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ien In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290)
필드의 외계인-290화(290/404)
제290화
“안녕하십니까, 축구 선수 유지우입니다.”
“꺄아아악-!”
필드 가운데에 선 유지우는 마이크를 전달받고 인사를 했다.
이름만 얘기했는데도 반응이 엄청났다.
유지우는 한번 미소를 지은 뒤, 차분하게 MC의 다음 질문들에 답했다.
“반갑습니다. 듣기로는 그녀들의 리그를 그동안 많이 보셨다고 들었습니다.”
“네, 영국에 있을 때 한국 예능들이 활력소가 되거든요. 그녀들의 리그도 저희 누나가 얼마나 멍청한 짓을 할까 기대하는 재미로 시청하고 있습니다.”
“하하! 그렇군요, 그렇다면 그녀들의 리그 평가를 간단하게 해주실 수 있나요?”
“평가요?”
“짧게라도 괜찮습니다. 어떤 부분이 좋았고 어떤 부분이 아쉬웠는지요.”
유지우는 곰곰이 생각하곤 답변했다.
“아쉬운 점은 없습니다. 지기 싫어하는 승부욕과 열심히 훈련하는 모습을 보고 이분들이 정말 축구를 사랑한다는 걸 느꼈거든요. 앞으로도 계속 발전해 시청자들에게 좋은 플레이를 보여줬으면 좋겠습니다.”
성숙한 답변에 모두의 반응이 좋았다.
그 외의 질문들에 답하다 보니, 어느덧 마지막 질문 순서가 됐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오늘 경기 시축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물론이죠.”
유지우의 허락이 떨어지자 제작진은 시축을 위해 축구공을 준비했다.
유지우는 축구화를 꺼내 가볍게 몸을 풀었다.
몸을 푸는 것만으로도 관중석의 반응은 뜨거웠다.
“…와, 몸 푸는 것도 다르네.”
“세계 최고 선수의 킥을 보는 거야?”
“대박이다.”
“예전에 A매치 직관 갔을 때 멀리서 보긴 했는데. 가까이서 보니까 왜 이렇게 두근거리냐.”
잠시 후.
시축 준비가 됐고 유지우는 자세를 잡았다.
한데, 일반적인 시축과 조금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골대 앞에 한국 레전드들이 수비벽을 세운 채 일렬로 서 있었다는 점이었다.
아무래도 제작진이 원하는 그림은 유지우가 슈팅으로 이들을 넘기고 골을 넣는 모습인 모양이었다.
이곳의 골대가 풋살 골대라 핸드볼 골대 사이즈밖에 되지 않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상당한 핸디캡이 있는 셈이었다.
그것을 잘 알고 있는 레전드들은, 들뜬 채로 저들끼리 떠들었다.
“너 벽 넘길 수 있지?”
“선배님, 지우가 현역인데 그것도 못 하겠어요?”
“현역 선수 슈팅 맞으면 골병들 거 같아서.”
“…그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레전드들의 말에 유지우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최대한 맞추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농담을 주고받은 뒤.
유지우는 모든 준비가 됐다는 듯 손을 들어 알렸다.
그리곤 사인이 나오자 천천히 발돋움하곤.
투—웅!
슈팅을 차 가볍게 수비벽만 넘겼다.
골키퍼로 선 아이돌 강한나는 오는 볼을 보고 멈칫했다.
‘너무 높아.’
골대로 들어가기에는 궤적이 높았다.
일부러 그런 걸까 하고 생각할 때쯤.
뚝.
볼에 걸린 강한 회전이 바람을 만나 궤적이 뚝 하고 떨어졌다.
골키퍼는 급히 손을 뻗어보았지만.
철렁.
구석으로 정확하게 꽂혔다.
– 오오오오오오!!!
“저걸…. 넣네?”
* * *
짝짝짝짝!
시축이 끝나자 곳곳에서 박수가 나왔다.
유지우는 다시 마이크를 잡고 오프닝을 이어갔다.
“그리고 오늘! 유지우 선수가 준비한 선물이 있습니다!”
선물이라는 말에 모두 웅성거렸고 MC가 큰 소리로 말했다.
“그건 바로! 사인 유니폼과 아스날 개막전 직관 티켓입니다!”
선물은 개막전 티켓이었다.
