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ien In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374)
필드의 외계인-374화(374/404)
제374화
삐—익!
휘슬이 울리며 월드컵 4강 후반전이 시작됐다.
김우일은 볼을 잡자마자 아르헨티나 진영을 살피며 상대가 어떻게 나오는지 봤다.
‘압박 타이밍은 전반전이랑 비슷해.’
아르헨티나는 전반전과 마찬가지로 강하게 압박해 대한민국의 빌드업을 방해하고 있었다.
그들은 아주 작은 실수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한국을 매섭게 몰아붙였다.
[시작부터 아르헨티나의 강한 압박! 하지만 대한민국도 이 부분에 대한 훈련을 많이 해서 여유롭게 빠져나갑니다!]“진정하고! 천천히!”
김우일은 선수들을 다독이며 중심을 잡아줬다.
조금의 실수도 나와선 안 됐다.
유지우가 공격에 집중하는 지금.
후방을 책임지는 지휘관은 다름 아닌 자신이었으니까.
후반 시작하고 5분이 지나자 양 팀 선수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정후 선수의 슈팅이 골키퍼 정면으로-! 너무 정직한 코스였어요! 골키퍼가 볼을 굴려주며 빠르게 전개합니다!]가장 낮은 골키퍼부터 시작된 전개는 어느덧 가장 높은 디에고 로시의 발아래까지 연결됐다.
[바짝 붙어서 아르헨티나의 이런 전진패스를 방해해야죠! 이렇게 공간을 쉽게 내주면 안 됩니다!]디에고 로시는 볼을 잡고서 드리블해 측면돌파를 시도했다.
[빠릅니다! 디에고 로시의 발에 붙은 볼-! 장기현 선수가 앞을 막아보는데요!]장기현은 디에고 로시보다 키가 10cm나 컸다.
‘왜 이렇게 커 보여.’
그런데도 디에고 로시는 장기현을 상대로 전혀 밀리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압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작은 체구로도 얼마든지 상대의 골문을 노릴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선수.
그의 존재감은 필드 전체를 뒤덮기에 충분했다.
타다다다닷-!
디에고 로시가 장기현을 따돌리며 중앙으로 방향 전환하는 그 순간.
촤—악!
그의 발아래에 있는 볼만 정확하게 건드는 태클이 들어왔다.
사각지대에서 이런 정교한 태클을 할 선수는 한 명밖에 없었다.
‘유-!’
디에고 로시는 유지우를 보며 눈이 커졌다.
[엄청난 속도입니다-! 먼 거리를 단숨에 좁히며 태클로 공격을 끊어냅니다!]아쉽게도 볼이 라인 밖으로 나가며 소유권을 가져오지는 못했으나 아르헨티나의 흐름을 끊는 좋은 수비였다.
“미안해.”
장기현은 그가 수비 가담까지 하는 모습에 미안함을 느꼈다.
그도 그럴 것이 주앙 달루트의 지시가 유지우의 수비 가담을 최대한 줄이라는 거였다.
“괜찮아요. 다시 집중해서 하나하나 막으면 돼요.”
그러나 위기의 상황이 올 때면, 유지우는 그 같은 지시를 어겨서라도 수비에 가담해주고 있었다.
잉글랜드 때처럼 최후방까지 오가며 무리하게 체력을 낭비하지는 않았지만, 적재적소에서 디에고 로시의 기세를 꺾고자 했다.
토너먼트에서는 한 골로 승부가 결정되는 경우가 허다했으니까.
“다시 침착하게 가보자!”
이어지는 아르헨티나의 공격을 막아낸 대한민국은 다시금 소유권을 가져올 수 있었다.
‘유만 막을 수 있으면.’
디에고 로시는 이번 공격을 실패하게 한 가장 큰 원인인 유지우의 뒷모습을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너를 막는 건 어려워도, 마지막에 웃는 건 우리 아르헨티나가 될 거야.’
* * *
55분.
60분.
후반전은 전반전보다 치열했다.
퍼—억!
그러다 보니, 선수들의 충돌은 비일비재했다.
가뜩이나 힘든 경기에 비까지 오다 보니 선수들의 몸은 천근처럼 무거워지고 있었다.
[이럴 때일수록 힘들어도 한 발 더 내딛는 투지가 있어야 합니다! 후배들이 제발 원하는 결과를 얻고 웃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해설위원도 국가대표 선배였다.
그도 2006년, 2010년 월드컵을 뛴 경험이 있어 후배들이 가지는 부담감이 어떤 것인지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결승 무대에 올라가자, 얘들아.’
그와 마찬가지로 한국의 승리를 원하는 사람은 많았다.
국내에서는 각지에서 모인 응원 인파가 간절한 눈빛으로 응원했고.
현지 관중석에 있는 한국 관중 모두가 목소리를 높이며 선수들을 응원했다.
그 응원이 한 곳에 모이자.
– 와아아아아!!!
[유지우 선수가 볼을 잡습니다!]에이스가 응답했다.
