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ien In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223)
필드의 외계인-223화(223/404)
제223화
축구에서 압도적인 전력 차이라고 해도 득점이 크게 벌어지는 경우는 드물었다.
약팀이 텐 백으로 전부 내려앉으면 공격하는 입장에서 골을 넣기가 어렵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 필드 위에선 그 드문 경우가 나올 조짐이 보였다.
철렁.
[들어갑니다—! 강예수 선수의 날카로운 오른발이 파 포스트를 정확하게 꿰뚫습니다!] [이것으로 3 – 0! 전반 35분 만에 세 골을 넣는 대한민국! 경기력이 좋아도 너무 좋습니다!]중국의 텐 백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유지우의 선제골을 기점으로 흐름을 탄 대한민국은 10분 간격으로 한 골씩 넣으며 중국을 매섭게 몰아붙였다.
“내리지 말고 올려! 볼 보고! 집중해!”
그걸 만든 건 유지우였다.
공격형 미드필더로 공격 상황 전체를 이끌면서 선수들을 다독였다.
차이가 벌어져도 방심하지 않았다.
더욱 몰아붙였다.
중국에 숨을 쉴 틈은커녕, 상황을 반전시킬 생각도 할 수 없도록.
철저하게 몰아붙이고 또 몰아붙였다.
“여기로 주고!”
유지우는 안정적으로 볼을 드리블하면서도 끊임없이 지시를 내렸다.
“무리한 돌파는 하지 마! 집중하고 주변 상황을 계속해서 확인해!”
툭.
“예수 형이랑 선호 형은 더 과감하게 중앙으로 들어와 주고!”
툭.
“자신감 있게 해!”
중국 선수들에게 혼란을 주는 빠른 패스와 과감한 슈팅.
중국은 어떻게든 유지우를 잡으려고 했지만, 그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대한민국의 공격을 경계한 중국의 라인은 심각하게 내려왔고 이 상황을 최전방에서 지켜보던 장징빈이 소리를 질렀다.
“앞으로 볼을 줘! 내가 다 해결해줄 테니까!”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애초에 중국은 중원 장악을 전혀 하지 못했고 의미 없는 뻥축구를 펼쳐 번번이 한국 수비에 끊길 뿐이었으니까.
“아아! 답답해 죽겠네!”
장징빈이 소리쳐도 한국 선수들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위협적이지 않았으니까.
“나한테 맡겨두고 가봐.”
김재민 – 강현오.
두 선수의 센터백 라인은 철벽이었다.
장징빈은 이 산을 넘지 못했다.
퍼—억!
가벼운 몸싸움에도 낙엽처럼 나뒹굴었다.
“반칙이잖아요!”
장징빙이 주심에게 반칙을 어필하는 걸 본 강현오는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
전혀 반칙 상황이 아니었다.
프로씬에서는 이보다 거친 플레이에도 반칙이 나오지 않았으니까.
삐—익!
그런데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주심이 휘슬을 불며 반칙을 선언한 거였다.
[예? 반칙이요?]해설하는 캐스터들도 어이가 없어서 순간 말을 잊는 실수가 나왔다.
‘…이게 반칙이면 몸싸움 자체를 하지 말라는 거잖아.’
의도한 대로 흘러가자 장징빈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김재민이 이게 왜 반칙이냐며 항의를 하자 오히려 주심은 과도한 항의라며 카드를 꺼냈다.
[잠시만요! 이게 왜 한국 쪽에 카드가 나오는 거죠? 저런 몸싸움에 휘슬을 불면 플레이 자체를 하지 말라는 뜻 아닙니까!]주심의 석연찮은 판정의 시작은 이때부터였다.
* * *
석연찮은 판정에도 플레이는 이어졌다.
그런데도 중국은 흐름을 좀처럼 잡지 못했다.
“저게 말이 돼?”
“제대로 좀 봐라! 무슨 반칙이야!”
“아예 몸을 비비지 말라는 거 아니야?”
