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ien In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35)
필드의 외계인-35화(35/404)
제35화
하비에르 카세로.
앙헬 몰리야.
이 두 선수는 국가대표에도 단골로 뽑히는 명실상부 아르헨티나 최고의 선수들이다.
앙헬 몰리야가 합류하면서 분위기가 좋아질 것 같았지만, 보카 주니어스 클럽 하우스에는 약간 미묘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
멀리서 홀로 트래핑을 하며 몸을 푸는 하비에르 카세로.
“하비! 하비! 하비!”
그를 보자마자 앙헬 몰리야가 큰 댕댕이처럼 뛰어가 치근덕거렸다.
하지만 하비 카세로는 여전히 앙헬 몰리야에게 차갑게 대했다.
“왜.”
“이따가 우리 집에 가서 밥 먹을래?”
“아니.”
“그러면 술은?”
“됐거든.”
“아아아아아! 그러지 말고 뭐라도 하자! 응?”
둘 사이의 앙금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정규 훈련이 끝난 뒤, 앙헬 몰리야는 개인 훈련을 하는 나와 함께 남아서 이것저것 알려줬다,
“앙헬.”
“응?”
“하비에르가 왜 그렇게 당신을 싫어하는 거예요? 단순히 이적 때문이라면….”
속이 좁은 거였다.
축구 선수 생활을 하면 이적은 숨 쉬는 것만큼 일반적인 거니까.
하지만 앙헬 몰리야의 입에서 나온 말을 듣고 멈칫했다.
“내가 거짓말을 했거든.”
앙헬 몰리야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거짓말이요?”
“끝까지 이곳에 남아서 우승을 노리자고 했는데 내가 홀라당 가버렸어.”
당시 보카 주니어스는 하비에르 카세로, 앙헬 몰리야의 듀오가 리그를 휩쓸고 있을 때였다.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 트로피만 못 가졌을 뿐, 모든 트로피를 얻었던 황금기 시절, 앙헬 몰리야는 이적을 해버렸다.
‘앙헬! 우승할 때까지 어디 가면 안 돼요!’
‘무조건! 이적 안 해!’
이렇게 약속했지만, 앙헬 몰리야는 불과 한 달 뒤에 레알 마드리드로 떠나버렸다.
그렇게 두 사람의 사이가 멀어진 거였다.
“국가대표에서 만났을 때는요?”
“억지로 호흡을 맞추긴 했지.”
“…하비의 마음도 이해가 가고 앙헬의 마음도 이해가 가네요.”
우승을 목표로 하는 건 선수로서 당연한 거였다.
“음… 그때는 커리어에 대한 욕망이 강했어, 그래서 레알 마드리드에서 온 제안을 거절할 수도 없었고.”
그 뒤로 레알 마드리드로 가서 원하던 대로 수많은 우승을 경험했다.
그런데 마음 한구석에 ‘빚’이 있었다.
그래서 레알 마드리드에서 제안한 고액 연봉을 포기하고 보카 주니어스로 돌아왔다.
은퇴하기 전, ‘빚’을 갚기 위해서.
“어떻게든 풀긴 풀어야겠네요.”
“그렇긴 한데 쉽지 않네.”
“도와드리고 싶은데 저도 관계가 서툴러서요.”
“마음만으로도 충분해.”
앙헬 몰리야는 말을 마친 뒤, 엉덩이를 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그럼, 계속해서 해볼까?”
* * *
유지우는 두 사람의 관계를 풀어주기 위해 주변 사람들에게 앙헬의 이야기를 흘렸다.
“음.”
다들 고민했고.
“이렇게 해볼까?”
같이 대안을 생각했다.
그렇게 온 선수단이 두 사람의 관계를 개선해주기 위해 나섰다.
며칠 뒤, 리카르도 메사는 하비에르 카세로와 밥을 먹으며 말했다.
“하비, 그러지 말고 슬쩍 받아줘.”
“미워한 시간이 길어서 그런지 쉽지 않아요.”
“이해는 하는 거지?”
“네.”
하비에르 카세로도 앙헬 몰리야를 이해했다.
축구 선수로서 꿈을 찾아가는 건 어리석은 일이 아니니까.
“흐음.”
“왜요.”
“너랑 앙헬이 가까워지게 할 방법 생각 중.”
“…시간 지나면 알아서 풀리겠죠.”
“국가대표에서도 안 풀렸는데 클럽에서 풀릴까?”
“…….”
“그러지 말고 가까이 지내는 것부터 시작해, 평생 안 볼 사이도 아니고 앞으로 계속 볼 사이잖아.”
