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ien In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27)
필드의 외계인-27화(27/404)
제27화
“…1군 합류야?”
디에고 로시가 물었고 기예르모 다린은 침을 꿀꺽 삼켰다.
“자세한 건 만나서 얘기하자고 하시고 일단 30일에 1군 훈련장으로 오전 11시까지 나오라고만 하셨어.”
감독님은 1군 합류에 대한 확답을 주진 않았다.
“미쳤다. 그러면 우리 중에 네가 제일 먼저 데뷔하는 건가?”
“그건 모르지. 단순한 훈련 참여는 유스들에게도 오는 기회잖아.”
1군 훈련 참여는 구단에서 촉망받는 유망주들에게 주는 일종의 기회였다.
거기서 좋은 모습을 보여준다면 1군 경기에 출전할 기회를 얻게 되는 경우가 아주 드물게 있었으니까.
“그래도 가까운 건 사실이잖아. 난 1군 훈련에 참여했을 때 아무것도 못 했지만, 넌 다를 거 같거든.”
“와, 아르헨티나에 오고 1년도 되지 않아서 1군 데뷔면…. 미쳤다는 소리가 저절로 나오네.”
나도 기예르모와 마찬가지로 2군으로 올라가는 소식일 줄 알았는데 1군 훈련에 합류하라는 소식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맞다, 근데 1군 선수단은 외국인 규정 있잖아. 그거에 안 걸리나?”
한 사람이 손을 들어 의견을 말하자 마르시오 아저씨가 대답했다.
“걸릴 일이 없으니까 유가 올라가도 문제가 되지 않아.”
아르헨티나 리그는 선수단에 비남미권 외국인 선수 세 명까지 포함할 수 있었다.
현재 보카 주니어스 선수단에서는 외국인 선수가 한 명밖에 없어서 유지우가 올라가도 규정에 걸릴 일은 없었다.
“오! 그렇군!”
“축하해, 유! 우리 지인 중에서도 1군 선수가 나오다니!”
“데뷔전 날짜 잡히면 얘기해!”
“이러나저러나 구단에서도 너를 주목하고 있다는 건 이걸로 증명됐네.”
모인 사람 중에 가장 놀란 건 우리 가족들이었다.
2군도 아닌 1군 훈련 참여 소식에 아버지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토록 꿈에 그리던 일이 일어나자 놀란 표정을 지으며 가만히 나를 바라보셨다.
“우리 아들이 1군?”
말을 못 하는 아버지 대신에 어머니가 말했다.
“확실하게 정해진 건 아니에요.”
“그래도! 이게 아무한테나 오는 기회냐!”
그 말대로였다.
이런 기회는 누구에게나 오는 기회는 아니었다.
“이왕 가는 거! 확실하게 하고 와.”
“네.”
아무에게나 오지 않는 기회.
그게 나에게 온 이상 허투루 보낼 생각은 없었다.
1군 선수단에 강렬한 인상을 심어줄 생각이다.
* * *
6월 30일.
1군 훈련장.
보카 주니어스 팬들은 29-30시즌을 준비하는 선수들의 출근길을 보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훈련장을 찾았다.
“어? 쟤, 유스 걔잖아.”
“아! 지난 크리스마스 더비에서 봤었어!”
밖에서 기다리는 팬들의 시선에는 주차장에서 내려 에이전트의 보호를 받으며 훈련장 안으로 걸어가는 유지우가 보였다.
“어린 왕자!”
아르헨티나 주니어컵을 우승시킨 유지우는 팬들에게 유명 인사가 되어 있었다.
보카 주니어스 커뮤니티 사이트에 게시글이 매일 올라올 정도로 높은 관심을 받았다.
“저 애가 여기 왔다는 건 1군으로 승격했다는 거야?”
“구단 공식 사이트에는 별 소식 없던데? 쟤 또래인 디에고랑 기예르모도 2군이잖아.”
“솔직히 그동안 보여준 것만 놓고 보면 1군에 어울리긴 하지.”
“카를로스가 폼이 좋지 않으니까 좋은 로테이션 멤버가 될 거 같은데?”
유지우는 유스 훈련장과 차원이 다른 1군 훈련장 환경을 보고 놀랐다.
최신식 트레이닝 기구에 훈련 중 뭉친 근육을 풀어줄 마사지룸, 스파룸, 식단 관리를 해주는 셰프들까지.
오로지 축구에만 집중할 수 있는 최상의 환경이었다.
‘보카 풋볼 하우스(Boca Football House).’
훈련 라커룸 안에는 유지우의 자리도 마련되어 있었다.
“오, 꼬맹이.”
혼자 라커룸에 앉아서 장비 점검을 하고 있자 선수 한 명이 들어왔다.
1군 센터백인 에르네스토 게레라였다.
182cm로 센터백치고는 작은 키지만, 빠른 발과 클리어링 능력으로 보카 주니어스 센터백 라인을 지탱하는 선수였다.