“유에게 공간을 주지 마!”
“빠르게 자리 잡아! 한국 공격수들 위치 파악해!”
아르헨티나는 유지우를 보고서 라인을 내려 수비진을 구축했다.
산티아고 메디나 – 에두아르도 구아린.
두 선수는 유지우가 앞으로 가지 못하게 막으려고 했으나.
뻐—엉!
유지우는 굳이 돌파를 선택하지 않았다.
더 좋은 선택지가 측면에 있었으니까.
[강예수 선수가 측면으로 달리면서 공간을 엽니다!] [아-! 카를로스 로호가 오버래핑 때문에 라인을 올려 비게 된 공간을 강예수 선수가 정확히 파고듭니다!]유지우의 패스는 강예수의 앞으로 연결됐다.
보폭에 맞게 들어온 패스.
달리는 속도를 유지할 수 있는 수준 높은 패스였다.
그것을 받은 강예수는 백업을 오는 파우스트 바르코를 응시했다.
‘거리는 아직 있어.’
생각할 시간은 충분했다.
줄 곳을 찾던 그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유지우였다.
패스를 주고서 곧장 움직인 덕분에 유지우는 노마크 상태로 놓여있었다.
투—욱.
유지우 쪽으로 볼을 밀어주려고 했는데.
어느새 뒤에서 수비에 복귀한 카를로스 로호가 슬라이딩하며 발을 뻗어 볼을 건드렸다.
‘아.’
강예수는 굴절되는 볼을 보고서 자신의 실수를 눈치챘다.
땅볼로 받기 편하게 가야 유지우가 공격하는 게 더 수월했을 테니까.
유지우는 살짝 왼쪽으로 이동해 굴절된 볼의 낙하지점을 포착했다.
[강예수 선수의 패스가 굴절되었지만, 유지우 선수가 달려갑니다-!] [어!! 빨리 처리해야 합니다! 파우스토 바르코가 접근!!!]유지우를 마크하러 가는 건 파우스토 바르코였다.
‘볼을 잡기 전에 잘라낸다!’
그는 몸을 날려 유지우가 받기 전에 균형을 무너트리려고 했다.
아주 잠깐의 시간만 벌면 됐다.
산티아고 메디나가 거리를 거의 다 좁혀 범위 안에 들어왔으니까.
퉁.
그런데 거기서 유지우는 가슴 트래핑으로 볼을 받아놓고 무섭게 접근해오는 파우스토 바르코를 보고선.
퉁.
공중에 있는 볼이 땅에 떨어지기 전.
침착하게 다시 차올려 몸 뒤로 넘겼다.
갑자기 공이 사라진 것 같은 착각에 휩싸인 파우스토 바르코.
덕분에 그는 허공을 휘저어야만 했다.
뻐—엉!
볼을 뒤로 보낸 유지우는 제자리에서 몸을 돌려 낙하하는 볼을 발등에 얹어 그대로 발리슛을 때렸다.
수비수들이 없는 공간을 완벽하게 찌른 슈팅은 왼쪽 구석으로.
철렁.
빨려 들어가며 골키퍼도 움직이지 못할 득점을 만들어냈다.
– 와아아아아아!!!
[유지우 선수가 아르헨티나의 심장에 비수를 꽂습니다! 저 움직임 좀 보십시오! 빠른 템포로 진행 중인 경기에서 저리 아름답고 침착한 트래핑이라니! 이건 유지우 선수의 기본기가 만들어낸 골입니다-!!!] [61분입니다! 이제 남은 시간만 버텨도 대한민국은 사상 첫 결승 무대에 발을 딛게 됩니다!]태극전사들이 역사의 주인공이 되기까지 남은 시간은 30분이었다.
* * *
대한민국 2 – 1 아르헨티나.
빗줄기가 거세지는 않았지만, 지속해서 오는 바람에 선수들의 유니폼은 이미 흠뻑 젖어 있었다.
촤—악!
슬라이딩할 때, 물이 튀었고.
뻐—엉!
잔디가 미끄러워 패스가 빨라지며 몇 번의 실수가 나왔다.
하나, 선수들은 월드컵 4강에 올라온 이들답게 경험이 풍부했다.
그들은 필드에 서서히 적응해가며 수준 높은 패스를 보여주었다.
[경기는 70분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선수들! 조금만 버티면 됩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도 그 시간을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그들의 공격은 월드컵에 출전한 국가 중 손에 꼽히니,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역전 골을 넣은 대한민국은 흐름을 탔다.
측면으로 볼을 전개해 공간을 넓게 썼을 뿐만 아니라, 중원 점유를 높이려고 볼을 돌렸다.
그리고 유지우에게 패스가 가는 순간.
퍼—억!
산티아고 메디나가 유지우가 볼을 잡기도 전에 강하게 부딪쳤다.
유지우는 그대로 쓰러져 뒹굴었다.
삐—익!
