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ien In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29)
필드의 외계인-29화(29/404)
제29화
선수들이 떠난 뒤에도 1군 훈련장의 조명은 꺼지지 않았다.
뻐—-엉!
거기에선 유지우가 볼이 든 카트를 옆에 두고선 슈팅 연습을 하고 있었다.
몇 번을 찼는지 모를 만큼 바닥에 수없이 떨어진 축구공들이 유지우의 복잡한 심경을 대변해줬다.
“루이스.”
멀리서 유지우가 훈련하는 걸 걱정스러운 눈으로 보던 경비원에게 한 사람이 다가왔다.
“어? 로드리고 씨가 여긴 무슨 일입니까?”
로드리고였다.
품에는 무언가 들어 있는 종이봉투가 있었다.
“잠깐 볼일이 있어서요.”
“…유와 관련된 일인가요?”
“어쩌면요.”
로드리고는 훈련장 경비원 루이스와 인사를 나누면서도 홀로 슈팅 연습을 하는 유지우에게 시선을 떼지 않았다.
“항상 저럽니까?”
“평소에도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서 훈련하긴 하지만 오늘은 그 시간이 더 길어요.”
유지우는 늘 다른 선수보다 두 시간에서 세 시간은 더 훈련하고 갔다.
남들보다 두 배, 세 배.
그 정도 훈련을 해야 만족하는 훈련 변태 유형의 선수였다.
로드리고는 루이스의 이야기를 듣고선 훈련장 안으로 들어갔다.
뻐—-엉!
골대로 강하게 볼을 넣는 유지우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슛 자세가 많이 좋아졌네. 쓸데없는 동작이 많이 줄었어.”
“오셨어요?”
“집에 안 가? 미스터 차가 주차장에서 계속 기다리고 있던데?”
“먼저 가라고 했는데 기다리고 있었나 보네요.”
“우직한 사람이잖아.”
“그렇죠.”
“받아라, 오다가 주웠다.”
종이봉투를 내밀었고 거기엔 추로스가 담겨 있었다.
“거기 하얀 통에 담긴 잼에 찍어서 먹으면 맛있다.”
“감사합니다.”
잠시 볼을 차는 것을 멈추고 자리에 앉아 로드리고가 가져온 추로스를 먹었다.
바삭.
반죽의 고소함과 잼의 달콤함이 입안에 퍼지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로드리고도 마찬가지로 옆에 앉아 추로스를 하나 꺼내 베어 물었다.
“기사는 봤어?”
“네, 도움을 주셔서 감사해요.”
“내가 뭘 했다고.”
“그래도요.”
가볍게 대화를 나누다가 로드리고는 유지우를 쳐다보며 말했다.
“힘드냐?”
“조금은요.”
진실이 따로 있다는 것까지 알려졌지만, 타 클럽 팬들의 물타기는 멈추지 않았다.
[이것도 그냥 여론몰이용 거짓말이면? 감독 폭행은 사실이라며?]점차 잊힌 사건이 다시금 들춰지며 그걸로 인해 여러 안 좋은 소리를 듣고 있는데 힘들지 않다고 하는 건 거짓말이었다.
유지우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달과 별이 어둠 사이에서 밝게 빛나는 게 보였다.
“…그때도 이랬어요. 여러 생각이 나는데도 계속해서 몸을 움직이면 쓸데없는 생각이 안 나니까요.”
한국에서도 이런 식으로 잡생각을 날려버렸다.
땀을 흘리는 동안은 잡생각이 나지 않았으니까.
“그러냐.”
“예.”
“추로스는 어때?”
“맛있네요.”
“가게는 레자마 공원 오른쪽에 있으니까 생각나면 가서 사 먹어.”
“오다가 주우셨다면서요.”
“공원 쓰레기통에 누가 버렸더라.”
종이봉투에 든 추로스를 다 먹을 때까지 로드리고는 일상 이야기를 하며 묵묵히 옆을 지켜줬다.
그리고 추로스를 다 먹은 뒤에야 입을 열었다.
“네가 프로 축구의 세상을 계속 살아갈 거라면 앞으로 더한 비난을 받을 일이 생길 거야.”
“예.”
“이기면 홈 팀의 팬들은 환호를 보내주지만, 타 팀 팬들은 조롱하며 너를 어떻게든 흔들려고 할 거다. 여긴 그런 곳이니까.”
프로의 세상은 화려해 보이지만 그 안에 고통도 함께 있었다.
그중에서도 실력과 동급으로 ‘멘탈리티(Mentality)’가 중요했다.
