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ien In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250)
필드의 외계인-250화(250/404)
제250화
감독실 안은 정적에 휩싸였다.
주앙 달루트의 입에서 나온 말.
유지우는 그 말이 귀에 박혀 떠나질 않았다.
‘주장.’
그것도 월드컵에서 주장이라니.
“…언제부터 그런 얘기를 하신 겁니까?”
이런 말을 할 정도라면 이미 당사자들 사이에서 모든 얘기가 끝난 것을 의미했다.
유지우가 당황한 기색을 보이자 주앙 달루트는 침착하게 대답해줬다.
“본격적인 얘기는 작년 3월부터였다. 나는 킴이 대표팀에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주앙 달루트는 끝말을 삼켰다.
그는 김기하가 리더쉽 있게 선수단 분위기를 이끄는 것을 좋아했다.
‘좋은 리더.’
딱 이런 단어가 떠오를 만큼 균형을 잘 유지해줬으니까.
그러나 그는 김기하의 기량이 서서히 떨어지는 걸 눈치챘다.
안정적인 볼배급은 여전히 뛰어났지만, 김우일이 그 자리를 대체하니 입지가 줄었다.
대한민국의 현 포메이션은 4 – 4 – 2.
그중 미드필더진은 다이아몬드 형태였고 구성은.
공격형 미드필더 – 유지우.
왼쪽 윙어 – 강예수.
오른쪽 윙어 – 차선호.
수비형 미드필더 – 김우일.
이것이 주앙 달루트가 고정하는 멤버들이었다.
【 입지가 줄어드는 대표팀 주장 김기하, 이대로 괜찮나? 】
【 1옵션 김우일, 2옵션 최남일, 3옵션 김기하? 주앙 달루트의 선택은? 】
기사는 연이어 그의 입지를 흔들었다.
김기하가 출전하지 못할 때는 골키퍼 강인우가 대신 주장 완장을 차고 나왔으니까.
그러니 이대로 월드컵에 가면 흔들리는 주장과 같이 가게 되는 거였다.
그럴 바에 흔들리지 않는 주장을 세워 단단한 선수단을 만들어야 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단단한 주장과 함께.
“이미 결정된 거군요.”
“너한테는 조금 더 늦게 알리려고 했다. 클럽에 집중하는 게 먼저니까. 이렇게 말하게 되니 마음이 조금 무겁군.”
“아닙니다. 선수단 구성은 감독님의 고유 권한이잖아요. 말씀하시는 게 당연한 겁니다.”
주앙 달루트는 유지우의 표정을 살폈다.
“당황스럽지?”
“…아니라면 거짓말이죠.”
이런 소리를 듣고 당황하지 않는 선수는 없을 거다.
어린 시절부터 꿈꾸던 국가대표의 리더가 된다는 건, 축구선수라면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큰 영광이었으니까.
“역시 나중에 알려줄 걸 그랬나?”
“아니요. 미리 알게 됐으니 마음의 준비도 할 수 있으니까 좋죠.”
잠깐 당황하긴 했지만, 어느새 유지우는 침착함을 찾았다.
어린 나이지만 이미 많은 것을 경험한 그는 멘탈적으로 완전히 성숙해 있었다.
“…자넨 가끔 그 나이가 맞는지 의심이 된다니까.”
“칭찬해주시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그러면 주장 자리는, 받아들이는 거겠지?”
“저만 동의하면 되는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선수단을 말하는 건가?”
“네. 선수들도 모두 동의했나요?”
선수단의 동의는 중요한 문제였다.
아무리 감독이 정하는 주장이라고 하지만 선수들의 지지를 받지 않는 주장은 있을 수 없었다.
하나, 유지우의 말을 들은 주앙 달루트는 활짝 웃을 뿐이었다.
“모두가 동의했다.”
“…….”
“단 한 명도 빠지지 않고 말이지.”
이미 선수단은 유지우가 다음 주장을 맡는다는 것에 모두 동의했다.