불필요한 몸싸움에 유지우가 넘어지자 대한민국 선수들이 일제히 경호부대처럼 달려왔다.
[이건 카드가 나와야죠! 무리한 반칙이었습니다!]사실 버티려면 버틸 수 있는 몸싸움이었다.
그런데도 그러지 않은 이유는 볼 소유권을 넘겨주지 않으려는 것과 동시에, 카드를 받게 해 움직임을 소극적으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후우.”
심호흡하며 일어난 유지우는 상황을 살폈다.
‘1분이라도 볼을 지켜야 해.’
그런 그의 간절함에도 잠시 후.
한국은 볼의 소유권을 넘겨주고 말아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대한민국 수비진이 빠른 백업을 해 상대의 속공 타이밍을 뺏었다는 점이었다.
[좋습니다! 이런 식으로 침착하게 아르헨티나가 들어올 공간을 없애면 됩니다!]대한민국의 수비라인은 굉장히 정교했다.
삐—익!
거기에 더해 적절하게 오프사이드 트랩도 사용하며 아르헨티나의 공격 흐름을 끊으려고 애썼다.
70분.
75분.
아르헨티나는 조급할 법했으나 침착하게 경기를 풀어갔다.
그렇게 잠시 후.
그들은 그토록 원하던 기회를 잡아냈다.
[대한민국이 오프사이드 라인을 구성하고 있어서 아르헨티나가 뒷공간을 노리기 힘들 겁니다!]대한민국은 아르헨티나 수비를 막으려고 라인을 맞춰 움직였다.
조금이라도 뒷공간을 노리는 낌새라도 보이면 오프사이드에 걸리게끔.
그러나 그들의 생각과는 반대로.
뻐—엉!
에두아르도 구아린은 하프라인 아래에서 전방을 살피더니, 날카로운 롱패스를 보냈다.
[대한민국의 뒷공간을 노리는 아르헨티나-!]라인이 구축되어 있어 안정적이라고 생각이 든 것도 잠시.
‘어느 틈에-!’
디에고 로시가 볼이 오는 방향으로 달리고 있었다.
오프사이드 트랩을 시도할 틈도 없이 라인을 부수는 날카로운 라인 브레이킹.
그대로 공간이 열릴 위기라 권창신과 강현오가 필사적으로 따라갔다.
‘젠장-! 트랩 때문에 라인을 너무 올렸어!’
너무 신중한 것이 도리어 화를 불러온 모양새였다.
스르르르륵.
볼은 디에고 로시의 앞으로 갔다.
디에고 로시는 날아오는 볼을 허벅지로 트래핑해 앞으로 떨궈놓고선, 그대로 속도를 살려 나갔다.
교과서에 나올 법한 아름다운 퍼스트 터치였다.
– 오오오오오!!
[속도를 살리는 디에고 로시-! 강현오 선수! 막아야 합니다! 반칙으로라도 끊어야 해요!]강현오는 유니폼을 잡아끌어 보지만, 디에고 로시는 움직이지도 않았다.
그리고 페널티 에어리어 안으로 들어가게 됐고 디에고 로시는.
퍼—억!
강현오의 몸싸움을 견디면서 골키퍼의 위치를 눈으로 살폈다.
골키퍼 강인우는 각도를 좁히려고 애썼으나.
툭.
디에고 로시는 그의 벌어진 다리 사이로 슈팅을 하며.
철렁.
대한민국의 골대 안으로 볼을 집어넣었다.
아르헨티나의 에이스이자 유지우의 라이벌.
그 이름에 걸맞은 플레이에 스타디움은 열기에 휩싸였다.
– 와아아아아아!!!
[디에고 로시의 골이 나옵니다. 이것으로 균형을 맞추는 아르헨티나.] [여기서 방심을 했어요. 디에고 로시의 속도를 생각하면 라인을 내려서 위치했어야 했는데…. 하아, 여러모로 아쉬운 실점입니다.]대한민국의 월드컵 결승을 기대하고 있던 분위기는 가라앉았다.
이제 분위기를 탄 건 아르헨티나 관중들이었다.
그들이 내지르는 함성 속에서 세레머니를 마치고 돌아가는 디에고 로시를 보며 유지우는 웃음을 지었다.
씩.
두 선수의 포지션은 서로를 마주 보는 위치였다.
그래서 돌아가는 길에 만날 수밖에 없는데.
짝.
두 선수는 서로 시선은 마주치지 않았지만, 마음이 통했는지 낮게 하이 파이브를 했다.
세계 최고의 라이벌.
서로를 인정하는 최고의 적수.
그리고 오늘 반드시 쓰러트려야 하는 친구.
‘이기는 건 우리 한국이야.’
‘무슨 소리, 내가 이길 거니까. 울지나 마.’
두 사람은 입 밖으로 말을 꺼내지 않아도 하고 싶은 말을 알 수 있었다.
그만큼 서로 통하는 게 많았으니까.
삐—익!
잠시 후, 경기는 재개됐다.