선수들에게 개인적으로 지인용 티켓이 주어지는데 유지우는 그중 일부를 이곳에 쓰기로 했다.
개막전 티켓이라는 말에 모두가 놀라며 부러워했다.
“오늘 경기가 끝나면 MVP 투표를 할 건데 한 명이 아닌, 1~3위까지의 선수에게 주어지게 될 겁니다.”
“유니폼도 그런가요?”
“아닙니다, 유니폼은 1위 선수에게만 지급되고 티켓만 3위까지 주어집니다.”
MC와 해설위원이 토크를 하던 중, 유지우가 손을 들었다.
“저 한마디만 해도 될까요?”
“예, 무슨 말씀이시죠?”
“한 명은 아예 후보에서 제외하고자 합니다.”
“한 명이라면….”
누군지는 모두가 알았다.
“나?”
뜨끔한 유민하가 말하자 몇몇이 웃음을 터트렸다.
제작진들도 그렇게 해도 상관이 없다고 했지만, 이때 김무호 PD가 나섰다.
“그래도 공평하게 하려면 뭔가 다른 게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의 말이 맞았다.
경기를 뛰는데 MVP에서 제외된다는 건 뛰는 선수에게 있어서 동기부여가 되지 않을 테니까.
“그것도 그렇네요.”
유지우도 그 부분을 이해했고 가만히 생각하곤 유민하를 보고 말했다.
“누나는 이미 내 유니폼 많잖아. 아스날 경기도 언제든지 보러 올 수 있고.”
“…그건 그렇지.”
유민하는 유지우 가족이라 아스날 경기를 원할 때면 언제든 볼 수 있는 혜택이 있었다.
그러니 MVP에 선정돼도 매리트가 없었다.
그런 그녀에게 유지우는 씩 웃었다.
“율리안 사인 유니폼 받아줄게.”
흠칫.
유민하는 손을 살짝 떨었다.
그리고 모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유지우가 있는 아스날엔 율리안이라는 이름의 선수가 없었으니까.
그 분위기를 읽은 유지우는 웃으며 말했다.
“아, 저희 누나가 맨체스터 시티 율리안 쿠겔의 팬이거든요.”
이 말을 듣자마자 MC는 개그맨 출신이라 단번에 스토리를 쌓았다.
“동생이 아스날인데 누나분은 맨체스터 시티의 팬이라고요?”
“네.”
“이거…. 이번 시즌 최종전에서 맨체스터 시티가 졌을 때, 눈물을 흘렸겠네요.”
“아주 펑펑 울었습니다. 얼마나 울었는지 눈까지 퉁퉁 부었더라고요.”
“야, 야!”
유민하는 얼굴까지 붉어져서 손가락질했지만, 유지우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누나는 가족들과 다른 피가 흐릅니다.”
“다른 피라면?”
“이건 비밀인데 저를 포함한 다른 가족들은 아스날의 붉은 피가 흐르지만, 누나만 푸른 피가 흐르거든요.”
“놀라운 소식인데요?”
“야, 그걸 말하면 어떡해!”
“이 부분은 아무래도 편집하면 안 될 거 같은데요. 맞죠? 피디님?”
“아 피디니임!”
그렇게 그들은 잠깐 한마음이 되어 유민하를 놀렸다.
어느덧 경기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간.
MC는 오프닝을 마무리하기 전, 오늘 경기에만 있을 특별한 룰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사전에 감독님들에게 알려드리긴 했지만, 여기서 한 번 더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오늘 경기에는 히든룰이 있습니다.”
“어떤 거죠?”
MC는 잠시 뜸을 들인 후, 히든룰에 대해 설명했다.
“바로 양 팀에게 이 황금 카드를 드릴 겁니다.”
양 팀을 이끌 감독들이 나와 황금 카드를 받았다.
“이건 바로 유지우 선수 교체권입니다!”
그 말이 나오는 것과 동시에 모르고 있던 이들은 깜짝 놀랐다.
* * *
몇 시간 전.
교체권 이야기는 사전에 제작진 측에서 양해를 구했다.
처음에는 이야기 나눈 건 교체권이 아닌 다른 부분이었다.
“이긴 팀은 개인 훈련이요?”
“네, 지우 선수가 코칭을 조금만 봐주시면 안 될까요?”
