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ien In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22)
필드의 외계인-22화(22/404)
제22화
“드디어!”
한국에서 봤던 것과 지금껏 다니엘이 보내준 영상 속에서도 보이지 않았던 게 보이자 로드리고의 눈은 유지우를 처음 발견한 날처럼 반짝였다.
“유에게 패스가 있다는 걸 아셨습니까?”
“예전 경기 영상을 찾아봤어. 그걸 보고 저 녀석은 수준 높은 패서라는 걸 알았지.”
유지우가 아르헨티나로 떠난 사이, 로드리고는 일본에서 잠시 일 처리 할 게 있어서 두 달을 머물렀다.
거기서 윤무태에게 부탁해 유지우의 초등부 시절 영상을 찾아봤고 그걸 본 뒤로 더 확신하게 됐다.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다이아몬드 원석이라는 걸.
“놀랍네요. 구단에서 유가 패스를 너무 안 해서 걱정이 많았는데 여기서 이렇게 보여줄 줄이야.”
“이제 상대가 걱정해야 할 거다. 저걸 막을 수 있는 녀석들이 유스 레벨에 있겠냐? 하하하하하! 프로 레벨에서도 드물 거다!”
“…로드리고가 정작 뛰는 유보다 더 기뻐하는 거 같네요.”
“그거야 당연하지! 내가 발굴한 내 새끼니까!”
유지우가 보여준 패스 한 방.
그 한 방에 산 로렌소는 처참하게 무너졌다.
4 – 0.
전반전이 끝나고 후반이 시작되면서 점수는 더 벌어졌고 경기의 균형은 보카 주니어스 U-20으로 완전히 기울었다.
오오오오오!
필드 위에서 드리블하는 유지우를 보는 산 로렌소 감독의 눈에는 허탈한 감정이 가득했다.
두 명이 붙어도.
세 명이 붙어도.
몇 명이 붙어도 틈을 발견해 돌파하는 능력이 탁월했다.
퍼——억!
테크닉에 스피드까지 있어서 막을 방법은 반칙으로 끊어내는 것 말곤 딱히 없었다.
‘하아. 패스가 있으니까 견제하는 게 더 힘들어졌어.’
돌파만 신경을 써도 못 막았는데 패스까지 장착한 마당에 막을 방법은 더 사라져갔다.
압박을 붙으면 동료와의 패스 연계로 빠져나가고, 그렇다고 떨어지면 드리블로 거리를 좁혀오는 플레이.
어떻게 뛰면 되는지 축구에 대한 이해도가 상당히 높은 플레이가 많이 나왔다.
87분.
보카 주니어스는 쉬지 않고 산 로렌소를 몰아붙였다.
라인까지 올려서 더 골을 뽑아내려고 했고 그때였다.
산 로렌소가 1점이라도 넣으려고 라인을 올리는 순간, 세바스티안이 뒷공간을 노리는 스루패스를 발을 뻗어서 끊어냈다.
역습 기회가 오자 유지우가 오른쪽 측면에서 중앙으로 달려가며 소리쳤다.
“앞으로!”
타다다닷!
달려가며 앞으로 손짓했다.
뻐—-엉!
그걸 본 라우타로 오르반이 패스를 받고선 곧바로 침투 패스를 찔렀다.
투욱.
그러나 수비수가 필사적으로 다리를 찢으며 건드는 바람에 볼은 굴절되어 공중에 떠버리고 말았다.
이대로 공격이 끊어질 법했지만, 볼이 향하는 곳은 운이 좋게도 유지우가 있는 곳이었다.
유지우는 볼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침착하게 주변 상황을 보며 어떤 식으로 플레이할지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렸다.
볼의 속도가 줄어 수비가 마크하는 시간을 내주고 말지만, 침착하게 볼의 낙하지점을 파악하며 타이밍을 찾았다.
‘지금!’
볼이 떨어지기 직전 발을 뻗었다.
툭.
트래핑으로 등 뒤에 붙는 수비수의 키를 넘기며 돌아섰다.
꽉.
수비수는 유지우를 그냥 보낼 생각이 없었다.
옆으로 빠져나가는 유지우의 유니폼을 잡아끌며 막아보려고 했으나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아.’
혹시라도 페널티킥을 내줄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에 제대로 잡지 못했고 유지우는 등 뒤로 균형이 쏠렸지만, 시선은 볼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여전히 허공에 뜬 볼.
점프를 뛰며 몸을 눕혔다.
발리슛으로 왼쪽 구석을 노린 슈팅.
철렁.
볼은 강한 회전이 걸리며 골대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와아아아아아아!
