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ien In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3)
필드의 외계인-3화(3/404)
제3화
“…저 아이가 진짜 그때 그 아이라고?”
귀빈석에 앉은 사람들은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가장 놀란 것은 박우근이었다.
“예. 해운중 출신 16세 유지우. 그때 그 아이가 맞습니다.”
“너는 저 경기력이 1년 공백이 있는 선수로 보여?”
“공백이 어디서도 보이지 않습니다. 몰래 경기라도 뛴 걸까요?”
아이들에게 있어서 1년이라는 시간은 황금과도 같았다.
그렇기에 1년이라는 공백이 있다면 아무리 잘하는 선수라도 경기 감각이 사라져 예전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이게 뭔가.
경기력이 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더 좋아진 모습에 그들은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어떻게 된 거지? 1년이라는 시간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박우근은 놀란 표정을 지은 채 유지우를 바라봤고, 충북 풋볼 클럽 벤치에선 역전하자마자 모두가 필드로 뛰쳐나와 기뻐했다.
영향력이 없는 대회면 어떤가.
이 아이들에게 있어서 이 경기는 곧 월드컵 결승전과도 같았다.
씩.
이채운 감독은 선수들 사이에 파묻혀 있는 유지우를 보며 몰래 미소를 지었다.
‘지난 1년 고생 많았다.’
징계 때문에 공식전은 출전하지 못하고 연습 경기밖에 못 나가던 신세.
웃는 시간보다 우는 시간이 더 많았던 세월.
희망보다 절망이 많았던 시간.
유지우는 매일 말도 안 되는 훈련량을 소화했다.
남들의 세 배.
그것도 모자라면 다섯 배.
그것을 불만 한마디 없이 소화하며 다시금 날아오를 준비를 마쳤다.
‘너라면 이 행복을 누릴 자격이 있지.’
삐-익! 삐-익! 삐——–익!
그렇게 우승은 충북 풋볼 클럽이 차지했고 모두에게 잊히던 유망주는 다시금 날개를 펼쳤다.
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튼튼하고 화려한 날개를.
* * *
충청남도 공주에 있는 해운중.
1년 전 ‘감독 폭행’ 사건 때문에 유명해진 학교였다.
뻐-엉!
수업이 끝난 유지우는 교복을 입은 채, 운동장 한편에 앉아 축구부들이 훈련하는 걸 멀리서 지켜봤다.
“…….”
원래는 이곳의 축구부원이었다.
사건이 벌어진 뒤에 해당 감독은 다른 곳으로 전출을 갔고 유지우는 축구부 퇴부를 당해 일반 학생처럼 학교를 다녔다.
“어! 지우야!”
뒤에서 누군가가 말을 걸었고 말을 건 사람은 해운중 축구부 3학년 오의식이었다.
“왜?”
“아까 어떤 외국인 아저씨가 와서 너 찾던데?”
“외국인 아저씨?”
“응. 교문 앞으로 가봐.”
“알았어.”
“맞다. 그리고 너 이제 징계 풀려서 학교 축구부로 다시 들어와도 되지 않아?”
오의식의 말에 유지우는 고개를 저었다.
“저 자식이 있는데 내가 들어가고 싶겠냐?”
유지우가 어딘가를 가리켰고 그쪽을 본 오의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지금도 많이 참고 있는 거지?”
“어. 당장 가서 패고 싶은데 억누르고 있는 거야.”
“어릴 때부터 친했던 너희가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냐.”
가리킨 곳에 있는 선수는 같은 3학년인 고민준.
1년 전, 감독 폭행 사건에서 도움을 줬던 유지우를 매몰차게 내치며 거짓을 말했었다. 그리고 만년 후보에서 단숨에 주전 자리까지 올라간 아이였다.
“난 괜찮으니까 가서 훈련이나 해. 아까부터 감독님이 여기 보고 있잖아.”
“아! 그러면 조심해서 가! 다음에 보자!”
오의식은 훈련을 하러 갔고 유지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저곳에 내가 있을 자리는 없다.’
시선을 돌리려다가 마주친 시선.
고민준이었다.
나랑 같은 초등학교에 같이 축구를 시작한 친구…. 아니, 이제는 친구라는 단어를 입에 담기도 싫은 배신자였다.
휙.
무시했다.
눈을 더 마주쳤다간 주먹이 나갈 것 같으니까.
* * *
해운중 교문 앞에선 로드리고가 팔짱을 낀 채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러곤 멀리서 걸어오는 유지우를 보더니 활짝 웃으며 성큼성큼 다가왔다.
덥석.
투박한 손으로 양어깨를 잡곤.
