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ien In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304)
필드의 외계인-304화(304/404)
제304화
“하아.”
김기하는 자신의 마지막 경기가 될 브라질전을 앞두고 도통 잠을 자지 못했다.
숙소 테라스에서 바람을 쐬며 하늘을 보는데 그동안 국가대표에서 했던 경험이 스쳐 지나갔다.
데뷔했을 때.
첫 승리를 했을 때.
아시안컵 8강에 올라갔을 때.
월드컵에 나갔을 때.
황금기를 맞이했을 때.
그 모든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내일이면 진짜 다 끝나는구나.”
22세부터 무려 14년을 국가대표에서 뛰었다.
암흑기 주장.
이 꼬리표를 달고서.
좋았던 기억도 많았지만, 그만큼 힘들었던 기억도 많았던 국가대표.
오로지 자긍심 하나로 버텨 온 세월이었다.
‘응?’
그런 그의 귓가에 멀리서 볼 차는 소리가 들렸다.
아래를 살펴보자, 조명 아래서 개인 훈련을 하는 유지우가 보였다.
“쟤는 지치지도 않나.”
오후에 그렇게 훈련했는데도 개인 훈련을 할 정도의 간절함.
유지우는 아무리 위상이 높아져도 국가대표 첫 데뷔 때와 달라진 점이 없었다.
‘존경스러울 정도야.’
그래서 더욱 신뢰가 갔다.
유지우라면 자신이 가져오지 못한 트로피를 가져와 줄 것이라고.
‘나도 저런 간절함이 있었다면 국가대표를 더 높은 곳에 올려놓을 수 있었을까.’
뻐—엉!
늦은 시간까지 계속되는 유지우의 개인 훈련을 김기하는 멀리서 묵묵히 바라봤다.
뻐—엉!
그의 훈련은 밤 10시까지 이어졌다.
처음은 주앙 달루트도 말렸지만, 이제는 유지우의 행동을 이해했다.
이것이 유지우가 경기를 준비하는 방식이라는 걸.
‘저 녀석이라면 나랑 달리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주장이 될 수 있겠지.’
그렇게 그는 다음 세대 주장이 훈련하는 것을 지켜보며, 국가대표로서 마지막 밤을 보냈다.
* * *
모두가 잠든 늦은 밤에도 국가대표 감독실 안의 불빛은 꺼지지 않고 있었다.
“이렇게 변화를 주면…. 이런 식으로 대응을 하면 되겠군.”
주앙 달루트는 감독실 안에서 브라질의 경기 영상을 보며 집중하고 있었다.
스스스슥.
그의 손은 쉬지 않고 노트에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안 주무십니까?”
누가 들어오는지도 모를 정도로 집중한 주앙 달루트.
어느새 문을 열고 들어온 수석코치는 조심스럽게 그에게 말을 걸었다.
“잠이 안 와서 말이야.”
“그래도 주무셔야죠.”
“슬슬 자야지, 마지막으로 검토할 게 있어서 이것만 보고.”
수석코치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주앙 달루트를 봤다.
그는 국가대표 경기가 있을 때마다 늘 밤낮을 지새우며 상대 분석에 매진했다.
때문에 끼니를 거를 때도 많았다.
“이미 전술은 다 나왔고 선수들도 숙지하지 않았나요? 또 뭐를 준비 중이십니까?”
이미 선수들에게 브라질전을 대비한 훈련을 모두 시킨 후였다.
그런데도 주앙 달루트는 승리의 가능성을 단 1%라도 높이기 위해 이러한 행동을 하고 있었다.
“맞아, 그래도 경기 중에 돌발상황이 나오면 유연하게 대처해야 하니까. 플랜은 여러 개 세워놔야지.”
수석코치는 그 말을 듣고 웃음을 지었다.
“왜 웃지?”
“변하지 않으셔서요.”
“내가 뭘?”
“늘 이런 식으로 경기 전날에도 분석만 하시잖아요.”
“한두 번도 아니고…. 자네도 익숙해져야지.”
수석코치와 주앙 달루트의 인연은 벌써 10년이었다.
그 10년 동안 주앙 달루트의 습관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이길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정보의 분석에 집요하게 파고드는 방식은 그의 장점이기도 했으니까.
스윽.
수석코치는 자신의 노트를 건넸다.
“이건 뭐지?”
“제가 나름 분석한 브라질의 예상 데이터입니다. 1군이 아닌 후보진이 들어왔을 때 어떤 패턴으로 변화할지 적어놨습니다.”
긴 시간 함께 했기에 수석코치는 주앙 달루트가 원하는 방식대로 자료를 정리해서 건네줬다.
그것을 살핀 주앙 달루트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역시 자네랑 같이 있으면 든든해.”