“선수들에게 신뢰가 대단하더군.”
반대 의견이 나올 법도 했지만, 그런 것조차 없었다.
김기하와 친한 친구인 최민연조차도 한 마디의 불평도 내뱉지 않을 정도였다.
“맡을 거지?”
유지우의 머릿속에는 온갖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너무 이르다고 생각했다.
만 20세.
한국 나이로 21세에 대표팀 주장 타이틀은 너무 과해 보였으니까.
‘너라면 할 수 있어.’
‘자신감을 가져.’
‘주장 자리에 너만큼 어울리는 선수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
그런데 그동안 나눴던 대화들이 떠올랐다.
그를 믿어주는 동료들이 들려주었던 신뢰의 목소리들이.
그러면서 서서히 마음이 단단해졌다.
만약 피할 수 없는 문제라면.
예전부터 꿈꿔왔던 국가대표의 주장을 할 수 있다면.
“해보겠습니다.”
하고 싶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간절히.
‘두려움은 없어. 역시… 타고난 리더감이라는 건가.’
주앙 달루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시야에 들어온 유지우의 눈빛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받아들인 거였다.
현재 상황을.
그리고 대표팀 주장직을.
“마음 단단히 해, 주장이라면 팀의 중심으로서 흔들리면 안 된다.”
“네.”
“뭐, 너라면 잘 해낼 거라고 믿지만.”
주앙 달루트는 애초에 유지우 말고 다른 후보는 생각하지도 않고 있었다.
그만큼 유지우가 선수단에 끼치는 영향력이 대단했으니 말이다.
“출국은 언제라고 했지?”
“이틀 뒤입니다.”
“조심해서 다녀와라, 다음에 볼 때는… 유럽 챔피언이 되어 있겠군.”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 * *
감독과의 미팅을 끝낸 뒤, 파주 캠프장을 떠나기 전.
유지우는 로비 테라스에 누군가가 있는 걸 발견하고 그쪽으로 걸어갔다.
그곳엔 김기하가 앉아서 음료를 마시고 있었다.
“왔어?”
“…….”
“표정을 보니까 감독님이 다 말씀하셨나 보네.”
“왜 그런 결정을 하신 거예요.”
유지우의 눈가에 작은 물방울이 맺혔다.
김기하는 웃으며 마시던 음료수를 내려놓았다.
그는 살짝 숨을 뱉고는, 자신의 심정을 솔직히 이야기했다.
“그러고 싶었으니까.”
“그 중요한 얘기를 왜 저한테 한마디도 안 하셨어요?”
“그야 네가 클럽에 집중하길 원해서지.”
김기하는 32-33시즌이 끝나고 유지우에게 말해주려고 했다.
지금 유지우에겐 아주 중요한 시기였으니까.
하지만 생각보다 자신의 기량 저하가 빠르게 찾아온 탓에 주앙 달루트 감독과 상의 끝에 지금 시점에 유지우에게 말을 꺼내게 된 것이었다.
“제가 잘 할 수 있을까요?”
“물론.”
“…왜 그렇게 확신하세요?”
“간단해.”
“…….”
“대표팀에 합류한 이후로 네가 대표팀의 중심이 아니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냉정하게 판단하자면 지금 유지우는 김기하보다도 리더쉽이 있다는 평가가 있었다.
아직 어린 나이라 경험이 필요하다곤 하지만 유지우가 주장 완장을 차는 것에 자격을 운운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게 분명했다.
“무엇보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나처럼 능력이 없는 선수보다, 너 같이 능력 있는 선수가 필요해.”
“…형이 왜 능력이 없어요.”
“끝까지 들어.”
“…….”
“월드컵을 앞두고 우리는 어느 때보다 단단해야 해, 그런데 그 기반이 될 주장이 흔들리면 전체가 흔들리게 되어 있어.”
유지우는 울컥했지만, 김기하가 하는 말에 토를 달지 않고 얘기를 끝까지 들었다.