“노력해볼게요.”
하비에르 카세로와 앙헬 몰리야의 관계 개선 프로젝트가 은밀하게 시작됐다.
밥 먹을 때마다 두 선수를 같이 먹게 하는 방법.
훈련 파트너로 강제 연결하는 방법.
잠깐 쉴 때도 두 선수의 사이를 이어주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괜히 반감이 생기지 않을까요?”
유지우가 리카르도 메사와 몸을 풀면서 말하자 리카르도 메사는 피식 웃었다.
“저것들 금세 가까워질걸?”
“그걸 어떻게 알아요?”
“데뷔할 때부터 봐온 녀석들을 내가 모르겠냐? 지금 하비는 앙헬을 계속 밀어내는 바람에 어디서 어떻게 풀어야 할지 갈피를 못 잡는 거야.”
“그러면요?”
“옆에서 슬쩍 바람만 불어주면 돼. 불씨는 이미 타고 있으니까.”
.
.
.
일주일 뒤.
리그 7라운드.
경기는 보카 주니어스가 [ 2 – 0 ] 으로 리드했고 앙헬 몰리야 / 하비에르 카세로는 나란히 어시스트 한 개씩 기록했다.
[리드하는 보카 주니어스! 다시 앙헬 몰리야가 볼을 잡고 돌아섭니다!]근처에서 들어오는 압박.
앙헬 몰리야는 마르세유턴으로 볼을 지켜냈다.
그리고 간결하게 주변 동료들에게 볼을 주며 압박 상황을 벗어났다.
[참 앙헬 몰리야의 축구를 보면 심적으로 편안해집니다.] [높은 안정감을 주는 선수죠.]후반 종료 직전.
상대의 역습이 막히며 보카 주니어스의 역습 기회가 찾아왔다.
그때였다.
하비에르 카세로의 시야에 들어온 한 선수.
타다다다닷-!
“앞으로!”
앙헬 몰리야였다.
비어 있는 곳으로 달려가는 걸 보곤 스루패스를 찔렀다.
뻐—엉!
페널티 에어리어에 걸친 곳에서 앙헬 몰리야는 왼쪽으로 낮게 깔아 찼고.
철렁.
상대의 골망이 흔들렸다.
– 와아아아아아아아!
보카 주니어스 팬들의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은 추억.
갓 데뷔한 하비에르 카세로와 당시 보카 주니어스였던 앙헬 몰리야의 화려했던 라인이 떠올랐다.
“…….”
몇몇은 눈물을 흘렸고.
– 와아아아아아아아!
몇몇은 목청이 터져라 소리를 질렀다.
보카 주니어스의 가장 화려했던 공격 듀오가 마침내 어깨를 나란히 했다.
“하비.”
앙헬 몰리야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주먹을 내밀자 하비에르 카세로는 볼을 긁적이며.
툭.
“그거 못 넣었으면 다음에는 안 줬을 거야.”
주먹을 맞대었다.
하비에르 카세로와 앙헬 몰리야 사이에 무너졌던 다리가 이어졌다.
“용서해주는 거지?”
“…사실 이해해. 당시에는 내가 어리고 속이 좁아서 욕을 했던 거고.”
“나야말로 미안해.”
“…….”
“너랑 약속한 것도 잊은 채, 떠나버려서.”
하비에르 카세로는 앙헬 몰리야를 바라봤다.
그리고 앙헬 몰리야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걱정하지 마, 늦긴 했어도 너랑 약속을 지키려고 돌아온 거니까.”
씩.
“멍청한 놈, 그래서 레알 마드리드 최고 연봉도 걷어찬 거야?”
“너만 할까?”
모두가 원했던 보카의 라인이 이어졌다.
* * *
8월 27일.
8월 일정이 끝나자 보카 주니어스 보드진은 이적 시장이 마감하기 전, 의견을 나눴다.
“여름에 앙헬을 데려온 건 정말 잘한 일입니다!”
“구단 재정에 출혈이 있긴 하지만, 모든 경기에서 1인분 이상의 활약을 해주고 있으니 손해는 아니죠.”
돌아온 천재 앙헬 몰리야의 활약이 가장 두드러졌다.
5경기 출전 3골 5도움.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던 선수라는 걸 확실히 증명했다.
“그리고 주목받는 선수가 이 선수죠.”
그다음은 유지우였다.
“유의 성적이 진짜….”
“이 선수, 갓 데뷔한 신인 맞죠?”