“그렇게 생각하시면 제 말도 좀 들으시죠?”
“무슨 말?”
“좀 주무세요. 중요한 경기인데 다크서클 축 늘어트리고 가실 거 아니잖아요.”
내일 경기는 어떻게 보면 이탈리아전보다 중요했다.
월드컵 우승 후보와의 정면 대결.
결과에 따라 월드컵의 현실적인 목표가 책정되기에 모두가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마음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하려면 이런 식으로 해야지.”
“어휴, 제가 감독님 마음을 모르겠습니까. 자그마치 10년 동안같이 했는데.”
“벌써 그렇게 됐나?”
“저는 다 기억하는데 감독님은 다 까먹었나 보네요.”
“하하하, 농담한 거지.”
“어쨌든 같이 보죠. 혼자 보는 것보다 같이 보면서 얘기하는 게 더 낫잖아요?”
“그래 주면 고맙지.”
“대신 앞으로 딱 한 시간 만입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나란히 앉아 브라질전 영상을 봤다.
10가지의 의문이 있다면 11가지의 해답을 준비하는 게 주앙 달루트의 방식.
두 사람은 만족할 때까지 영상을 분석했다.
그렇게 두 사람이 잠을 잔 시간은 그로부터 3시간 뒤였다.
* * *
브라질전이 열릴 상암월드컵경기장.
일찌감치 관중석이 채워졌고 VIP석엔 축구 협회장이 된 박우근이 앉아있었다.
“협회장님.”
“어, 왔나?”
그를 만나러 온 건 박찬우였다.
토트넘 레전드 반열에 이름을 올리고 프리미어리그에서 아시아인도 성공할 수 있다는 걸 알린 선두주자.
지금은 토트넘 엠버서더로 활동하며 제2의 인생을 사는 중이었다.
“선배… 아니지, 협회장님이 부르셨는데, 와야죠.”
“너한테 협회장 소리 들으니까 내가 다 오글거리네.”
“익숙해지셔야죠, 앞으로 할 일이 많으신데.”
“그래서 내 제안은 생각해봤고?”
“1년 뒤에 부협회장직 맡아도 되나요? 엠버서더 기간이 내년 월드컵까지라.”
“당연하지.”
굵직한 축구인들이 모인 오늘.
그 이유는 김기하의 은퇴가 있기 때문이었다.
“넌 기하랑 많이 뛰어봤지?”
“네, 저랑 같은 시기에 뛰어온 녀석입니다.”
박찬우와 김기하는 국가대표 인연이 있었다.
나이 차이는 불과 5살.
그래서 활동한 시기도 비슷했다.
“아쉽지 않아? 국가대표 생활이.”
박찬우는 토트넘 엠버서더가 될 만큼 유럽에서 입지를 쌓았지만, 국가대표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유럽과 한국을 오가는 시간.
그의 몸은 무리가 왔고 국가대표 말년은 좋지 않게 흘러갔다.
“…어쩔 수 없죠, 그런 걸 알고도 제가 선택한 길이니까요.”
그는 마음의 짐이 있었다.
그 힘든 세월을 같이 이겨내지 못한 채, 김기하에게 국가대표를 맡기고 은퇴를 선언한 것이.
“저는 그 뒤에 클럽 생활에만 몰두했고 기하는 국가대표까지 성실하게 수행했으니, 저보다 기하가 더 뛰어난 선수라고 생각합니다.”
국가대표를 은퇴하고 4년 동안 지속한 클럽 생활.
유종의 미를 거두며 마무리를 지었지만, 여전히 국가대표를 향한 마음의 짐이 컸다.
“그런 시선으로 볼 때, 저 녀석은 어때?”
“협회장님이 신경 쓰는 선수라고 들었습니다.”
“…죄책감이 커.”
사건에 휘말렸던 시절.
많은 도움을 주지 못했기에 박우근은 유지우를 볼 때마다 마음 한편이 아렸다.
“그래도 아주 멋진 선수가 됐더군요.”
“그렇지?”
“제가 16년 동안 유럽에서 뛰며 이룬 걸 저 녀석은 단 몇 년 만에 이뤘습니다. 쟤는 아예 다른 세상 사람이에요.”
“하하하-! 사람들 말로는 외계인이라더군.”
“정말 잘 어울리는 별명이죠.”
박우근은 필드에서 워밍업을 하는 유지우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번에는 어떤 걸로 날 놀라게 해줄 거냐.’
* * *
워밍업을 끝낸 선수들은 라커룸으로 들어왔다.
경기 시작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주앙 달루트는 선수들을 모아두고 오늘 사용할 전술에 대해 다시 한번 설명해주고 있었다.