동시에 나오는 함성.
허공에 뜬 볼을 단 두 번의 터치로 골까지 만들어내자 관중들은 환호를 지르며 열광했다.
유지우는 누워서 두 눈을 감고 환호를 듣다가 누군가가 자신을 드는 느낌에 화들짝 놀라며 눈을 떴다.
“…뭐 하냐?”
“음…. 말하자면 합동 세리머니?”
“키가 기예르모처럼 크면 못 하지만, 넌 할 수 있지.”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내려놓지?”
“그러지 말고 즐겨!”
그러더니 덩치 좋은 녀석들이 팔을 쭉 편 유지우를 들고 다녔다.
“푸하하하하하! 저게 뭐야!”
“유가 자주 하는 예수상 세리머니 있잖아. 그거 이동 버전인가?”
그 뒤에 종료 휘슬이 울리며 보카 주니어스 U-20은 후반기 우승을 확정 지었다.
팬들에게 인사하는 선수들 사이에서 무표정으로 손을 흔드는 유지우를 보곤 로드리고가 입을 열었다.
“다니엘.”
“예.”
“잘 봐둬, 머지않아 저 작은 녀석이 보카 주니어스를 남미 최고의 클럽으로 만들어줄 테니까.”
한국에서 축구 할 때는 외로워 보였다.
승리하면 주변에서 같이 기뻐했지만, 정작 자신은 기뻐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곳에서 보는 유지우는 달랐다.
무표정이지만, 외로워 보이지 않았다.
‘조만간 1군에서 볼 수 있겠군.’
그렇게 보카 주니어스 U-20은 3경기를 남겨놓고 조기 우승을 확정 지었다.
* * *
6월.
아르헨티나 1부 리그 28-29시즌은 끝났으나 아직 끝나지 않은 게 있었다.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남미 챔피언 결정전이었다.
보카 주니어스는 4강까지 올라갔고 상대는 브라질의 강호 ‘그레미우 풋볼 포르투알레그렌시’였다.
1차전은 그레미우 풋볼 포르투알레그렌시의 홈에서 1 – 1 무승부를 해서 여기서 이기는 팀이 결승으로 올라가는 거였다.
하지만 결과는.
1 – 0 패배.
결국, 보카 주니어스의 28-29시즌은 패배로 끝났고 아르헨티나 언론에는 하비에르 카세로의 눈물이라며 기사가 쏟아졌다.
보카 주니어스 에이스로서 노력했지만, 목표였던 남미 챔피언의 자리에 오르지 못했다.
이제 팬들의 시선은 한 경기를 남겨놓은 U-20에게 향했다.
Argentina Junior Cup(아르헨티나 주니어컵).
아르헨티나 최고의 유망주 중 최고를 가리는 컵 대회.
보카 주니어스 U-20 vs 리버 플레이트 U-20이 붙는 미니 엘 수페르클라시코가 다시금 성사됐다.
[미쳤다. 보카 주니어스 유스들은 뭐 하는 녀석들이냐? 쿨라우수라 기간을 무패로 우승시키네.] [거기 동양인 꼬맹이 있어. 열여섯이고 몸집도 작은데 걔가 20세 넘은 상대 선수들 혼자서 다 씹어 먹더라.] [리버 플레이트 녀석들 패배로 독 바짝 올라 있을 듯, 크리스마스 더비에서 처참하게 짓밟힌 거 복수해야지.] [이번 아르헨티노 주니어스컵은 재미있을 거 같다. 작년은 리버 플레이트 압살이라 재미없었는데 이번에는 뭔가 다른 그림이 만들어질 것 같아.] [제발 리버 플레이트 좀 어떻게 해줘라. 1부에서 못 이긴 거 여기서라도 대리 만족 좀 하게.]6월 22일 경기 전날, 양 클럽 감독들은 기자회견장에서 인터뷰를 가졌다.
로돌포 핀티는 구단에서 마련해준 기자회견장에서 기자들을 만나 질문에 답해줬다.
“상대는 주니어스컵을 5년 연속 우승을 한 리버 플레이트입니다! 아르헨티나 최고의 유망주들을 상대로 경기는 어떻게 준비하고 있습니까?”
“평소와 다름없이 준비하고 있습니다.”
“전술은 크리스마스 때와 같습니까?”
“그때와 여러 가지 환경이 달라졌으니 조금은 달라지겠죠.”
형식적인 질문이 전부였다.
로돌포 핀티가 지루해하며 하품을 하자 기자들은 깜짝 놀랐다.
“아, 죄송합니다. 너무 뻔한 질문들뿐이라.”
