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ien In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25)
필드의 외계인-25화(25/404)
제25화
보카 주니어스 1군 감독, 세바스티안 란첼라는 턱을 쓸며 전반전에 선수들이 보여준 플레이를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여러 재능 중 가장 빛나던 재능.
다른 선수들이 흐릿했다면 유지우는 선명했다.
‘측면과 중앙을 가리지 않는 플레이 메이커로서의 재능도 가지고 있다라…. 귀중하군.’
유지우가 보여준 플레이는 어떻게 가공하든 빛을 내는 보석이라는 걸 증명한 셈이었다.
드리블과 패스를 겸비한 선수.
아직 어려서 경험이 부족하긴 했다.
그렇지만 지금 당장 1군으로 올려도 전력으로 써먹을 잠재력을 지닌 것 또한 사실이었다.
“흥미롭지?”
그의 옆에 앉아서 흐뭇한 표정을 짓는 사람은 로드리고였다.
“아시아에서 굉장한 녀석을 건져오셨네요. 하비에르도 저 나이 때는 저렇게 못 했어요.”
세바스티안 란첼라는 코치 시절에 로드리고와 처음 만나 지금까지 친하게 지낼 만큼 가까운 사이였다.
“내가 저놈 데려오려고 안 하던 짓까지 했다.”
“안 하던 짓이요?”
“정장 입고 브리핑했다.”
말을 들은 세바스티안 란첼라는 상당히 놀라며 웃음을 터트렸다.
“풉, 저도 로드리고가 정장을 입은 모습을 한 번은 보고 싶네요.”
“이제는 절대 안 한다. 정장, 그날 찢어서 버렸어.”
“아쉽네요.”
“그것보다 네 눈으로 보기엔 어때? 1군으로 바로 올려도 되겠지?”
“예. 세밀하게 다듬어야 할 필요는 있지만, 부족함은 없어요. 저 나이에 저런 퍼포먼스를 보여준다면…. 10년 후에는 어떨지 기대도 되고요.”
“그렇지? 예뻐 죽겠지?”
“그래도 2군은 거쳐야 한다는 게 구단의 방침이에요.”
다음 시즌부터 곧장 1군으로 올린다면 말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딴 놈들 의견이 무슨 상관이야? 결국 최종 결정권은 네가 가지고 있잖아.”
“그건 그렇지만.”
“뭐가 문제야?”
“2군에서 한 가지 생각해둔 게 있어요.”
“어떤 거?”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궁금해서 사람 미치게 만드는 버릇은 없어지질 않는구나.”
“그래야 로드리고를 놀릴 수 있으니까요.”
이야기하면서 다시 필드를 봤고 거기서 화려하게 빛나는 재능을 보더니, 양손으로 얼굴을 쓸었다.
“하아, 미치겠네요.”
“응?”
“저 녀석을 얼른 쓰고 싶어요. 흐흐흐흐흐.”
그러더니 변태처럼 웃기 시작했다.
그걸 보며 로드리고는 흐뭇해했다.
‘진짜 마음에 들었나 보군.’
평소에는 냉정한 이미지의 세바스티안 란첼라였지만, 그와 가까운 지인만 아는 버릇이 있었다.
정말 마음에 드는 게 있다면 미친 사람처럼 웃는 버릇이었다.
* * *
“쟤 누구야?”
유스 리그에서 지배가 아닌 폭격하는 수준으로 활약을 하니 보카 주니어스 팬들 사이에서 유지우라는 이름은 서서히 퍼졌다.
그렇다고 모두가 아는 건 아니었다.
아무리 클럽의 팬이라고 해도 유스들의 이름까지 기억하는 팬들은 드무니까.
“우리 요정.”
“저 꼬마는 미쳤어. 어떻게 저런 플레이가 가능해? 마치 마라도나 같잖아!”
“그렇지? 내가 전부터 생각한 건데, 저 녀석은 마라도나가 환생한 거 아닐까?”
디에고 마라도나의 향기를 아시아에서 온 작은 소년에게서 느끼자 팬들은 혼란스러웠다.
“…와.”
깔끔한 볼 터치.
상대 선수가 몇 명이 붙는다고 해도 이겨내는 탈압박 능력.
볼이 많이 가는 만큼 시선이 몰리는 건 당연했다.