“브라질은 4 – 3 – 3 포메이션으로 필드를 폭넓게 쓰면서 빠른 전개를 하는 스타일이다. 특히 공격진의 존재감이 크지.”
필리페 실바 – 아우미르 파투 – 주니오르 타르델리.
이 세 선수의 합은 세계 최고라고 불릴 정도였다.
이번 시즌 레알 마드리드에서 포텐을 터트리고 있는 필리페 실바.
바르셀로나 주전 스트라이커인 아우미르 파투.
두 선수보단 인지도가 낮지만, 프랑스 올림피크 리옹에서 파리 생제르맹을 상대로 해트트릭을 박아넣으며 득점 선두에 오른 주니오르 타르델리.
이 세 명의 선수가 브라질 공격의 주축이었다.
“브라질은 어느 하나 부족한 곳이 없지만, 그렇다고 100% 완벽한 팀은 아니다.”
주앙 달루트는 작전판을 가리키며 설명했다.
“그들은 볼을 소유하는 시간이 길다. 개인 기량에 자신이 있는 선수들이 흔히 하는 습관이지.”
전문가들도 이런 점을 브라질의 문제점으로 삼았다.
패스할 타이밍에도 드리블로 흐름을 끊는 경우가 경기에 두세 번은 나왔으니까.
“하지만 이건 저 녀석들에게 아주 사소해, 결국에 그런 것도 장점으로 승화시키는 녀석들이거든.”
그래도 브라질은 그 부분을 큰 문제로 보지 않았다.
실제로 그들은 그러한 단점이 보이지 않을 만큼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전술을 구사했다.
“그러니 우리는 한발 먼저 빠르게 압박을 붙어야 한다. 앞으로 돌파할 곳이 없게, 패스를 할 곳이 없게. 너희들이 죽어라 압박해야 저들이 멈칫할 거다. 그 순간을 노려라.”
선수들은 주앙 달루트의 말을 경청했다.
“속도전으로는 우리가 불리하다. 우리가 저들보다 유리한 것.”
쾅-!
“바로 체력이다.”
한국이 내세울 것.
그건 2030 월드컵 전부터 주앙 달루트가 강조하는 건 ‘체력’이었다.
기술적으로 유럽이나 남미가 아시아보다 수준이 높을 수밖에 없었기에 주앙 달루트는 다른 무기를 찾았다.
그게 바로 체력이었다.
“저들이 한 발 뛸 동안 우리는 두 발을 뛰어 균형을 맞추는 거다. 계속해서 압박하고 물고 늘어져! 체력이라면 너희들은 누구한테도 지지 않는다!”
주앙 달루트는 유럽과 남미의 강호들을 상대하기 위해 체력을 키우는 데 집중했고 이제 선수들은 어떤 경기라도 풀타임을 타이트하게 압박할 만큼 폼이 올라와 있었다.
“사람들의 말처럼 우리가 불리하다는 건 사실이야. 하지만 불리하다는 거지, 이기는 게 불가능하다는 건 아니다.”
주앙 달루트는 선수들의 얼굴을 보면서 계속해서 말했다.
“브라질이 단점을 장점으로 가린 것처럼, 우리도 단점을 장점으로 가려보자. 준비한 대로!”
그 후에도 세부적인 전술을 얘기한 끝에, 어느덧 입장 시간이 되었다.
주앙 달루트는 문으로 걸어가며 손뼉을 강하게 쳤다.
“나가서 모두에게 보여주자, 우리도 월드컵에서 가장 높은 곳에 설 자격이 있다는 걸.”
월드컵 우승 후보.
이러한 강팀을 상대로 주앙 달루트는 전혀 주눅 들지 않았다.
그들을 이길 전술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으니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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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입장 통로에 서서 입장을 기다리는 양 팀 선수들.
안면이 있는 선수들과 짧게 인사한 유지우는 대열에 서 있었다.
탁.
그의 어깨에 올라오는 손 하나.
“긴장 안 했지?”
김기하였다.
“제 성격 아시면서.”
“하하, 오늘 잘해보자.”
“형님도 긴장하지 마시고요.”
주앙 달루트는 김기하를 선발로 내보냈다.
주장 완장을 찬 김기하는 선수들 한 명 한 명에게 말을 걸며 긴장으로 굳은 몸을 풀어줬고 가장 앞에 섰다.
“가자-!”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큰소리로 외치며 앞장서서 필드로 나갔다.
– 와아아아아아!!!
고막을 울리는 커다란 함성.
대한민국 vs 브라질.
대한민국이 월드컵에서 강호들을 상대로 얼마나 경쟁할 수 있는지 보여줄 경기가 이제 막.
삐익-! 삐익-! 삐—-익!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