.
[올림픽 남자 축구 4강이 종료됩니다! 많은 사람의 예상을 깨며! 대한민국이 프랑스를 2 – 0으로 꺾습니다!] [올림픽 축구 최초! 결승에 오르는 선수들! 이것으로 메달은 확정됐습니다!]앞으로 결과가 어떻게 되던 메달이 확정됐다.
이제 그 색을 고를 때였다.
“유.”
선수들과 기뻐하는 유지우에게 마르쿠스 디뉴가 다가왔다.
“완전히 졌다. 마지막에 그 슛은 생각하고 한 거야?”
“마침 골대가 비어있길래.”
“하하… 꼭 금메달 목에 걸어라.”
“고맙다.”
“다음에는 챔피언스리그에서 만나는 건가?”
“아마도?”
“기대하고 있을게.”
“네가 또 질 텐데.”
“그때는 내가 이길 거야.”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두 선수는 유니폼을 교환한 뒤, 헤어졌다.
그 모습을 관중석에서 보던 사람들은 가슴이 뛰었다.
‘또 저 두 선수가 경기하는 걸 보고 싶다.’
스타 선수와 일반 선수의 차이가 바로 이거였다.
보는 이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재능.
이것이 스타에게 필요한 재능이었다.
– 유지우! 유지우! 유지우!
한국 팬들이 모인 구역에서 유지우의 이름을 연호하기 시작하자, 유지우는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