“또 뚫었다고! 아메리코 녀석이 아무것도 못 하잖아!”
“저 배신자 자식! 유! 그 자식 다리를 부러트려!”
아메리코 체로는 파괴력이 좋은 풀백이었다.
풀백이 가져야 할 장점 가운데 빠른 스피드와 정적인 움직임.
킥 능력도 뛰어나 사이드라인을 찢어버리는 풀백으로 소문이 자자해 아르헨티나 청소년 국가대표도 단골로 뽑히는 선수였다.
하지만.
아무리 재능이 뛰어난 선수라 할지라도 보카 주니어스 팬들에겐 그저 ‘배신자’였다.
돈만 보고 떠난 배신자.
그리고 떠날 때도 그냥 떠난 게 아니라 괴상한 말도 함께였다.
‘유니폼이 더 예뻐서요.’
떠나는 이유로 진짜 살인이 날 뻔하기도 했다.
SNS에는 ‘돼지 도축의 날’이라며 아메리코의 사진 옆에 칼을 올려놓은 인증샷이 올라왔고 한동안 난리가 나 아르헨티나 메인 뉴스에도 보도됐었다.
그래서 보카 주니어스 팬들은 아메리코 체로를 보면 욕을 참지 않았다.
스르르르륵.
그런 그를.
툭.
유린하는 유지우의 플레이에 관중들은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 와아아아아아아아아!
자신들을 대신해 배신자를 처단하는 어린 요정에게.
– 찌우! 찌우! 찌우!
팬들은 환호로 답했다.
필드 위에서 펼쳐지는 마법.
그리고 그 마법의 끝에는.
철렁.
언제나 골이 함께였다.
[들어갔습니다아아아아아아아아! 보카의 미래! 보카의 희망! 보카의 요정이 전반전이 끝나기 직전! 다시 한번 리버 플레이트의 골문을 열어젖힙니다!] [아메리코 체로는 따라오지도 못하는 스피드! 센터백 두 명 사이를 과감하게 돌파하는 마르세유턴까지! 아시아에서 온 엄청난 괴물이 아르헨티나의 유망주들을 처참하게 짓누릅니다!]2 – 0.
전반 종료 직전, 추가 시간에 나온 득점.
유지우의 두 번째 골이 들어가자 보카 주니어스 팬들은 금빛 물결을 일으켰다.
* * *
리버 플레이트 U-20도 이렇게 당하고만 있을 팀이 아니었다.
팬들 사이에서 황금세대라고 불리며 2년 전부터 모든 대회 트로피를 싹 쓸어 담는 그들은 재능이 뛰어났다.
패스면 패스.
뻐—–엉!
슈팅이면 슈팅.
쉬지 않고 보카 주니어스의 골문을 노리며 조금이라도 격차를 좁히고자 노력했다.
“금방 따라붙을 수 있어! 끝까지!”
리버 플레이트는 변화를 위해 후반전에는 양 윙어를 발이 빠른 선수들로 교체하며 역습 위주의 플레이를 했다.
[라인을 올리는 리버! 어떻게든 골을 넣어서 동점을 만들어야 해서 그런지 공격 템포가 전반전보다 빨라졌습니다.]툭.
툭.
그 과정에서 에두아르도 구아린의 재능이 빛났다.
리버 플레이트의 주장이자 차세대 리버의 중원을 책임질 그의 재능은 당연하게도 ‘패스’였다.
빌드업을 짜임새 있게 만드는 것도 좋았지만, 넓은 시야를 기반으로 한 로빙 스루패스는 보카 주니어스의 골문을 번번이 위협했다.
– 오오오오오오!
[에두아르도 구아린이 살짝 띄워준 볼! 보카 주니어스의 골문 앞에 정확히 떨어지며 세르히오 가이탄이 달려듭니다!]하지만 골키퍼가 먼저 반응하며 골로 연결되진 못했다.
[보카의 골문이 단단하네요. 쉽게 뚫릴 기미가 보이질 않습니다.] [보카의 주니어는 수비적인 부분이 약점이었는데 이제 그런 부분이 사라졌네요. 수비가 전체적으로 깔끔해졌습니다.]보카 주니어스 U-20에겐 수비적인 약점이 있었다.