“꼬마야! 나와 아르헨티나로 가지 않을래?”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
하지만 유지우는 로드리고가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뭐라는 거야.’
에스파냐어를 알아듣지 못해서 당황한 유지우를 본 윤무태가 중재에 나섰다.
“로드리고! 험악한 얼굴로 갑자기 그러면 당황하잖아요. 그리고 이 아이는 에스파냐어를 하지 못해서 당신의 말을 알아듣지 못해요.”
“하하하하! 이거 내가 너무 흥분했군! 통역 좀 해줘.”
윤무태는 유지우에게 로드리고가 한 말을 통역해줬다.
“너에게 아르헨티나로 갈 생각이 없냐고 물어본다.”
갑작스러운 말에 유지우의 얼굴에는 당혹스러움이 번졌다.
“아르헨티나요?”
“이분은 아르헨티나 명문 보카 주니어스의 아시아 스카우트팀장 로드리고 씨다. 보카 주니어스는 알지?”
보카 주니어스라는 말에 유지우는 깜짝 놀랐다.
“알죠. 그런데 왜 저를?”
1년 동안 공식전에 출전하지 못해 데이터가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제안한다?
지난 1년 사이, 유지우는 여러 일을 겪으며 사람을 쉽게 믿지 못하는 성격으로 변해 이런 제안이 기쁘기보단 의심이 먼저 갔다.
“그야 네가 엊그제 활약한 Future Cup 결승을 보고 왔거든.”
“아하…. 근데 저, 7분 뛴 게 다인데요? 사기꾼 아니에요?”
Future Cup은 국내 스카우터들도 거의 찾지 않는 대회였다.
그런 대회를 보고 해외 스카우터가 찾아왔다?
의심이 더 짙을 수밖에 없었다.
“그 7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너의 가치를 본 거지.”
“…….”
“지금 너로선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지 않을까?”
윤무태가 웃으면서 하는 말에 유지우의 표정은 굳어졌다.
그 말대로였다.
대한민국에서, 그것도 축구협회에 연줄이 있는 감독을 팼으니 프로로 성공하는 길은 다른 선수들보다 어려웠다.
그러나.
의심이 들었다.
1년 전, 도와주겠다고 했던 어른들은 죄다 어려운 순간이 되니 등을 돌렸으니까 이번에도 그냥 떠본다고만 생각했다.
“고민이 되니?”
“쉽게 믿기엔 어렵죠. 갑자기 나타나서 해외 클럽 스카우터라고 하는 사람을 그쪽은 쉽게 믿을 수 있겠어요? 더구나 7분 뛴 게 전부인 사람에게?”
그 사건이 벌어진 후, 접촉했던 스카우터들은 순전히 꿈을 담보로 한 이익을 원했다.
받아주는 대신 부수적으로 떨어질 무언가.
‘돈.’
결국에 목적은 그거였다.
문제가 많은 선수를 품어줄 테니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해라.
이런 상황을 겪어왔으니 지금 이 상황도 의심이 갔다.
‘나에게 뭘 원하는 거지?’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가 사라지지 않자 윤무태는 옆에 있는 로드리고를 슬쩍 보고 말했다.
“하긴 내가 봐도 그렇네. 이 사람이 워낙 막무가내라서 말이지.”
로드리고는 여전히 에스파냐어로 뭐라고 하고 있었고 윤무태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로드리고, 이 아이는 지금 누구를 쉽게 믿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제가 어제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게 왜? 고작 그 흠 하나 때문에?”
“그 흠 때문에 여러 사람에게 상처받았으니까요.”
“어떻게 해야 믿는데?”
“설득해야죠.”
“내가?”
“예.”
“…나 누구한테도 빌어본 적이 없는데 내가 그래야 해?”
로드리고는 지금껏 단 한 번도 눈에 든 선수에게 굽힌 적이 없었다.
“이 아이를 정말로 아르헨티나로 데리고 가고 싶다면 그래야죠.”
윤무태의 말에 로드리고가 망설였고 유지우는 더 기다리기 지루했는지 두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명함 하나만 주시면 가족들과 상의를 한 뒤에 내일 답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유지우의 말을 통역해준 윤무태는 로드리고의 말을 마찬가지로 통역했다.
“당연하지.”
“감사합니다.”
“자, 이건 내 명함이다. 결정을 하면 이 번호로 연락하면 된다.”
“예.”
윤무태는 명함을 하나 줬고 유지우가 멀어지자 로드리고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 “무슨 일이야? 이 시간에?”
“세르히오! 지금 당장 단장님 만나서 내가 보낸 동영상 보여줘!”
– “어? 갑자기 무슨….”
“어서! 네 메일로 내가 엄청난 걸 보내 놨으니까 당장 확인해!”