“안녕하세요.”
“아시아인은 정중하다더니, 넌 어린데도 태도가 좋구나!”
끼익.
“에르네스토, 루키 괴롭히는 거야?”
“내가? 설마, 난 그저 새로운 얼굴이 신기해서 말을 걸고 있었어.”
속속들이 1군 선수들이 도착했다.
유지우에게 크게 관심이 없는 선수들도 있었고 관심이 있어 말을 거는 사람도 있었다.
다양한 선수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밖으로 나갔고 훈련장 필드 위에서는 세바스티안 란첼라가 코치진들과 훈련을 준비 중이었다.
“왔군.”
선수들이 모이자 세바스티안 란첼라는 유지우에게 손짓했다.
“오늘부터 훈련에 참여한 지우 유다. 이미 알고 있는 녀석들도 있겠지만, U-20에서 곧장 여기로 올라온 녀석이니 잘 챙겨주길 바란다.”
“예! 감독님, 저만 믿으십시오! 행복에 겨워 미치게 만들겠습니다!”
“감독님, 에르네스토는 못 믿어요. 아마 괴롭힐걸요?”
“제가 옆에서 감시하겠습니다.”
“이봐! 너희들 다 왜 그래! 내가 루키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에르네스토 게레라는 리카르도 메사 다음으로 나이가 많은 선수였다.
선수들과 인사를 나눈 뒤, 본 훈련에 들어가기 전에 몸을 풀었다.
30분 정도 워밍업을 하곤 세바스티안 란첼라의 지도하에 훈련을 시작했다.
“오늘은 29-30시즌을 앞두고 하는 훈련 첫날인 만큼 패스 훈련으로 가볍게 시작한다.”
훈련을 시작하기 전에 GPS 기능이 있는 EPTS 장비를 착용했다.
활동량.
최고 속도.
히트맵.
경기 중에도 착용하는 조끼로 심박수부터 선수의 모든 데이터를 나노 단위로 쪼개서 알게 해주는 장비였다.
“꼬마, 장비 다 착용했으면 여기로.”
“예. 잘 부탁드립니다.”
유지우의 훈련 파트너는 에르네스토였다.
“한국에서 온 거야?”
계속해서 말을 걸며 긴장을 풀어줬다.
“나중에 라면 먹을 수 있을까? 한국 드라마 보면 진짜 맛있게 먹던데.”
툭.
“그거 매워요.”
툭.
“나 매운 거 잘 먹어!”
툭.
“나중에 하나 가져다드릴게요.”
툭.
“약속한 거다!”
얘기를 나누면서도 정확하게 패스를 주고받았다.
짧은 패스, 롱패스, 호흡을 맞추며 본격적인 패스 훈련을 했다.
기본적인 훈련이지만, 누구도 대충하지 않았다.
높은 집중력으로 감독님이 요구하는 코스대로 보내는 훈련을 했다.
“유!”
유지우 차례가 됐다.
다들 유지우를 봤고 세바스티안 란첼라가 볼을 내줬다.
목표는 약 5m 거리에 있는 코치와 2대1 패스로 주고받은 뒤, 두 번의 터치 안에 슈팅으로 골대 왼쪽에 달린 표적을 맞히는 거였다.
뻐—-엉!
원터치로 처리한 슈팅은 정확하게 골대 왼쪽으로 날아가며 표적을 맞혔다.
– 오~!
1군 선수들은 박수를 보내줬다.
“킥이 상당히 좋은데?”
“이야, 그걸 원터치로? 볼 다루는 게 하비에르랑 비슷하네.”
“감사합니다.”
“유! 다음은 저쪽!”
“예.”
이어지는 훈련에서 군더더기 없는 실력으로 모두를 놀라게 한 유지우는 왜 자신의 별명이 어린 왕자인지 확실하게 보여줬다.
* * *
잠시 후, 휴식이 주어졌다.
“안녕?”
음료를 마시며 가만히 다른 선수들이 훈련하는 걸 보던 나에게 다가온 건 현재 1군 최고의 스타이자 주장인 하비에르 카세로였다.
“아, 넵.”
“긴장할 필요 없어.”
“하비에르.”
“응?”
“사인해 주실래요? 어머니가 팬이시라.”
“…하하하하! 물론이지, 내가 이따가 경기용 유니폼에 사인해서 줄게.”
“감사합니다.”
하비에르 카세로는 착하고 재미난 사람이었다.
나한테 뭐 필요한 거 없냐고 물어보고 선뜻 자기 음료까지 내주며 옆에서 말동무가 되어줬다.
“하비에르, 루키 괴롭히는 거야?”
“아니거든요!”
그리고 온 사람은 리카르도 메사.
보카 주니어스의 레전드이자 아르헨티나 국가대표의 전설로 불리는 선수였다.