멘탈이 약하면 살아남지 못하는 곳, 그곳이 곧 프로의 세계이기도 했으니까.
“이겨내라는 무책임한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
“버텨라.”
“버티면 뭐가 달라질까요?”
“달라진다. 아주 많은 게.”
로드리고는 진지하게 유지우를 바라봤다.
“프로의 세상에서 비난은 그림자처럼 따라다녀. 그만큼 너 말고도 다른 선수들도 많이 겪는 일이야.”
“…예.”
알고 있었다.
자신만이 아닌 다른 선수도 겪는 일이라는 걸.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겪는 일이 없는 일이 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 녀석들이 모두 그걸 이겨냈다고 보냐?”
“…….”
“말도 안 되는 소리.”
유지우가 아무 말도 안 하자 로드리고는 이어서 말했다.
“그 녀석들은 이겨내려고 발버둥 치는 것보다 버티는 게 익숙해졌을 뿐이야.”
프로 선수에게 영광은 잠깐 스쳐 지나가는 바람과도 같았다.
영광보다는 비난이 더 많았다.
현재 1군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리그 우승이 없는 탓에 팬들에게 조롱당하는 게 일상이라 상처가 많았다. 단지 가면을 하나 만들어놓고 그 뒤에 상처를 숨겼을 뿐이었다.
“프로가 되겠다는 결정을 한 이상, 너도 버티는 것에 익숙해져야 해. 나도 힘든데 왜 남이 힘든 거까지 들어야 해? 라는 어린애 같은 생각을 가졌다면 나중에 크게 당할 거야.”
“…….”
“너만 그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니까.”
로드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바닥에 놓인 축구공을 발바닥으로 끌었다.
툭.
그러곤 유지우에게 툭 패스를 줬다.
“버티고 버티다가 안 되겠으면 혼자 끙끙 앓지 말고 주변에 말해, 도와달라고.”
“…….”
“너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생기고 있잖아?”
결론은 혼자서 이겨내라는 게 아니었다.
주변 사람들과 같이 이겨내라는 의미였다.
자기 이야기를 숨김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만 있어도 살아갈 힘이 생기는 게 인생이니까.
“나도 그중 한 명이 됐다고 생각하는데, 아닌가?”
무표정으로 로드리고를 보던 유지우의 입꼬리는 누구도 알지 못하게 아주 살짝 올라갔다.
“여기까지 와주셔서 감사해요. 로드리고.”
* * *
“홍백전 스케줄이 어떻게 되지?”
1부 리그가 개막되기 전에 친선경기가 세 경기 잡혀 있었다.
그래서 세바스티안은 그 전에 홍백전을 통해 친선경기에 선발로 나갈 선수를 정할 예정이었다.
“이번 주 목요일입니다.”
“흐음.”
세바스티안 란첼라는 가만히 스케줄표를 봤다.
친선경기 후에 8월 중순부터 시작될 1부 리그.
그 일정을 보자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홍백전을 본 뒤에 만약 유가 1군에 어울리는 선수라면 1부 리그를 뛰게 하는 게 어떻겠나?”
갑작스럽게 나온 말에 다들 당황했고 수석코치인 알베르토 바렐라는 미소를 지었다.
“좋습니다. 선수 등록 기간이 8월 말까지니까 중간에 2군으로 내려보내도 규정에 별다른 문제는 없으니까요.”
그 말과 동시에 유지우를 지켜본 스태프들은 한마디씩 거들었다.
“유는 꼭 1군으로 올려야 합니다. 훈련이 끝나고도 늦게까지 개인 훈련한다고 소문이 자자합니다!”
“킥의 정확도도 높고 후반 조커로 활용할 거라면 동의합니다.”
“나쁘지 않죠. 스피드와 돌파 능력이 있으니, 상대 라인을 흔드는 데도 도움이 될 겁니다.”
긍정적인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처음에 아시아인이고 어린 선수라서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던 스태프들도 유지우의 성실함과 노력을 보곤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누구보다 일찍 나오고.
누구보다 늦게 나가고.
부족한 게 있다면 어떻게든 고치려고 노력하는 모습까지.
“동의합니다.”
그들은 유지우를 인정해줬다.
한 명의 축구 선수로서.
* * *
7~8월은 수많은 클럽이 전력 보강을 위해 발 빠르게 뛰는 이적 기간이었다.