“어렵지 않죠. 근데 경기 끝나고 시간이 되나요? 다들 힘들어서 못 할 거 같은데요?”
“그 부분은 괜찮을 겁니다. 유지우 선수에게 배울 수 있다는 건 저분들에게도 큰 추억이 될 테니까요.”
“일단 알겠습니다. 또 있나요?”
제작진 측은 조심스럽게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이벤트 차원에서 유지우 선수가 잠깐만 뛰어주실 수 있으신가요? 물론 거절하셔도 됩니다.”
올스타전이라는 이벤트성 경기인 만큼 유지우가 특별히 뛰어주면 그림이 좋았다.
그것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제작진은 유지우에게 어렵사리 제안했지만, 내심 걱정이 됐다.
유지우가 거절해버리면 끝이니까.
‘어쩔 수 없지.’
하지만 그들은 강요할 생각은 없었다.
유지우가 싫다고 하면 거기서 끝.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뛴다면 몇 분이요?”
긍정적인 말이 나오자 제작진 측은 곧바로 설명했다.
“전반 15분 후반 15분, 이렇게 진행하고 있는데 한 팀당 3분만 뛰어주시면 됩니다.”
“그 정도는 괜찮아요.”
유지우의 확답을 받자 제작진의 표정은 밝아졌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 근데 페널티 같은 게 있나요?”
“그 부분은….”
* * *
MC들은 룰에 대해서 설명했다.
“유지우 선수가 뛰는 시간은 3분입니다.”
3분이라는 말에 관중석에선 여러 반응이 나왔다.
“3분이면 짧은 거 아니야?”
“긴 거지.”
“그런가?”
“실축이랑 비교하면 골대 거리도 짧고 뛰는 거리도 짧아서 유지우 선수한테 3분은…. 거의 3골이라고 봐야지.”
“그래도 뛰는 걸 볼 수 있잖아.”
유지우가 뛰는 걸 눈앞에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을 기뻐했다.
“대신 유지우 선수가 들어가면 밸런스가 붕괴하기 때문에 투입하는 팀에겐 페널티를 줍니다.”
“어떤 거죠?”
“유지우 선수는 한 명이 아닌 세 명의 선수와 교체되는 겁니다.”
이건 당연한 페널티였다.
“즉, 유지우 선수가 투입되면 다섯 명 중 세 명이 빠지고 그 세 명을 유지우 선수가 대체하며 5 vs 3의 경기가 되는 거죠.”
“이건 유지우 선수도 흔쾌히 수락했습니다. 그러니 감독님들이 어느 타이밍에 유지우 선수를 기용할지도 계산을 해야 하겠죠.”
중요한 룰을 설명한 뒤에 선수들은 경기 준비에 들어갔다.
유지우는 해설석으로 가기 전에 감독들에게 다가갔다.
“부르셨어요?”
“전반전에 뛸래? 후반전에 뛸래?”
“음… 언제가 좋으세요? 전 아무 때나 상관없어요.”
“그러면 우리가 널 쓰기 전에 사인을 보낼 테니까 몸 잠깐만 풀어, 알겠지?”
“네, 알겠습니다.”
“오늘 고생 좀 해줘.”
“고생이라니요. 즐거운 추억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기쁜걸요?”
유지우가 웃으면서 한 말에 레전드들은 다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방송이라고 귀찮아하는 티가 없을 뿐만 아니라, 정말 이 프로그램을 좋아하는 게 드러났다.
“준비는 되셨어요?”
해설석으로 돌아오자 MC가 반갑게 맞이해줬다.
“네.”
“누나분이 축구하는 건 실제로 처음 보죠?”
“그렇죠.”
“아마 깜짝 놀라실 거예요.”
“그 정도예요?”
“저희도 처음에 깜짝 놀랐거든요.”
해설석에 앉은 다음 사소한 이야기를 주고받고 잠시 후.
삐-익!
경기가 시작됐다.
* * *
전반 15분.
후반 15분.
총 30분의 경기였다.
아마추어 선수들의 경기인만큼 프로 선수들의 경기만큼의 긴박감은 없었지만.
‘와.’
표정에서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드러났다.
[조민희 선수가 앞으로 길게 줍니다! 달려가는 전지혜!!! 빠릅니다! 육상 선수 출신답습니다!]볼 다루는 건 미숙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방향은 생각한 대로 흘러갔다.