“안녕하세요.”
“네가 소문이 자자한 어린 왕자구나.”
“…그 별명은 좀.”
“왜? 아까 훈련하는 거 보니, 어째서 그런 별명이 붙었는지 알겠던데.”
나이가 마흔을 바라본다고 했으면서도 몸의 근육은 여전히 탄탄했다.
“이거, 내 자리를 빼앗을 세대가 올라왔으니 난 슬슬 은퇴나 준비해야 하나?”
“네?”
“하하하하! 농담이다! 하비에르, 이 녀석 표정 봤어?”
이게 농담이었다고?
“네가 이해해, 리카르도는 은퇴 농담 자주 하거든. 익숙해질 거야.”
이 사람들은 웃어넘겼다.
뭔가 나에겐 진심으로 와닿았는데, 착각인가.
“꼬마야, 궁금한 건 없어?”
궁금한 건 많았다.
많은 것 중에서 제일 궁금한 것.
1부 리그에서 수십 년을 지낸 선수의 눈에는 내 플레이가 어떻게 보일지였다.
“리카르도의 시선에 제 플레이는 어때요?”
“음, 내가 할 조언이 듣고 싶은 거야?”
“해주세요.”
“너 패스할 때, 선수가 움직이는 걸 본 뒤에 하지?”
“예.”
당연한 거 아닌가.
“패스는 단순히 볼을 주고받는다는 개념이 아닌 마음을 주고받는다는 개념이야.”
“…….”
“선수가 움직이는 대로 주는 패서는 어디서든 구할 수 있지만.”
툭.
“선수를 움직이는 패서는 귀하디귀하지. 감독들도 이런 선수를 더 선호하기도 하고.”
“…….”
“남미 챔피언 결정전, 2- 2 상황, 종료 직전에 너에게 볼이 왔어. 그러면 넌 어떤 패스를 보낼 거냐? 다른 선수의 입맛에 맞는 패스? 아니면 네가 생각한 패스?”
리카르도 씨는 내게 그 질문을 하고 가만히 대답을 기다렸다.
곰곰이 생각했다.
만약 그 상황이라면 난 어떻게 할까.
머릿속에 떠오른 답은 하나였다.
“제가 생각한 패스요.”
그런 순간이라면 내가 그린 그림대로 플레이하는 게 짜릿하지 않겠나.
씩.
“이놈, 이제야 웃네.”
내가 웃었나.
“그러면 어떻게 해야 선수를 움직이게 하는 패스를 보내줄 수 있는 거예요?”
“그거야 찰나의 순간에 포착해야지. 패스받을 선수의 몸의 균형이 어디에 있는지, 주된 발은 뭔지, 상대 선수의 압박이 어디에 있는지.”
패스 하나를 할 때도 생각할 게 많았다.
“패스 하나가 경기를 뒤바꾸는 경우는 많아. 돌파도 좋지만, 패스의 중요성을 잃으면 안 돼.”
“…감사합니다!”
“뭐, 지금 당장 알기 힘든 내용이지만, 경기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다.”
“제가요?”
“어, 내가 보기엔 너 감각 있거든.”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패스에 대해서 궁금한 거 있으면 하비에르 저 녀석한테 물어보면 된다. 나한테 잘 배워서 리그 도움왕도 해 먹는 놈이니까.”
“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오늘 훈련은 여기까지 한다.”
첫 훈련이 끝났다.
– “수고하셨습니다!”
“유, 넌 잠깐 나랑 면담이다.”
첫날 훈련이 끝나고 세바스티안 란첼라 감독님과 따로 면담했다.
감독실로 들어가자 감독님은 따뜻한 차를 내주며 대화를 시작했다.
“1군 훈련은 어떠냐?”
“즐겁습니다.”
“즐거우면 됐지, 어떤 이야기를 할지는 에이전트를 통해서 들었지?”
어제, 차명훈이 구단의 말을 듣고 나에게 전한 내용.
‘1군 훈련 뒤, 2군 합류.’
이거였다.
“나는 너를 바로 1군으로 올리고 싶지만, 구단에서는 너무 빠르다는 의견이 많다. 그놈들은 책상에서 공론만 하는 것들이라 현장 감각을 전혀 몰라.”
“…….”
“그래서 6개월의 시간을 주는 거다.”
“6개월이면.”
“너를 1군으로 올리는 건 2030년 1월, 후반기 시작부터다.”
기약 없는 2군행이 아니었다.
6개월 뒤, 다시 이곳에 올 약속을 받은 거니, 나름 만족스러웠다.
“그러니 1군 훈련을 하면서 선수들과 가깝게 지내 후반기에 곧장 호흡을 맞춰야 하니까.”
“네.”
“근데 듣던 대로 진짜 표정 변화가 없구나.”
“그렇습니다.”
“웃긴 하지?”
“가끔은요.”
아주 가끔이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