“넌 흔들리지 않고 대표팀을 지탱할 수 있을 거다. 누구보다도 대한민국을 빛낼 녀석이잖아.”
김기하는 유지우에게 주장직을 넘겨주기로 한 뒤로 그를 유심히 살폈다.
그렇게 1년이 흘러 결심했다.
이제는 넘겨줘도 된다는 걸.
스윽.
김기하는 아무 말 하지 못하고 있는 유지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고민은 짧게.”
그리곤 조언을 해줬다.
유지우만큼 성공한 선수의 삶은 아니었지만, 이 세상에서 오래 산 선배로서.
“마음은 굳건하게.”
그의 눈빛에는 따뜻함이 묻어있었다.
“혼자서 못 헤쳐 나갈 때는 동료들을 의지해. 혼자 가는 것보다 같이 가는 게 더 멀리 갈 수 있어.”
“…그럴게요.”
“너무 부담을 느끼지 마. 평소처럼 하면 돼.”
툭.
그리곤 유지우의 가슴을 주먹으로 툭 쳤다.
“이전 세대에서 다음 세대, 그리고 다음 세대에서 그다음 세대로…. 넌 나보다 더 훌륭한 국가대표를 물려주길 바란다.”
* * *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이 끝나고 다음 날.
유지우는 가족들과 하루를 같이 보낸 뒤, 저녁 약속이 있어 집을 나섰다.
그가 향한 곳은 청담동.
그중에서도 고급 한정식집이었다.
“어서 오세요. 유지우 선수.”
룸에서 기다리는 사람은 스포츠 코리아 대표 권승민이었다.
“오래 기다리셨어요?”
“전혀요! 저도 방금 막 도착했습니다! 앉으시죠!”
권승민의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현재 스포츠 코리아에서 최고 매출을 올려주는 선수가 바로 눈앞에 있었으니까.
“스포츠 코리아가 아시아 시장 점유율 1위를 달성했다고 들었습니다.”
“그게 다 유지우 선수 덕분이죠. 계속 해외사에 밀리는 저희를 올려줬으니까요.”
전 세계 스포츠 대기업.
아디아스, 나이스, 치타.
3대 스포츠 기업이라고 불릴 정도로 압도적인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는 기업들을 제치고 아시아 지역에서 1위를 차지했다는 건 엄청난 결과였다.
“저 혼자서 한 건 아니죠, 뒤에서 묵묵히 지원해주신 덕분에 저도 편하게 축구를 하고 있어요.”
스포츠 코리아는 유지우를 극진하게 보살폈다.
필요한 것이 없다고 해도 에이전트를 통해 지원할 것을 상시 물어봤고, 회사에서는 유지우 전담팀이 꾸려질 정도였다.
“아직 다 이루신 건 아니잖아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3년 전에 처음 미팅했을 때가 아직도 생각나네요.”
“…….”
“메이저 기업들을 제치고 최고의 자리에 오르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그랬죠.”
“그게 아시아 시장에만 적용되는 거였나요?”
권승민은 유지우를 보며 씩 웃음을 지었다.
“설마요. 아시아는 그 시작점입니다. 우리는 더 넓혀서 종국에 전 세계 점유 1위의 기업이 될 겁니다.”
권승민은 말을 하면서 유지우와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3년 전.
아르헨티나 리그를 폭격하고 이적설에 휘말린 선수.
아르헨티나에서 최고가 됐지만, 전 세계 축구계에선 막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던 시기.
‘우리는 유지우 선수처럼 최고가 되는 것이 목표니까요.’
최고가 되기로 약속한 후.
어느덧 유지우는 프리미어리그 우승으로 유럽을 접수하는 중이었고, 스포츠 코리아는 아시아를 접수했다.
이 모든 게 3년 만에 만들어진 결과였다.
“제가 발롱도르를 탈 때, 꼭 오세요.”
“저는 이미 항공권을 예약했습니다.”
“예약이요? 제가 언제 상을 탈 줄 알고서요?”