죄송하다고는 말하지만, 표정은 전혀 죄송한 표정이 아니었다.
이제 그만하고 끝내자는 표정이었다.
스윽.
그때 한 기자가 손을 들었다.
“네, 세 번째 줄 끝에 있는 기자님 말씀하세요.”
“간단하게 질문드리겠습니다.”
“간단한 거 좋죠!”
“내일 경기가 끝나면 눈앞에 어떤 장면이 펼쳐질 것 같습니까?”
다른 기자들과는 색다른 질문이었다.
로돌포 핀티는 웃으며 마이크를 잡았다. 그러곤 허공을 보며 연기를 시작했다.
“아아아아, 미래가 보입니다. 저희가 닭 머리를 기름에 튀기고 있군요!”
어차피 이런 기자회견 따위는 형식적인 거였다.
팬들도 관심을 가지지 않을 그런 자리.
그래서 로돌포 핀티는 이벤트를 하나 터트렸다. 모든 이들의 시선이 내일 경기에 집중될 수 있도록.
“보카 주니어스 팬들이 다 같이 치킨 파티를 하는 미래가 보입니다.”
그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 * *
내일 경기를 위해 오전 훈련만 하고 나오는 길에 차명훈이 다급하게 다가왔다.
“지우 선수!”
숨을 거칠게 몰아쉬는 그는 뒤쪽을 가리켰다.
“다른 길로 가시죠.”
“왜요?”
“정문 쪽에 기자들이 쫙 깔렸습니다.”
“왜요?”
이유를 묻자 차명훈이 내 어깨를 붙잡았다.
“현재 U-20 선수단에서 지우 선수가 에이스라는 건 길 가던 개도 알 겁니다. 그래서 내일 경기에 관해 인터뷰를 요청하려고 하는 게 당연하죠.”
“해줘도 되지 않아요?”
“…괜찮겠습니까?”
인터뷰라는 건 보는 것과 달리 당사자에게는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발언 하나하나가 이미지를 나타내는 지표가 되니 차명훈은 평소에도 1군으로 올라가기 전까지는 최대한 미디어에 노출하는 걸 피하고자 했다.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달랐다.
어차피 겪어야 할 일이라면 미리 겪고 넘어가는 게 속 편한 일이라는 생각이었다.
“익숙해져야죠. 앞으로 제가 겪을 일 중 하나일 텐데요.”
차명훈은 내 말을 듣고 웃었다.
“참…. 지우 선수는 못 당하겠습니다.”
“그러면 나가볼게요.”
“네. 제가 곁에 있을 테니 편히 말씀하세요.”
문을 열고 나가자 입구 쪽에는 기자들이 몰려 있었다.
그들은 나를 보고선 마이크와 카메라를 들이댔다.
“유! 인터뷰 부탁드립니다!”
“선데이 사커의 줄리안입니다! 짧게 몇 마디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뒤에 밀지 말고!”
“질서 좀 지킵시다!”
각자 뭐라고 하는데 다 아르헨티나에서 이름 대면 알 법한 언론사들이었다.
“한 사람씩 질문해 주세요.”
차명훈이 교통정리에 나섰다.
곧이어 구단 직원들이 허겁지겁 나와서 라인을 쳤고 내 근처를 지켰다.
“작년 10월에 보카 주니어스에 입단하고 믿기지 않는 활약을 펼치고 있는데요! 소감이 어떻습니까?”
“원하는 환경에서 뛸 수 있어서 기쁩니다.”
“한국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일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기사 그대로입니다. 제가 따로 드릴 말은… 나중에 우승컵을 들어 올리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뒤에도 여러 질문이 나왔다.
하나하나 답해주고 차명훈이 옆에서 제지했다.
“이제 마지막으로 한 가지 질문만 더 받겠습니다.”
다들 한마디씩 했지만, 아직 한마디도 하지 않은 언론사가 있기에 그 사람을 가리켰다.
기자는 활짝 웃으며 도발적인 질문을 던졌다.
“리버 플레이트 수비수 아메리코 체로가 내일 경기에서 당신의 돌파를 모조리 막아낼 거라고 했는데요!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냥 가볍게 넘어가는 방법도 있겠지만, 정열적인 남미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면 맞불 대응이 맞았다.
“그 선수는 저를 못 막으면 어떻게 한다고 했나요?”
“네…? 그 뒤로는 별말이 없었습니다.”
“입만 살았네요.”
기자들이 내 대답을 듣고 말을 잇지 못할 때, 한 방 더 날렸다. 아주 센 걸로.
“축구는 입으로 하는 게 아니라 발로 하는 거라는 걸 내일 필드에서 보여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