계속해서 나오는 이상한 판정에 처음에는 고개만 갸웃하던 관중석에서도 불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삐—익!
그런데도 주심의 판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아니, 저것도 불면 어쩌자는 겁니까!] [저 주심의 이름은 밀로시 덩! 호주 출신의 주심입니다!]몸싸움으로 바짝 붙어도 깃털처럼 넘어지는 중국 선수들의 연기 때문에 주심의 휘슬은 멈추질 않았다.
40분.
전반 종료까지 5분을 남겨놓은 시점.
탁.
볼을 잡은 건 유지우였다.
높고 강한 볼을 도자기를 받듯 안정적으로 받자 관중석에선 작은 탄성이 새어 나왔다.
툭, 툭, 툭.
유지우는 천천히 발등으로 볼을 밀면서 압박하는 선수를 플리플랩으로 벗겨냈다.
– 오오오오오오!
그다음은 바로 속도를 올렸다.
유지우의 돌파를 경계하며 선수들이 몰린 중앙 지역.
유지우는 좁은 구역에서도 빠져나갈 공간을 확인했다.
‘압박은 그렇게 타이트하지가 않아.’
프리미어리그와 비교하면 동네 축구 수준이었다.
선수들 간격도 엉망이었고 콜 플레이도 전혀 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라면.
타다다닷-!
간단한 돌파 페이크로도 수비수는 정신을 못 차릴 게 분명했다.
그 말대로 유지우가 속도를 살려 들어가려고 하자 중국 수비는 뒷걸음질을 치며 간격을 유지하려고 했다.
멈칫.
그러나 유지우는 더 들어가지 않았다.
애초에 그가 노린 건.
수비수를 뒤로 물리면서 발생하는 페널티 에어리어 밖의 공간이었으니까.
뻐—엉!
유지우가 중거리 슈팅을 때렸다.
빨랫줄처럼 뻗어나간 볼은 오른쪽 구석에 꽂혔다.
철렁.
– 와아아아!
[유지우 선수의 오늘 경기 두 번째 골! 이걸로 2골 1어시스트를 기록합니다!] [대한민국 에이스가 어떤 선수인지 중국에게 제대로 보여줍니다! 이것으로 스코어는 4 – 0! 정말 10분에 한 골씩 넣고 있습니다!]골을 넣은 유지우는 주심을 한 번 노려봤다.
의도적인 편파 판정.
이건 제3자가 봐도 확신을 가질 상황이었다.
한 번 쳐다보는 건 그것에 대한 경고였다.
.
.
.
전반 종료 직전.
주심이 휘슬을 부는 정도가 점점 도를 넘자 주앙 달루트 감독은 볼이 아웃 된 사이.
“야!”
물병을 바닥에 집어 던지며 항의했다.
부심이 달려와 말렸지만, 주앙 달루트는 필드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하잖아! 이게 말이 돼? 눈이 있다면 저게 정상으로 보여?”
부심도 이상하게 생각하는지 강한 제지는 하지 않았다.
“이러다가 감독님이 퇴장당하십니다. 제발 진정해주세요.”
“아직 한 골도 안 나왔으면 내가 말도 안 해! 그런데 이미 다섯 골 차로 벌어지고 승기도 우리한테 넘어왔건만! 이제와서 저런 판정이 말이나 돼? 이건 그냥 우리 애들 죽이자는 거지!”
일리가 있었다.
보통 주심이 각을 잡고 오심을 하겠다면 작정하고 편을 들어주겠다는 의미인데 지금은 중국이 철저하게 밀리고 있었다.
지금 와서 오심한다고 경기 흐름 자체가 크게 달라질 건 없어 보였다.
삐익-! 삐-익! 삐—익!
그 후에 전반 종료 휘슬이 울렸다.
* * *
편파 판정 때문에 대한민국 선수단은 살짝 흥분한 상태였다.
주앙 달루트는 라커룸을 향하면서도 어째서 그런 판정을 내렸는지 고민했다.