“그야 2033 발롱도르 시상식장이죠.”
“…기대에 부응해보도록 열심히 해야겠네요.”
“무리만 하지 마세요.”
두 사람은 그렇게 대화를 나누며 식사를 했다.
즐거운 식사가 이어지던 중, 권승민은 문득 유지우가 예전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
“유지우 선수가 원하는 재단 설립, 어디까지 진행 중입니까?”
“아직 초기 단계에요. 이것저것 준비할 게 많네요.”
“사업이라는 게 그렇죠.”
재단 설립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여러 법적 문제는 에이전시에서 처리해준다고 하지만 사람이 문제였다.
“무슨 문제가 있다면 언제든 말씀해주십시오, 제가 힘이 닿는 데까지 도와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유지우 선수의 상품 말인데요….”
그 후로도 두 사람은 여러 대화를 나누며 앞으로의 지원 방향이나 계획을 정했다.
* * *
며칠 후.
유지우는 아스날로 복귀해 리그 일정을 소화했다.
『 리그 27라운드 / 크리스탈 펠리스 전 3 – 0 승리 (90분 출전) 』
[패스 – 124회 (성공률 93%)] [결정적 패스 – 4회] [태클 – 7회 (성공 – 7회)] [돌파 – 19회 (성공 – 18회)] [파울 – 0회] [도움 – 0개] [득점 – 2개]『 리그 28라운드 / 레스터 시티 전 1 – 1 무승부 (65분 출전) 』
[패스 – 86회 (성공률 97%)] [결정적 패스 – 3회] [태클 – 5회 (성공 – 5회)] [돌파 – 12회 (성공 – 12회)] [파울 – 0회] [도움 – 1개] [득점 – 0개]두 경기에 출전해 아스날의 승리에 기여했다.
그렇게 3월이 지나갔고, 4월이 찾아오며 한국 축구팬들이 기대하는 경기가 다가왔다.
【 UEFA 챔피언스리그 8강, 아스날 vs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
【 유지우 vs 강예수! 코리안 더비 성사! 】
【 한 시즌 48골을 몰아치는 유지우의 득점력!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겨냥하다! 】
바로 코리안 더비.
유지우 vs 강예수의 경기였다.
과거에 챔피언스리그 조별 예선에서 코리안 더비가 있었지만, 토너먼트에선 최초였다.
【 강예수, “유지우가 있는 아스날은 강한 상대다. 방심하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하겠다.” 】
【 유지우, “누가 상대라도 최선을 다할 뿐.” 】
경기 전, 두 선수의 인터뷰가 보도되며 한국 커뮤니티 사이트는 달아올랐다.
– 우리가 이걸 보네.
– 챔스 8강에서 코리안 더비? 이건 못 참지 ㅋㅋㅋㅋㅋ
– 누굴 응원해야 하나?
– 그러게.
– 아무나 이겨라! 이래야 하는 거 아님?
– 그래도 유지우가 이겼으면…. 솔직히 챔피언스리그 우승하면 2033 발롱도르 가능성이 있잖아.
– 거기에 프리미어리그 우승까지 하면 거의 확실해지지.
– 만 20세 어린 선수한테 그런 걸 주겠어? 저 유럽 우월주의 녀석들이?
– 그래도 이번에 3위까지 했잖아.
– 그건 그냥 구색을 갖추기지. 실제로 누구도 유지우가 수상하길 원하지 않을걸?
유럽과 남미의 전유물인 발롱도르를 아시아인이 가져갈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래서 유지우가 해야 할 건 하나였다.
– 그러니까 더욱 압도적인 성과를 올려야 해. 방법은 챔스 우승과 더불어 리그, FA 컵을 접수해 트레블을 달성하는 것뿐이야.
그렇게 많은 관심 속.
코리안 더비 일정이 다가왔다.
4월 5일.
– 와아아아아아아!
UEFA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이 열릴 아스날의 홈, 애슈버턴 그로브의 관중석은 만석을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