【 리버풀, 독일 신성 ‘케빈 크루저’ 영입! 】
【 파리생제르맹, 공격형 미드필더 제롬 슈링거 영입!】
여러 클럽이 전력 보강을 하는 사이, 보카 주니어스도 부족한 전력 보강을 위해 여러 선수를 컨택했다.
보카 주니어스의 문제점으로 꼽힌 공격 자원의 노쇠화.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한 명의 선수를 데려오는 데 성공했다.
【 보카 주니어스, 레알 마드리드 미드필더 앙헬 몰리야 영입! 】
【 앙헬 몰리야, 레알 마드리드와 재계약을 하지 않고 고향 팀 보카 주니어스와 4년 계약 체결! 】
【 앙헬 몰리야,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어 기쁘다.” 】
앙헬 몰리야는 레알 마드리드에서 6년을 주전으로 뛴 선수이자 보카 주니어스 유스 출신의 레전드였다.
[진짜 몰리야가 온다고?] [내 눈이 잘못된 거 아니지? 몰리야가 보카로? 어이! 보드진, 너희 일 이렇게 잘할 거면서 그동안 왜 그랬어!]소식을 접한 팬들은 눈을 의심했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여러 트로피를 들어 올리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나이가 서른한 살이었다.
적어도 3~4년은 더 뛸 수 있었지만, 레알 마드리드의 재계약 제안을 거절하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것을 택한 거였다.
[전설이 돌아온다!] [그런데 너무 띄워주는 거 아니냐? 우리 힘들 때, 홀라당 가버린 녀석이 뭐가 반갑다고.]물론 좋게 보는 시선 속에 불편한 시선도 존재했다.
워낙 뜨거운 반응에 아르헨티나 언론은 앙헬 몰리야가 돌아온다는 소식을 메인으로 다뤘다.
일주일 후.
홍백전이 열리는 당일.
보카 주니어스 훈련장에는 구단 관계자들도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들이 무언가를 보곤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웅성웅성.
“오랜만이에요!”
5일 뒤에 공식적으로 팀에 합류할 앙헬 몰리야가 온 거였다.
직원들은 반가운 마음에 앙헬 몰리야에게 몰려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잠시 후, 선수들이 몸을 풀러 모습을 드러내자 앙헬 몰리야는 누군가의 얼굴을 보곤 큰 소리로 반갑게 인사를 했다.
“하비에르!”
앙헬 몰리야가 반갑게 손을 흔들었지만, 하비에르 카세로는 그냥 무시했다.
“저 인간은 이제 와서 왜 온 거야.”
혼잣말을 했지만, 주변 사람들은 다 들었다.
“야~~~ 그러지 말고 좀 받아주라!”
리카르도 메사의 말에도 하비에르는 잔뜩 마음에 들지 않는 눈빛으로 앙헬 몰리야를 쳐다봤다.
“싫어요.”
“너희 둘이서 맨날 붙어서 나 괴롭힐 때는 언제고.”
“저희가 언제 그랬습니까! 오히려 리카르도가 괴롭혔죠! 기억 왜곡하지 마세요.”
두 사람은 처음에는 친했다.
스물여덟 살의 하비에르 카세로.
서른한 살의 앙헬 몰리야.
세 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 두 선수는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을 보카 주니어스에서 함께 뛰었다.
하지만.
앙헬 몰리야는 더 큰 꿈을 위해 레알 마드리드행을 택했고 하비에르 카세로는 팬들과의 약속을 위해 보카 주니어스에 남는 걸 택했다.
서로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을 때부터 두 선수의 사이는 틀어졌고, 앙헬 몰리야는 친하게 지내고 싶었지만, 하비에르 카세로가 마음을 돌린 상태였다.
와락-!
“하비!”
“…뭐.”
“아직도 삐져있는 거야? 국가대표에서 다 풀었잖아!”
“혼자 푼 건 아니고?”
“에이, 그러지 말고~”
앙헬 몰리야는 엉겨 붙었고 하비에르 카세로는 귀찮은 티를 팍팍 내며 밀어냈다.
“…어휴,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놈들이.”
리카르도 메사는 두 사람을 보며 한숨을 쉬다가 이내 웃었다.
나름의 역사가 있는 둘의 관계다.
말 한마디로 그 감정이 쉽게 풀리지는 않을 테다.
“앙헬! 덮쳐!”
“넵! 갑니다!”
“아니, 리카르도까지… 하지 말라고요오오!”
하나, 그 감정이 서서히 풀리고 서서히 녹아들게 된다면.
보카는, 그 어느 때보다 강해질 수 있다고, 리카르도 메사는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