그렇게 라커룸에 가까워질 무렵.
머릿속에 번뜩하고 하나의 결론이 떠올랐다.
‘혹시 이것들이 후반전에 어떻게든 해보겠다고 마지막에 우리를 흔들어본 건가.’
이게 아니라면 달리 설명할 말이 없었다.
중국이 이기려면 한국 선수들을 한 명이라도 필드에서 치워 수적인 우위를 가져가야 했으니까.
그래서 주앙 달루트는 라커룸 안으로 들어가.
짝-!
손뼉을 강하게 치며 선수들을 집중시켰다.
“전반에 빌어먹을 판정이 있긴 했지만, 신경 쓸 필요 없다. 저것들이 우리 신경을 건드려 어떻게든 후반전에 역전해보겠다는 생각인 거 같으니까.”
“후반전에 역전이라…. 중국이 그게 가능할 거 같으세요?”
“전혀.”
가능성은 0%였다.
“이 점수 차이를 뒤집는 건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 스페인 등 FIFA 랭킹 10위권 안에 드는 나라 말고는 없을 거다.”
선수들도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주앙 달루트는 계속해서 얘기했다.
“우리는 우리가 할 것만 해라, 말려들지 말고 골만 넣어 두 자릿수 득점까지 만들자. 이토록 비겁한 녀석들한테 밀리면 국민들 앞에 얼굴을 들 생각도 하지 마라!”
– “네!”
“유! 넌 조금 더 공격적으로 라인을 올려도 돼, 그리고 킴은 박스 투 박스로 움직여주면서 볼 배급을 해주고.”
“알겠습니다.”
주앙 달루트의 눈은 그 어느 때보다도 빛났다.
개인이 아닌 국가대표 전체에 도발을 건 상대를 철저하게 짓밟기 위해서.
“…이상이다.”
5분 동안 전술 설명을 끝내자 김재민이 손을 들었다.
“장징빈은 어떻게 합니까?”
그 질문에 주앙 달루트의 대답은.
“장징빈은 놔둬.”
간단해도 너무 간단했다.
“…….”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녀석이니까.”
주앙 달루트는 모든 경기를 성실하게 준비하는 성격이었다.
상대를 이길 최선의 수를 적어도 다섯 개 이상은 생각해야 직성이 풀렸다.
그런데 중국전을 준비하면서 든 생각은.
‘…시간이 아깝네.’
이거였다.
중국 국가대표의 수준.
그건 연령대 대표팀에게도 미치지 못할 정도였으니까.
* * *
후반이 시작하고 3분.
중국의 역습을 차단한 뒤, 한국의 역습 기회가 찾아왔다.
[김우일 선수가 전방으로 쭉 밀어준 볼! 마크를 뿌리치며 나온 유지우 선수가 잡고 돌아섭니다!]바짝 붙는 상대 선수를 보고선.
투–웅!
압박하는 선수의 머리 위로 볼을 넘기는 솜브레로플릭으로 제쳐내고 전방으로 달려갔다.
그때.
중국의 수비가 유지우 중심으로 몰렸다.
돌파할 틈도 없이 밀집된 구역.
하나 그것은, 오히려 유지우가 생각한 그림이었다.
달리지 않고 제자리에 정지한 채.
수비수들의 머리 위로 넘긴 로빙 패스.
그 패스에 반응한 건 조정후였다.
[조정후 선수가 안으로! 중국이 오프사이드를 어필하지만! 부심의 기는 미동도 하지 않습니다!]전반전에 나온 편파 판정 의심으로 심판진은 판정에 예민해졌다.
그렇게 조정후가 침투해서 받은 뒤.
골키퍼가 나오는 걸 보고선 오른쪽으로 밀어준 볼.
[차선호 선수—–! 고오오오오올! 중국의 골망을 관통하는 강슛!!! 스코어 5 – 0! 차이는 더 벌어집니다!]마크를 따돌리며 올라온 차선호가 마무리 지으며 5점 차이를 만들었다.