“스피드나 테크닉, 말할 것도 없이 수준이 높아.”
“그리고 체력도 좋아서 전방 압박도 잘해주니 다른 선수들이 공격 전개하기가 편해졌어요.”
[ 3경기 출전 3골 1도움 ]“아직 더 봐야겠지만, 데뷔 첫 시즌에 이런 성적을 내는 선수는 없습니다.”
“하비에르도 데뷔 전반기에 9골 11도움이 전부였죠.”
“유를 2군으로 내리는 건 절대 안 됩니다. 시스템을 역행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원래 2군에서 디에고랑 기예르모, 두 녀석이랑 호흡을 보려고 했었잖아요.”
원래는 8월 한 달만 1군에서 뛰게 하고 9월부터는 2군으로 내려보내기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1부 리그에서 놀라운 성적을 내는 선수를 2군으로 내려보내는 클럽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상황이 이렇게 됐으니, 프로 계약으로 전환해서 1군에 남겨놔야 합니다.”
“맞습니다.”
“동의합니다.”
“그는 이미 1부 수준의 선수입니다.”
보카 주니어스 1군의 문제점을 보완해주는 활약을 펼친 유지우의 가치는 날이 지날수록 더 올라갔다.
그래서 프로 계약을 맺어 정식으로 1군 엔트리에 포함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엔리케 보토는 상석에 앉은 라몬 카세레스 회장에게 물었다.
라몬 카세레스 회장은 화면에 나오는 유지우의 플레이를 보곤 입꼬리가 올라갔다.
“좋습니다. 정식으로 프로 계약을 맺고 1군으로 확정하죠.”
* * *
8월 31일, 단장실 안.
그곳엔 유지우와 에이전트 차명훈이 엔리케 보토와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차향이 좋네요.”
“그렇죠? 제가 이탈리아 여행 갔을 때 꽂혀서 여러 개 시켜 놨습니다. 몇 개 가져가실래요?”
첫인상은 차가웠지만, 지금의 엔리케 보토는 푸근한 이웃집 아저씨 느낌이었다.
“아시다시피 유의 계약을 프로 계약으로 새로이 맺고자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엔리케 보토는 자기보다 한참 어린 선수에게도 정중했다.
그의 사업 스킬 중 하나였다.
중요한 자리에서는 아무리 어린 사람에게도 존대하며 분위기를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이끄는 거였다.
“계약서는 사전에 합의를 한 대로 진행했습니다. 한번 검토해 보시죠.”
차명훈은 차분하게 계약서를 검토하며 유지우에게 여러 조항에 대해 설명해줬다.
“주급이 44만 5,000페소면.”
“한화로 500만 원가량의 금액입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득점 수당과 어시스트 수당도 있습니다.”
전체적인 옵션을 따지면 연봉이 3억이 넘는다는 소리였다.
기존에 맺은 유스 계약과 비교해 10배가 오른 금액이었다.
“사전에 협의한 금액보다 높군요.”
“그만큼 유에게 거는 구단의 기대가 높다고 생각해 주시면 됩니다.”
“그런데 계약 기간이 5년인 게 좀 걸리네요.”
“말이 5년이지 유의 활약이 이대로 쭉 이어진다면 매년 새로운 계약을 맺게 될 겁니다.”
엔리케 보토는 웃으면서 어떻게든 계약을 이 상태에서 마무리를 짓고 싶었다.
하지만 차명훈은 그냥 넘어갈 생각이 없었다.
“계약 기간은 5년이 아닌 3년, 그리고 15경기 출전 보장이 되지 않거나 클럽 성적이 리그 3위 밖에 있을 때는 이적 요청 시 이적 허용 조건도 포함해주시죠.”
“…….”
“바이아웃 조항 대신에 위 조건을 넣어달라는 게 그렇게 큰 요구는 아니라고 보는데요?”
어린 선수들이 프로 계약할 때는 성장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5년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차명훈은 5년이라는 긴 계약 기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3년.
바이아웃 조항을 포함하지 않은 대신에 계약 기간을 줄이는 방법을 택했다.
“그 부분은 검토가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바이아웃도 검토해주시죠.”
“…….”
“방금 말씀드린 조건이 마음에 안 들면, 5년 계약에 바이아웃 14억5천만 페소(한화 150억)도 괜찮습니다.”
“알겠습니다. 말씀하신 내용으로 계약서를 다시 만들려면 시간이 걸리니, 내일 다시 찾아주시겠습니까?”
대답을 들은 차명훈은 웃으며 일어났다.
“그렇게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