* * *
“뭘 보냈다는 거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연고지를 둔 보카 주니어스.
구단 운영팀장 세르히오 다린은 로드리고의 전화를 받고 메일로 들어갔다.
“로드리고 씨가 보내온 영상이에요?”
메일을 확인하려고 할 때, 운영팀원 다니엘이 다가왔다.
“어, 무슨 영상을 보내놨다고 로드리고가 단장님한테 보여 드리라던데?”
“의외네요. 로드리고 씨가 선수 영상을 보내온 건 1년 만이잖아요.”
“선수 선발에 있어서는 그 성질머리 더러운 단장도 고개를 저을 만큼 워낙 까다로운 사람이니까.”
“단장님한테 바로 보여 드릴 건 아니죠?”
“왜?”
다니엘은 마른침을 삼켰다.
“…먼저 저희가 본 뒤에 보여 드리죠. 단장님 성격상, 이상한 영상 보여주면 괜히 저희만 욕먹습니다.”
저번에도 독일로 간 스카우터가 영상을 보내줬는데 검토를 하지 않고 단장에게 보여줬다가 욕이란 욕은 전부 먹었었다.
“그게 낫겠지?”
그래서 이번에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 먼저 영상을 틀었다.
‘응? 7분?’
기본적으로 해외 곳곳에 파견한 스카우터들이 보내오는 영상은 아무리 적다고 해도 한 시간 분량이 넘었다.
보통 한 선수를 추천할 때는 10경기는 본 뒤에 장단점과 성장 가능성 등을 정리해서 보내주는 것이 기본인데 이 7분 영상은 그 어느 것도 편집이 되어 있지 않았다.
‘10분도 아니고 편집도 안 된 7분짜리 영상으로 로드리고 씨가 그런 반응을 한다고?’
형편없으면 아무리 로드리고의 제안이라도 들어줄 생각은 없었다.
단장 앞에서 욕을 먹는 것은 스카우터들이 아닌 자신들이니까.
그런데 점차 영상 시간이 지날수록 표정이 달라졌다.
처음에는 의구심.
중간에는 흥미.
마지막은 확신이었다.
7분이 지나고 영상이 끝나자 두 사람은 10초 동안 말을 하지 못했고 10초가 지나자 다니엘이 넌지시 물었다.
“…팀장님.”
“어.”
훽.
영상을 바로 USB에 담아 운영팀을 뛰쳐나갔다.
“팀장님! 어디 가십니까!”
“단장님 뵈러!”
세르히오는 잽싸게 달려 한 층 위에 있는 단장실로 들어갔다.
단장실 안은 화려한 가구들이 많았다. 금장으로 장식된 화려한 의자에 앉아 모니터를 보는 하얀 백발의 남성.
보카 주니어스의 천재 단장이라고 불리는 엔리케 보토였다.
탐욕스러운 배가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자네가 숨이 찰 정도로 달려오다니, 꽤 괜찮은 물건을 가져왔나 보군.”
탁.
“이거 보시죠.”
“어디서 온 거지?”
“한국입니다.”
“한국이라면… 로드리고?”
“네.”
“그 깐깐한 녀석이 영상을 보내올 정도면 꽤 괜찮은 물건인가 보군. 틀어봐.”
세르히오는 단장실 벽에 걸린 커다란 TV에 USB를 연결했다.
“보시죠.”
엔리케는 소파에 앉고 세르히오도 의자에 앉아 영상을 봤다.
곧이어 등번호 20번을 단 선수의 화려한 플레이에 엔리케 보토의 표정은 시시각각 변했다.
“다른 영상은?”
“없습니다. 이 7분이 전부입니다.”
영상의 폼이 꾸준하다면 100% 데려와야 하지만 잠깐 반짝이는 선수도 많았기에 엔리케 보토의 고민은 깊어졌다.
“7분 영상으로만 결정하기엔 힘드시겠죠?”
세르히오의 말을 들은 엔리케 보토의 머리는 빠르게 돌아갔다.
적어도 몇 경기 분량의 경기 영상이 있다면 결정하는 게 쉬웠지만 이런 단편적인 영상으로는 무언가를 결정하기엔 어려웠다.
하나, 사업적인 부분에서는 워낙 특출 난 사람이라 금방 결론에 도달했다.
“로드리고에게 당장 전화해. 저 아시아인을 데려오라고.”
세르히오의 얼굴에는 웃음이 번졌다.
“예!”
세르히오가 나가고 홀로 남은 엔리케 보토는 담배를 한 대 태우며 영상을 처음부터 재생했다.
“조금만 다듬으면 아시아 팬들을 끌어당기기엔 충분하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