[이 점수 차이를 뒤집지 못할 겁니다! 중국 선수들이 절망에 빠집니다!]5점 차이.
이 격차를 좁힐 저력은 중국 대표팀에게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장징빈의 눈빛은 전혀 죽지 않았다.
‘분노.’
이 감정으로 가득 찬 상태.
“이 등신들아!”
그는 동료 선수들에게 분노를 표출했다.
“대체 뭘 하는 거야! 수비가 되질 않으니까! 공격에 볼이 안 오잖아!”
“…넌 전방 압박 제대로 하긴 하냐?”
“뭐?”
“아무것도 못 하는 건 우리 모두라고, 너 포함해서.”
예상보다 많은 실점에 중국 대표팀의 분위기는 더욱 나빠져 갔다.
* * *
촤—악!
격차를 좁히지 못한 중국의 플레이는 거칠어졌고 온갖 무술이 난무하는 소림축구를 했다.
삐—익!
[너무 거칩니다! 저런 식으로 하면 카드가 나와야죠!] [하지만 카드를 꺼내지 않습니다! 저 주심의 카드는 대한민국에만 나오네요!]그리고 그들은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을 건드려버렸다.
한 소리 들은 장징빈은 최전방에서 이를 악물고 수비 가담을 했고 유지우가 볼을 가지고 있는 걸 보곤.
두근.
두근.
가슴이 뛰었다.
어째서 격차가 좁혀지지 않는 걸까.
대체 왜.
대체 왜!
분노를 애써 누르며 뛰었다.
그리고 그 감정은 서서히 뇌를 지배했고.
촤—악!
유지우가 잠깐 볼을 멈춰 세운 사이에 감정이 행동으로 나와버렸다.
사각에서 들어간 백태클.
삐—익!
[저 새…. 아! 저건 미친 짓입니다! 뒤에서 저렇게 높은 태클이라니! 유지우 선수가 고통스러워하며 일어나지 못합니다!]유지우가 쓰러지자 필드에 있는 선수들은 유지우를 향한 중국의 과도한 반칙에 결국 폭발했다.
장징빈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듯 연기에 들어갔다.
그 태연한 연기에 열받은 조정후는 주먹을 쥐었다.
“참아.”
그걸 말린 건 김기하였다.
“하지만 지우가!”
“이게 저것들이 노리는 거라고 생각 안 해?”
“…….”
“쟤네들은 우리가 흥분해서 난리 피우는 걸 보고 싶은 거야, 그래야 본인들이 유리한 쪽으로 끌고 갈 수 있는 거니까.”
“네….”
“네가 흥분해서 날뛰어봤자.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어, 우리가 불리해진다는 사실 밖에는.”
김기하도 화가 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주장 완장이 아니었다면 이미 자리를 박차고 다 때려 부수고 싶은 걸 억지로 참고 있는 거였다.
필드 위에서 중심을 잡아줄 본인이 이성을 잃는 순간, 중국이 원하는 대로 흘러갈 가능성이 크니까.
“지금은 진정해, 침착하게 심호흡도 하고. 지우 상태는 괜찮아 보이잖아.”
유지우는 발이 닿는 것과 동시에 발을 뺀 덕분에 부상은 없었다.
그리고 주심은 장징빈에게 카드를 꺼냈다.
한국 선수들은 이 판정이 아니라며 항의하려고 하지만.
“그만둬요.”
“응?”
“딱 봐도 모르겠어요?”
유지우는 앉아서 신가드와 축구화 끈을 정리하며 말했다.
“저 사람 돈 받아먹은 냄새가 여기까지 나잖아요.”
학창 시절.
승리를 위해 양심까지 팔아먹은 사람들이 풍기는 냄새가 유지우의 코끝으로 진하게 풍겨왔다.
“그래서 어떻게 하게?”
씩.
“이에는 이, 눈에는 눈.”
“…….”
“우리도 드러눕죠. 마침 잔디도 푹신하니, 잠 잘 오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