그리고 유민하가 소속된 레드팀이 볼을 잡았고.
“민하!”
전지혜는 측면으로 살짝 내려온 유민하에게 볼을 줬다.
[아, 패스가 좀 늦습니다! 강선정 선수가 몸싸움하며 유리한 위치를 잡는데요!]그러나 유민하는.
퉁.
발만 갖다 대며 볼을 띄웠다.
유지우가 자주 하는 솜브레로 플릭이었다.
[……..]유지우는 말을 잇지 못했다.
[유민하 선수의 전매특허! 개인기입니다! 두 명이 에워싸는데요!]뻐—엉!
그리곤 오른발 아웃프런트 패스까지.
만약 최전방 스트라이커가 제대로 마무리했다면 하이라이트 장면에 나올 만큼의 플레이였다.
[유지우 선수 어떻게 보셨습니까? 누나인 유민하 선수가 유지우 선수랑 플레이 스타일이 비슷하지 않나요?] [잘한다고 듣기는 했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네요.]단순히 잘한다고 평가할 게 아니었다.
유민하는 독보적일 정도로 볼 다루는 센스가 탁월했다.
다른 선수들이 이상하게 보내는 패스도 센스 있게 잡을 줄 알았고, 슈팅 정확도도 좋았다.
연신 놀라고 있는 그때.
스윽.
블루팀 쪽에서 사인이 떨어졌다.
“저 그러면 잠시.”
해설위원들이 이걸 그냥 보고만 있을 리가 없었다.
[오오오-! 블루팀에서 골드 카드를 꺼냅니다! 전반 6분인데 너무 이른 거 아닌가요?] [지고 있으니까 빠르게 따라잡으려는 목적으로 보입니다.]유지우가 출전한다는 얘기에 시선이 집중됐다.
그는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은 뒤, 차분히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풀었다.
그리곤.
삐—익!
[블루팀에서 먼저 히든룰을 사용했습니다!] [여기서 유지우 선수가 나오다니! 제가 다 긴장이 되는군요! 어떤 플레이를 보여줄까요?]세 명의 선수가 필드 밖으로 나오고 유지우가 필드로 들어오자 공기 자체가 달라졌다.
선망의 눈빛들.
현재 세계 최고 선수의 반열에 오른 선수와 같이 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이었다.
“박유영 씨 맞죠?”
“네, 네!”
“잠깐만요.”
유지우는 박유영에게 몰래 귓속말을 했다.
어떤 말을 할지 모두가 궁금해하는 가운데, 유지우가 곧이어 위치를 잡았다.
씩.
자리를 잡은 유지우는 적팀에 있는 유민하를 보고 웃음을 지었다.
“지우 선수!”
그렇게 유지우에게 볼이 가자 레드팀에선 세 명의 선수가 달라붙는 작전을 썼다.
어차피 수적으로 우위에 있으니, 세 명을 맨투맨으로 붙이겠다는 의도였다.
하지만 그건.
투—웅.
오히려 유지우가 원하는 그림이었다.
가만히 서서 원터치로 선수들 머리 위로 보낸 로빙패스.
레드팀에선 다른 선수도 유지우 쪽으로 경계하고 있어서 반대가 완전히 빈 상태였다.
[와! 저걸 봤나요!]볼은 비어있는 곳으로 달리던 박유영의 발아래 자석처럼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그녀의 귀에는 유지우가 아까 한 말이 맴돌았다.
‘패스할 테니까 그냥 앞뒤 재지 말고 때려요.’
유지우는 박유영의 볼 터치가 미숙한 것을 배려해 최대한 회전도를 낮추고 받기 편하게 볼을 줬다.
툭.
박유영은 첫 트래핑이 살짝 길었지만, 금방 쫓아가선.
뻐—엉!
왼쪽으로 낮게 찼다.
솔직히 말하면, ‘아 모르겠다’라고 생각하며 골대 쪽으로 찬 거였다.
근데 그게 방향이 좋았다.
낮게 깔린 볼은.
철렁.
골키퍼가 엉덩방아를 찧게 만들며 골대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오고 단 5초 만에 나온 득점.
“거봐요. 때리라고 했죠?”
TV에서만 봤던 유지우의 마법이 여기서도 펼쳐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