로돌포 핀티는 그 부분을 후반기에 여러 실험을 하며 고치고 또 고쳤다.
그러면서 찾은 결론.
‘후방 미드필더의 수비 가담은 90%까지 올리고 남은 공간을 다른 미드필더들이 채워주는 극단적인 형태.’
처음에는 다른 미드필더가 혹사한다며 반대 의견이 많았지만, 그 전술은 유지우에게 ‘플레이 메이커 롤’을 부여하며 해결됐다.
유지우가 중앙까지 넘나들어 주는 덕분에 라우타로 오르반을 비롯해 미드필더들이 조금 더 밑에서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보카의 단단한 수비진! 수비 시에는 식스 백으로 변화하며 리버의 날카로운 공격을 막아냅니다.] [하지만 에두아르도 구아린의 패스를 막지 않는 이상, 실점 위기는 끊이지 않을 겁니다. 그의 패스는 단 한 번에 득점까지 이어질 만큼 위협적이니까요.]에두아르도 구아린의 패스는 프로 수준이었다.
탁.
볼을 받고 돌아설 때, 라우타로 오르반이 따라붙었다.
‘아!’
패스를 방해하고자 압박을 가했으나 에두아르도 구아린은 몸싸움을 견디며 시선은 전방을 향했다.
뻐—–엉!
무엇을 봤는지 과감하게 시도한 롱패스.
허공을 아름답게 가른 패스는 최전방으로 파고드는 세르히오 가이탄의 발 앞으로 뚝 떨어졌다.
오프사이드도 아니었다.
정확하게 라인을 찢어버리는 침투와 그걸 완벽하게 만들어주는 패스.
“때려어어어어어어!”
원터치로 찬 볼은 골키퍼가 벌린 다리 사이로 들어가며 보카 주니어스의 골망을 흔들었다.
유지우의 화려함 속에 가려져서 그렇지 이곳에서 뛰는 선수들은 아르헨티나에서도 최고의 재능들이었다.
[고오오오오오올! 이것으로 2 – 1! 리버 플레이트가 57분에 득점을 하며 한 걸음 쫓아갑니다!] [아르헨티나 유스 리그 최고의 패서! 도움왕 에두아르도 구아린이 리버의 주장에 어울리는 면모를 보여줍니다!]에두아르도 구아린.
디에고 로시라는 뛰어난 재능에 가려져 주목은 비교적 덜 받지만, 리버 플레이트가 애지중지하는 차세대 에이스였다.
* * *
시간은 흘렀다.
어느덧 시간이 20분밖에 안 남자 리버 플레이트 U-20은 플레이가 급해지기 시작했다.
박자가 빠른 건지.
아니면 공격수가 느린 건지.
리버 플레이트는 조급한 마음에 잦은 실수를 범했다.
‘빌어먹을.’
에두아르도 구아린은 자신이 생각한 그림대로 볼 연결이 되지 않자 답답해했다.
뻐—-엉!
적절한 타이밍에 줘도 보카의 강한 압박에 번번이 빼앗기기를 반복했다.
스윽.
그때 에두아르도 구아린의 시선에 사이드에서 올라오는 선수가 보였다.
[아메리코 체로가 오버래핑! 에두아르도 구아린이 원터치로 밀어준 볼을 쭉 치고 달립니다!]윙어가 수비수를 끌고 중원으로 올라가 준 덕분에 아메리코 체로의 앞에는 달릴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졌다.
[리버 플레이트 주니어들의 측면 전개! 아메리코 체로가 올라갑니다!]정확한 킥 능력으로 위협적인 크로스를 하는 것이 장점이라 크로스 공간을 내주면 안 됐다.
씨익.
크로스를 봉쇄하라고 소리치던 로돌포 핀티는 곧 달려가는 한 선수를 보곤 미소를 지었다.
“…대체 체력이 얼마나 좋은 거야, 저 녀석은.”
등번호 10번.
유지우였다.
오늘 경기에서 쉬지 않고 뛰었는데도 수비까지 가담하는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
[어어어어! 뒤를 쫓아가는 선수가 있습니다! 유! 보카의 요정이 아메리코의 뒤를 쫓습니다!]거리는 좁혀졌다.
크로스를 올리는 공간까지는 단 몇 걸음.
‘제발!’
타다다닷!
‘제발!’
아메리코 체로는 필사적이었다.
수비에서는 유지우에게 완전히 당했지만, 공격적인 부분까지 당할 순 없었다.
공격은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었다.
세 걸음.
두 걸음.
한 걸음.
촤—–악!
뒤에서 시도한 백태클처럼 보였지만, 아메리코 체로의 발에서 볼을 완벽하게 쳐냈다.
[유의 깔끔한 태클! 아메리코 체로가 넘어져서 항의하지만, 반칙이 아닙니다! 정확하게 볼만 건드렸습니다!] [볼을 빼앗은 뒤에 곧바로 드리블! 공격 전환이 빠릅니다!]볼은 라인에 걸려서 넘어가지 않아 인플레이 상황이었다.
투—-욱!
볼을 잡은 유지우가 길게 차고 달리기 시작하자 아메리코 체로가 허겁지겁 일어나 뒤따라왔다.
[라우타로 오르반에게 패스를 주며 더 안으로 들어가는 유…! 아! 에두아르도 구아린의 압박에 라우타로 오르반이 유에게 리턴 패스를 못 합니다!]에두아르도 구아린의 빠른 백업으로 역습 타이밍을 빼앗겼다.
그러면서 아메리코 체로는 수비 위치로 돌아갔고 유지우는 살짝 라인을 내려가며 손을 뻗었다.
“이쪽!”
볼을 달라고 하자 라우타로 오르반은 망설이지 않고 볼을 내줬다.
탁.
유지우가 볼을 잡고 리버 플레이트 U-20의 진영을 바라보자 관중들은 묘한 설렘에 휩싸였다.
‘이번에는 뭘 보여줄까?’
볼을 잡는 것만으로도 두근거리게 했다.
유지우는 그런 시선 속에서 조금도 긴장하지 않았다.
오로지 눈앞에 있는 선수를 어떻게 제쳐서 골까지 만들지 그것만 계산했다.
‘막아야 해…. 막아야 해…. 막아야 한다고!’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지친 기색이 역력한 아메리코 체로와 거리가 좁혀지자 유지우는 순간적으로 속도를 더 올렸다.
허벅지가 저릿했으나 참고 나아갔다.
휙.
왼쪽으로 볼을 끌곤 오른쪽으로 툭 치고 나가는 개인기.
‘걸렸다.’
인코스 플리플랩이 아닌 아웃코스 플리플랩.
역동작에 걸린 아메리코 체로는 마취총에 맞은 것처럼 뒤로 쓰러졌다.
순간 스피드를 이용해 더 치고 나가자 수비수는 허무하게 뚫렸다.
그렇게 찾아온 완벽한 크로스 기회.
뻐—엉!
시야로 선수들의 위치를 확인한 후에 곧장 크로스를 올렸다.
스르르르르륵.
살짝 회전이 걸려 서서히 휘면서 기예르모 다린이 달려드는 곳으로 자석처럼 빨려 들어갔다.
[유의 크로스으으으으으! 볼이 좀 긴 거 같은데요!] [수비수들이 기예르모 다린이 들어가지 못하게 몸으로 막습니다! 저러면 기예르모 다린이 헤딩을 하지 못하죠!]“으아아아아아아!”
놓칠 줄 알았는데 기예르모 다린은 고함을 지르며 몸을 날렸다.
수비수 두 명의 사이로 억지로 비집고 나오며 몸의 균형이 전부 무너졌지만, 시선은 볼에서 떼지 않았다.
스트라이커로서의 본능.
골에 집착하는 것만큼은 기예르모 다린이 유지우보다도 독했다.
퍼—–억!
볼은 기예르모 다린의 얼굴을 강타하며 골대 안으로 들어갔다.
[고——올! 기예르모 다린! 경기가 끝나기 직전! 얼굴로 보카의 세 번째 골을 만들어 냅니다!] [보카의 어린 전사들이 리버 플레이트의 성지에 칼을 꽂습니다!]유지우는 전광판에 올라가 난리 치는 기예르모 다린에게 다가가 물었다.
“…괜찮냐?”
척.
물음에 볼에 맞아 붉어진 얼굴로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올려주는 기예르모 다린.
해맑게 웃는 그를 본 유지우는 코를 가리켰다.
“너, 코피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